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예배

우리 하나님이여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는 것이 합당하오니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4:11).

그리스도인은 많은 예배를 드리며 살아갑니다. 가정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교회에서도 예배를 드리고 야외에서도 예배를 드립니다. 결혼예배, 생일예배, 장례예배, 방문예배, 안식일예배 많은 경우의 예배가 있습니다. 참된 예배를 위해서는 우선 예배의 이유와 대상을 확실히 이해할 필요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하나님께서는 영광과 존귀를 받으실 있는 이유를 그분이 만물을 지으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4:11).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는 그분께서 창조주이시며 만물이 그분 때문에 존재하게 되었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이방의 신들보다 나으며 존경과 예배를 받으시기에 합당한 분이심을 기록할 때마다 반드시 그분의 창조력의 증거를 들어 말합니다. “만방의 모든 신은 헛것이요 여호와께서는 하늘을 지으셨음이로다( 96:5)”.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이유는 명백합니다. 그분이 우리를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예배라고 하는 것은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에서만 성립하는 것입니다. 다른 어떤 신도 혹은 천사들도 예배의 대상이 없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할 때에 반드시 의식해야할 대단히 중요한 사상은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 혹은 주권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생명을 포함한 나의 모든 소유에 대한 주권이 창조주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인간들에게 바라시는 간절한 소망은 바로 그러한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끊임없이 인식하면서 아름다운 사랑의 관계를 이어가자는 것입니다. “인간들아, 너희 스스로 존재하려고 하지 말고 나와 관계를 맺고 살아가자 것이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하나님의 이러한 소원이 선악과에 나타난 되었습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선악과와 생명과, 나무가 있었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영원한 생명을 유지하기 위하여 생명과일을 먹어야 했고 그것을 먹으려면 동산 중앙으로 가야 했습니다. 동산 중앙에 가서 생명과일을 먹을 때마다 자기들이 마음대로 먹을 없는 선악과를 바라보면서 천지 만물의 주인은 자신들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다시 상기할 있었습니다.

선악과 개념을 깊이 생각해 보면,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은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거부하는 행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금하신 과일을 먹었다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은 것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창조주 하나님을 거부하는 순간 생명은 끝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불순종한 죄인은 죽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이 자신의 창조주요 주권자이심을 거부할 때에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게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통하여 창조주로서 그분의 주권을 인정하면서 하나님과의 사랑과 신뢰의 관계를 유지하게 됩니다. 나의 가진 모든 것을, 주인이신 그분께 기꺼이 드릴 있는 마음과 그분이 하시는 모든 말씀에 순종하고자 하는 마음으로 예배를 드린다면, 그것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참된 예배가 것입니다.

 

18. 교회

고린도에 있는 하나님의 교회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라 부르심을 입은 자들과 각처에서 우리의 저희와 우리의 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에게 하나님 우리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로 좇아 은혜와 평강이 있기를 원하노라”(고전 1:2, 3).

성경절을 보면교회라는 말을예수 안에서 거룩하여지고 성도가 부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교회 번역된 헬라어에클레시아라는 말의 의미는불러내어 모은다 뜻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란, ‘하나님께서 만민 중에서 불러내어 모으신 무리 가리키는 것입니다.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애굽에서 나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어떤 의미에서 거대한 교회의 형태로 있습니다. 사도행전 7 38절에서는 그것을광야 교회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교회는 언제 시작된 것일까요? 신약 시대에 형성된 최초의 교회는 사도행전 1장에 나타납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신 후에 제자들이 감람산에서 내려와 다락방에 모였습니다. 수가 120정도 되었습니다( 1:13~15). 저들이 마음을 같이하여 기도에 전념하였을 성령이 임하였고, 드디어 교회가 탄생했습니다.

이렇게 시작되어 오늘날까지 내려온 교회의 기능은 무엇이며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이 무엇인가요? 사람은 어차피 사회적 동물이기 때문에 혼자 스스로 존재할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가정 제도를 주셨고, 가정은 사람으로서의 구실과 기능을 있는 최소한의 기본 단위입니다.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교회는확대된 가정이라고 있겠지요. 예수께서는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자는 형제요 자매요 모친이니라”( 3:35)라고 말씀하시며 그리스도인들의 가족 관계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먼저 모든 교인들은 서로가 가족, 형제 자매라는 확고한 인식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교회는 사람의 몸에 비유할 있습니다. “ 만물을 아래 복종하게 하시고 그를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주셨느니라 교회는 그의 몸이니…”( 1:22,23).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라는 몸통의 머리이시고 우리는 모두 몸의 지체들로서 공존 공생하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우리는 진리를 배우고 형제 사랑을 연습하며 자아가 죽는 경험을 하면서 머리이신 그리스도를 닮아 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들은 교회 출석에 성실해야 하며 교회를 구성하고 있는 대가족의 유익을 위해서 서로 양보하고 상대를 배려하고 사랑하며 존중할 알아야 합니다. 교회의 아픔이 나의 아픔이고 교회의 기쁨이 나의 기쁨이고 교회의 번영이 나의 번영이라는 일체감을 가지고 신앙 생활을 때에 건강한 신앙인이 됩니다.

교회가 가지고 있는 하나의 매우 중요한 기능은 끊임없이 복음을 전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시켜 나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매우 소중하게 보고 계십니다. 교회도 연약한 인간들이 모인 집단이기 때문에 결함이 있고 문제들이 있지만, 그래도 교회는 하나님께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고 최고의 관심을 쏟으시는 대상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가 실현되는 장소이며, 하나님께서는 안에서 인간의 심령을 변화시키는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십니다.

 

19. 기도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4:6, 7)

사람들 사이에 어떤 관계가 맺어지고 관계가 계속 유지되려면 의사소통이 필요합니다. 믿음으로 구원으로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과의 지속적인 교제를 나누며 살아야 하는데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방법이,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마음을 토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여러 경로를 통해서 사람에게 그분의 뜻을 전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천연계와 계시로 주어진 성경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통해서 사람들에게 전달됩니다. 그러나 의사소통은 쌍방간의 대화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심정을 그의 앞에 토로(吐露)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영적 생명과 힘을 얻기 위하여 우리의 하늘 아버지와 실제적 교제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께서도 세상에서 인성을 쓰시고 인간으로서 사시는 동안 기도를 많이 하셨습니다. 습관을 따라 기도하셨고 때로는 철야 기도를 하셨고 새벽마다 기도하셨습니다( 6:12; 1:35). 그분은 단지 우리에게 모본을 보이시기 위하여 기도한 것이 아니라 기도가 필요하셨기 때문에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도를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얻으셨고, 성령의 능력을 빌려서 사탄의 모든 시험을 극복하시고 날마다 승리하는 생애를 사셨습니다.

예수님이 기도의 필요를 느끼셨다면, 하물며 연약하고 죄많은 사람들이야 말로 얼마나 더욱 열렬하고 계속적인 기도의 필요를 느껴야 하겠습니까? 오늘날 우리가 예수님처럼 살지 못하고 날마다 죄의 유혹에 대하여 패배하는 이유는 예수님만큼 기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기도는 어떻게 하는 것이며 결과는 무엇입니까? 기도는 어려운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친구와 대화하듯이 자연스럽게 자신의 심정을 하나님 앞에 펴놓는 것입니다. 기도는 우리가 어떠하다는 것을 하나님께 알리는 것이 아니고 우리가 그분을 받아들일 있도록 우리 자신의 마음 상태를 준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시게 하는 것이 아니고 우리를 그분께로 끌어 올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링컨은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남북전쟁 당시 어느 북군의 지도자들이 모인 회의장에서 교회 지도자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각하, 하나님이 우리 북군 편이 되어서 북군이 승리하게 달라고 교회가 날마다 눈물로 기도합니다.” 때에 링컨은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항상 하나님 편에 있게 달라고 기도하자고 대답하였습니다. 기도는 우리가 하나님 편에 있도록 붙들어주는 힘이요 능력입니다.

우리가 자주 범죄하고 넘어지는 것은 깨어서 은밀하게 기도하는 일을 게을리 하기 때문입니다. 기도를 게을리 하면 다음에는 다른 종교적 의무를 등한히 하게 되고, 다음으로는 각종 죄악의 길이 열리게 됩니다. 사탄의 공격이 심화될 것이고, 시험을 이길 힘을 잃게 됩니다. 우리의 과거의 경험이 어떠하든지, 우리의 지위가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우리는 끊임없이 깨어 기도해 합니다. 우리가 사탄의 지배를 벗어나서  매일 성령의 지배를 받으려면 간절하고 열렬한 기도를 드려야 합니다.

 

20. 찬양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 모든 지혜로 피차 가르치며 권면하고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며 마음에 감사함으로 하나님을 찬양하고 무엇을 하든지 말에나 일에나 예수의 이름으로 하고 그를 힘입어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하라”( 3:16,17).

찬양혹은찬송이라는 말은 가지 의미로 사용됩니다. 헬라어로율로기아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하나님께 향하여 기쁨이나 감사의 감정을 표현하는 입니다. 그리고휨노스라는 말은하나님을 예배하는데 있어서 노래나 음악을 연주하는 가리킵니다. 번째 것은 하나님께 대한 감사와 기쁨을 감정으로나 말로나 노래로 표현하는 것이고, 번째 것은 예배시에 노래를 하거나 악기를 연주하여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을 말합니다.

찬양은 매우 수준이 높은 신앙의 차원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마음이 답답하거가 어려운 역경에 처했 있을 , 괴로워하는 대신 찬미를 부르는 것은 대단히 성숙된 신앙인의 모습입니다. 찬양은 인간의 염려와 근심, 마음의 고통과 고민을 쉽게 떨쳐 있는 매우 효과적인 신앙의 표현입니다.

연로하신 어떤 장로님이 아주 있고 굵은 베이스 목소리로 말씀을 하시길래, 목소리가 어떻게 그렇게 좋으시냐고 했더니, 아내가 오랜 세월 투병 생활을 했는데, 어려울 때마다 계속 찬미를 불렀더니 목소리가 좋아지더라는 것입니다.

사람에게는 지성적인 면과 감성적인 면이 있습니다. 건강한 신앙 생활을 하려면 가지 측면을 균형지게 보살피고 가꾸어야 필요가 있습니다. 찬양은 우리의 감성적 신앙을 고양시키고 자극시키는 중요한 수단입니다. 우리는 교회에서 예배를 드릴 때에 찬양대의 찬양이나 악기를 감동적으로 연주한 후에 반응하는 아멘 소리가 설교 후에 나오는 아멘 소리보다 훨씬 크고 적극적인 것을 경험합니다.

사실 악기를 연주할 때에는 속에 아무런 구체적인 내용이나 메시지가 없지만 소리 자체가 사람의 감성에 어떤 깊은 느낌을 가져다주기 때문에 적극적인 반응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교회에서 찬미할 때에 기쁜 마음으로 힘차게 노래하는 것은 아주 좋은 습관이며 성숙한 신앙의 표현이라고 있습니다. 모든 성도들은 교회에서 기쁜 마음으로 활기찬 모습으로 찬양을 해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개인적인 생활에서, 가정에서나 일터에서 기회가 되는대로 생각나는 대로 찬양을 하면서 살게 되면 우리 자신들의 삶이 훨씬 활기차고 생동감이 있고 즐거울 뿐만 아니라 주변 사람들의 마음에까지 기쁨을 주게 됩니다. 마음이 성령으로 충만해지면,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즐거운 찬양으로 그분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지속적으로 찬양을 하면서 살다 보면, 마음에 구름이 끼거나 다른 사람을 험담하거나 불평하는 일이 현저하게 감소될 것입니다. 밝고 맑은 마음을 유지할 있습니다. 마음이 편하고 기분이 좋아야 노래가 나오는 것도 사실이지만, 마음이 불안하고 기분이 좋지 않을 , 의도적으로라도 찬양을 하면 불안감이 사라지고 기분이 좋아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오늘부터 찬양하며 살아가는 연습을 봅시다.

 

21. 구제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경내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펼지니라” ( 15:11)

신앙심이 없는 사람들은 자기가 소유하고 있는 재물을 자신의 것으로 생각하지만, 참된 신앙인들은 자신이 가진 재산을 하나님의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 정상입니다. 그런데 그리스도인들 중에서도 그들의 재물을 자신의 소유처럼 착각하며 이기적인 욕심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람이 가지고 있는 죄악적인 속성 중에서이기심물욕 뿌리가 매우 깊고 좀처럼 제거되지 않는 아주 고질적인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들이 이러한 이기심을 버리고 희생적이고 이타적인 삶을 살도록 하시기 위하여 주변의 가난한 자들을 구제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렇게 가난하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구제한 것은 주님께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예수께서 구원이 확정된 그분의 백성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주릴 때에 너희가 먹을 것을 주었고 목마를 때에 마시게 하였고 나그네 되었을 때에 영접하였고 벗었을 때에 옷을 입혔고 병들었을 때에 돌아 보았고 옥에 갇혔을 때에 와서 보았느니라”( 25:35,36). 때에 그의 백성들이 다시 물었습니다. ‘우리가 언제 그렇게 하였습니까?’.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십니다. “너희가 여기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하나에게 것이 내게 것이니라” ( 25:40).

이러한 구제 행위는 생각과 결심만 가지고 쉽게 실천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구제를 실천할 있는 다양한 교훈과 제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어느 성읍에서든지 가난한 형제가 너와 함께 거하거든 가난한 형제에게 마음을 강퍅히 하지 말며 손을 움켜 쥐지 말고.”( 15:7).

땅에는 언제든지 가난한 자가 그치지 아니하겠으므로 내가 네게 명하여 이르노니 너는 반드시 경내 형제의 곤란한 자와 궁핍한 자에게 손을 펼지니라.”( 15:11).

제칠년에는 갈지 말고 묵여 두어서 백성의 가난한 자로 먹게 하라.” ( 23:11).

너의 포도원의 열매를 따지 말며 너의 포도원에 떨어진 열매도 줍지 말고 가난한 사람과 타국인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19:10).

너희 땅의 곡물을 때에 모퉁이까지 베지 말며 떨어진 진을 줍지 말고 너는 그것을 가난한 자와 객을 위하여 버려 두라 나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니라.”( 23:22).

미국의 세계적인 부호였던 록펠러는 55세에 회생할 없는 병에 걸려 거의 죽게 되었습니다. 그가 병원에서 우연히 어려운 가정의 치료비를 도와주게 되었는데 그는 전에 경험하지 못했던 기쁨을 느꼈다고 합니다. 때부터 록펠러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며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기 시작하였고, 그의 병세는 점점 호전되어 40년을 살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모든 말씀은 사람의 유익을 위한 것입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고 나누어주면 마음이 즐겁고 행복해 집니다. 그런 행복한 감정이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정신과 신체의 건강을 증진시켜 주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생각이나 말로만 구호를 외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 속에서 실제적으로 무엇인가 실천하는 것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요?.

 

22. 십일조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0).

우리가 이미 살펴본 대로예배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는 피조물과 인간을 만드신 창조주 사이에서 성립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때에, 우리의 시간(생명) 중에서 일곱째 날을 구별하여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간으로 갖는 것은 일곱째 날만 하나님의 시간이 아니라 우리의 생명과 시간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고백하는 신앙적 행위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주신 생명력과 시간과 재능을 이용하여 얻은 재물은 누구의 것입니까? 물론 하나님의 것입니다. 어떤 목수가 나무를 이용하여 식탁과 의자를 만들어 돈을 벌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나무가 어디에서 것입니까? 물론 목재상에서 일정한 돈을 지불하고 구입 했겠지요. 그러나 계속 추적을 보면 나무는 산에서 나온 것이고 나무를 창조하시고 기르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재료를 가지고 하나님이 주신 능력을 사용하여 돈을 벌었다면 전액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토지 부동산에 투자하여 소득을 얻었더라도 재물은 원래의 주인이신 하나님의 것입니다. 이렇게 근원적인 의미에서 때에 인간이 소유한 모든 재물의 원주인은 하나님이십니다.

십일조를 드리는 것은 우리의 수입과 재물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한다는 고백이요 간증입니다. 우리가 그러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의 재물과 재산을 하나님의 소유인 것처럼 보호하여 주시고 관리하여 주십니다. 에덴동산 중앙에 있던 선악과가 천지만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상기시켜 주는 장치였듯이, 모든 헌금제도의 중심이라고 있는 십일조는 사람이 소유한 모든 재물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생각나게 주는 제도이기도 합니다.

신실한 신앙심을 가지고 교회를 다니고 있는 청년이 교인이 아닌 아버지와 과수원을 경영하고 있었습니다. 8월초가 되면 까치들이 와서 익은 사과를 쪼아서 흠집을 냅니다. 청년의 과수원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청년은 까치를 쫓는 일이 아무런 효과가 없자 하나님께 기도하고 십일조를 드리기로 했습니다.

어느 사과를 장에 내다 다음, 아버지 몰래 하루 판매액 중에 부대비용을 제하지 않고 십일조를 떼어 놓았습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날부터 아버지가 관리를 아들에게 맡기는 것이었습니다. 청년은 계속해서 십일조 혹은 십이조를 정직하게 드렸고, 이후로는 까치의 피해가 없어졌습니다. 사과의 품질이 좋으니까, 경매장에서 항상 가장 높은 가격을 받았고 상인들은 청년의 물건은 보지도 않고 돈을 주고 구매해 갔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으로 당시 최고의 생산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의 삶은 하나님이 책임을 지십니다.

십일조를 구별할 때에는 수입 중에서 십분의 일을 떼어 낸다고 생각하지 말고, 전체가 하나님의 것인데, 나에게 10분의 9 쓰라고 주셨으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받아서 쓰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런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살아가는 있어서 필요한 모든 것을 넉넉하고 충분히 제공해 주실 것입니다.

 

23. 전도

저희가 날마다 성전에 있든지 집에 있든지 예수는 그리스도라 가르치기와 전도하기를 쉬지 아니하니라”( 5:42)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지 명령을 하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들아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 11:28).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 28:19). 첫째는오라 것이고 둘째는가라 하십니다. 와서 구원을 받은 후에 가서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복음을 통해서 구원을 받은 사람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하는 것은 생명을 가진 사람이 다른 생명을 탄생시키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새로운 생명을 탄생시킬 없는 생명은 죽은 생명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복음을 전하는 것은 선택 과목이 아니라 필수 과목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전도하기를 두려워하고 어려워합니다. 전도에 대한 새로운 개념 정립이 필요합니다. 날마다 선교 정신을 가지고 살아가는 생활 훈련이 필요합니다. 우선 전도를 해야 하는 근본적인 목적을 분명히 인식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의 도움을 빌리지 않고도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 전하는 일을 하실 있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복음 전도를 먼저 복음을 받은 성도들에게 맡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도를 하려면 다른 사람을 존중하고 섬기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자신의 소유를 희생하여 베풀고 나누어주는 이타적인 사랑이 있어야 합니다. 그렇게 해야 전도할 기회가 오고 전도할 대상이 나타납니다.

전도의 사명을 가지고 그런 마음으로 살다 보면 어떤 변화가 일어날까요? 교만심이 없어집니다. 이기심이 서서히 사라집니다. 자아는 없어지고 안에 주님이 거하시게 됩니다. 육으로 살지 아니하고 성령의 인도를 따라 살게 됩니다. 바로 이것이 품성의 변화이고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자녀들에게 원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선교 사명을 부여하신 중요한 이유 중의 하나는 우리의 품성을 그리스도의 품성으로 계발시키기 위한 것입니다. 땅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것은,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준비된 종들을 통하여 신속히 끝내실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선교를 해야 하는 중요한 이유는 품성의 변화입니다.

그리고 전도할 때에는 당장 눈에 보이는 어떤 결과에 치중하지 말고 뿌리리는 마음으로 복음을 나누어 주면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주로 뿌리는 전도를 하셨고, 대량 추수는 성령을 받은 제자들에 의해 이루어졌습니다. 오늘날은 뿌리는 전도의 시기라고 있습니다. 대량 추수는 늦은 성령이 소낙비처럼 부어질 일어나게 됩니다.

전도를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내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 중에 하나님을 알지 못하거나 진리를 깨닫지 못한 사람들과 교제하면서 계속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가운데, 그들에게 말씀의 씨를 전해주면 됩니다. 복음과 진리가 담긴 책자도 보내고 DVD 보내고 각종 매체를 통해서 복음을 나누면 됩니다. 그러한 정신으로 복음을 위하여 끊임없이 일하는 사람들에게 성령이 임하실 것이고 영혼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것입니다. 신앙 생활의 꽃은 복음을 전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126:5).

 

24. 시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시련하려고 오는 불시험을 이상한 당하는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벧전 4:12,13).

신앙 생활을 하다 보면시험을 받는다’ ‘시험을 당한다 말을 종종 하게 됩니다. 그런데 시험이라는 것은, 신앙 생활을 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특별한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는 신앙 생활을 하지 않았어도 얼마든지 당할 있는 일상적인 일들입니다. 예를 들어서 불교에 다니던 사람이 기독교로 개종한 다음 주일이 지나 교통사고가 나면, 불교측에서는 종교를 바꾸었기 때문에 벌을 받았다고 말하고, 기독교인들은 시험을 받는 것이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교통 사고는 모든 사람, 누구에게나 일어날 있는 일입니다.

일반적으로 기독교인들이 말하는시험이라는 것은, 신앙생활을 하면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갈 때에 그분의 말씀에 순종하지 못하게 하는 여러 가지 환난이나 시련들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고난들과 시련들 때문에 신앙생활이 나타해지거나 중단되는 경우도 있고, 그것들을 견디면 더욱 건강하고 충실한 신앙인으로 성숙될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앎이로다”( 5:3,4). “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만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이는 너희 믿음의 시련이 인내를 만들어 내는 너희가 앎이라”( 1:2,3).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의도적으로 시험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1:13). 우리가 인생을 살아가면서 당면하게 되는 대부분의 시련과 환난들은 사탄이 가져다주는 것이든지 아니면 스스로 자초하여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종종 사단이 우리에게 가져다주는 시련들을 당하도록 허락하시는데, 목적은 우리는 단련시키기 위해서 그렇게 하십니다.

사람이 감당할 시험 밖에는 너희에게 당한 것이 없나니 오직 하나님은 미쁘사 너희가 감당치 못할 시험 당함을 허락지 아니하시고 시험 당할 즈음에 또한 피할 길을 내사 너희로 능히 감당하게 하시느니라”(고전 10:13).

인간을 미혹하는 일에 뛰어난 지혜를 가진 사탄이 주로 하는 일은 사람이 하나님을 섬기지 못하게 하거나, 하나님을 바르게 믿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미 올바른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하나님을 섬기는 믿음에서 떠나도 합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게 하여 저를 대적하라”(벧전 5:8,9).

그리스도인은 결코 시험을 자초해서는 됩니다. 예수님께서 가르쳐주신 대로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 26:41)하면서 시험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시험에 들었을 때에는, 모든 시험을 말씀과 성령의 능력으로 이기신 예수님을 의지하여 승리하는 것입니다. 목숨을 걸고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사람들은 사탄의 시험에 쉽게 들지 않으며, 시험이 있어도 쉽게 승리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