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인 40대 남성은 자신이 교회를 떠나게 된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는 교회에서 ‘구원의 확신’을 강요당해 왔습니다. 구원은 나와 하나님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인데, 교회 갈 때마다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는 말에 떠밀리다시피 대답하는 것이 너무나 부담스러웠습니다. 전혀 말씀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사람들까지 ‘나는 구원받았다’고 대답하는 모습이 정말 보기 싫었습니다. 교인들이 서로 ‘나는 구원받았다’고 말하면서 과시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정말 힘들었습니다. 나는 교회가 왜 교인들을 그렇게 몰아가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내가 확신한다고 해서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도 아닌데, 왜 교회는 구원의 확신을 교인들에게 강요하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은 이 ‘가나안 성도’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오늘날 교회는 ‘예수를 믿고 영접했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사상이 팽배합니다. 그래서 교회마다 교인들에게 구원의 확신을 주기 위해 물어보는 것입니다. 교회에서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라고 물으면, 교인들은 눈치를 보면서 “예, 나는 구원받았습니다! 왜냐하면 예수를 영접하는 기도를 진심으로 드렸기 때문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이런 대답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은 어떻게 될까요? 영적 열등감을 갖게 되고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취급당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나는 구원받았습니다’라고 대답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들의 삶 속에 아름다운 열매가 없고 나뭇잎만 무성하다는 것입니다. ‘나는 구원받았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의 대부분은 세상 사람처럼 교만하고 이기적입니다. 자기밖에 모릅니다. 불교나 유교를 믿는 사람들보다도 겸손하지 않고 부도덕합니다.

이런 상황 때문에 교회가 전하는 복음에 대해서 깊은 불신과 의심을 가진 사람들이 늘어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날 정직한 성도들은 교회의 위선을 견디지 못해 떠나고 있는데, 그들이 ‘가나안 성도’입니다. 그들은 교회에 다니지 않는 그리스도인으로 외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들의 마음을 이해하시겠습니까?

중세기에 일어났던 일이 마지막 때 다시 개신교 안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중세기 종교 암흑기 동안 유럽의 모든 사람들은 ‘천주교’라는 하나의 교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가 ‘구원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들이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지게 되었을까요? 왜냐하면 그들은 태어날 때 사제로부터 ‘유아 세례’를 받았기 때문에 ‘구원받았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중세기 천 년 이상 동안 수백만 명의 성도들을 핍박하고, 고문하고, 죽이는 악마처럼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십계명을 마음대로 바꾸고 무시하면서 ‘나는 구원받았다’고 확신했습니다. 

어떻게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있었을까요? 신부와 사제가 교인들에게 ‘당신은 정통 천주교회 교인이므로 구원받았다’라고 선언해주었기 때문입니다. 기독교회가 그런 암흑 속에 있을 때 종교개혁 운동이 일어났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이 어떤 복음을 전파했습니까? 그들은 ‘구원은 교회가 주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는 것이다’라는 설교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의 설교는 거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구원의 복음은 감리교회의 창시자인 요한 웨슬리에 의해 밝은 빛으로 나갔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그 당시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고 생각하던 개신교들을 향해서 이런 설교를 했습니다. 

 

“여러분은 거듭나지 않았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지라도 여러분의 마음과 정신은 여전히 죄와 세상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회개의 열매와 중생의 증거가 여러분의 생애 속에서 전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성도 여러분, 성령의 음성을 들어보십시오. 자신을 살피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말씀을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합니다. 여러분의 생애가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부르신 것과 택하신 것을 증거해야 합니다. 여러분은 반드시 거듭나야 합니다!”

 

요한 웨슬리는 로마서 8장에서 이 말씀을 강조했습니다. 

 

“육신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느니라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8~14)

 

얼마나 분명한 말씀입니까? 그러나 슬픈 사실은, 오늘날 기독교회는 요한 웨슬리가 전파한 거룩한 복음으로부터 멀리 떠났다는 것입니다. 요한 웨슬리가 세운 감리교회 속에서도 더 이상 웨슬리가 강조한 ‘거듭남’과 ‘거룩한 생애’에 대한 가르침을 듣기 어렵습니다. 지금 기독교회는 중생과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를 다니고 있다면, 여러분이 예수를 믿기로 결심했고 영접 기도를 드렸다면, 그리고 그것이 진심이었다면 여러분은 중생하였고 구원받았습니다!” 

 

이런 설교가 성서적일까요? 아닙니다. 성서적 설교는 이렇게 선포되어야 합니다. 

오늘날 어디에서 이런 말씀이 선포되고 있습니까? 지금은 말씀의 기근이 내린 시대입니다. 성도들은 스스로 말씀을 읽고 찾아야 합니다. 

중세기에는 신부가 유아 세례를 통해 구원을 선언해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에는 목회자가 간단한 의식을 통해서 구원을 선언해주고 있습니다. 중세기와 똑같은 일이 지금 개신교 안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고 말씀하시는데, 오늘날 기독교회는 이렇게 말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기 원하는 분들은 손을 들으세요! 손을 드는 사람의 마음속에 예수께서 들어가실 것입니다. 손을 들어서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는 사람은 구원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믿기 어려운 사실이지만, 이것이 오늘날 많은 교회에서 구원을 주는 방법입니다. 독자 여러분, 교회에서 가르쳐주는 ‘죄인의 기도’를 따라 하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사영리를 따라서 읽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어떤 교리에 동의하고 손드는 것으로는 아무것도 이룰 수 없습니다. 이 세상 어디에도 구원을 가져오는 마법과 같은 방법은 없습니다. 구원의 확신은 사람이 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 속에 있는 그리스도의 영이 주시는 것입니다.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5)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있는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우리 속에 그리스도의 영이 거하시면 말씀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게 되고, 마음과 생애를 주님께 드리게 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 영혼은 평안을 누리게 되는데 그런 사람은 말과 표정과 태도를 통해서 신앙과 확신이 스며 나오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눈을 크게 뜨고 기독교회가 현재 어디로 가고 있는지 보시기 바랍니다. 왜 수십만 명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고 있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탄이 그렇게 교회를 어지럽혔기 때문에 그 여파로 수십만 명의 ‘가나안 성도’들이 교회를 떠나게 된 것입니다. 

사탄은 마지막 시대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와 거짓 교리를 보내서 미혹하고 있습니다. 슬픈 사실은, ‘가나안 성도’ 중 많은 사람들이 미혹에 빠져서 이상한 곳으로 가고 있습니다. 지금은 매우 위험한 시대입니다. 말씀으로 분별하면서 한 걸음씩 나가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가나안 성도’들을 무사히 하늘까지 인도해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