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내 양은 내 음성을” 분별한다고 하셨습니다.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요 10:27~28).

하나님께서는 분명한 빛을 주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분명한 요구를 알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한 채 우리가 원하는 것들을 하면서 하늘의 축복을 기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광야에 성소를 지으실 때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매우 구체적인 지시를 주셨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지시를 어떻게 받아들였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자신이 원하는 부분과 원하지 않는 것으로 구별했습니까? 아닙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과 지혜를 그대로 받아들였습니다.

물론, 우리 모두는 연약하며 여러 가지 약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부족함이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고 거절하는 이유가 될 수는 없습니다. 성도 여러분, 오늘날 교회의 진짜 모습을 보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이 다니고 있는 교회와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교회를 나란히 놓고 살펴보면, 우리가 어떤 면에서 변화되어야 하고 무엇을 개혁해야 할지 알게 됩니다. 현대 기독교회가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어디서, 어떻게 빗나갔는지 확인하는 사람은 성령께서 주시는 부담에 짓눌리게 될 것입니다. 월간지 <변화>는 이번 호에서 성령께서 주시는 부담을 독자 여러분과 나누려고 합니다.

이번 호를 읽는 분들 중 어떤 분들은 글을 읽다가 두 손을 높이 들고 신이 나서 “아멘”이라고 외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들은 글을 읽다가 기분이 상해서 월간지를 덮을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두 종류의 태도 모두 적절치 않습니다. 왜냐하면 기독교회가 이렇게까지 된 데에는 목회자와 신학자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지만 일반 성도들도 책임을 피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의 책임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중 누구도 교회의 부흥과 개혁에 대해서 말할 때 다른 사람에게 손가락을 돌리고 정죄할 수 없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정확한 하나님의 말씀과 겸손과 용기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께서 재강림하실 때 “너는 부흥과 개혁을 위해서 최선을 다했다.”고 인정해 주실까요? 우리가 어떻게 해야 마지막 심판의 날에 하나님께로부터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선언을 들을 수 있을까요?

 

두 부류의 사람들

오늘날 교회 안에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대다수의 사람들은 인간적 욕구와 감정을 만족시켜 주는 설교를 좋아합니다. 현대 기독교인들이 가장 듣고 싶어하는 설교와 메시지는 “세속과 이기심을 포기하지 않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내용입니다. 그래서 “죄와 세속에 끌려다녀도 결국에는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실 것이다.”라고 말해 주는 설교와 책들이 인기 있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들이 그런 설교와 책을 좋아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뜻을 정직하게 펼쳐 보이는 설교와 책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좁은 길을 걸으라.”는 설교를 좋아하고, “말씀에 충성하라.”는 메시지가 강조되는 책을 찾습니다. 그런 분들은 “죄를 포기하라.”고 책망하는 설교를 들으면 “아, 이 목사님은 하나님의 종이구나!”라고 생각합니다. 대개 그런 분들은 스펄젼과 휘트필드의 설교 듣기를 좋아하며, 토저와 요한 웨슬리의 글을 사랑하는데, 그들의 설교와 글이 갖고 있는 공통점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굴복하라.”고 외치는 강력한 호소와 메시지가 담겨져 있는 것입니다.

지금 기독교회는 깊은 혼돈과 수렁에 빠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책과 설교를 선택하는 데 있어서 고민과 기도가 필요한 때입니다. 날마다 주 앞에 나가 “주여, 저를 죄와 세속으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말씀을 주시옵소서. 주께서 주고자 하시는 거룩함으로 인도하는 설교와 책을 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현대 기독교회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은, ‘심리학’으로 성경의 거룩함을 설명한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인 마음과 합리적인 사고가 마치 성경이 말하는 거룩함인 것처럼 가르쳐지고 있습니다.  죄인의 심령 깊은 곳을 파헤치고 들어가야 할 복음이 얄팍한 기술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심리학에 물든 설교와 책에 빠져들면, 상한 심령으로 가슴을 치면서 회개하는 성령의 위대한 역사가 일어나기 어렵습니다. 그리스도를 영접했다고 하면서 돈과 세상을 사랑하고, 말씀을 읽고 기도하지만 탐욕적으로 살아가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보이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모두가 그렇게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동이 트기 전에 일어나서 하나님의 뜻을 살피고 참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애쓰는 목회자와 성도들이 있습니다. 매 시대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함을 사모하는 종들을 부르셔서 복음을 전파하셨으며 그들을 증인으로 사용하셨습니다. 이 시대에도 깨어서 기도하고 말씀을 살피는 성도들을 부르시는데, 그들은 대개 이런 간증을 합니다. “하나님께서 제 눈을 열어 주셔서 진리가 무엇인지 보게 되었습니다. 성령께서 제 마음과 생애 속에서 놀라운 역사를 이루셨습니다. 그렇게 세속적이던 제가 이제는 말씀을 사모하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성경이 지루한 책이었는데, 이제는 성경 말씀이 꿀처럼 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고 싶은 충동이 올라옵니다. 전에는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했는데 이제는 순결하고 깨끗한 것을 좋아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제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사실은, 이런 간증과 고백을 들을 때 당황하는 사람들이 매우 많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왜 당황할까요? 왜냐하면 한 번도 그런 경험을 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때 그런 경험을 했지만 오래전에 성령의 역사에서 벗어난 사람들도 많이 있는데 그런 분들은  마음속으로 이런 생각을 합니다. “나도 한때 그런 경험을 한 적이 있지만, 뜨거움은 오래가지 않았어. 결국에는 다 마찬가지야. 우리 모두는 뜨뜻미지근한 라오디게아 교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어. 우리에게 있어서 부흥과 개혁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일이야.” 성도 여러분,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성령의 역사를 부인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도 어떤 사람들은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나가는 경험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더 밝은 빛을 향해 나가고 있으며 그리스도의 성품을 반사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을 갖고 있습니다.

“너희 속에 선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빌 1:6)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생각을 갖고 있습니다. “부흥과 개혁은 우리가 원하든지 원하지 않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이루어게 될 것입니다. 나는 부흥과 개혁을 앞당기기 위해서 노력하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어떤 쪽에도 속하지 않은 채 살아갈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일 그런 생각이 올바른 생각이라면, 기독교 역사에서 순교란 없었을 것이며 종교개혁자들이 피를 흘리는 일도 없었을 것입니다.  “나는 중간에 서 있겠다.”는 생각은 하나님의 마음을 매우 아프게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의 문 앞에 서서 부흥과 개혁의 물결이 들어오지 못하게 막고 있는 큰 돌들이 있습니다. 이번 호에서는 교회와 개인의 부흥과 개혁을 막고 있는 돌들을 하나씩 살펴볼 것입니다. 성령께서 독자 여러분의 마음속에 깊이깊이 역사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