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문제에 대하여 사람들이 느끼는 보편적 정서는두려움입니다. 이것은 심판이란 용어가 가지고 있는 형벌, 정죄, 멸망과 같은 부정적 이미지와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그래서 대체로 사람들은하나님의 심판 매우 부정적 용어로 인식하거나 사용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심판에 대한 이러한 부정적 사고는 종종 종교적 위협의 수단으로 사용되어 두려움을 조장하고 신앙의 동기를 왜곡시킵니다. 특히 예수를 믿으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꺼지지 않는 불지옥에 떨어져 영원히 고통을 당할 것이라고 하는 일부 기독교의 가르침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 개념은 매우 왜곡된 상태로 사람들에게 인식되어져 있습니다.

그러나 한편 인간이 심판을 두려워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모두 죄인이며 하나님은 거룩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에서조차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들에게 나타나실 사람들은두려움으로 반응했습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인간의 자연스러운 반응으로 있으며, 때로는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의 경외하는 태도로 발전시켜 나아가야 요소이기도 합니다.

성경에서 하나님의 심판이 죄인에게 벌을 주고 정죄하고 멸망시키는 개념을 가지고 있음을 구태여 부정할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에 기록된 하나님의 심판은 이런 부정적인 용어들과 매우 밀접하게 관계되어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심판에 대한 이러한 개념들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부차적인 개념, 심판의 결과적인 개념이지 그것이 근본 개념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이중적 측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부정적 측면과 긍정적 측면이 있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심판의 원래 개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긍정적 의미로 적용되고 있다는 사실을 분명히 이해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 32:36; 대상 16:33~35; 7:22; 9:27~28). 

 

1. 하나님이 왜 사람을 심판하실까요?

하나님의 심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먼저심판이라는 말의 의미를 제대로 알아야 합니다.

 

심판의 의미 1 : “의롭게 하다”

심판하다 동사의 번째 의미는 법률적 행위를 말하는 것인데, “의롭게 하다라는 뜻입니다. 심판자이신 하나님의 입장에서 우리에게 심판에 대하여 말씀하신다면, “ 이상 죄책감에 시달리지 말라, 너는 의롭게 되었다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심판이란, 어떤 의미에서 죄인이 문제를 해결하고 이제 의인이 되었다고 선언하는 것입니다.

일반 법정에서 재판을 때에 고소를 당한 모든 피고인이 정죄를 받고 그것에 해당하는 형벌을 받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재판이라는 것은 고소를 당한 사람들에 대하여 그가범죄자인지무죄인지를 가려내어 판결을 내리는 장소입니다. 죄가 확인되면죄인 되는 것이고, 면밀하게 살펴보아서 죄가 없으면무죄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에서는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모든 방법들을 동원하여 죄인을 의롭다고 선언하시기 위해 노력하십니다.

물론 재판의 대상인 모든 사람들은 죄인의 신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해서 죄를 용서받고 해결할 있는 완벽한 방법을 준비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재판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씻음 받았는지를 살펴서, 사실이 확인되면 원래는 죄인이었지만, 이제는의롭게 되었다 선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적인 용어로칭의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구속주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심판하시는 것은 두려워할 일이 아니라 오히려 감사하고 찬양해야 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의미 2 : “구원하다”

심판이라는 말의 번째 의미는구원한다 뜻입니다. 심판은 단순히 정죄를 목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재판장이신 우리 하나님은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의 운명을, 재판이라는 절차를 통해서 영원히 있는 운명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이 말하는 영원한 멸망, 둘째 사망과 죄악의 모든 세력으로부터 그분의 신실한 자녀들을 건져 내시고 생명을 주십니다.( 1:12; 3:16; 10:28; 6:5~9, 23; 8:1~4).

생명에 대한 선고는 단순히 50 혹은 100년을  살게 하는 선고가 아니라 영생을 선고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분은 심판의 과정을 통해서 사망의 정죄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시어 생명을 주십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심판이란 구원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심판의 의미 3 : “건져내다”

심판의 번째 의미는건져낸다 뜻입니다. 우리의 심판자로서의 하나님은 우리를 죄의 노예 상태로부터, 죄의 정죄와 세력으로부터 우리를 건져내십니다. 그분이 재판장이시기 때문에 죄의 세력이 우리를 정복할 없습니다. 구원이란 궁극적으로 죄의 세력으로부터 건져냄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판의건져냄 측면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의 재판관은 우리에게 자유를 제공하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재판의 과정을 통해서 노예의 신분으로부터 자유인의 신분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자유인이 되었다고 해서 자유롭게 죄를 짓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유롭게 되었기 때문에, 자유를 주신 하나님께 더욱 충성하고 그분의 말씀에 즐겁게 기꺼이 순종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때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계속 자유롭게 있는 힘을 주시고 세상의 온갖 습성이나 중독으로부터 우리를 자유롭게 주십니다.

자유인이 노예의 모습이 바로, 재판 과정을 통해서 의인이 되고 영생을 얻고 모든 죄악에서 건져냄을 받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하는 모습이어야 합니다. 구원을 받기 위해서 애를 쓰며 그분의 말씀에 노예처럼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구원을 주시고 생명을 주시고 자유를 주신 하나님의 말씀에 즐거이 순종하며 그야말로 자유로운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기차가 레일 위에 있을 때에 자유 하듯이 사람은 하나님의 계명의 법도을 따라 때에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심판의 의미 4 : “옹호하다”

심판이라는 말의 번째 의미는옹호한다 뜻입니다. 우리의 재판장이신 하나님은 그분의 백성을 대적하는 사탄의 집요한 고소에 대하여 우리를 옹호하시는 분입니다. 사탄은 끊임없이 우리의 잘못에 대하여 정죄하면서 사람은 구원을 받을만한 자격이 없다 고소를 하지만, 하나님은 우리에 대하여 변호하시면서 우리를 옹호해 주시는 분입니다. 쉽게 말하면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고 있는데, 판사가 우리 편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재판관이 아무 근거도 없이 죄수 편을 들면 공의롭지 못한 것이 되기 때문에, 우리는 우리 편을 드는 재판관이 떳떳하게 우리의 편에서 말할 있도록 항상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를 씻는 경험을 하면서 살아야 합니다. 이것이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재판관이 사탄의 고소에 대하여 우리를 옹호하려면 죄를 용서받은 기록이 남아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죄의 속성과 성향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결코 범죄하지 않는 완전한 의인이 되지는 못할지라도 항상 죄를 씻어내고 용서받은 상태로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을 통해서 우리의 모본이신 예수님의 품성을 닮아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인간의 구원이 완성되는 예수님의 재림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도 많은 사람의 죄를 담당하시려고 단번에 드리신 되셨고 구원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죄와 상관 없이 자기를 바라는 자들에게 번째 나타나시리라”( 9:28).

여기에서, “죄와 상관 없이라는 말은, 용서받지 못한 죄의 기록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죄와 함께 없는 분이시라 죄를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갈 없기 때문입니다.

 

여호수아를 고소하는 사탄과 여호수아를 옹호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의 심판의 성격을 묘사하는 이야기가 스가랴 3장에 나옵니다. 사탄이 대제사장 여호수아의 죄를 고발하고 있습니다. 내용 중에서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을 대표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사탄은 지금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을 고발하고 있는 것입니다. 때에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예루살렘을 택한 여호와가 너를 책망하노라 이는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가 아니냐?”(2)

사탄이 여호수아를 고소할 때에 여호수아(이스라엘) 더러운 옷을 입고 천사 앞에 있었습니다. 이것은 죄인의 모습을 상징함과 동시에 실제적으로 바벨론 포로 생활을 마치고 돌아온 헐벗고 굶주린 상태의 이스라엘을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 바로 모습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지은 죄로 인하여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서 고생은 하였으나 자신들의 죄를 뉘우치고 회개한 모습입니다. 하나님이 사탄을 책망하신 이유는, 이미 그들은 죄를 회개하였고 용서를 받았는데, 무엇 때문에 고소하느냐고 반문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늘 법정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 더러운 옷을 벗기라.” 그리고 나서 여호수아에게 선언하십니다.

내가 죄과를 제하여 버렸으니 네게 아름다운 옷을 입히리라.”(4)

 

우리의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는 죄를 용서만 하신 것이 아니라, 의의 두루마기를 입혀주십니다. 나아가 하나님께서는정한 관을 머리에 씌우며 옷을 주셨습니다. 이것은 다시 제사장의 직분을 수행하도록 허락하심을 의미합니다. 죄인에서 의인으로 완전히 회복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곁에 있던 여호와의 사자(그리스도), 이제 하나님의 완전한 소유로 확정된 여호수아(이스라엘)에게 말합니다.

네가 만일 도를 준행하며 율례를 지키면 네가 집을 다스릴 것이요 뜰을 지킬 것이며 내가 너로 여기 섰는 자들 중에 왕래케 하리라.”(7).

스가랴 3장의 이야기를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이런 것입니다.

너는 원래 죄인이었으나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희생을 통하여 모든 죄를 용서받았고, 재판의 결과 무죄가 확정되어 의인이라고 판결을 받았으니,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법도 안에서 살도록 하여라. 다시 말하지만, 네가 말에 순종해서 너를 구원한 것이 아니고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말씀에 순종하여라. 그러면 너는 더욱 행복해질 것이고 건강해 것이고 마침내 영원한 생명을 얻게 것이다. 네가 여전히 연약한 죄인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뜻에 온전히 순종하기는 어렵겠지만, 내가 도와줄 테니까 염려하지 말고 성령의 지도하심을 따라서 살다가 조만간 나와 함께 하늘에서 살자구나.”

 

2. 심판의 그러한 의미들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있습니까?

그렇다면 심판의 이러한 긍정적 측면들에 대한 성경상 근거가 있어야 합니다. 이러한 심판의 기본적 의미에 대한 성경적 증거들이 무엇인지 알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심판의 긍정적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결국 심판의 부정적 측면들이 우리에게 계속 부담을 주게 것이기 때문에 심판의 긍정적 측면에 대한 성경적 근거를 찾아보려고 합니다.

 

1. 사사기 (Judges)

성경 가운데 심판에 대한 올바른 개념(아이디어) 제공하는 중요한 책은 사사기입니다. 사사기의 영어 명칭 자체가심판’(Judges)이라는 의미를 갖고 있기 때문에사사기라는 책의 성격과 내용을 이해하면 심판의 중요한 의미들을 찾아낼 있을 것입니다. 물론 다니엘, 계시록, 로마서 같은 성경의 다른 책들 역시 심판에 대한 개념을 가르쳐주지만 사사기만큼 심판에 대한 풍부한 이해를 제공하는 책은 없습니다. 마디로 말하면, “사사기 심판에 대한 책입니다.

사사기에는 12명의 사사(재판관) 등장합니다. 그런데 사사들의 역할이 무엇이었습니까? 심판에 대한 부정적인 느낌을 주는 그런 이미지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심판에 대한 긍정적인 느낌을 주는 특징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사들의 역할은 정죄하고 벌을 주는 것이 아니라 원수들의 압제로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고 건져내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돌보며, 적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었습니다. 그들은 사람들을 위하여 일하는 사람들이지 문제 있는 사람들을 대항하여 일하는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므로 사사기 책의 제목은건져내는 들이라고 붙여야 적절할 것입니다. 사사들은 백성들에게 자유를 가져다주는 역할을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사사들의 역할을 통하여 재판장(사사)으로 심판하시는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를 이해하게 됩니다. 그분은 심판을 통해 우리를 구원하시고 건져 내시고 옹호하십니다.

 

2. 다윗의 기도에 나타난 심판의 개념

우리는 시편에 나오는 다윗의 기도 속에서도 심판의 긍정적 측면을 발견하게 됩니다. 다윗은주님! 나를 판단하십시오! 하나님 저를 심판(판단)하십시오!”라고 기도합니다. 만약 심판이 부정적인 것이라면 다윗은 이러한 간구를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다윗은 그의 대적들로부터 그를 보호해 주시고 건져주실 것을 이렇게 간구합니다.

여호와께서 만민에게 심판을 행하시오니 여호와여 나의 의와 내게 있는 성실함을 따라 나를 판단하소서”( 7:8).

내가 나의 완전함에 행하였사오며 흔들리지 아니하고 여호와를 의지하였사오니 여호와여 나를 판단하소서”( 26:1).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주의 공의대로 나를 판단하사 저희로 나를 인하여 기뻐하지 못하게 하소서”( 35:24).

하나님이여 나를 판단하시되 경건치 아니한 나라에 향하여 송사를 변호하시며 간사하고 불의한 자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43:1).

독자 여러분은 다윗과 같은 이러한 기도를 드린 적이 있으십니까? “주님 저를 심판해 주십시오!” 우리가 이런 기도를 드리지 않는 이유는 심판을 부정적으로 인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건지시고, 옹호하시는 것이라는 인식을 갖는다면 우리도 이러한 기도를 드릴 있게 것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다윗은 성인(聖人)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는 많은 죄를 지은 죄인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더욱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심판을 구했던 것입니다. 그가 하나님의 심판을 요구한 것은, 오직 하나님만이 옛날의 모든 불의와 원수로부터 자신을 건져내어주실 있다는 확신에서 나온 고백이었습니다. 우리에게도 다윗의 기도가 필요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에 대한 우리의 개념을 바꾸는 새로운 출발이 필요합니다. 대체로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정된 관념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그러나 신앙인들은 자신의 생각이나 감정을 기준으로 판단하여 살아서는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해서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한 행위를 따라서 구원받지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준비해 놓으신 구원의 방법과 이에 근거한 그분의 선언과 말씀의 능력으로 구원을 얻는 것입니다.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실 , 하나님의 말씀으로 세상이 창조된 것처럼 우리의 삶의 선한 모든 것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의 심판장이신 그분은 역시 우리의 창조주이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3. 심판과 구원의 관계

주께서 하늘에서 판결을 선포하시매 땅이 두려워 잠잠하였나니 하나님이 땅의 모든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려고 판단하러 일어나신 때에로다(셀라)”( 76:8-9)

말씀을 자세히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판결하시고 판단하시는 목적이 온유한 자를 구원하시는 것임을 확인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시온이 기뻐하며 즐거워하는 것입니다. “여호와여 주의 판단을 시온이 듣고 기뻐하며 유다의 딸들이 인하여 즐거워하였나이다”( 97:8). 인간 세상의 역사를 통해서 진행되어 죄악의 역사를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한 죄악의 역사를 통해서 우리는 죄로 인한 정죄와 멸망의 역사가 아니라 죄로부터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구속의 계획과 사역을 보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심판을 정죄라는 개념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구원의 개념으로 전환해야 필요가 있습니다.

 

4. 다니엘서에 나타난 심판

다니엘이라는 이름 자체가하나님이 나의 심판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구약성경의 다니엘서는 장마다 심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중 심판에 대하여 가장 올바른 견해를 제공하는 부분은 7장입니다. 다니엘 7장에는 가지 심판의 장면이 나옵니다. 하나는 작은 뿔에 대한 심판의 장면이며 다른 하나는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들(하나님의 백성들) 대한 심판입니다.

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for, in favor of) 신원(심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를 얻었더라”( 7:22).

말씀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분명한 하늘에서의 재림 심판의 긍정적 장면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대적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우리를 구원하기 위하여 심판하시는 장면은 심판의 가장 아름다운 장면 하나입니다. 다니엘 7장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심판을 묘사한 다음, 바로 적그리스도에 해당하는작은 대한 하나님의 정죄를 묘사( 7:26)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7:26). 심판에는 분명히 가지 국면이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의인에게는구원을 위한 심판이고 악인에게는멸망을 위한 심판입니다.

 

5. 홍수에 나타난 심판 개념

일반적으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창세기의 홍수 사건을 하나님의 파괴적(부정적) 심판의 행위로 간주합니다. 그러나 홍수 이야기의 기본 배경은 하나님의구원하시고자 하시는 은혜 역사입니다. 성경은 노아가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입었음( 6:8) 언급합니다. 홍수 이야기 속에은혜(chen)”라는 단어가 처음 성경에 등장하는 것은 주목할 만한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은혜 홍수 이야기 전반에 흐르고 있는 기본적 배경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노아 아니라 홍수 이전 모든 사람에게 제공되었습니다.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나의 신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체가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일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6:3)

말씀은 성령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고자 애쓰시는 노력과 함께, 120년의 유예 기간을 주셨음을 보여 줍니다. 결과를 보면 120년은 하나님의 입장에서는 전혀 불필요한 기간이었습니다. 기간 동안 회개한 사람들은 아무도 없었고, 하나님은 그렇게 것을 미리 아셨지만, 인간의 차원에서 사람들이 하나님의 심정을 이해할 있도록 하기 위해서 은혜의 기간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말로하지 아니하리니 번역된 히브리어(diyn)” 심판을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여호와의 (성령) 그들을 이상 심판(구원) 없다는 뜻입니다. 이말은 성령께서 그들을 심판(구원)하시기를 원하셨다는 뜻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완고함과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한 결과 이상 그들을 심판(구원)하실 없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령께서 이상 애쓰시지 않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심판의 본질 중의 하나인, 구원을 위한 긍정적 국면들을 수용하지 않을 , 심판의 번째 부정적 측면, 멸망이 이르러 오는 것임을 우리는 깊이 깨달을 필요가 있습니다.

홍수 이야기 속에서 결국 하나님은 오직 가족만을 구원하실 있으셨습니다. 만약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하나님 앞에 패괴하고, 강포가 땅에 충만한 상태( 6:11-12) 하나님의 개입 없이 그대로 방치되었다면 신실했던 노아와 가족들조차도 타락하고 말았을 것입니다. 결국 인류가 하나님을 떠나 악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된다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여자의 후손( 3:15) 통한 구원의 계획 무산되고 말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상황을 분명히 이해하게 되면, 홍수라는 비극적 사건 속에서도 인간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는 여전히 작용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심판에 대하여 이야기할 때에는, 언제나 죄인을 구원하시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심판의 긍정적인 면을 먼저 말하고 개념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심판의 번째 관념, 멸망이라는 것은 긍정적인 번째 개념을 무시하고 돌아서지 않을 때에 나타나는 결과라고 표현할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심판의 원래 목적은 인간의 구원이고, 구원에 합당하지 않은 자들에게 내려지는심판의 결과가 멸망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멸망당하는 자들의 원인은 명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죄인이 죄를 해결하고 용서받을 있는 길을 모두 제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죄를 해결하고 구원을 받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제공하시는 은혜를 무시하고 죄를 해결하지 않은 사람들은, 하나님과 충돌을 일으킬 수밖에 없는 죄와 분리되지 않고 죄를 그대로 껴안고 있다가 죄를 소멸하시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멸망을 자초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죄인의 멸망은 하나님의 의지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속성 때문에 불가피하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결과입니다.

 

이와 같은 심판의 원리를 올바로 이해하고 깨닫게 되면, 하나님의 이미지는 꾸짖고 야단치시고 멸망시키는 무서운 모습이 아니라 우리를 향하여 웃으시며 구원하시는 모습으로 바뀌게 것입니다. 하나님은 선지자 이사야에게 백성들을 이렇게 격려하도록 하셨습니다.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35:4).

말씀은 심판을 두려워하는 자들에게 주어진 감동적인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언제나 긍정적(구원) 의미를 갖습니다. 이것은 신약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요한 역시 이렇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자녀들아 이제 그의 안에 거하라 이는 주께서 나타내신바 되면 그가 강림하실 때에 우리로 담대함을 얻어 앞에서 부끄럽지 않게 하려 함이라”(요일 2:28).

이로써 사랑이 우리에게 온전히 이루어진 것은 우리로 심판 날에 담대함을 가지게 하려 함이니 주께서 그러하심과 같이 우리도 세상에서 그러하니라”(요일 4:17).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심판에 담긴 복음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이해할 없게 됩니다. 다윗과 같이주님! 나를 심판하십시오!”라는 확신에 간구를 하게 때에, 우리의 재판관으로서 하나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시고, 구원하시고, 건지시고, 옹호하해 주실 것입니다. 사도 바울 역시 하나님의 심판의 긍정적 의미를 제공합니다.

다만 나를 심판하실 이는 주시니라 그러므로 때가 이르기 주께서 오시기까지 아무 것도 판단하지 말라 그가 어둠에 감추인 것들을 드러내고 마음의 뜻을 나타내시리니 때에 사람에게 하나님으로부터 칭찬이 있으리라”(고전 4:4-5).

이렇게 심판 때에 하나님은 그분의 충실한 백성들을 칭찬하실 것입니다.

 

3. 세상의 법정과 하늘 법정에 어떤차이가 있습니까?

세상의 재판정에서는 판사의 선고는 굉장한 권위를 갖습니다. 재판관인 판사가 이것이 마지막 선고라고 말하면 그것을 아무도 반박하지 못합니다. 만약 선고를 번복하기 위해서는 그보다 높은 상급 법원에 가야하며 대법원의 마지막 판결은 이상 바꿀 수가 없습니다. 특별히, 모든 법원의 최고의 법원인 하늘법정의 재판관의 선고는 우리의 영원한 운명을 바꾸어 놓을 있는 완전한 판결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때문에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도록 정죄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하면 심판의 의미를 다른 시각으로 있습니다. 이미 사형이 확정된 죄인이 다시 재판을 받게 되었다는 것은 나은 판결을 받을 있는 기회가 수도 있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어쩌면 그것이 죄인이 죄를 해결하고 다시 있는 유일한 길이기도 합니다. 하늘 법정에서 이루어지는 심판에서 우리를 위한 법률적인 선고가 다시 내려지면 그것이 우리의 삶을 완전히 바꾸는 것입니다. 결정에 우리 모든 인간들의 영원한 운명이 달려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함께 살펴보고자 하는 하나님의 심판은 두려움과 관련된 것이 아니라 기쁨과 관련된 것입니다. 시편 33편의 내용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 세상을공의와 정의 심판하시니 여호와를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법정과 하늘의 법정의 상황이 다르다는 사실을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세상의 법정에는 재판관(Judge) 변호사(Attorney), 그리고 검사(Prosecutor) 있습니다. 법정에서의 그들의 역할은 각각 다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의 재판정에는 별도의 변호사가 없습니다. 법률적 절차에 오직 사람만이 필요할 뿐입니다. 이유는 재판관이 동시에 변호인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가지의 역할을 수행하는 것입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변호도 하시고 재판관의 역할까지 하십니다.

성소 시대에 어떤 사람이 도움이 필요하거나 곤경에 처했을 , 오직 사람만이 그를 구해 있었는데, 바로 사사(Judge)였습니다. 물론 제사장들은 제사를 통해서 도울 있었지만, 만약 어떤 기소가 들어왔을 제사장들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러한 경우 필요한 것은 언제나 사사(재판관)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불의한 재판관에 대한 비유가 보여주듯이 세상의 법정은 종종 불의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재판관이신 하나님은 우리를 적대시 하는 분이 아니며 우리를 도우려고 하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해 독생자를 아낌없이 내어주신 분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늘의 재판관에 대한 신뢰와 함께 우리의 구속자에 대한 믿음을 동시에 가질 있습니다. 성경에 나타난 심판의 목적은 사람들을 하늘에 가지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 아니라 가능한 많이 데려가기 위한 것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과 관련한 성경의 묘사는 언제나 기쁨과 긍정적인 기대의 사건으로 나타납니다( 96:11-13; 48:11; 7:22, 26-27; 6:10; 11:15-18; 14:6-7; 18:20; 19:2).

 

4. 재림 전에 있을 심판에 대하여 아십니까?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마지막 과정은 예수의 재림을 통하여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 친히 하신 말씀은 사실을 명백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13:30).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 중에가라지 있고곡식 있을 것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가라지와 곡식을 세상에서는 사람들이 함부로 가려낼 없으니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라고 하신 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정확하게 가려낼 것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곡식과 가라지를 가려내는 과정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 14장에 보면, 예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기 전에 있을 심판에 대하여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가 음성으로 가로되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에게 영광을 돌리라 이는 그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이니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 하더라”( 14:7).

여기에 묘사된 심판이 끝나는 순간 예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하여 재림하십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전에 심판이 있을 것을 매우 명확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에 심판에 대한 분명한 기록들이 매우 자주 나타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심판 개념을 경시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성경 전체의 맥락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 하나님의 사랑만을 강조하며 부족한 복음을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1. 재림 전 심판의 목적은 무엇인가?

이것은 매우 분명하고 단순하고 당연한 원리로 설명이 됩니다. 재림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께서 세상에 내려오셔서 세상에 살고 있던 사람들을 데리고 하늘로 올라가셔서 하나님과 함께 살도록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확고한 약속이었습니다.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 말라 하나님을 믿으니 나를 믿으라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너희에게 일렀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14:1-3).

예수께서 어디로부터 세상으로 다시 오십니까? 하나님이 계신 하늘로부터 내려오시는 것입니다. “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말씀에서 있는 두말 필요도 없이 하나님이 살아 존재하고 계시는 하늘입니다. 천군천사들이 있는 천국을 말하는 것입니다. 곳에 가면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게 것이고, 그분을 대면하여 함께 살게 것입니다. 그런데 이미 언급한대로 하나님은 죄와 공존할 없는 분이기 때문에 죄를 가지고 있거나 품고 있는 사람은 곳에 들어갈 없습니다. 그래서 하늘 법정에서 곳에 있는 없는 사람들을 가려내야 하는데, 과정을 심판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재림 심판의 목적은 하늘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는 의인들을 구분하고 가려내는 것입니다.

 

2. 비유 속에 나타난 심판의 개념들

성경에는 하나님을 믿는 자들 중에 구원받을 자와 구원을 받지 못할 자들을 가려내는 심판 개념이 다양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중에서 가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알곡과 쭉정이

손에 키를 들고 자기의 타작 마당을 정하게 하사 알곡은 모아 곡간에 들이고 쭉정이는 꺼지지 않는 불에 태우시리라”( 3:12).

말씀에서 타작 마당은 하나님의 심판과 연결되는 예수의 재림을 말하는 것입니다. 알곡과 쭉정이를 가려내는 과정이 심판이고 알곡을 모아 곡간에 들이는 것은 구원받은 사람들이 재림을 통해서 하늘에 올라가는 것입니다.

2) 곡식과 가라지

주인이 가로되 가만 두어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추수 때까지 함께 자라게 두어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사르게 단으로 묶고 곡식은 모아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13:29,30)

종들이 밭에 곡식을 심었습니다. 나중에 식물이 자라면서 보니까 가라지들이 섞여 있었습니다. 종들이 주인에게 와서 밭에 올라온 가라지들을 뽑아 버릴까 물었습니다. 주인이 종들에게 추수 때까지 그대로 두라고 합니다. 잘못 하면 곡식까지 뽑혀진다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추수 때는 예수의 재림을 말합니다. 곡식과 가라지가 완전히 분리되는 것은 예수의 재림시에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직전에 하늘 법정에서 가라지와 곡식을 나누는 일을 것인데, 그것이 바로 재림 심판입니다.

3) 슬기로운 처녀와 어리석은 처녀

때에 천국은 마치 등을 들고 신랑을 맞으러 나간 처녀와 같다 하리니 중에 다섯은 미련하고 다섯은 슬기 있는지라”( 25:1,2).

이들이 모두 처녀이고 신랑을 기다렸다는 것은 모두 외관상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람들이라는 의미입니다. 그런데 신랑이 왔을 다섯은 신랑을 맞이하였고 다섯은 잔치 집에 들어가지 못했다는 것은, 나름대로 진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던 사람들이 심판에 의하여 나누어질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4) 착하고 충성된 종과 악하고 게으른 종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제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각각 재능대로 하나에게는 다섯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달란트를, 하나에게는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오랜 후에 종들의 주인이 돌아와 저희와 회계할 주인이 이르되 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주인의 즐거움에 참예할지어다악하고 게으른 종아 나는 심지 않은 데서 거두고 헤치지 않은 데서 모으는 줄로 네가 알았느냐”( 25:14,15,19,21,26).

비유는 널리 알려진 이야기입니다. 이야기에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주인의 종들입니다. 다시 말하면 모두 주님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주님께서 주신 달란트(은사) 어떻게 사용하며 살았느냐에 따라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될 있다는 중요한 교훈을 담은 이야기입니다. 비유에서 오랜 후에 주인이 돌아왔다는 것은 예수의 재림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소위 하나님의 종들이라고 공언하던 사람들 중에도 나누임이 있을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5) 양과 염소

인자가 자기 영광으로 모든 천사와 함께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으리니 모든 민족을 앞에 모으고 각각 분별하기를 목자가 양과 염소를 분별하는 같이 하여 양은 오른편에 염소는 왼편에 두리라”( 25:31~33).

비유에는 예수의 재림이 명백하게 기술되어 있습니다. 때에 세상의 무리들을 양과 염소로 구분하였습니다. 양과 염소는 비슷한 모습을 가진 짐승입니다. 그리고 대체로 흰색입니다. 외관상 재림을 기다리는 성도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양과 염소의 마지막 운명은 영원한 생명과 영원한 멸망이었습니다. 모양은 비슷하였지만, 하나님의 심판에 의하여 운명이 갈라진 것입니다.

6) 좋은 물고기와 못된 물고기

천국은 마치 바다에 치고 각종 물고기를 모는 그물과 같으니 그물에 가득하매 가로 끌어 내고 앉아서 좋은 것은 그릇에 담고 못된 것은 내어 버리느니라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천사들이 와서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내어 풀무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 13:47~50)

비유에서 바다는 세상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바다에 사는 수많은 물고기들은 세상 사람들입니다. 그리고 그물에 잡혀 올라온 물고기들은 복음을 듣고 예수를 믿게 신자들을 가리키고 있습니다. ‘좋은 물고기못된 나눈 것은 구원을 받는 신자와 버림을 받는 신자들을 구별하는 것입니다. “세상 끝에도 이러하리라 것은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심판을 통해서 의인과 악인을 갈라내어 죄를 해결하지 않은 악인들이 멸망당할 것을 예고하는 것입니다.

7) 예복을 입은 사람과 입지 않은 사람들

(임금이) “사거리 길에 가서 사람을 만나는 대로 혼인 잔치에 청하여 오너라 한대 종들이 길에 나가 악한 자나 선한 자나 만나는 대로 모두 데려오니 혼인 자리에 손이 가득한지라 임금이 손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사람을 보고 가로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저가 유구무언이어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수족을 결박하여 바깥 어두움에 내어 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갊이 있으리라 하니라”( 22:9~13).

임금이 베푸는 혼인 잔치 집에 손님들을 초청하였습니다. 악한 자도 오고 선한 자도 초청되었습니다. 내용상으로 보아 잔치 집에 들어올 때에 예복을 벌씩 나누어주고 입으라고 같습니다. 그런데 임금이 집에 들어온 손님을 둘러보니까 사람이 예복을 입지 않고 앉아 있었습니다. 임금은 사람을 어두운 바깥으로 내어 쫓았습니다. 비유에서 예복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함께 사람들이 입어야 그리스도의 의의 두루마기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처럼 없는 깨끗한 상태를 말합니다. 스스로 그렇게 없기 때문에 예복을 나누어 것입니다. 예복을 입었는지 입었는지를 조사하는 것을 심판이라고 하고, 그래서 이러한 심판을조사심판이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조사심판이나재림 심판 동일한 개념으로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3. 이미 예수 믿고 구원받은 사람들을 왜 심판하십니까?

위에 언급한 일곱 개의 비유에 나타난 바와 같이 외관상 예수를 믿는 사람처럼 보이지만 그의 마음이나 행실은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과 아무런 차이가 없는 신자들이 있습니다. 때로는 오히려 악할 수도 있습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중에도 가라지가 있었으니까요. 그래서 예수께서는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 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7:21~23).

예수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 확실한 증거는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따라 순종하며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예수의 이름으로 권능을 행하고 이적을 베풀고 심지어는 귀신을 쫓아내는 일을 해도 그의 삶이 하나님의 법도에 맞지 않으면 주님께서는 그들을 모른다고 것입니다. 성경에서 매우 명백하게 가르치고 있는 것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통해서 나타나는 열매와 결과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히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초를 반석 위에 놓은 연고요 나의 말을 듣고 행치 아니하는 자는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집에 부딪히매 무너져 무너짐이 심하니라”( 7:24~27).

독자 여러분, 말씀을 유심히 보시고 가슴 속에 깊이 새겨 두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일을 경시하거나 무시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말씀의 반석 위에 여러분의 신앙의 기초를 두어서 어떤 시련과 시험이 닥쳐도 흔들림 없이 항상 깨어서 주님을 의지하며 따라가는 충실한 주님의 일군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5. 하늘에서 있을 심판과 둘째 사망은 무엇입니까?

다음 성경절의 의미가 무엇인지 생각해 보셨습니까?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내가 보니 죽은 자들이 무론대소하고 보좌 앞에 섰는데 책들이 있고 다른 책이 펴졌으니 생명책이라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으니 바다가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고 사망과 음부도 가운데서 죽은 자들을 내어주매 사람이 자기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고 사망과 음부도 불못에 던지우니 이것은 둘째 사망 불못이라 누구든지 생명책에 기록되지 못한 자는 못에 던지우더라”( 20:4,12~15).

요한계시록 20장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로 올라간 다음, 땅에는 모든 악인들이 죽어 있는 시체 더미에서 1000 동안 사탄이 홀로 갇혀 있는 상태를 묘사하고 있습니다. 기간 중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심판하는 권세 받아서 죽은 악인들이 구원을 받지 못하고 죽었는지 원인과 이유를 살펴보는 2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성경에 명백히 기록된 것이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는 것입니다. “죽은 자들이 자기 행위를 따라 책들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는다고 하였습니다. 사도 바울도 사실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성도가 세상을 판단(심판)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세상도 너희에게 판단을 받겠거든 지극히 작은 판단하기를 감당치 못하겠느냐 우리가 천사를 판단할 것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고전 6:2,3).

사도 바울은 구원받은 성도들이 하늘에서 죽은 악인들과 악한 천사들까지 심판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물론 심판장이신 예수님과 함께 심판을 하게 것입니다. 천년의 세월동안 죽은 악인들에 대한 심판이 마쳐지면 죽었던 악인들이 부활할 것입니다. 의인이나 악인이나 모든 죽었던 사람들은 부활하게 되어 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5:28,29).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있을 성도의 부활을 첫째 부활(생명의 부활)이라고 하고, 재림 천년이 지난 후에 있을 악인의 부활(심판의 부활) 둘째 부활이라고 합니다.

첫째 부활에 참예하는 자들은 복이 있고 거룩하도다 둘째 사망이 그들을 다스리는 권세가 없고 도리어 그들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제사장이 되어 동안 그리스도로 더불어 노릇 하리라 ( 20:6)

번째 부활에 참여한 악인들은 사탄의 미혹을 받아,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온 예루살렘 성과 성도들을 공격하려고 것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그들을 소멸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년이 차매 사단이 옥에서 놓여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곡과 마곡(모든 악의 세력들)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수가 바다 모래 같으리라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 ( 20:7~10).

예수 재림 전의 모든 죽음을 첫째 사망이라 하고, 부활했던 악인들의 최후의 죽음을 둘째 사망이라고 합니다. 도표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러한 과정과 절차를 통하여 세상의 모든 악의 세력들은 완전히 철저하게 소멸되고 하나님께서 재창조하신 하늘과 ”( 21:1)에서 성도들이 영원한 삶을 누리게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하나님께서 인류를 구원하시는 계획은 완성되고 성도들이 나라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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