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믿음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11:6).

기독교의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가장 흔하게 많이 듣고 사용하는 언어 중의 하나는 아마도믿음이라는 단어일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믿음의 의미를 올바로 깨달으면 우리의 신앙생활에 도움이 되고 힘이 됩니다. 우선 믿음의 ()이라고 하는 히브리서 11 1절에 기록되어 있는 믿음의 정의를 살펴보겠습니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니”( 11:1). 믿음은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에서실상이라는 말이 매우 중요합니다. 말의 원어는 헬라어로휘포스타시스라고 합니다. 용어는고대 파피루스에서 사람으로 하여금 재산에 대한 자신의 소유권을 입증하게 법적 문서들에 대하여 사용”(본교회성경주석, 13:585)되었습니다. 다시 말해서실상’(휘포스타시스)이라는 말은 부동산 권리 증서를 가리키는 말이기도 합니다.

토지나 건물 부동산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반드시 부동산 권리증서가 있습니다. 권리 증서에는 소유하고 있는 부동산에 관련된 사항들이 낱낱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직접 땅을 찾아가서 확인하지 않고 건물을 보지 않아도 권리증서만 있으면 이미 재산이 실제로 있다는 것이 확인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권리증서만 보고도 문서에 기록된 내용의실체 있다는 사실을 믿을 있습니다.

그렇다면믿음부동산 권리증서 같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요? 예를 들면, 예수께서 말씀하신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22:20) 약속을 믿는다면, 오시는 장면, 재림의 실체를 믿음의 눈으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6:33) 말씀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육신적인 삶을 위하여 준비해 놓으신 모든 실물(실체)들을 믿음의 눈으로 미리 보는 것입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은 종종 씨앗으로 비유됩니다. 도토리나 씨앗을 잘라보면 속에 숟가락 같은 모양의 조그만 물체가 하나 있습니다. 전문가의 말을 빌리면, 도토리 속의 숟가락 같이 생긴 물체는 도토리나무 그루이고, 속의 물체는 감나무 그루라는 것입니다. 씨앗 속에 이미 나무가 들어 있다는 것이지요.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 속에는 이미 성취가 들어 있습니다. 도토리 속에 들어있는 이미 완성된 나무 그루를 보는 믿음이 참된 믿음입니다. 참된 믿음은 말씀의 성취를 미리 보는 것입니다.

다니엘의 친구가 두라 평지에 세워진 신상에게 절하지 않으면 풀무불에 집어넣겠다는 왕의 명령을 듣고도 절하지 않은 것은, 이사야 43:2 기록된네가 불가운데로 행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라는 말씀의 성취(실상) 믿음의 눈으로 미리 있었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하나님께서 그들을 불에서 구원해 주시지 않는다할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겠다는 믿음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믿음이 필요합니다.

 

7. 용서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만일 형제가 죄를 범하거든 경계하고 회개하거든 용서하라 만일 하루 일곱 번이라도 네게 죄를 얻고 일곱 네게 돌아와 내가 회개하노라 하거든 너는 용서하라 하시더라”( 17:3, 4).

용서라고 하는 것은 범죄 하여 죽게 인간의 죄를 처리하시는 하나님의 방법이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죄를 용서하시기 위하여 희생을 치르셨습니다. 죄라는 것은 반드시 대가를 지불해야 해결되는 것이기 때문에, 구약에서는 용서를 위하여 상징적으로 희생 제물을 요구했으며, 마침내 희생 제물의 원형이신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죄가 근본적으로 용서받을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실 때에는 임의로 아무 조건 없이 하시는 것이 아니라, 값을 대신 지불해 주시고 용서하십니다.

어떤 사람이 강도에게 폭력을 당해 전치 20주의 상처를 입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재판 결과 강도는 피해자에게 1000 원을 보상하든지 아니면 1년간  교도소 생활을 하도록 판결을 받았습니다. 강도는 1000 원을 형편이 되었고, 불가불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경우에 피해자가 강도를 용서할 있는 방법을 가지로 생각해 있습니다.

첫째는 강도가 교도소를 가도록 내버려 두고, 마음으로 용서하고 미워하지 않는 것입니다. 둘째는 피해자가 가해자로부터 1000 원을 받지 않고 용서해 줌으로 강도가 교도소에 가지 않도록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셋째는 1000 원을 받지 않을 뿐만 아니라 강도에게 일자리까지 구해주면서 먹고 길을 열어주는 것입니다.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는 어떤 것입니까? 번째 유형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죄값을 대신 지불하시고 죄를 용서하셨을 뿐만 아니라 영생의 선물까지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동이 서에서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 103:12)으며 “…내가 그들의 죄악을 사하고 다시는 죄를 기억지 아니하리라”( 31:34)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을 용서하시고 그가 마땅히 받아야 형벌을 감해 주시며 그가 전혀 죄를 짓지 않은 것처럼 취급하십니다. 그리고 그분의 거룩한 은총 가운데로 영혼을 받아들이시고 그리스도의 의의 공로를 통하여 그를 의롭다고 인정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용서입니다.

이와 같은 방법으로 사람을 용서하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도 똑같은 방법으로 형제의 잘못과 허물을 용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좀처럼 용서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용서를 하더라도 임시적이고 불완전한 용서를 뿐입니다. 진정으로 용서를 했다면, 일은 다시 밖으로 나와서는 되는 것입니다. 잘못을 적이 없는 것처럼 간주하는 것이 진정한 용서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우리가 구원받은 증거는 그분의 말씀에 즐겨 순종하는 것이고,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우리가 구원 받았다고 하는 증거는 나에 대한 다른 사람의 죄를 용서하고 나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입니다. “제가 저에게 지은 자를 용서한 같이 저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할 있는 사람만이 진정으로 하나님의 용서를 받은 그리스도인입니다.

 

8. 거듭남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없느니라”( 3:3).

기독교 용어 중에거듭남이란 말이 있습니다. 매우 어려운 말처럼 느껴지는 말은 실상 아주 쉬운 말이기도 합니다. ‘다시 태어난다 뜻이기도 하고 번째 태어나는 것을 말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어머니 ()로부터 출생한 것을 번째 태어난 것이라고 있습니다. 다윗은 출생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내가 죄악 중에 출생하였음이여 모친이 중에 나를 잉태하였나이다”( 51:5).

죄악 중에 죄인으로 태어난 인간은 하나님 나라의 가족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영접하는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자들이니라”( 1:12, 13).

사람이 거듭나는 ,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일은 결코 사람의 뜻으로 되는 일이 아닙니다. 양쪽이 모태 신앙을 가진 신랑과 신부가 결혼을 해서 아이를 낳아도 아이가 자동적으로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은 혈통으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입니까?

유대의 관원이었던 니고데모가 예수님으로부터 거듭나야 하나님 나라를 있다는 말을 듣고 방법을 물었습니다. 때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없느니라”( 3:5). ‘성령’, 단어 중에 중요한 것은 성령입니다.

사람이 영적인 세계와 관계를 맺으려면 성령의 역사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성령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역사하시지만, 역사에 대하여 반응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습니다. 사람이 성령의 역사에 긍정적으로 반응할 때에만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시인할 있게 됩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님이라고 없느니라”(고전 12:3).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인정하고 그분을 구세주로 영접한 사람은 하늘 가족이 되는 것이고, 새로 태어나는 의식을 하게 됩니다. 생명의 태어남은 통해서 이루어집니다. 지구가 하나님의 창조로 처음 태어날 때에도 물로 덮여 있던 상태에서 나왔고, 대부분의 포유류 짐승도 (양수)에서 나옵니다. 그래서 물속에 잠기는 침례를 받음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다시 태어나는 것은 생명이 탄생하는 원리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침례를 받고도 쉽게 교회를 이탈하는 이유는,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물과 육정으로 교인이 되기 때문에 그런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그리스도인은 순간부터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살아가야 합니다. 로마서 8 9절의 말씀을 생각해 보시기바랍니다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8:9).

우리의 거듭남의 출발은 성령으로 시작되었습니다. 후로 우리는 삶의 순간마다 성령의 도우심과 역사가 필요합니다. 거듭난 자의 생명은 오직 성령의 역사와 도우심으로만 유지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9. 구원

가로되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 16:31).

구약에서구원이라는 말은스스로는 도저히 빠져나올 없는 극심한 괴로움이나 커다란 위험에서부터 삼자가 건져내 주는 일에 적용”(아가페성경사전, 150)되었습니다. 이것을 그리스도인의 구원에 적용한다면, 인간이 범죄의 결과로 죽음에 이르게 되었는데, 그러한 절망적 상황 도저히 스스로 살아날 없는 상태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다시 살게 되는 것을구원이라고 합니다.

히브리어 중에구원 뜻하는 말로예슈아라는 단어가 있는데 여기에서예수라는 말이 파생되었습니다. 그러니까예수라는 자체가 구원을 뜻하는 것입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하니라”( 1:21). 다시 말해서 구원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얻을 있습니다. “다른 이로서는 구원을 얻을 없나니 천하 인간에 구원을 얻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니라 하였더라”( 4:12).

예수를 통해서 죄인이 구원받는 원리를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범하여 죽게 인간이 다시 영생하려면 가지 조건이 필요합니다. 가지는,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6:23) 우선 값을 치러야 합니다. 다음에는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야 합니다.

그런데 사람의 생명이 하나이기 그것을 가지고 때문에 값을 치루고 나면 그냥 끝나 버립니다. 그리고 죄된 본성 때문에 율법의 요구도 충족시킬 없습니다. 그래서 죄인이 사는 길은 범죄한 일이 없는, 다시 말해서 값을 치룰 필요가 없는 분이 대신 죽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대신 누군가가 율법의 요구를 충족시켜 주어야 합니다.

가지 일을 대신 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이 지상에서 없는 순결한 삶을 사신 ,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지 않고 온전한 순종의 삶을 사신 , 모두가 역사적 사실로 증거되고 입증되었습니다. 사람이 고의로 예수를 부인하려고 하지 않는 , 사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에 관한 증거의 말씀을 믿지 않을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원수일 때에도 하나님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해하게 되었다면, 화해한 우리가 하나님의 생명으로 구원을 얻으리라는 것은 더욱더 확실한 일입니다”( 5:10, 새번역).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우리의 값을 치르셨기 때문에, 동안 때문에 불화하던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관계가 화목하게 되었습니다. 사람이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는 것은 생명, 구원을 얻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사람의 죽음이 어떻게 모든 인류를 구원할 있습니까? “그런즉 범죄[아담] 많은 사람이 정죄에 이른 같이 의의 행동[예수]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롭다 하심을 받아 생명에 이르렀느니라 사람[아담] 순종치 아니함으로 많은 사람이 죄인 같이 사람[예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리라”( 5:17-19). 죄인이 구원받는 원리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3:16).

 

10. 성화(聖化)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그리스도라”( 4:15)

성화’(聖化)라고 하는 직접적인 단어는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만, 그리스도인이 그의 생활을 통해서 예수님을 조금씩 닮아 가는 것을 신학적인 용어로성화라고 합니다.

올바른 신앙심을 가지고 하나님을 믿고 있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는 매일의 생활 속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가는 변화를 경험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은 순간적인 일입니다. “일을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 4:5) 때문에 우리가 의롭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받게 되는 구원을 신학적인 용어로칭의’(稱義) 라고 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에 우리의 몸이 하나님과 함께 영원히 있는 상태로 변화될 것인데 그것을영화’(榮化)라고 합니다.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고전 15:51,52). 순간적으로 일어나는칭의영화사이를성화라고 합니다.

성화를 쉽게 말하면품성의 변화라고 있고, 품성의 변화란 인간이 처음 창조되었을 당시에 부여된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품성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없지만, 예수님께서 세상에 오셔서 직접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주시면서나를 자는 아버지를 보았”( 14:9)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형상이 어떤 모습일까요?

너희 안에 마음을 품으라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2:5-8).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다는 말은 완전한 겸손과 철저한 자기 희생을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품성을 요약하면겸손자기희생입니다. 그러나 인간은 예수님의 모습과는 정반대의 모습, 교만과 이기심이 가득찬 삶을 살고 있습니다. 인간 관계에 있어서  교만과 이기심만 버린다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5 내에 해결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품성이 변화된다고 하는 것은 이기적인 인간의 본성을 이타적이고 희생적인 모습으로, 자만하고 자랑하기를 좋아하는 교만심을 겸손으로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 변화는 오직 성령의 강력하신 역사하심과 도우심으로 가능한 것이지만, 먼저 본인이 변화에 대하여 갈망하는 심령이 있어야 합니다.

좀처럼 변화가 일어나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보고 타고난 성격이라 어쩔 없다고 자포자기하는 것은 품성을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불신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대로 형성된 품성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장차 가서 살게 천국에까지 가지고 있는  유일한 보물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품성의 변화를 위하여 전심전력을 다하여 지금 보다 훨씬 열정적으로 하나님께 매어 달려 도움을 구해야 것이며품성변화 우리의 속에서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야 합니다.

 

11. ()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성경에 자주 나타나는 용어 중의 하나는()’라는 말입니다. 말은공의(公義)’ ‘공평(公平)’ ‘공정(公正)’과도 일맥상통하는 단어입니다. 단어는 매우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고 있지만, 하나님과 그분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언약 관계에서 주로 다루어지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언약의 내용을 충족시킨 상태를라고 표현할 있습니다.

예수께서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것이 아니요 완전케[헬라어 플레로오] 하려 함이로라”( 5:17)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절에서완전케한다는 말은 채우다” “충족시키다” “성취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으며, 예수께서 율법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기 위하여 세상에 오셨다는 말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파기하고 지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이루지 못하였고, 그래서 관계가 끊어졌는데, 예수께서 우리를 대신하여 언약의 모든 요구를 충족시키고 이루기 위하여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시편 97:2 보면 하나님의 보좌(존재) 기초가의와 공평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속성을 표현하는 말인데, 모든 피조물과 우주 만물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통치 원리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체데크)라고 하는 것은 어떤기준혹은법칙 말하는 것이고, ‘공평’(히브리어, 미쉬파트)이라는 말은 기준 혹은 법칙이 충족된 상태를 가리킵니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우주와 피조물을 통치하시는 기준 혹은 원칙이 있으며, 원칙을 항상 공정하게 적용하시는 분이라는 뜻으로 해석할 있습니다. 그래서 인간이 범법하였을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간과하실 없었던 것이고 누군가가 의의 원칙을 충족시켜주어야 했기 때문에 예수께서 내려오셨습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구원을 이루기 위하여 하신 사역을 가지로 구분한다면, 첫째는 인간이 파기한 언약을 온전히 충족시키시므로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주신 것이고, 그분이 친히 죄가 되셔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죄를 알지도 못하신 자로 우리를 대신하여 죄를 삼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저의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고후 5:21).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 안에 거할 때에,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 의를 우리가 이룬 것으로 간주해 주십니다. 그리고 먼저 언약을 파기하고 범법한 결과로 당할 죽음까지도 예수님이 대행하셨기 때문에 구원을 위한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구원의 문이 열렸습니다.

이렇게 그리스도의 의로 구원을 얻은 그리스도인들, 특별히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 믿음을 지키는 남은 자손들은 법을 사랑하는 백성들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루어 놓으신안에서 그분의 능력을 의지하여 이루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들의 삶의 원리가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공의로우신 속성을 받어서 모든 일에 편벽됨이 없이 공정하고 공평하고 정의로워야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세상의 법과 함께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12. 십계명

여호와께서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로 지키라 명하셨으니 십계명이며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 4:13).

성경에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통치하는 필요한국가적인 민법 기록돼있고, 예수님의 희생을 예표하는 제사제도와 관련된제사법 있고, 인륜과 도덕에 관련된도덕법 있습니다. 물론 자연의 질서와 관련된자연법 있고, 건강관리에 필요한건강법 있습니다. 십계명은 도덕적인 법에 해당합니다.

도덕이라는 말은 사람과의 관계에서만 통용되는 단어가 아니라, 하나님과의 관계에 있어서도 기본적의 도의가 있는 것입니다. 인간으로서 마땅히 가져야 하나님께 대한 도리와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켜야 기본적인 윤리 사상이 십계명에 간추려져 있습니다.

십계명이란, 성경 전체를 통해서 흐르고 있는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하나님께서 친히 요약해 놓으신 것입니다. 성경의 모든 내용 중에서 오직 십계명만 하나님께서 친히 기록해 주신 것입니다. 인간이 고치거나 결코 폐지할 없는 영원불변의 법칙입니다. 십계명의 가지 항목을 예수님께서 다시 가지로 요약해 주셨는데, 우리가 알고 있는 대로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까지는하나님을 사랑하라 것이고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까지는이웃을 사랑하라 것입니다( 22:37-39). 이러한 의미에서 때에 십계명을 압축하여 방울의 즙으로 낸다면 그것은사랑입니다. 그리고 사랑은 하나님의 가장 근본적인 속성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십계명을 준수하도록 요청하시는 것은하나님의 품성 닮도록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예수께서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13:34) 하셨으니, 십계명의 항목을 조목조목 따져서 지킬 필요 없이 사랑만 하면 된다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겨도 되고 우상을 만들어도 되고 간음해도 되고 살인해도 된다는 말인데, 계명의 의미가 그런 것이 아니겠지요. ‘새계명이라고 하는 말은 유대인들이 오해하고 있던 계명의 정신을 새롭게 해석하여 제시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분명히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5) 말씀하셨고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 14:21)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의 빛줄기를 프리즘에 통과시키면 무지개의 일곱 색깔이 나타납니다. 이와 비슷한 원리로사랑이라는 것을 구체적으로 표현하면 십계명의 10 항목들이고, 십계명의 정신을 마디로 하면사랑으로 요약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말로만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지 않고, 계명에 기록된 말씀을 따라서 다른 신이나 우상을 만들어 섬기기 않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리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며 것입니다. 십계명에서 요구한대로 안식일을 신실하게 지키며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나아가 이웃을 진정으로 사랑하며 그들을 섬기며 봉사하며 살게 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지 여부는 이웃을 대하는 우리의 마음가짐과 태도로 확인되는 것입니다.

구원의 도리는 묻는 부자 청년에게 예수님께서는 계명들을 지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슨 계명이냐고 물었을 십계명의 가지 예를 들어 설명하셨습니다. 그것을 지켰다고 하니까, 소유를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고 하셨습니다. 진정한 사랑의 실천은 자기의 가진 것을 이웃과 함께 나누며 사는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결정적으로 하신 말씀은 이것입니다.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14:15).

 

13. 안식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의 지을 하늘과 땅이 앞에 항상 있을 같이 너희 자손과 너희 이름이 항상 있으리라 여호와가 말하노라 월삭과 안식일에 모든 혈육이 이르러 앞에 경배하리라”( 66:22, 23).

구약 민수기 15:38, 39 보면 하나님의 섬세하심을 엿볼 있는 특별한 구절이 나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하여 그들의 대대로 옷단 귀에 술을 만들고 청색 끈을 귀의 술에 더하라 술은 너희로 보고 여호와의 모든 계명을 기억하여 준행하고 너희로 방종케 하는 자기의 마음과 눈의 욕심을 좇지 않게 하기 위함이라.”

사람이 가지고 있는 특성 중의 하나는망각입니다. 망각은 여러 가지 측면에서 불편한 것이기도 하지만 불행하고 불쾌한 기억을 희미하게 지워버리는 편리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사람들은 망각때문에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말씀을 자주 잊어버린 인간의 본성과 현실적인 욕망을 따라서 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러한 인간의 습성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특별한 방법을 제시하셨습니다. 옷소매 끝에 청색 술을 매달아 두고 그것을 때마다 육신의 욕심을 따라 방종하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도록 지시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잊어버리지 않고 항상 기억하며 그분을 예배하며 사랑의 관계를 맺고 살도록 하기 위하여 장치를 만들어 놓으셨는데, 그것이 바로 안식일입니다. 특별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6일간의 지구와 인간 창조 사역을 마치시고 일곱째 안식하심으로 창조를 기념하는 날로 제정하셨습니다. 그런데 창조시에 제정된 주일 7 제도가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도 변경되지 않고 지금까지 유지되고 있는 것은 신비하고 놀라운 일입니다. 지구의 자전 시간 하루 24시간, 달의 공전 시간 , 지구의 공전 시간 1년은 변경될 없는 시간의 단위입니다. 그러나 일주일 7 제도는 얼마든지 5 혹은 10일로 변경해도 자연 법칙상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 시간의 단위입니다. 창조시의 7 제도가 지금까지 흐트러지지 않고 견고하게 유지되고 있는 것은, 7 안식일을 통해서 사람과 계속 사랑의 교제를 나누며 피조물의 경배를 즐겨 받으시려는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 때문입니다.

제칠일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라는 계명은, 하나님이 천지의 창조주이심을 나타내고 있으며 또한 다른 거짓 신들과의 구별되는 ()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드러내고 있습니다. 7일을 사람이 쉬는 날로 구별한 것은 창조 사업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안식일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모든 존재의 근원이시요 존경과 예배의 대상으로서 사람들의 마음에 항상 기억하게 하기 위해 마련된 것입니다. 사탄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대한 충성심을 약화시키고 율법을 준수하지 못하도록 집요한 노력을 왔습니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이 창조주이심을 드러내는 넷째 계명을 없애기 위해서 지금까지 일해 왔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안식일의 쉼을 통해서 정결하고 순결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경험해야 합니다. 그리고 날에 창조주 하나님을 예배하며 겸손한 마음으로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분의 말씀에 순종하는 믿음을 키워 나간다면 신앙의 기쁨을 얻게 것이며 성숙한 신앙인으로 자라나게 됩니다.

 

14. 재림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번째 나타나시리라”( 9:28).

성경에재림이라는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2000 전에 땅에 오셨던 예수께서 인간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하늘로 가시기 전에 다시 것을 약속하셨는데,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의 다시 오시는 사건을 재림(再臨)이라고 합니다. 재림 사상은 신약 성경의 핵심을 이루고 있는 내용이며 재림에 대한 언급은 신약 성경에만 300 이상 나옵니다. 그만큼 재림이라고 하는 것은 모든 신실한 기독교인들의 최고, 최후의 희망이며 가장 관심거리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매우 확실한 진리입니다.

구약에도 재림 사상이 있음을 확인할 있습니다. 요엘 선지자는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핏빛 같이 ”( 2:31) 것이라는 말로 예수의 재림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의 자손인 에녹도 예언적 안목을 가지고 예수의 재림을 언급했습니다. “아담의 칠세 에녹이 사람들에게 대하여도 예언하여 이르되 보라 주께서 수만의 거룩한 자와 함께 임하셨나니”( 1:14).

재림 사상이 매우 중요할 뿐만 아니라 모든 기독교인들의 초미의 관심이 되고 있는 이유는, 바로 재림의 순간에 모든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 영원히 사느냐 영원히 죽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재림을 믿고 기다리며 신실하게 살던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고, 악인들은 영원한 멸망의 형벌을 받게 됩니다.

신약에서 예수의 재림에 관한 가장 대표적인 성경절은 요한복음 14:2, 3입니다.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2, 3). 재림시에 일어날 현상에 대하여 베드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주의 날이 도적 같이 오리니 날에는 하늘이 소리로 떠나가고 체질이 뜨거운 불에 풀어지고 땅과 중에 있는 모든 일이 드러나리로다”(벧후 3:10).

사람의 육안으로 보이지 않던 영적 세계가 눈에 보이는 현실로 나타나게 날은 지구상에 임하는 가장 크고 두려운 날이 것입니다. 예수께서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함께 구름을 타고 영광스러운 왕의 모습으로 땅에 임할 것이며, 예수의 재림을 믿지 않았거나, 믿었더라도 준비하지 않은 수많은 사람들에게 날은 가장 비극적인 절망의 날이 것입니다.

재림을 믿고 기다리는 성도들은 재림에 관하여 다음과 같은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는 인간에게 개의 종말이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의 종말이 있고 역사의 종말이 있습니다. 누구에게나 닥쳐오는 죽음의 순간은 개인의 종말이고, 종말은 역사의 종말(재림) 연결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언제 개인적 종말을 맞이할지 모르는 연약한 이웃들을 항상 사랑하며 용서하며 살아야 합니다. 둘째는, 재림이란 우리에게 닥쳐오는 어떤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재림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처럼 단출한 몸가짐으로 가벼운 발걸음으로 본향을 향하여 전진하는 것입니다.

 

15. 부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11:25, 26).

사람의 상식이나 의학적으로는 죽은 사람이 다시 산다는 것은 절대 불가능한 일이고 상상도 없는 일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도 부활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을 데리고 산에 올라가셔서 그분께서 영광스럽게 변화하신 모습을 보여주고 하늘에서 엘리야와 모세가 내려와서 예수님 곁에 것을 보여주신 적이 있습니다( 9).

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인자가 죽은 가운데서 살아날 때까지는 것을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라”( 9:9) 하셨습니다.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서로 문의하며 죽은 가운데서 살아나는 것이 무엇일까”( 9:10) 하면서 죽은 자의 부활에 대하여 이상히 여기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나중에죽은 가운데서 부활하는 ()”( 4:2) 전하는 용감한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그런 변화가 일어났을까요?

예수께서 세상에 사시는 동안, 제자들과 다른 많은 사람들에게 죽은 자의 부활을 믿도록 하시기 위하여 차례 이적을 행하셨습니다. 사실상 그러한 일들은 사람이 보기에는 기적이지만 예수님에게는 매우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일이었습니다. 유대의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병들어 죽었을 예수께서 집에 가셔서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 8:52) 하신 후에, “아이야 일어나라”(54) 하시니까 살아났습니다. 예수님의 제자와 부모가 직접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도무지 부인할 없는 현실이었습니다.

예수께서 한번은 제자들과 허다한 무리들과 함께 나인이라는 성으로 들어가고 계셨습니다. 때에 죽은 자의 () 메고 나오는 행렬이 있었습니다. 과부의 독자가 죽은 것이었습니다. 예수께서 많은 사람들 앞에서 관에 손을 대고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7:14) 명하였을 , 죽었던 자가 일어나 앉아서 말을 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을 목격하였습니다.

예수님의 친구 나사로가 병들어 죽어간다는 소식을 듣고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그곳에 가는 시간을 지체하셨고, 마침내 나사로는 죽었습니다. 죽은 나흘 만에 나사로의 무덤에 도착하신 예수께서는 썩은 시체를 향하여 외치셨습니다. “나사로야 나오라”( 11:43). 나사로는 채로 무덤에서 나왔습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마침내 예수님 자신도 돌아가신지 사흘 만에 살아나셔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시고 많은 사람들에게 자신의 부활한 모습을 보이시면서 사람들에게 부활에 대한 확신을 갖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이러한 일련의 사건들을 목도하면서 부활을 확신하게 되었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담대한 믿음과 용기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다가 순교하였습니다. 기독교 신앙에서 부활이 없다면 모든 믿음과 신앙생활은 허상일 뿐입니다. 생명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에게 있어서 죽은 자를 다시 살리시는 것은 아무 일도 아닙니다. 부활의 확신을 가질 때에 우리는 세상에 아무 것도 두려울 것이 없고, 마침내 믿음으로 최후의 승리를 얻게 것입니다.

 

16. 천국

주께서 나를 모든 악한 일에서 건져내시고 그의 천국에 들어가도록 구원하시리니 그에게 영광이 세세무궁토록 있을지어다”(딤후 4:18).

천국혹은하늘나라 실제로 있는 것인가요? 있다면 위치가 어디일까요? 지구를 떠나 보지 못한 인간들이 다른 세계를 이해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우리는 성경의 모든 말씀을 진리로 믿기 때문에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세계, 영적인 세계에 대하여 조금이나마 이해할 있게 되었습니다.

우선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하늘에 계신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높은 하늘에 계시지 아니하냐”( 22:12).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인생을 굽어 살피사 지각이 있어 하나님을 찾는 자가 있는가 보려 하신즉”( 14:2). 인간의 능력으로는 제대로 측량할 없이 높고 광대한 하늘 어디엔가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기도문을 가르쳐 주실 때에도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6:9)라는 말을 사용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재림에 대하여 약속하실 때에도, “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14:2) 아버지 집으로 간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특별히 예수께서 승천하실 때의 장면을 깊이 명상해 필요가 있습니다. 감람산에서 제자들과 여러 사람들과 함께 머무시면서 대화를 주고받으시던 예수님이 갑자기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아마 광경을 제자들은 너무도 놀랐을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하늘로 올라가시는 모습을 자세히 쳐다 보았습니다. 예수님이 아직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는데, 천사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사도행전 1:10-11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올라가실 때에 제자들이 자세히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데 입은 사람이 저희 곁에 서서 가로되 갈릴리 사람들아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쳐다보느냐 너희 가운데서 하늘로 올리우신 예수는 하늘로 가심을 그대로 오시리라 하였느니라”( 1:10-11). 때에 예수님은 어디로 올라가셨습니까? 하나님이 계시는 천국으로 올라간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그곳에 계십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사도 요한은, 자기들이 보는 가운데서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이 그곳에 계신 모습을 계시를 통해서 보게 되었습니다. 얼마나 감격스러웠을까요? “내가 성령에 감동하였더니 보라 하늘에 보좌를 베풀었고 보좌 위에 앉으신 이가 있는데 앉으신 이의 모양이 벽옥과 홍보석 같고 무지개가 있어 보좌에 둘렸는데 모양이 녹보석 같더라”( 4:2, 3). 바로 곳에 우리가 거할 곳을 준비하시겠다고 예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 죽었던 성도들이 부활하여 살아 있던 성도들과 함께 구름 속으로 끌어 올려 공중에서 우리 주님을 만날 것이고, 주님께서는 구원받은 성도들을 데리고 아버지 , 천국으로 올라가실 것입니다(살전 4:16, 17). 이와 같이 구원이란 막연한 환상이 아니고 실제적으로 이루어지는 현실입니다. 마찬가지로 신앙도 현실입니다. 생활 속에서 신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고, 평상시 하루하루의 일과를 통해서 진리의 말씀이 실현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