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큐메니칼’(Ecumenical)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습니까? 아마도 어떤 분에게는 용어가 생소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단어를 알기는 해도 별로 관심이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이 단어의 의미를 모르든지, 혹은 단어에 대하여 무관심하든지 상관없이, ‘종교연합 뜻하는 단어는 아마도 지구 역사의 마지막에 가장 중대한 의미를 가진 이슈 중의 하나로 다가올 것이며, 지구에 거주하는 모든 인류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있는 매우 중요한 말입니다

에큐메니칼이라는 말은 헬라어오이쿠메네’(οἰκουμένη)에서 유래하였습니다. 말의 뜻은사람이 거주하고 있는 모든 세상”(the whole inhabited world)이라는 의미입니다. 역사적으로는 단어를 로마 제국이 정치적, 사회적 통치의 개념으로 사용하였는데 이유는 대략 이렇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이 대륙에 걸쳐서 방대한 면적을 차지하고 수많은 민족과 국가를 통치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로마는 제국의 통치 범위 안에 거주하는 모든 사람들은 어느 곳에 살고 있든지 그들이 로마의 깃발 아래 머무는 차별받지 아니하고 동등하게, 백성으로 대접받는다는 메시지를 보내려고 했던 것입니다.

오늘날도 에큐메니칼(Ecumenical) 또는 에큐메니칼주의(Ecumenicalism) 세계가 같은 언어, 문화, 종교, 통치 등의 영역에서 일치되고 하나 된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1. 바벨탑 정신과 에큐메니칼 운동

최초의 에큐메니칼은 바벨탑 사건이다

성경 역사를 통해서 보면, 번째 에큐메니칼 운동은 시날 땅에서 벌어졌습니다. 홍수로 인한 파멸의 역사를 기억하는 노아의 후손들은성읍(a city) (a tower)” 건설하여우리 이름”(a name for ourselves) 내고 지면에”(of the whole earth) 흩어짐을 면하자고 하였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가 되어 함께 살자고 것입니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는 땅의 언어가 하나요, 말이 하나”( 11:1, the whole earth was of one language, and of one speech)였기 때문입니다.

성경이 바벨탑 사건을 기록할 때에 한결 같이하나’(a, one)(the whole earth)이라는 용어를 사용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그들은 시날 땅을 중심으로 새롭고도 완전한 에큐메니칼 공동체로서 살아가려고 했던 것입니다. 더욱 중요한 사실은 탑을 쌓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하나님에 대한 적대감을 품고 있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나 시날 땅에서의 삶은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합니다. 사람은 누구나 하나됨과 일치를 원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사람들이 바라는 이상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러한 사회가 만들어졌다고 가정해 봅시다. 동일한 사상과 신념으로 하나의 공동체가 실현되었을 경우, 점점 확대되고 거대하게 발전해가는 공동체를 유지하면서 이끌어 나갈 절대 권력의 탄생이 불가피한 것입니다.

바벨탑과 같은 거대한 빌딩을 건축하려면 바닥의 면적은 넓게 차지하지만 상층부로 높이 올라갈수록 면적이 좁아지듯이, 거대한 집단에는 집단을 지배하는 상부 소수의 지배자가 반드시 존재하게 됩니다. 그리고 집단이 거대하면 할수록 정상에는 극소수의 절대 권력자가 있을 것입니다.

건물의 거대한 하층 구조가 상층부를 떠받들고 있듯이 허다한 사람들은 최고의 지배 계층을 떠받들어야 하는 구조가 불가피한 것입니다. 뿐만 아니라 시스템을 유지해야 하는 부가적인 낭비는 원래의 이상인 하나됨을 무색하게 만들고 단일 조직을 계층화시켜서 계급이 만들어지고 지배자와 피지배자가 서로 갈등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사무엘 선지자에게 자기들을 다스려 왕을 요구했을 , 왕을 세웠을 백성들이 부담해야 고난의 짐들을 세세하게 알려주었습니다.(삼상 8:11~18). 왕이 자리를 유지하기 위하여 그들의 아들들을 취하여 군대를 만들 것이고, 딸들을 데려다가 왕궁의 잡다한 일들을 시킬 것이며, 왕궁과 군대와 신하들을 유지하고 먹여 살리기 위하여 그들의 재산을 탈취해 것이라고 경고하였습니다.

그러므로 많은 인간들이 하나의 집합체를 이루어 다른 어떤 죄인이 집단을 지배하고 통치하는 것은 유익하지 않을 아니라, 지배를 받는 사람들은 말할 없는 고통과 시련을 감내해야 합니다. 그러한 지배 구조는 결코 성공할 없을 뿐만 아니라, 결국 지배자는 권세와 권력을 유지하기 위해 강압적인 통치를 해야 하므로 언젠가는 파멸을 자초할 수밖에 없는 것이 자명한 이치입니다.

이러한 인간의 속성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바벨탑의 건축을 방치하실 없었습니다. 탑을 건축하는 일을 중단시키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직접 개입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인생들의 쌓는 성과 대를 보시려고 강림하셨더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무리가 족속이요 언어도 하나이므로 이같이 시작하였으니 이후로는 경영하는 일을 금지할 없으리로다 , 우리가 내려가서 거기서 그들의 언어를 혼잡케 하여 그들로 서로 알아듣지 못하게 하자 하시고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지면에 흩으신 고로 그들이 쌓기를 그쳤더라.”( 11:5-8).

하나님께서는 연합된 왕국을 만들기 위하여 쌓는 자들의 반역적인 정신을 보셨습니다. 얼마의 세월이 지나고 나면 전제 정치가 출현하여 권력이하고자 하는 일을 막을 때문에 결과로 나타나게 인간 학대와 인간성 파괴를 하나님께서 미리 아셨던 것입니다. 구원의 희망을 상실하고 권력에 볼모 잡혀 살아갈 사람들의 불행을 보시고 탑을 건축하지 못하도록 막으셨던 것입니다. 하나의 인간 권력이 세상을 통치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에 맞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 만민이 다양한 여건 속에서 조화롭게 살아가는 것을 원하십니다.

 

21세기 바벨탑 재건 운동 진행 중

이념이 변화되고 고도의 기술이 발전되면서, 인간의 사회 구조와 질서에 다른 변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변화의 중심에서 세상을 지배하는 운동 중의 하나가 바로 에큐메니칼 운동(Ecumenical Movement)입니다. 운동은 노아 홍수 이후에 있었던 바벨탑 건설 운동과 매우 흡사한 성격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바벨탑 재건 운동이라고도 있습니다.

인류는 20세기에 들어 차례의 세계적인 전쟁을 치르면서 깊은 절망과 공포감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사람들은 더욱 안전한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특별한 목적을 가진 국제기구들을 탄생시켰습니다. 정치적으로는 U.N.(United Nations, 1945) 창설되었고, 정치경제공동체인 유럽공동체(EU) 창설되었으며(1956), 세계경제협의체인 국제통화기구(I.M.F., 1945) 세계은행(W.B., 1944) 설립되었습니다. 문화적으로는 국제교육과학 문화기구(UNESCO, 1945) 만들어졌고, 과학으로는 세계를 하나의 네트워크로 묶을 있는 인터넷이 개발되어 세계가 혜택을 누리고 있습니다.

외견상, 이러한 움직임과 변화는 분야에서 개별적으로 일어나는 현상이었지만, 시대가 흐르면서 정체가 서서히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세계의 모든 분야가 국제기구를 통하여 통제를 받으면서 인수, 합병, 통합되고, 나중에는 거대한 단일 시스템으로 흡수되어 가는 것입니다. 특히 20세기 후반, ‘세계화라는 새로운 질서로 인하여 세상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인 벽이 허물어지고, 거대 기업이 세상 전체를 하나로 묶는 일들이 빈번히 생겨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세계 어디를 가도 같은 음료를 마시고, 동일한 상표가 달린 가방을 메고 신발을 신고 다닐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지역별, 블록별 정치, 경제 공동체의 운명도 서서히 흔들리면서세계는 하나의 공동체라는 운명으로 기울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21세기 하나의 세상 꿈꾸는 시대적 변혁을 이끌어가는 여러 주축 중에 대표적인 것이 종교적인 일치운동 또는 연합운동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가 합세하여 주도하는 에큐메니칼 운동이 바로 그것입니다. 로마제국이 그러했듯이 종교적 에큐메니칼 운동에 앞장선 지도자들이 말하는 정의는 비교적 단순합니다. 비록 다른 신조와 신앙 전통 안에 머물러 있을지라도, 서로를 들여다보며 보다 친숙한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 친교) 맺을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앙 문화와 관습, 그것들에 주어진 가치 등등의 차이점을 극복하여 일치된 부분을 찾아낸다면 세계의 모든 종교는 하나가 되고, 연합할 있을 아니라, 교회들 , 종교들 간에 가시적이면서도 유기적인 연합체로 만들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운동은 세상에 평화와 번영을 가져다주는 중요한 동력이 있다는 명분으로 추진되지만 배후에는 다른 의도가 감추어져 있습니다

 

2. 에큐메니칼 운동과 세계교회협의회(WCC)

지금 현재 세계 종교들의 통합을 추진해 나가고 있는 핵심적인 세력은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입니다. 물론 측면에서 혹은 배후에서 조종하는 세력으로 가톨릭이 작용하고 있는 것도 확실할 뿐만 아니라, 현재에는 모든 종교연합운동의 중심에 가톨릭이 자리를 잡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우선 에큐메니칼 운동의 흐름을 제대로 파악하려면 WCC 역사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필요합니다. WCC 탄생한 배경과 연속된 회의의 내용을 분석해 보면 세계 종교통합이 어떤 과정을 거쳐서 진행되고 있는지, 목표가 무엇인지를 어느 정도 짐작하고 예측할 있을 것입니다

 

1948년 세계교회협의회(WCC)가 탄생되다

19세기 초부터 20세기 초까지기독교의 가장 광범위한 지리적 확장 이루어졌습니다. 아울러 기독교 내부의 생동력이 활성화되고 크게 강화되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을 기초로 저명한 교회역사가인 스코트 라투레트(Scott Latourette) 1817년부터 1914년까지의 유럽과 북미의 역사를위대한 세기”(The Great Century)라고 정의하였습니다. 그러한 정의를 내린 다른 이유는, 수많은 선교단체들이 복음주의적 동기로 선교적 과업을 수행하였기 때문이고, 배경에는 초교파적인 협동과 연합의 정신이 있었습니다.

이러한 기독교적 선교 확장에 대하여 아프리카의 여러 나라들을 비롯한 3세계의 국가들은 매우 수용적이고 적극적인 반응을 보였습니다. 미국 성공회 주교였던 브렌트(Brent) 이러한 3세계의 반응에 고무되어 선교사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을 주장하면서교회연합운동 필요성을 역설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마침내 브렌트는 주변 사람들의 협력을 얻어서하나의 교회라는 비전을 가지고 교회를 하나로 연합시켜야 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1910년에 세계선교회의(World Missionary Conference) 주도하였습니다.

단체가 발전하여 1948, 암스텔담에서 1 세계교회회의가 개최되었고, 회의에서 세계교회협의회(World Council of Churches: WCC) 발족되었습니다.

현재 세계의 기독교의 흐름을 주도하고 있는 세계교회협의회의 정체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는 회의 때마다 발표되는 선언들과 자리에서 이루어지는  행사를 통해서 확인할 있습니다. 결국 에큐메니칼의 정체와 실체를 이해하려면 회의의 내용을 제대로 알아야 하기 때문에 10차에 걸친 총회 중에서 매우 중요한 이슈를 다루었던 차례의 회의 의제와 행사들을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제1차 WCC 총회: 1948년, 암스텔담(Amsterdam)

– 147개의 개신교 교파로 시작하여 현재 348 교파가 활동

WCC 목표는눈으로 확인할 있도록 믿음과 성찬으로 교제하는 일치된 (또는 통일된) 교회 만드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44개국으로부터 147 교파의 대표자 351명이 1948 암스텔담에 모여서 WCC 창립하게 것입니다.

초기에는 개신교파를 주축으로 시작된 단체는 세월이 흐르면서 범위가 확대되어 가톨릭교회도 옵서버로 참석하게 되었고, 마침내는 기독교가 아닌 다른 종교들까지 포용하는 종교통합 단체로 발전하는 양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가톨릭교회는 WCC 옵서버로 참석하고 있지만 WCC 산하에 있는 지역의 종교단체에는 정식 회원으로 가입하여 리더로서의 역할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는 추세로 발전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 기독교인의 수는 22 (가톨릭 13 포함)입니다. 그리고 기독교를 구성하고 있는 교파의 수도 무수하게 많습니다. 세계기독교연구소(Gordon-Conwell 신학대학원 부설) 발표에 의하면, 세계 기독교에는 45,000 개의 교파가 있습니다. 세계기독교백과사전은 숫자를 2001 기준 33,000 개로 구분하였습니다. 여하간 세계에는 수많은 기독교 교파들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현재 세계교회협의회(WCC)에는 348 교파들이 참여하고 있는데, 22억의 세계 기독교인들 5 명이 포함되어 있다고 밝힌 있습니다. 만약에 조만간 가톨릭교회가 WCC 정식 가입을 한다면, 13 (2015 기준) 가톨릭 신자의 수가 포함되어 WCC 가입된 기독교인의 수는 18 명이 됩니다. 이렇게 되면 전세계 기독교인의 80% WCC 속하게 되므로 세계 기독교를 지배할만한 엄청난 힘을 갖게 것입니다.

 

제3차 WCC 총회: 1961년, 뉴델리(New Delhi)

우주적 그리스도: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도 임하신다.

3 총회에서 폭넓은 변화의 조짐이 나타나기 시작하였습니다. 3 총회의 주제는예수 그리스도, 세상의 (Jesus Christ, The Light of the World)”이었고 그리스도가 중심 주제였습니다. 루터교 신학자인 죠셉 시틀러(Joseph Sittler) 총회에서 주제로 연설을 하였는데 여파로 그리스도에 관한 WCC 기독론에 현저한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시틀러의 주장에 의하면 그리스도의 구속의 교리는 우주의 교리와 분리해서 생각할 없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를 통한 구속의 교리는 인간의 구속뿐만 아니라 우주 만물의 구속까지 포함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우주 자체가 하나님의 활동무대이고, 우주와 모든 자연은 서로 떨어질 없는 상호 보완적 관계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에서 나온 이론이우주적 그리스도(Cosmic Christ)” 입니다. 그는우주적 그리스도 다른 모든 종교에서도 보편적으로 감지될 있기 때문에, 다른 종교에 속한 사람들도 그들이 구원을 원하기만 하면 현재 가지고 있는 신념이나 사상에 관계없이 그리스도가 그들에게도 임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우주적 그리스도 원래부터 불교, 힌두교, 이슬람교에도 임재하셨는데 그들이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힌두교에서는 그리스도 대신에 크리슈나(Krishna), 불교에서는 부처(Buddha), 모슬렘에서는 마디(Imam Mahdi) 구주로 믿는다는 것입니다. 라너(Karl Rahner) 이와 같은 종교의 신도들에 대하여익명의 그리스도인(anonymous Christian)”이라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WCC 3 총회에서는, 다른 종교인들이 구태여 기독교인으로 개종하지 않더라도 기독교가 타종교인들과 통합이 가능한 길을 열어놓은 것입니다. 이것은 종교통합을 위하여 기독교와 다른 종교 사이의 막힌 담을 헐어버리는 매우 획기적인 아이디어입니다. 이러한 사상에 힘입어 WCC 3 총회에서부터다른 종교 안에도 그리스도가 관념적으로 내재하고 있다.” 주장하게 되었으며, 그들의 회의록에는그리스도를 통한 화해는 모든 창조물과 인류를 포용한다(Yri, Quest, 169).”라고 단언하였습니다.

가톨릭교회에서도 WCC 3 총회의 결론과 조화를 이루는 내용을 발표하였습니다. 1961, 독일의 가톨릭교회 신학자 라너(Karl Rahner), 하나님이 다른 종교들도 구원의 통로가 되게 하셨기 때문에 다른 종교인들이 그들 종교에 충실하면 구원이 제공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지난 2005 11, 교황 베네딕트 16세도 문제에 대하여 다시 확인하기를불신자도 역시 구원받을 있다.” 제목으로 바티칸 뉴스에 다음과 같이 발표하였습니다.

누구든지 순전한 양심으로 공동체의 평화와 선을 추구하며, 초월적인 것을 위하여 소원을 활기 있게 유지하면, 성경적 신앙이 부족하더라도 구원받을 것이다.”(Vatican City, Nov. 30, 2005, Zenit.org). 종교통합을 위해서는 만인에 대한 구원설이 정립되어야 하기 때문에 가톨릭교회는 이와 같은 형태로 WCC 보조를 맞추면서 상호협력 관계를 유지해 가고 있습니다.

제4차 WCC 총회: 1968년, 읍살라(Uppsala)

다른 종교인들을 포용하기 위해그리스도인이라는 대신신자라는 용어를 사용함.

WCC 1968, 4 총회에서보라, 내가 모든 것을 새롭게 하노라(Behold, I make all things new).” 주제로 모였으며, 목적은세상의 모든 종교의 어두움 속에서 주무시는 그리스도를 깨우기 위하여라고 설명하였습니다. 그때 WCC현존하는 다른 믿음의 사람들과의 대화 프로그램(Program of Dialogue with People of other Living Faiths)” 개설하기로 하였는데, 1970년부터는그리스도인(christian)”이란 용어에서그리스도라는 이름을 빼고신자(believer)”라는 말로 대체하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종교를 믿는 사람들을 가리켜서동료 신자들(fellow believers)”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상대에 대한 기본 개념과 명칭을 변경하므로 모든 종교를 포용하는 작업을 의식화하기 시작한 것이었습니다. 러한 변화의 결과로현존하는 (다른) 신앙과 공리를 가진 사람들과의 대화(DFI: Dialogue with People of Living Faiths and Ideologies)” 프로그램이 1971년부터 시작되었습니다. 1973 방콕에서 모인 프로그램의 회의에서는 세계불교연합회 회장인 디스쿨 프리스마이(Diskul Poon Prismai) 여사가 개회사를 하였으며, 1975 5 나이로비(Nairobi, Kenya) 총회에는 이슬람교, 가톨릭교회, 불교, 힌두교, 유대교, 무신론자 각종 종교의 대표자들이 대거 참석하여 대성황을 이루며, WCC 지평을 크게 확대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제7차 WCC 총회: 1991년 캔버라(Canberra)

기독교와 무속신앙까지 포함하는 이방 종교의 연합이 절정을 이루다.

호주 캔버라에서 모인 7 WCC 총회는 주제가오소서, 성령이여! 모든 창조를 새롭게 하소서!(Come, Holy Spirit: Renew the whole creation)”였습니다. 주제가 표현하고 있는 바와 같이, 7 총회에서는 이방 종교를 본격적으로 포용할 뿐만 아니라 그들과 연대하는 모습을 드러냈습니다. 4,000 명의 참가자 가운데는 비기독교 종교대표자들, 점술가, 심령술사, 마술사, 무당 세계 15 종교대표자들이 초청을 받았으며, 역대 최대 규모의 종교혼합 집회가 되었습니다.

개회식에 호주 원주민의 전통 종교의식을 행하였는데, 원주민 마법사들이 젖은 고무나무 잎새를 태우며 짙은 검은 연기를 하늘로 올리면서 참가자들에게 조상들의 영들로부터 축복받기 위하여 연기 사이로 걸으라고 요청하기도 하였습니다. 특히 뉴욕 연합 신학교의 정현경 교수(Union Theological Seminary in New York) 강연 내용은 집회의 성격이 무엇인지를 적나라하게 드러내었습니다. 그녀는 치마저고리를 입고 창호지에 초혼문(招魂文) 가지고 나와서 죽은 영혼들을 불러내는 기원문을 다음과 같이 외쳤습니다

오소서, 우리들의 신앙의 조상 아브라함과 사라에 의하여 이용당하고 버림받은 이집트 여인 하갈의 영이여! 다윗 왕에 의하여 죽임을 당한 우리야의 영이여 오소서! 나치에 죽음 당한 영이여, 2 대전 창녀로 끌려간 한국 여인의 영이여, 십자가의 고통으로 죽은 우리의 형제 예수의 영이여 오소서!”

1993 11, 미국 미네소타주 미네아폴리스에서 열린 WCC 중간 회의에서 정현경은 성령(the Holy Spirit) 고대 아시아의 신들과 동일시하였으며, 2,000 명의 여성 청중들에게나의 내장(bowel) 불교의 내장이요, 나의 심장(heart) 불교도의 심장이며, 나의 오른쪽 두뇌(brain) 유교도의 두뇌이고, 나의 왼쪽 두뇌는 그리스도인의 두뇌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리고 여성 청중들에게 만일 에너지가 필요하다면 나무에게 가서 기도하라고 하면서 다음과 같이 제안하였습니다.

만일 여러분이 심히 피곤하여 지친다면, 나무 밑에 가서생명 에너지를 나에게 주소서라고 나무에게 기도하면 됩니다.”

정현경은 여기에 더하여 이렇게 말했습니다. “성경은 원래 개방된 책입니다. 그래서 나는 나의 글을 성경에 추가하기를 원합니다.” 1998, 아프리카 짐바브웨에서 열린 8 WCC 총회에서 그는 요한복음 14:6 내용에 나타난 바대로그리스도가 천국에 이르는 유일한 길인가?”라는 질문을 받았을 , “예수님이 실수하신 것입니다.”라고 대답하였습니다.

이러한 언행들이 자연스럽게 표출되는 WCC 정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그들이 줄기차게 전개하고 있는 에큐메니칼 운동의 실체는 과연 무엇일까요?

 

3. WCC는 앞으로 어디로 갈 것인가?

WCC는 기독교 아닌 기독교가 되었다

1948 세계교회협의회(WCC) 창설된 70년의 세월이 지나면서 WCC 면모와 철학이 무엇인지 대부분 드러났습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바를 요약하면 교회 일치, 종교 일치를 위하여 종교다원주의를 시인하고 용납할 아니라 상대 종교와 믿음을 인정하고 수용하여 새로운 기독교를 만드는 것입니다. 한편 그들이 매우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은 가시적 교회의 일치입니다. 그들이 가시적 교회의 일치를 주장하는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종교들 간의 형식적인 연합과 일치와 협력을 넘어서, 전세계의 종교적, 정치적, 사회적 패권을 잡기 위한 열망 때문입니다. 성경이 무형적 교회와 남은 무리로서의 성도들을 제시하고 있다는 입장에서 보면, 종교연합의 가시적인 일치와 외형의 확장은, 조직이 숨겨진 다른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교회의 사회참여 문제는 시각이 다를 수도 있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고 힘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있는 현실을 보며, 이것은 종교와 선교의 차원을 넘어서는 다른 의도가 있음을 짐작할 있습니다. 물론 세계교회협의회가 가지고 있는 신론, 기독론, 성령론, 구원론, 선교관은 이미 기독교가 아닌 기독교로 변모하였으며, 기독교의 근본 정신에서 크게 이탈하여 전혀 다른 방향을 향하여 질주하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종교의 다윈주의인가, 아니면 혼합주의인가?

종교다원주의라는 속에는 종교가 고유의 전통과 신조를 가지고 있으면서 상대 종교를 존중하여 공존한다는 개념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나아가 기독교만이 유일한 구원의 길이라는 주장을 거부하며, 모든 종교가 상대적이며 모든 종교는 본질적으로 동일하다는 기본 명제를 전제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재 WCC 흐름은 한걸음 나아가서 기독교의 고유한 본질을 여타 종교의 신조들과 혼합하여 3 새로운 종교 형태를 추구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심각한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습니다.

WCC 안에는 연합운동을 위한 다음과 같은 4개의 공동체가 있습니다. (1) 가톨릭과 세계교회협의회 공동체 (2) 신오순절교회들과 세계교회협의회 공동자문그룹 (3) 기독교 세계공동체와 세계교회협의회 공동자문위원회 (4) 21세기 에큐메니즘 위원회. 모임들을 통하여 정교회, 콥틱교회, 가톨릭교회, 루터교회, 성공회, 회중교회, 장로교회, 감리교회, 침례교회 등등이 활동하고 있습니다. 이들은 모두 기독교임에도 불구하고 각각 상이한 신학과 신앙 전통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신앙고백의 일치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게다가 다른 종교들까지 합류하고 있기 때문에, 이제는 종교다원주의를 넘어서 종교혼합주의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WCC 4, 5 총회 중앙위원회 회장이었던 M. M. 토마스(Thomas) 이러한 상황을 인식하고그리스도 중심의 혼합주의 제창하였습니다. 비판적인 사고를 통하여 교리적인 차이를 초월하고,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기초로 그리스도 중심적인 공동체를 형성하자는 주장이었습니다. 특히 그는 창조주이시며 구원주이신 하나님께서 타종교인들 가운데서도 역사하신다고 역설하였습니다.

이러한 사상을 바탕으로 그는십자가가 타종교들과의 이데올로기의 담을 헐었으므로 그리스도인들 역시 모든 타종교인들과 불신자들과 하나의 인간적이고도 세속적인 문화와 공동체를 위하여 함께 일할 있어야 한다.” 강조하였습니다. 그는 스스로를기독교적 힌두인이라고 천명하기도 하였습니다. 말은 타종교를 포용하는 상당히 설득력 있는 말처럼 들리지만, 이러한 표현을 하는 것은 기독교 정신을 일반 다른 종교와 혼합하여 현재의 기독교가 아닌 다른 기독교를 만들어서 세상을 하나의 종교로 통합하려는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WCC, 인류의 구원 보다는 인간의 윤리를 추구한다

WCC 1968 스웨덴에서 있었던 4 웁살라(Uppsala) 총회가 끝난 다음 해부터반인종차별 투쟁사업 추진하였습니다. 그들은 1970년부터 1986년까지 17 동안 ANC (아프리카 민족 회의, African National Congress), SWAPO (남서아프리카 인민기구, South West Africa Peoples Oranization), PAC ([]아프리카주의자 의회, Pan-Africanist Congress) 같은 백인통치 투쟁단체들과 테러 기구들에게 250 불을 지원하였습니다. 이와 유사한 세계 30개국, 100 이상 기관에게 모두 700 불을 지급하기도 하였습니다. 이들의 원조를 받은 국가와 단체들 대부분은 소련의 무기를 지원받는 나라이거나, 마르크스의 영향권 아래에 있는 행동주의 단체들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러한 단체들에게 지원된 막대한 지원금은 WCC 예산과 선교를 위하여 드려진 후원 기금들이었습니다. 그러니까 WCC 본래의 설립 목적을 외면하고 선교 자금을 다른 사업에 유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1973 방콕 선교대회에서 개별 교단에 의한 선교 모라토리움이 결정되었습니다. ‘선교 모라토리움이라는 것은 종교인들이나 비종교인들에게 대한 선교나 개종을 위한 선교 정책을 완전히 전면적으로 금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선교 기금으로 축적된 자금을 선교에 사용하지 않고 사회 운동을 전개하는 일에 투자한 것입니다.

결과적으로 WCC 선교 신학은 지향점을 잃어버린 , 수십억 영혼에 대한 아픔이나 구원의 메시지를 전파하려는 어떤 시도도 없이,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신앙고백이나 감격이나 찬양도 없이, 오직 이웃을 위한 윤리적 행동 신학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복음을 전하여 사람을 구원하는 기독교의 본질을 상실하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