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은 어떤 언약이었을까요? 주인과 종이 노동과 노력의 대가에 대한 보상을 약속하는 언약입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열심히 노력해서 계명을 지키면 구원하겠다는 언약입니까? 아닙니다. 예레미야서에는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이 어떤 언약이었는지에 대한 하나님의 설명이 나옵니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열조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세운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2)

 

시내산의 옛 언약은 어떤 언약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아내가 되기로 약속하는 언약이었습니다. 얼마나 놀라운 특권입니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내가 너희를 내 아내처럼 돌보겠다.”는 혼인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와 결혼하겠느냐?”고 물으신 것이고, 이스라엘 백성은 “예, 결혼하겠습니다.”라고 대답한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옛 언약이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과 혼인언약을 맺었는데, 그 후부터 영원토록 행복하게 잘 살았습니까? 아닙니다. 그렇게 되었으면 좋았을텐데 그렇게 되지 않았습니다.

 

혼인관계가 깨어지는 이유

왜 이스라엘 백성은 시내산에서 맺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깨뜨렸을까요? 하나님께서 그들의 “남편”이 되어주신다고 했음에도 불구하고 왜 그들은 언약을 깨뜨렸을까요?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파하였음이니라”(렘 31:32).

결혼은 이 세상에서 가장 많은 엄격한 원칙이 포함된 관계입니다. 신랑과 신부는 자신이 전에 좋아하던 것들을 포기하기로 약속해야 합니다. 신랑은 이제 다른 여자들과 데이트할 수 있는 자유를 포기해야 하며, 남은 생애를 오직 한 여성을 위해 묶어놓는 결정을 해야 합니다. 신부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을 온전히 남편에게 바쳐야 하며, 이전에 사귀어온 남성들과의 관계를 포기하기로 서약해야 합니다. 결혼 서약이야말로 가장 좁고 협착한 길을 걷기로 맹세하는 서약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사람은 전혀 불평하지 않습니다. 왜 그럴까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은 성경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신앙을 하면 인생이 불행해진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그 말이 사실이라면, 결혼처럼 비참하고 불행한 것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무도 결혼하는 신랑 신부를 보면서 불행한 결정을 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결혼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자신의 생애를 신랑에게 바치기로 서약할 때 왜 그토록 빛나고 행복하게 보일까요? 신랑은 자신의 남은 생애 동안에 가장 까다롭고 엄격한 원칙을 따르겠다는 결정을 하면서 왜 그렇게 행복한 얼굴을 할 수 있을까요? 두 사람이 서로 깊이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결혼과 함께 수많은 규칙과 법의 굴레 속으로 들어가지만, 그들은 결코 불평하지 않습니다.

결혼에 관한 법과 규칙을 자세히 살펴보면 정말 까다롭고 엄격합니다. 어떤 나라에서는 남편과 아내가 간음을 하면 국가의 법에 의해서 체포되어 감옥에 갈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두 사람 모두 그런 법에 대해서 불평하지 않고 걱정하지도 않습니다. 엄격한 법이 존재하지만 그것을 멍에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신랑과 신부 모두 그들 마음에 법을 범하고자 하는 의도가 전혀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간음에 대한 법이 두 사람의 결혼생활을 보호해주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법과 계명을 바라보는 시선이 되어야 합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형벌을 받을까 봐 두려워서 결혼 서약을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남편을 행복하고 기쁘게 하기 위해서 결혼 서약을 지키는 것입니다. 남편을 기쁘게 하기 위해서 내 인생 전체를 바치는 것, 그것이 아내의 사랑입니다. 구약시대 하늘로 승천한 에녹이 바로 그런 신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하늘로) 옮기웠으니 하나님이 저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니라 저는 옮기우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히 11:5,6).

 

가장 불행한 그리스도인

이 세상에서 가장 비참한 신랑 신부는 어떤 사람들일까요? 결혼했지만 서로 사랑하지 않는 부부입니다. 그런 결혼이야말로 지옥입니다. 사랑이 깨지는 순간, 그들은 자신을 묶고 있는 규칙과 법에 대해서 불평을 시작합니다. 사랑이 식어지는 순간부터 그런 부부는 결국에는 서약을 무시하고 지키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무거운 것으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그러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그리스도인은 침례를 받고 그리스도와 결혼했지만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모든 계명과 진리를 무거운 멍에로 느끼게 됩니다. 그래서 좁은 길과 계명을 강조하는 설교를 들으면 “설교가 너무 삭막하고 사랑이 없다.”고 불평합니다. 하나님을 믿고 성경 말씀에 대한 지식이 많다고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자신의 신랑으로 영접한 경험이 없으면 진리와 성경이 말하는 원칙에 대해서 불평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지만, 지옥불이 무서워서 교회 다니는 사람들은 예수님과 상관없는 신앙을 하게 됩니다.

거듭나지 않은 사람의 마음속에는 받아들이지 않기로 결정한 원칙과 교리들이 이곳저곳에 쌓여 있습니다. 순종하지 않기로 결정한 계명과 거절하기로 선택한 말씀이 마음속에 쌓여서 먼지가 덮혀 있을 때, 영혼은 힘을 잃고 죽어가게 됩니다. 참된 신앙은 신랑 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사랑의 관계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예수님과 사랑의 관계가 어디까지 들어가야 할까요? 성경이 말하는 진리와 원칙을 온 마음을 다해서 받아들이는 지점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감사한 마음으로 좁은 길을 걸을 수 있는 관계까지 들어가야 합니다. 예수님과 이런 관계를 맺지 못할 때 그리스도인은 이상한 모습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천둥과 벼락을 맞지 않기 위해서 교회에 다니고, 재난을 피하기 위해서 예수님을 영접하며, 지옥불을 피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게 됩니다. 우리는 그런 사람들의 말과 생애 속에서 하나님께 대한 진정한 사랑과 감사를 느낄 수 없습니다.

 

옛 언약이 깨어진 이유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맺어진 옛 언약은 혼인하는 언약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옛 언약이 깨지게 되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입으로는 순종하겠다.고 했지만 온 마음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을 애굽에서 구원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시내산에서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예배드렸던 것입니다. 모세는 그 모습을 보고 너무나 분노해서 십계명 돌비를 산 아래로 내던져 깨뜨렸습니다.

 

“(모세가)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 32:19)

 

모세가 하나님께서 기록하신 십계명 돌비를 던진 것은 이스라엘의 배도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비를 던져서 깨뜨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십계명 돌비가 깨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파기하였다는 사실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서 언약을 깨뜨리자 하나님께서는 그 배도에 참여한 3천 명을 죽이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죄와 불순종으로 언약을 깨진다는 것은 곧 멸망을 뜻하는 것입니다.

불과 두 달 전만해도 하나님의 놀라운 능력으로 애굽에서 구원받고 하나님을 찬양하였던 사람들이 어떻게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드릴수 있을까요? 기적과 능력으로 구원받았을 때는 기쁘고 감격했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가 심령 속에 새겨지는 경험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신 것은 그들을 순종하는 백성으로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불순종을 고집하고 계명을 외면하면 언약이 깨어지고 구원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대다수의 사람들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것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목적을 분명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이스라엘) 백성으로 즐거이 (애굽에서) 나오게 하시며 그 택한 자로 노래하며 나오게 하시고 열방의 땅을 저희에게 주시며 민족들의 수고한 것을 소유로 취하게 하셨으니 이는 저희로 그 율례를 지키며 그 법을 좇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시 105:43-45)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이유가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율례와 법을 지키게 하려고 구원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많은 교회들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은 성도들은 더 이상 계명에 얽매일 필요도 없고 지키지 않아도 됩니다. 구원은 은혜로만 받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애굽의 죄에서 해방시키신 이유는 순종하는 백성을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우리 죄를 용서해 주실까요? 죄를 마음대로 범하라고 용서해 주시나요? 옛 생애로 돌아가서 마음대로 살라고 용서해 주시나요? 아닙니다. 주님의 뜻대로 살게 하기 위해서 용서해 주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가 이렇게 타락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의 피로 언약을 맺고 구원받은 자들은 계명을 지키지 않아도 된다.는 이상한 교리가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음대로 계명을 범하면서도 여전히 나는 구원받았다.는 거짓 평안과 거짓 확신을 갖게 된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과 언약관계를 유지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문제는 언약이 아니라 마음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우리가 다 준행하겠나이다.”라고 대답함으로써 하나님과 옛 언약을 맺었습니다. 그 대답으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충성하겠다.”는 언약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왜 옛 언약을 지키지 못했을까요?

 

우리가 이해해야 할 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으로는 계명에 순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가 다 준행하겠나이다.”라고 대답했지만, 그들은 자신의 힘으로 순종하려고 하다가 율법주의에 빠졌으며 순종의 삶을 살지 못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이 갖고 있는 결정적인 문제는 하나님의 법과 말씀을 지키겠다고 약속을 하는 백성들의 태도와 마음 상태였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도우심과 능력을 구하는 대신에 우리가 할 수 있다.라는 자신감에 차 있었습니다. 마음속에 세상에 대한 사랑과 욕심과 이기심이 있었는데, 그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겠습니다.라고 불가능한 약속을 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눈에 보이는 행위로만 지키는 것이 아닙니다. 순종은 마음의 생각과 동기까지 포함됩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타락하고 교만한 마음으로는 아무리 노력하고 애를 써도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지킬 수 없습니다.

순종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은 마음과 심령의 변화를 받아야만 이루어질 수 있는 명령입니다. 바로 여기에 복음의 능력이 필요한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은 알코올 중독자를 절제하는 자로 변화시킵니다. 십자가의 능력은 속이는 자를 정직한 자로 변화시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훔치는 자를 이웃에게 봉사하는 자로 변화시키고 악한 자를 거룩한 사람으로 만들어 줍니다. 복음은 마음의 깊은 곳에 숨겨져 있는 동기까지 순결하게 변화시켜 주는데, 이것이 구원의 경험이고 거듭나는 경험입니다. 그러므로 계명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깊이 젖은 성도들만 지킬 수 있는 것입니다. 성령을 통해서 마음속에 감사와 충성이 새겨진 사람들만 순종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는 무엇이었을까요? 그들 마음속에 감사와 충성이 새겨지지 않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에서 열 재앙을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동풍으로 바닥을 말리셔서 이스라엘 백성이 걸어서 홍해를 건널 수 있게 해주셨습니다. 날마다 하늘에서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이 나오도록 해주셨습니다. 낮에는 구름기둥, 밤에는 불기둥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속에는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충성이 새겨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진정한 경외심이 없었습니다. 그들은 늘 불평하면서 광야 길을 걸어갔습니다. 바로 그것이 옛 언약의 문제였습니다. 문제는 하나님께 있는 것이 아니었고 십계명에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옛 언약의 문제는 언약을 맺은 사람들의 마음에 있었습니다. 교만하고 강퍅한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수 없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이 깨어지고 폐해진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 시내산에서 맺은 옛 언약이 무슨 문제 때문에 폐지되었습니까? 너희가 순종하면 내가 너희 하나님이 되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 문제가 있습니까? 우상을 섬기지 말고, 부모를 공경하라.는 십계명에 문제가 있습니까? 아닙니다. 문제는 순종할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언약을 통해서 하나님의 신부가 되었지만, 신부가 간직해야 할 신랑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갖고 있던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그리스도께서 당신의 피로 새 언약을 세우신 것입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해 보셨나요?

  1. 언약의 조건

많은 사람들이 옛 언약에서는 순종해야만 구원받고, 새 언약에서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기만 하면 순종하지 않아도 구원받는 것처럼 생각합니다. 그것은 큰 오해입니다. 옛 언약과 새 언약에서 언약의 조건은 동일한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대한 순종입니다. 그러나 옛 언약과 새 언약의 분명한 차이가 있는데, 그것은 언약을 이루시는 원동력이 인간의 노력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1. 언약이 맺어진 방법

두 언약 모두 피로서 맺어졌다: 언약에는 반드시 그것을 맺는 의식이 치러집니다. 옛 언약에서는 수소의 피로 언약을 맺었습니다.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로 화목제를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모세가 피를 취하여 반은 여러 양푼에 담고 반은 단에 뿌리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매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출 24:4-8)

 

옛 언약은 수소의 피로 맺어졌는데, 새 언약은 누구의 피로 맺어졌을까요?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 아들의 피가 흘려졌습니다.

 

“이 잔은 내 피로 세우는 새 언약이니 곧 너희를 위하여 붓는 것이라”(눅 22:20)

    

  1. 언약의 기초

옛 언약은 인간의 약속 위에 세워짐: “너희가 내 말을 받들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고할지니라 백성이 일제히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출 19:6-8). 하나님께서 제안하신 옛 언약에 이스라엘 백성이 한목소리로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다 행하리이다.”라고 대답하는 순간 옛 언약의 기초가 놓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옛 언약은 인간의 빈약한 약속으로 맺어졌습니다.

새 언약은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짐: 새 언약은 인간의 약속 대신에 언약을 반드시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 위에 세워졌습니다.

 

“양의 큰 목자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영원한 언약의 피로 죽은 자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강의 하나님이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자기 뜻을 우리 속에 이루시기를 원하노라”(히 13:20-21)

 

“모든 선한 일에 너희를 온전케 하사 … 자기 뜻을 우리 속에 이루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이 모든 그리스도인들 앞에 놓여졌습니다. 얼마나 감사합니까? 그러므로 새 언약하에서는 우리의 노력으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순종케 해주시는 것입니다.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빌 2:13)

 

옛 언약에서는 인간의 노력과 결심으로 순종하려고 하다가 실패했지만, 새 언약에서는 하나님께서 당신의 기쁘신 뜻을 이루기 위해서 놀라운 역사를 해주십니다. 다시 말해서, 성령을 통하여 우리 마음속에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해주십니다. 우리는 성령을 통해서 우리 속에 생긴 거룩한 소원과 충동에 이끌려 하나님의 말씀과 뜻을 순종하게 되는데, 이것이 새 언약의 경험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우리 안에 계신 그리스도께서 의를 이루신다고 말씀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이는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에게 새 언약이 이루어지는 것입니까? 성령을 통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을 받는 그리스도인에게 새 언약이 이루어지고 순종하는 생애가 가능하게 되는 것입니다.

 

  1.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새겨지는 장소

옛 언약에서는 돌비에 기록하심: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신 4:13)

새 언약에서는 마음에 기록하심: “또 주께서 이르시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내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히 8:10)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고후 3:3)

 

옛 언약과 새 언약을 비교한 다음의 도표를 보면, 두 언약의 차이가 무엇인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