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사이에서 나더니 번째 중의 셋이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작은 뿔에는 사람의 같은 눈들이 있고 입이 있어 말을 하였더라”( 7:8); “이에 내가 넷째 짐승에 관하여 확실히 알고자 하였으니”( 7:19)

다니엘서 7장의 환상에서 다니엘은 특별히 넷째 짐승에 대하여 관심을 갖고 유심히 보게 되었습니다. 우리는 이미 앞에서 넷째 짐승이 로마 제국을 상징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다니엘이 로마 제국을 상징하는 넷째 짐승에 대하여 특별한 관심을 가진 이유는 넷째 짐승의 , 지금의 유럽 국가들이 나오고, 사이에서작은 나오는데, “ 뿔이 성도들과 더불어 싸워 그들을 이겼”( 7:21)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작은 누구일까요? 작은 뿔의 정체를 알기 위해서는 먼저 다니엘 7장에 묘사된 작은 뿔의 가지 특징들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작은 뿔이 일어나는 때와 장소 : 넷째 짐승(로마 제국) (유럽의 여러 국가들) 나누어진”, “ 사이에서일어납니다(7:8).

작은 뿔의 국가적 속성과 특징 : 나라를 상징하기 때문에작은 다른 (유럽 국가들)처럼 정치적 국가임에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작은 뿔은먼저 있던 자들과 다르”( 7:24)다고 진술되어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다릅니까? 8절에 보면 작은 뿔에는사람의 같은 눈들이 있고 입이 있어 말을 하였다 하였고, 20절에는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보이더라 하였습니다. 그리고 환상을 해석해 주는 천사는 25절에서 작은 뿔이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한다”, “지극히 높으신 이의 성도를 괴롭게 한다”,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한다”, “성도들은 그의 손에 붙인 되어 때와 때와 때를 지낸다 하였습니다. 이것은 작은 뿔이 정치적 국가이면서도 그것을 뛰어넘는 권력과 영향력을 가질 것이며, 특히 하나님과 성도들을 대적하는 세력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권세 확립 과정 : (여러 유럽 국가들) 중에서 ( 나라) 뿌리까지 뽑았습니다( 7:8).

하나님을 향한 태도 :말로 하나님을 대적한다(7:25)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법에 대한 태도 : 때와 법을 마음대로 변경하는 무법적인(7:25) 속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도들을 핍박함 : 때와 때와 동안 하나님의 성도들을 괴롭게 것입니다(7:25).

최후의 운명 : 심판이 시작되면 권세를 빼앗기고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7:26).

그러면 이제 유럽 쪽에서 등장하여 이러한 특성들을 가진 세력이나 국가를 한번 찾아보겠습니다.

 

1. 로마 제국이 열 뿔(유럽 국가들)로 나누어진 후, 그 사이에서 일어남

내가 () 뿔을 유심히 보는 중에 다른 작은 뿔이 사이에서 나더니”( 7:8)

[도표설명]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중심으로 하나님의 백성들, 육적 이스라엘과 영적 이스라엘이 있다. 사단은 세속의 나라들[바벨론, 페르샤 ] 통해서 끊임없이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해 왔다. 다니엘 7장에 의하면 로마 제국 이후 열국 시대와 연결되어 등장한작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그의 백성을 박해한다. 그러면 과연 로마를 상징하는 넷째 짐승에서 나온작은 어느 세력에 해당하는가?

도표를 보시면서, 바벨론 이후의 역사가 어떻게 진행되었는지 유심히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중세기의 세계 역사를 공부해 보시면, 정치적 로마 제국이 분열된 이후의 어느 시점에 서서히 나타나서 중세기 유럽을 지배한 정치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세력은 교황이 통치하는 로마교회였다는 사실을 확인할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부인하거나 지울 없는 역사적 사실입니다. 사실에 대해서는 수많은 역사적 기록들이 남아 있기 때문에 의문의 여지가 없습니다.

서로마의 황제가 없어진 후에 로마 사람들은 교회를 중심으로 하는 정치 조직을 유일한 국가 조직으로 알고, 로마 주교를 가톨릭교회의 교황으로 섬기게 되었으며, 사실상 교황 레오 1세는 훈족 앗틸라의 로마 침입을 외교로 막아내고(452), 교황 그레고리 1세는 롬바르드 족의 침입을 막으면서, 실제로 로마 국왕의 일을 맡아보게 되었다.”(이해남, 세계사, 79)

교황은 로마 황제가 가졌던 권력과 명성, 이교의 명칭들을 물려받음으로써 공석이 로마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였다. 콘스탄틴은 로마 주교에게 모든 것을 넘겨주었다. 그러나 교황권은 몰락한 로마 제국의 무덤 위에 왕관을 쓰고 앉아 있는 로마의 유령이다.”(Stanley’s History, 40)

로마 제국은 무너졌다. 그러나 로마는 세계 권력으로서, 가톨릭교회라는 이름으로 다시 생명을 얻었다. 로마의 교황들은 로마 시이저의 상속자들이자 계승자들이었다. 바티칸은 시이저들의 궁전이 있었던 바로 자리이다.”(레릭 펠퍼스, 바티칸 암살단, 12)

서양 중세의 가톨릭교회는 바로 세계였다. 로마 교황청은 세계 정부였으며 교황은 서유럽 전체 국가들의 원수元首였다. … 특히 13세기 들어 교회의 권한은 절정에 달했다. 교회의 권한은 세속에까지 확대되어 교회가 모든 것을 결정하기에 이르렀다.”(중앙일보 ’94 11 18)

외에도 수많은 기록들이 로마 제국이 열국으로 분열되면서 멸망한 이후에 등장하여 세상을 지배한 세력으로 두말할 필요 없이 로마 교황이 확실한 것으로 증거하고 있기 때문에 번째 짐승의 사이에서 일어난작은 로마 교황인 것이 확실합니다. 이것을 다른 국가나 다른 세력에 적용하면 이후의 모든 예언 해석이 빗나가게 됩니다.

 

2. 작은 뿔이 동류보다 커짐

그것의 머리에는 뿔이 있고 외에 다른 뿔이 나오매 뿔이 앞에서 빠졌으며 뿔에는 눈도 있고 말을 하는 입도 있고 모양이 그의 동류보다 보이더라”( 7:20)

눈이 있다작은 뿔에 눈이 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통찰력, 선견지명, 혹은 감독하는 기능을 가진 지성적인 존재임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작은 , 중세 시대의 로마 교황은 세계를 감시 감독하면서 로마 교회의 뜻을 따르지 않는 백성들을 무자비하게 핍박한 장본인이었습니다.

입이 있어 한다원문을 분석해 보면, 입이 있어 말을 하였다고 하는 것은 우두머리로서 말하고 명령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로마 교황권이 처음에는 하나의 교회로서 작게 시작되지만 마침내 우두머리가 되고, 게르만 민족의 왕들보다 권세가 커질 것에 대한 묘사입니다. 역사를 살펴보면 예언도 매우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후일에 교황은 로마의 황제들까지 간섭하면서 그들을 통제하였습니다.

 

3. 세 뿔을 뿌리까지 뽑음

번째 () 중의 셋이 앞에서 뿌리까지 뽑혔으며”( 7:8)

이것은 로마 교황권이 모든 국가적 세력과 교회의머리 자리를 잡아가는 과정에서, 걸림돌이 되었던 게르만족의 나라가 제거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나라가 제거되어야 했을까요? 게르만 민족들이 로마 제국의 영토 안으로 밀려들어온 4세기 후반에 이미 로마에 자리를 잡고 착실히 세력을 키워 로마교회는, 5세기와 6세기 초에 걸쳐 극복해야 최대의 난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과 관련하여 로마교회는 삼위일체 교리를 믿었지만, 로마 교회와 신조를 달리하는 아리우스파에서는 예수님을 ()에서 창조된 피조물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아리안주의(Arianism) 받아들인 게르만 국가들이 로마를 유린함으로써 로마교회의 존재와 권위를 크게 위협하고 있었습니다.

번째 헤룰리(Heruli) 왕국

로마를 처음 유린한 세력은 헤룰리(Heruli) 왕국입니다. 아리안주의 신봉자로서 용병 대장이었던 오도아케르(Odoacer) 반란을 일으켜, 476 서로마제국의 마지막 황제였던 소년 로물루스 아우구스투스(Romulus Augustus) 폐위시키고 자신이 왕으로 즉위했습니다. 이리하여 로마는 아리안주의 게르만 세력에 들어가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동로마의 황제 제노(Flavius Zeno, 재위 474-475, 476-491, 동로마식은 제논) 다른 게르만 민족인 동고드족의 지도자 테오도리쿠스(Theodoricus, 재위 488-526) 충동해 오도아케르를 공격하게 했습니다. 493 3 테오도리쿠스가 오도아케르와 이탈리아를 공동 통치하기로 합의하면서 4 만에 전쟁이 끝났지만, 뒤인 5 5 테오도리쿠스는 음모를 꾸며 오도아케르를 살해함으로 헤룰리가 종말을 맞게 됩니다. 예언된 번째 뿔이 뽑힌 것입니다.

번째 반달(Vandals) 왕국

한편에서는, 가이세리크(Gaiseric 혹은 Genseric) 이끄는 게르만의 다른 민족인 반달족(Vandals) 고울 지방(프랑스) 거쳐 스페인을 지나 북아프리카로 건너가서, 439년에는 카르타고를 점령한 후에, 그곳에 왕국을 세우고 지중해 일대를 위협하였습니다. 특히 445년에는 해상으로 로마에 침입하여 가공할 만한 약탈을 자행하였습니다. 이들 반달족은 광신적인 아리안주의자로서 로마 가톨릭을 이단이라 칭하며 매우 적대시하였습니다.

그동안 훈족과 싸우느라 정신이 없었던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훈족의 마지막 아틸라가 죽은 후에 반달족에 대한 대책을 세우게 됩니다. 그는 잃어버린 서로마를 회복하는데 교회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533 로마교회의 감독이모든 거룩한 교회들의 수장首長이요,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사제들의 머리라고 선언하였습니다. 그리고 명장 벨리사리우스(Belisarius, 505-565) 장군을 보내 534년에 반달을 영원히 멸망시켰습니다. 이렇게 하여 로마 가톨릭에 반대하던 번째 뿔이 뽑혔습니다.

번째 동고트(Ostrogothic) 왕국

반달을 정복한 벨리사리우스 장군은 이어서 동고트가 다스리고 있던 로마지역으로 쳐들어갔습니다. 교황 실베리오(Silverio, 재위 536-537) 중재로 동고트의 비티게스(Witiges, 536-540) 왕은 항복 의사를 전하고 라벤나로 철수함으로 벨리사리우스는 536 12 9일에 로마에 무혈 입성하였습니다.

퇴각했던 동고트 비티게스는 벨리사리우스 군사가 5 명밖에 되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537 15 명의 대군을 이끌고 다시 로마를 포위하였습니다. 그러나 538, 동로마 증원군이 이탈리아에 상륙하여 수도 라벤나에서 하루 길밖에 되는 아리미눔(Ariminum) 점령하자, 동고트는 그해 3 중순 포위를 풀고 물러가게 됩니다.

동고트가 완전히 멸망한 것은 그로부터 여러 해가 지난 553년이었으나, 538 퇴각 후부터 세력이 약화되어 이상 힘을 쓰지 못하였기 때문에, 로마교회는 자신들을 위협하던 마지막 세력이었던 동고트가 로마에 대한 포위를 풀고 물러간 538년부터 실제적인 세력을 행사할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538년을 번째 뿔이 빠진 시기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이에 대한 역사적 기록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미눔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이 로마에 전해지자, 고트족 군대는 즉시 진영을 두르던 울타리를 불태우고 퇴각을 준비하였다. 그러나 벨리사리우스는 그들이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 그는 고트족 군대가 밀비아 다리를 절반쯤 건널 때까지 기다리다 군대를 총동원하여 공격을 감행했다. 고트족의 피해는 어마어마했다. 전투 과정에서 사망한 외에 티베르 강물에 빠져 죽은 자들도 많았다. 그리하여 1 9 동안 계속되었던 고트족의 로마 포위는 기원후 538 3 중순경에 끝을 맺었다.”(J. B. 베리, 후기 로마 제국의 역사, 18 §5. 로마의 포위(A.D. 537‑538)

 

Do you know that?

교황권이 확립되기까기 간략한 역사

1. 서기 31 예수의 십자가 이후 성령충만한 제자들에 의해 기독교 복음이 신속하게 로마 제국에 널리 전파되었다.

2. 서기 60년대 네로 황제로부터 시작하여 로마 제국은 기독교를 격렬하게 핍박하였으나 기독교는 건재하였고 더욱 든든하게 세워졌다.

3. 서기 313 콘스탄틴 황제는 자신이 기독교로 개종하였다고 천명하면서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 핍박을 멈추고 자유를 허용하면서 기독교 성직자들에게 많은 특혜를 베풀었다.

4. 당시 로마 제국의 대표적인 종교로 자리잡고 있던 미스라(태양신교) 종교의 성직자들과 수많은 신도들이 황제의 영향을 받아 기독교로 개종하였다.

5. 이에 기독교 인구는 급속히 증가하였으나, 개종한 이교도들은 개종한 이후에도 여전히 이전의 종교적 습관과 신조를 버리지 않았기 때문에 기독교는 저들과 혼합되면서 이교화되기 시작하였고 배도와 타락에 빠져들었다.

6. 세월이 흐름에 따라 기독교는 정치적 세력을 얻게 되었고 이교와 혼합되면서 세속적 권세와 () 얻으면서 기독교 본래의 신앙과 순수함을 상실하고 정치와 이교 신앙과 결합된 배도하고 타락한 교회로 변질되었다.

7. 서기 330 콘스탄틴 황제가 수도를 로마에서 비잔티움(콘스탄니노플)으로 옮긴 후에 로마교회 감독의 위치는 상승하게 되었고, 그가 로마를 대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8. 로마 제국의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자신의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고, 380 2 28 모든 시민들이 기독교의 니케아 신경을 신봉해야 한다고 규정한 칙령을 발표했다. 이때부터 성부, 성자, 성령의 삼위일체설을 믿는 사람들만 보편적 기독교인(가톨릭)으로 인정되었다. 가톨릭이라는 호칭이 문서에 등장한 것은 이때가 처음이었다.

9.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가톨릭교회가 성립되었고, 중에서도 로마에 자리를 잡고 있던 로마교회가 다른 지역의 교회보다 더욱 세력을 얻어 급속히 성장하게 되었다.

10. 395 로마는 동서로 분리되었고, 서로마는 서서히 쇠퇴하다가 476 게르만 민족의 용병 대장 오토아케르에 의해 완전히 멸망하였다. 서로마 멸망 이후 로마 교회 감독은 실질적으로 로마를 대표하고 주관하는 세력을 확보하게 되었다.

11. 동로마 황제 유스티니아누스(Justinian) 잃어버린 서로마를 회복하는데 교회의 힘을 이용하기 위해 533 로마교회의 감독이모든 거룩한 교회들의 수장(首長)이요, 하나님의 모든 거룩한 사제들의 머리라고 선언하였다.

12. 그러나 교황의 적대 세력인 아리안주의를 신봉하는 종족들 때문에 교황의 실력행사는 방해를 받았으며, 마침내 동로마가 아리안 주의 세력인 헤룰리와 반달족과 마지막으로 538년에 동고트를 무력화시킴으로 교황의 전성기가 시작되었다.

 

4. 말로 하나님을 대적함

그가 장차 지극히 높으신 이를 말로 대적하며”( 7:25)

성경절의지극히 높으신 명백히 하나님을 가리킵니다. “대적하며 아람어르차드(leṣad)’인데, 차드(ṣad) 문자적으로측면 의미하고, 르차드는마주보다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하나님 옆에서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하게 생각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그러므로작은 말로 하나님을 대적한다는 것은 그가 하나님을 대항하여 자신을 하나님과 동등한 존재로 세우고자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마음은 루스벨이 하늘에서 하나님을 대적하여 반역을 일으킬 가졌던 정신이기도 합니다.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가 하늘에 올라 하나님의 뭇별 위에 나의 보좌를 높이리라 내가 북극 집회의 위에 좌정하리라 가장 높은 구름에 올라 지극히 높은 자와 비기리라 하도다.”( 14:13,14).

그런데 사도 바울은 마지막 때에 나타날 적그리스도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누가 어떻게 하여도 너희가 미혹되지 말라 먼저 배교하는 일이 있고 불법의 사람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기 전에는 그날이 이르지 아니하리니 그는 대적하는 자라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위에 자기를 높이고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우느니라”(살후 2:3-4)

교황에게 사용된 다음의 여러 호칭이나 수식어들을 살펴보면, 그가 지상에서 하나님의 역할을 하려고 하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황은 태양로마 교회가 로마 주교를 베드로의 후계자라고 명명하였으나, ‘교황은 태양, 황제는 이라고 선언한 인노첸시오 3(재위 1198~1216) 의해 로마 주교(교황)그리스도의 대리자(Vicarius Christi)’ 격상되었습니다.

베드로의 후계자인 로마 교회의 주교는 주교단의 으뜸이고, 그리스도의 대리자이며, 세상 보편 교회의 목자이다”(가톨릭교회 교리서, 963).

교황은 하나님 – 18세기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가 저술한 ()백과사전에는 교황에 대해 이렇게 정의하고 있습니다.

교황의 권위는 매우 크고 높아서 그는 단순한 사람이 아니라 말하자면 하나님이며 하나님의 대리자이다. …교황은 하늘과 땅과 지하 세계의 왕으로 삼층 면류관을 쓴다. …교황은 말하자면 그에게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지상의 나라뿐 아니라 하늘 나라의 지휘권을 위임하신 그리스도에게 충성하는 자들의 유일한 지배자, 왕들의 우두머리, 충만한 능력을 가진 자이다. …교황은 매우 권위와 능력을 가졌으므로 하나님의 율법까지도 수정하고 설명하거나 해석할 있다. …교황은 하나님의 율법을 수정할 있는데, 이는 그의 권세가 사람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이며, 또한 그는 자기 양떼를 묶거나 있는 가장 풍성한 능력을 가지고 지상에서 하나님의 대리자로 행한다. 믿음에 반하는 것은 그가 어떤 것도 하지 않는다는 전제 아래, 여호와 하나님 자신과 구속주께서 행하시는 일은 무엇이든지 그분의 대리자가 행한다”(Lucius Ferraris, “Papa II,” Prompta Bibliotheca, Vol. VI, 25~29).

또한 교황 레오 13(재위 1878~1903)우리(교황) 땅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Encyclical Letter, Pope Leo XIII, 1894) 주장하였습니다.

이러한 주장들에 대하여 종교 개혁자 마르틴 루터는우리는 여기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라면 모든 기만과 비열함을 허용할 있다는 교황권이 정말로 그리고 실제로 적그리스도의 자리에 앉아 있다고 확신하는 바이다.”(Luther, Schriften, vol. 15, col. 1639)라고 말했습니다.

교황의 명칭(POPE)또한 교황敎皇이란 명칭도 그렇습니다. 교황은 라틴어로파파(papa)’인데아버지라는 뜻을 가진 헬라어파파스’(πάππας)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영어의포프(pope)’ 역시파파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그리고 라틴어에서파파법적 책임자로서의 아버지 의미하고, ‘파테르(Pater)생리적 아버지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처음에는백성을 하느님께로 이끌어 감화시키는 임금이라는 의미로교화황敎化皇이라고 하였으나, 후에 이를 줄인 교황과 교종敎宗을 혼용해 쓰다가 1992 가톨릭 용어위원회 논의를 거쳐 교황을 공식 용어로 최종 확정했습니다.

교황에 대한 경칭은성하(聖下, His/Your Holiness)’ 혹은성스러운 아버지(Holy Father)’입니다. 이러한 명칭은 본래 모든 교구의 대주교와 주교인 성직자를 가리키는 호칭이었는데, 독일의 하인리히 4세에게 카노사의 굴욕을 안겨준 그레고리오 7(재위 1073~1085) 의해 오직 로마 주교만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1999 1 26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미국 세인트루이스를 방문했을 당시 미국 대통령 클린턴은 그를 환영하는 행사에서 교황에게거룩한 분이시여’(Your Holiness)라는 호칭을 사용한 것은 교황을 거의 하나님 위치로 격상시키는 발언에 해당하는 것이었습니다.

신부神父또한 가톨릭 성직자를 일반적으로 신부神父라고 부르는데, 한자 그대로 직역하면하나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영어로는 ‘Father’인데, 역시아버지라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러한 모든 주장이나 제도, 용어들은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너희의 아버지는 분이시니 하늘에 계신 이시니라”( 23:9) 예수님의 말씀에 정면으로 배치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렇게 선언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하나님 아버지가 계시니 만물이 그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를 위하여 있고 또한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시니 만물이 그로 말미암고 우리도 그로 말미암아 있느니라”(고전 8: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