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성소로 나아가는 사람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가축 중에서 소나 양으로 예물을 드릴지니라.”( 1:2). 여호와께 나아가고자 예물을 준비한 사람에게 성소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어느 사람이든지 그가 가고자 한다면 언제든지 있습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간다는 것

제물을 가지고 성소에 나아가고자 하는 사람이 가장 먼저 확인할 일은 자신의 허물과 죄에 대한 깨달음입니다.

무엇이든지 그가 깨닫지 못하다가 그것을 깨닫게 되었을 때에는 하나에 그에게 허물이 있을 것이니.”( 5:4).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되는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입니다. 따라서 개인과 사회가 내리는 죄에 대한 정의는 매우 중요합니다. 출애굽기와 레위기의 다양한 제사들, 예전과 규례들은 개인적이고도 사회적인 죄와 허물들을 정의하고 있으며, 하나님과 더불어 살아가야 하는 사람들의 다양한 사회적, 종교적, 공동체적 규범과 근거들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누군가가 성소로 향하여 가고 있다면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 1:2) 가는 것이며, “여호와 앞에 기쁘게 받으시도록”( 1:3) 하기 위함입니다. 요구는 모든 제사에서 동일합니다. 레위기 전반부의 제사제도를 설명하는 중에 성소를 향하는 자는여호와께”(lYahweh) 향하며, “여호와 ”(lip̄nê Yahweh) 있다는 관용어를 반복하여 사용하고 있습니다. 용어는 이스라엘 민족들의 종교적, 생활적 교훈으로서 그들에게 매우 중요한 영향을 끼쳤으며우리는 여호와 앞에 서있다.” 민족정신을 고취시킴과 동시에 종교적 모토가 되었습니다. 종교개혁자들은 사상을코람 데오’(Coram Deo, “하나님 앞에”)라고 하여 종교개혁 구호로 사용하였습니다.

 

흠 없는 제물을 여호와께 드림

너희 중에 누구든지 여호와께 예물을 드리려거든.”( 1:2).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누구든지 예물로서 제물을 준비합니다. 희생제물로 드려지는 동물은 점도 없는 어린 양이어야 합니다. 구약학자 롤랑 드보(Roland de Vaux) 제물은 무엇인지, 제물은 제사 드리는 자와 어떠한 유대관계가 있는지, 그리고 제물에 흠이 없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보다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어린 제물의 순수하고 맑은 눈빛과 작고도 귀여운 몸짓은 사람의 마음을 빼앗고, 온통 그에게 집중하게 만듭니다. 태어나던 날부터 마음에 담겨진 어린 양은 나의 사랑을 먹고 자란 생명이요, 모든 관심과 기대를 품고 자란 나의 분신이며, 나의 하루를 온통 즐겁게 하는 축복입니다. 나의 제물은 그토록 소중히 여기며, 가슴으로 키우던 것이어야 합니다. 준비도 없이 지내다가, 성전 밖에서 돈으로 것을 제물이라 여기며 성전 뜰로 끌고 가기에는 우리 자신이 부끄럽습니다. 그것은 대가를 지불하고 구입한 물건에 불과합니다. 진정 우리가 아끼고 사랑하던 양이 나를 대신하여 제단 위에서 타는 제물이 , 제물은 나를 바로 세우는 깃발이 됩니다.(롤랑 드보, 구약시대의 종교풍속, 이양구 (도서출판 나단, 1993, 72-90, 136-155))

 

제물의 머리에 안수함

제물을 성소로 데리고 , 뒷발을 뻗치며 머뭇거리거나 발버둥 치는 양은 끌어안고 들어가야 합니다. 때에 나의 마음은 매우 아파집니다. 성소 뜰에 들어온 제물에게 손을 얹고 안수하게 됩니다.

그는 번제물의 머리에 안수할지니 그를 위하여 기쁘게 받으심이 되어 그를 위하여 속죄가 것이라.”( 1:4).

수송아지를 회막 여호와 앞으로 끌어다가 수송아지의 머리에 안수하고.”( 4:4).

제물의 머리 위에 손을 얹고, 자신의 죄와 허물을 고백하며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제물의 희생을 기억합니다. 안수한다는 것에는 장엄한 의미가 있습니다. “지금 자리에서 제물로 바치는 짐승은 지금 자리에서 제물을바치는 사람 드리는 것이며, 제사장은 짐승을 제단에 바칠 그의 이름으로바칠 것이고, 제물이 드려지므로 발생하는 효과는 모두다시 그에게 돌아올 입니다. 안수의 초점은 제물에 있지 않고, 제물 바치는 사람에게 있습니다. 이제 어린 양이 나를 위한 제물이 됩니다. 눈을 마주쳐가며 서로의 필요를 채우던 나와 양이, 이제는 죽이는 자와 제물이 되어 서로를 바라봅니다.

그리하여 안수하는 잠시의 시간 속에 흐느낌이 있고, 떨림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제물을 잡는 곳으로 제물을 끌어다가 손으로 직접 죽여야 합니다. 제물은 자신의 죄를 인식하는 양심이나 영혼이 없기 때문에 자기 죄가 없습니다. 단지 사랑하던 주인의 때문에 죽어야만 합니다. 그것은 인간을 위한 한없는 희생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생 제물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제물을 드리는 사람의 마음입니다. 주님께서는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죄인에게너희는 돌이켜 회개하고 모든 죄에서 떠날지어다 그리한즉 그것이 너희에게 죄악의 걸림돌이 되지 아니하리라.”( 18:30) 말씀하십니다.

 

[2]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봉사와 행사

구약성경 이사야서에 보면 베니게 족속이 다른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장면이 나옵니다. “오직 여호와를 버리며 나의 성산을 잊고 갓에게 상을 베풀며 므니에게 섞은 술을 가득히 붓는 너희여”( 65:11).

베니게 족속은 행운의 신이라고 알려진 (Gad)신에게 (table, 식탁) 베풀었습니다. 대부분의 종교에서는 제단과 제사를신을 위하여 () 푸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외경에 포함되어 있는 다니엘서(개역성경 다니엘서와는 다른 책임) 14장에 보면, 고레스 왕이 우상 (Bel)에게 매일 밀가루와 양과 포도주를 제물로 드립니다. 제물들을 제사장들이 몰래 먹고 나서 우상이 제물을 먹었다고 거짓말을 합니다.

다니엘이 지혜로 그것을 밝혀내어 이렇게 외칩니다. “임금님, 속지 마십시오. 우상의 속은 진흙이고 겉은 청동으로서 무엇을 먹거나 마신 적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제사장들은 왕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성경에 보면여호와의 식탁이라는 표현이 ( 1:7, 12) 나오는데, 때의 식탁은 진설병 상을 의미할 뿐이지, 제단을 신의 (, table)으로 연관시키는 사상이 전혀 없습니다. 제사는 사람이 신을 대접하는 것이 아닙니다.

 

제물, 향기로운 냄새

제사장은 그것을 제단 위에서 불사를지니 이는 화제로 드리는 식물이요 향기로운 냄새라.”( 3:16; 4:31 참조). “! 향기롭다.” 제물을 드림으로 죄인의 죄가 사해진다는 것은 복된 소식이며, 제물 의식은 또한 하나님께 향기가 됩니다. 제물은 재산의 일부이며, 생명의 일부이기 때문에 제물을 바치는 것은 나를 드리는 행위입니다.

나와 백성이 무엇이기에 이처럼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힘이 있었나이까 모든 것이 주께로 말미암았사오니 우리가 주의 손에서 받은 것으로 주께 드렸을 뿐이니이다.”(대상 29:14).

제물들의 피는 땅에 쏟아 붓고 고기는 불에 태워 완전히 소멸하므로 이상 사용할 없게 만듭니다. 이러한 행위는 바쳤던 제물을 취소할 없는 예물로 만드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제물은 이상 세속적인 것으로 사용할 없을 아니라, 소유권도 주장할 없이 완전히 하나님께 드려지는 것임을 선언합니다. 제물을 태우는 다른 이유는 외적이고 형식적인 제사의 차원을 넘어, 보이지 않는 영역으로 전적 전환하여 하나님께 완전히 넘겨드리는, 되돌릴 없이 만들기 위함입니다. 이로 인하여 바쳐진 제물의 재화적 가치는 아무런 자랑거리가 되지 못합니다.

드려진 제물이 향기가 된다는 선언은 그것을 통하여 하나님이 영화를 받으시기 때문입니다.

내가 가령 주려도 네게 이르지 아니할 것은 세계와 거기에 충만한 것이 것임이로다. 내가 수소의 고기를 먹으며 염소의 피를 마시겠느냐. 감사로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며 지존하신 이에게 서원을 갚으며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50:12-15).

죄인이 하나님께로 돌아오고 하나님께서 그를 받으시는 일만큼 영화로운 일은 없습니다.

 

제사장, 성결한 중보자

어떤 사람이 제물을 끌고 성소로 오면, 제물에 안수하고 그것을 죽이고 나면 자신의 일은 끝납니다. 이제부터는 제사장이 절차를 따라 죄인의 자백과 헌신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제사장의 임무는 제물의 피를 번제단에 뿌리는 순간부터 시작됩니다. 그는 피를 뿌린 다음 제물의 가죽을 벗기고 조각을 내며, 그것을 항상 타고 있는 번제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가죽을 제외하고 미리 씻어놓은 머리와 내장, 발까지 모두 제단 위에 올려놓습니다. 가난한 자들이 드리는 새의 번제일 경우 머리에 손을 얹는 일도, 도살하는 일도 없이, 제사장이 제단 위에서 직접 제물을 잡아 바칩니다.

사람과 제물 그리고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로서 제사장은 거룩해야 합니다. 여호와께서거룩”( 11:44)하시고, “ 회막과 제단”( 29:44) 거룩하고, 제사장들은 거룩한 곳에서 ”( 28:43)겨야 했기 때문에 제사장은 거룩해야 했던 것입니다.

또한제단에 접촉하는 모든 것이 거룩”( 29:37)해야 합니다. 제사장을 위하여거룩한 옷을 지어 영화롭고 아름답게 할지니.”( 28:2), 이는그를 거룩하게 하여 내게 제사장 직분을 행하게”( 28:3) 함이라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그들을 위하여순금으로 거룩한 패를 만들고 도장을 새김 같이 위에여호와께 성결이라 ”( 39:30)겼습니다.

이스라엘의 12 지파 중에 레위 지파가 성소 봉사를 위하여 구별되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서 머무는 기간이 길어지자 이스라엘 백성들이 밑에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는 부도덕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산에서 내려와 사건을 목도한 모세가 진노하여 외쳤습니다.

[ 32:26] “이에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

이스라엘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배도한 일을 하였을 레위 자손들은 일에 가담하지 않았고 하나님 편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아론도 레위 지파에 속해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레위 자손이 성소를 위하여 봉사하는 거룩한 직무를 맡게 되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과 화목되는 장소 : 속죄소

성소의 매일의 봉사와 연례 봉사 최고의 경험은 속죄입니다.

제사장은 여호와 앞에서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는 무슨 허물이든지 사함을 받으리라.”( 6:7).

선언은 복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모든 백성들은 하나님과 화목하기를 진정으로 원합니다. 화목을 위한 속죄는 제물로부터 얻은 피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사람을 위한 매일의 성소 봉사에서는 제단 사방에 피가 뿌려지고, 제단의 뿔들에 피가 발라졌습니다. 그러나 1년에 이루어지는 대속죄일의 봉사에서는 백성들의 죄를 씻기 위하여 제물을 바치고 그의 피를 지성소와 성소 사이에 쳐진 휘장 앞에 일곱 뿌렸습니다.

년에 피를 뿌리는 곳인 속죄소는 매우 특별한 곳입니다.

거기서 내가 너와 만나고 속죄소 증거궤 위에 있는 그룹 사이에서 내가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네게 명령할 모든 일을 네게 이르리라.”( 25:22).

백성을 위한 속죄제 염소를 잡아 피로 행하여 속죄소 위와 속죄소 앞에 뿌릴지니.”( 16:15).

속죄소 위에도 피가 뿌려집니다. 살아있는 모든 것들과 하나님에게 피는 매우 특별합니다. “모든 생물은 피가 생명과 일체”( 17:14)이기 때문입니다. 피를 통하여 하나님과 백성은 속죄소에서 만나고, 화목하게 되며 하나가 됩니다.

 

[3] 성소의 모든 기구들은 구원의 원리를 가르침

어떤 사람이 제물을 끌고 성소에 들어가 사함을 받고 나오기까지는 단순한 걸음, 그리고 십분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그러나 그가 머물던 곳과 바라보던 , 그리고 휘장 성소와 지성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구속의 전체 과정이 어떻게 일어나는지를 보여주는 대단원의 무대와 같은 곳입니다. 그러므로 성막은 구속의 교과서라고 있습니다.

 

세마포 성막

외부에서 바라보았을 성막은 세마포로 가려져 있고, 해달의 거친 가죽으로 덮여 있으며, 성막 터는 뜰과 성소, 그리고 지성소의 공간으로 나누어져 있었습니다.

성막 대지와 바깥벽, 그리고 건물 자체는 보기에 흠모할만한 것이 전혀 없는 단순한 구조물이었습니다. 성막은 진영 가운데 있어 사방 어디에서든지 쉽게 있었습니다. 성막은 못이나 나사, 아교 같은 결합체를 사용하지 않고 오직 말뚝과 줄로 비와 바람, 더위와 추위를 견디며 광야를 이동하였습니다. 이처럼 건물과 말뚝, 받침 그리고 밧줄들의견고함 장차 세상에 오실 분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견고함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진영 가운데의 성소는 백성들의 삶과 노정(路程) 가장 안전한 처소였습니다.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 …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를 너의 거처로 삼았으므로”( 91:1-2, 7, 9).

성막을 세운 날에 구름이 성막 증거의 성막을 덮었고 저녁이 되면 성막 위에 모양 같은 것이 나타나서 아침까지 이르렀”( 9:15),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13:22).

 

뜰에 위치한 기물들

번제단제물을 가지고 성소에 들어가면 안에서 제일 먼저조각목으로 길이가 다섯 규빗, 너비가 다섯 규빗의 제단”( 27:1) 만납니다. 제단은 제물을 잡아 태우는 곳이기에불은 끊임이 없이 제단 위에 피워 꺼지지 않게”( 6:13) 하여야 했고, 제물의 피는제단 뿔들에 바르고 전부를 제단 밑에 았습니다( 29:12). 이렇게 성소 뜰에서는 제물을 잡아 제단에서 태우는 번제(korban olah) 항상 진행되었는데, 이것이 사함을 받는 단계이며, 속죄소로 향하는 걸음이었습니다. 번제단은 제물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피로써 속죄하신 십자가를 표상합니다.

물두멍뜰의 번째 성물은 번제단과 회막문 사이에 있는 놋으로 만든 물두멍입니다( 30:18). 제사장들은회막에 들어갈 때에 물로 씻어 죽기를 면할 것이요 제단에 가까이 가서여호와 앞에 화제를 사를 때에도 그리”( 30:20) 하였습니다. 다른 기구들과 달리 물두멍은회막 문에서 수종드는 여인들의 거울”( 38:8)들을 모아 쳐서 만들었습니다. 물두멍은 모든 불결한 것을 비춰주는 거울 같기도 하고, 모든 더러운 것을 제거하기 위하여 씻는 곳이기도 합니다. 성소의 모든 기구들은 정해진 규격에 따라 만들어졌지만, 물두멍은 정해진 크기가 제시되지 않았습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성결케 하기 위하여 필요한 물은  무제한 제공되어야만 하였고, 제사장들이 가장 주목하면서 관심을 가질 부분도 청결이었기 때문입니다.

제물 잡는 뜰의 마지막 부분은 제물을 잡는 곳입니다. 번제물을 잡는 곳은 번제단의 북쪽과 남쪽에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모든 제물들은 이곳에서 잡았고, 제물이 흘린 피의 일정량을 그릇에 담습니다. 특히 백성들을 위하여 드려진 수송아지가 흘린 피는 성소 휘장에 일곱 뿌려지고, 성소 향단 뿔에 바르며, 나머지 피는 번제단 밑에 쏟습니다. 제물 잡는 곳은 제물의 죽음과 제물의 해체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곳입니다. 이곳은 사람의 죄와 허물을 대신하여 제물이 죽는 , 피를 흘리는 곳입니다. 죽음이 없다면 누구도 죄를 용서받을 없으며, 하나님께 이르는 길에 없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바로 그곳에 있었던 것입니다.

성소의 , 마당에 설치되어 있는제물을 잡는 ’, ‘번제단’, ‘물두멍 통해서 죄인은  구속의 단계를 경험하게 됩니다. 기물의 의미를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마당에는 피와 불과 물이 있었습니다. 제물 잡는 곳에는 제물의 희생을 통해서 피가 흘려집니다. “피흘림이 없은즉 사함이 ”( 9:22) 때문에 죄인이 죄를 용서받으려면 피가 흘려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물이제단 위의 ”( 6:12) 타오를 , 그것은 하나님께 향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의 완전하신 십자가 희생을 통해 죄가 사라지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인을 대신하여 하나님 앞에 서야 하는 제사장은 항상 정결해야 하기 때문에 물두멍의 물로 씻어야 합니다. 그래서 물두멍은 바다와 같이 크고 많은 물을 담아두었습니다. “번제에 속한 물건을 거기서 씻게 하였으며 바다는 제사장들이 씻기 위한 것이더라.”(대하 4:6).

이와 같은 절차를 통해서 뜰에서는 죄인 구원의 단계가 이루어집니다. 제물을 잡는 곳에서 죄인이 제물에게 안수함으로 죄인의 죄가 제물에게 전가됩니다. 아무런 죄가 없는 제물이 인간의 죄를 뒤집어 쓰고 죄의 삯인 사망( 6:23) 당합니다. 이것이 바로, 아무런 죄가 없으신 예수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시게 희생을 예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죄의 흔적이 남아있으면 되기 때문에 죄를 덮어쓴 제물은 번제단에서 불로 사르어집니다.

이렇게 해서 죄를 해결한 사람은 법적으로 죄가 없기 때문에의인이라고 부르며 그것을 신학적으로는칭의(稱義, Justification)’라고 합니다. 스스로 의롭지는 않지만, 누군가가 대신 값을 치루어 주었기 때문에 법적으로는 없는 의인이 되었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과정에 일어나는 하나의 중요한 사실을물두멍 관련하여 의미를 부여한다면 그것이 바로 침례에 해당하는 것입니다.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벧전 3:21).

뜰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죄를 해결하는 차원에서 생각해보면, 죄인이죄의 본질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첫째 칸, 성소의 의미

성막 마당에서 성소 건물로 들어오면 안에 개의 칸이 있는데, 첫째 칸을성소 하고 둘째 칸을지성소라고 합니다. 성소 안에 들어서면 남쪽에는 일곱 촛대가 달린 등대가 있고, 북쪽에는 떡이 놓여져 있는 진설병상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성소와 성소를 구분하는 휘장 앞에 분향단이 있습니다.

떡상성소에 들어가서 제일 먼저 대하는 것은 첫째 오른쪽에 놓여 있는 진설병 ()입니다. 위에 차려놓는 떡은고운 가루를 가져다가 열두 개를 굽되 덩이를 십분의 에바로 하여 여호와 순결한 위에 줄로 줄에 여섯씩 진설”( 24:5, 6)하였습니다. 떡은 안식일마다 새로운 것으로 교체되었고, 먼저 진설되었던 떡은 일주일 동안 포도즙과 함께 제사장이 뜰에서 먹을 있었습니다. 떡은나는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 6:35) 예수님을 기억나게 합니다.

또한 떡은사람이 떡으로만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것이라”( 4:4) 하신 예수님의 말씀과도 관련이 있습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말씀을 마음속 깊이 새겨서 묵상하며 순종함으로 영적인 생명을 유지할 있습니다.

분향단 지성소를 가리고 있는 휘장 앞에 설치된 분향단에는 거룩한 불과 준비된 향이 항상 놓여 있었으며, 대제사장은 속죄를 위하여 그것의 뿔에 피를 묻혔습니다. 떡이항상있었듯이, “아론이 아침마다 위에 향기로운 향을 사르되 등불을 손질할 때에 사를지며 저녁 등불을 때에 사를지니 향은 너희가 대대로 여호와 앞에 끊지 못할지며”( 30:7, 8), 향단도끊지 못할”(perpetual, 끊임없이 계속되는) 것이었습니다. 향연(香煙) 백성들이 하나님께 날마다 드리는 기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향연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 8:4). 매일 조석으로 예배드리는 것이 바로향을 사르되” “아침마다” “저녁 하는 관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우리의 기도가 분향단의 향연처럼 하나님께 올라가는 것은 우리 삶의 최상의 경험이며, 생애 절정의 순간입니다.

등대마지막 성구(聖具) 등대입니다. 등대는 줄기 하나에 양편에 가지씩, 그리고 중앙에 가지, 모두 일곱 가지입니다. 등대에 대한 형상은 놀랍도록 상세하게 기록되었는데( 25:31-36), 이유는 하나님의 구속의 의미와 계시가 손상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입니다.

등대는 빛을 위하여 존재하며, 빛은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 8:12)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또한 요한이일곱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 1:12, 13)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일곱 촛대는일곱 교회”( 1:20) 말하고, 그것은 요한의 시대에 있었던 지역 교회를 말하기도 하지만, 역사적으로 이어갈 하나님의 교회를 말하기도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5:14)라는 말씀에서 우리 역시 예수님을 따르는 작은 예수로서 빛으로 살아야 함을 기억하게 합니다. 성소의 기구들의 의미를 간략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성소의 기구들이 주는 중요한 교훈들

첫째 성소에 위치한 기구들은 뜰에서 그리스도의 속죄하시는 은혜를 통하여 구원을 받은 성도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주는 귀한 교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떡상에항상”( 4:7) 떡이 놓여 있어야 하는 것처럼, 구원받은 성도들은 항상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삼아, 말씀에 즐겨 순종하는 것을 기쁨으로 여기며 살아야 합니다. 항상 진리의 말씀을 찾고, 발견한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므로 변화되는 모습을 가지고 진리는 증거하며 사는 것이 구원받은 그리스도인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깨닫고 순종하는 것은 인간의 지혜와 의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간절한 심령으로 기도하여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통해서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래서 성도들은영구히”( 24:2) 퍼져나가는 향단의 향연이 끊임없이 피어오르고 있는 것처럼, 날마다 기도의 향연을 하나님께 올리므로 우리를 구원하신 하나님과 교제하며 교통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 같은 것이므로, 기도하는 생활이 이어지지 않으면 뜰에서 받은 구원을 유지할 없게 됩니다.

그리고 촛대의 속에 흐르고 있는 기름은 성령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말씀과 기도로 충만한 성도의 삶을 이끌어가는 분은 성령이십니다. 성령의 역사하심과 도우심이 없이 우리 자신이 가진 성경 지식과 기도만으로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성령께서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 8:26) 하심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올바로 깨닫고 뜻을 따라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세상의 등대가 되고 빛이 되어 어두움 가운데 사는 사람들을 되시는 주님께로 인도할 있게 됩니다.

이러한 그리스도인의 변화를 신학적 용어로성화(Santification)’라고 합니다. 구원받은 성도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자라나고 성숙해지는 것입니다. “오직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저를 아는 지식에서 자라가라”(벧후 3:18) 것이 바로 그런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는 과정을경건의 연습’(딤전 4:7)이라고도 합니다. 이러한 연습을 통해서 성령의 능력을 의지하여 그분의 도우심으로 우리의 완전한 모델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온전함을 향하여 조금씩이라도 성장하고 있다면 그것이 바로 뜰에서 받은 구원이 유지되고 자라나고 있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구원의 번째 단계로 사탄의 시험을 통해서 다가오는죄의 권세로부터 자유하게 되는 경험이라고 있습니다.

 

둘째 칸, 지성소

이미 언급한대로 성소는 하나님께서 사람을만나기위하여거할처소로 준비된 곳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의 만남이 이루어지는 곳이 성소의 둘째 칸인지성소입니다. 지성소로 들어가려면 성소와 지성소를 나누어놓은 휘장을 통과해야 합니다. 휘장은 바로 말씀을 연상하게 줍니다.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 59:2).

그러나 희생 제사의 절차를 통해서 휘장에 뿌려진 피들이 죄를 정결케 하듯이,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을 통해서 우리의 죄가 용서되고 하나님을 만날 있는 길이 열리게 됩니다. 바로 주님의 피로 정결케 자들이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4:16) 있게 것입니다.

나아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는 순간 성소의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 15:38) 것은 예수께서 이루어 놓으신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 10:20)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언약궤(법궤) – 지성소 가운데사면을 금으로 언약궤가 있고 안에 만나를 담은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 9:4) 있습니다. 성소와 관련되어 신학계에서 논의되고 연구되고 있는 가장 중요한 주제는 역시 법궤와 십계명에 대한 것입니다. 안에는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만나 오멜을 담은 항아리가 보관되어 있었으나 오랜 세월이 지난 솔로몬 당시에는 십계명이 기록된 돌판만 남아있었던 같습니다.

안에는 돌판 외에 아무것도 없으니 이것은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여호와께서 저희와 언약을 맺으실 때에 모세가 호렙에서 안에 넣은 것이더라.”(왕상 8:9).

지성소의 중앙에 위치한 법궤는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이며, 그분이 현현(顯現)하시는 현장이었습니다.

속죄소 법궤 뚜껑으로 사용된 순금판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나는속죄소”( 30:6, KJV “the mercy seat,” 시은좌, 施恩左) 불렀고, “금으로 그룹 둘을 속죄소 끝에 쳐서 만들되 그룹은 끝에, 그룹은 끝에 속죄소 끝에 속죄소와 덩이로 연결할지며 그룹들은 날개를 높이 펴서 날개로 속죄소를 덮으며 얼굴을 서로 대하여 속죄소를 향하게”( 25:18-20) 하였습니다. 바벨론에 의해 예루살렘이 파괴된 이후, “왕도 없고 지도자도 없고 제사도 없고 주상도 없고 에봇도 없고 드라빔도 없이 지내”( 3:4) 모습 속에 언약궤의 흔적은 찾아볼 없게 되었습니다.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보좌와 같은 시은좌는 참으로 오묘하고 인간이 이해할 없는 신비한 의미가 포함되어 있었던 같습니다. 성경에는 하나님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기록들이 나옵니다(삼하 6:2; 99:1). 특히 시편 80:1절에는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자여 빛을 비취소서”( 80:1)라고 되어 있어서, 그룹 사이에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영광의 빛이 있었음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빛은 매우 찬란하여 인간의 눈으로 바라볼 없었을 것인데, 유대인들과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는 하나님의 가시적(可視的) 영광에 대하여셰키나라는 용어를 사용하였습니다.

셰키나라는 말은 창세기 3:24절의에덴동산 동편에 그룹들과 두루도는 화염검을 두어라는 문장에서두어 히브리어인샤칸’(거주하다, 머물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영어로도셰카이너’(shekhinah)라는 말은 신학적인 용어로하나님의 나타나심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법궤의 뚜껑, 속죄소 위에 하나님께서 임재하고 계셨으며 존재의 기초에 하나님의 (십계명)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의와 공평이 보좌의 기초”( 97:2)라고 하였고, ’(체데크, 기준, )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선포하신 십계명입니다. “하늘이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영광을 보았도다”( 97:6) 말씀이 사실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와 같은 원리로 하나님의 (십계명) 그분의 존재와 직결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십계명이 폐했다는 말은 결코 성립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증거판 법궤 안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증거판입니다. “여호와께서 시내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치신 때에 증거판 둘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31:18), “내가 네게 증거판을 속에 둘지며.”( 25:16), “ 판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이요 글자는 하나님이 쓰셔서 판에 새기신 것이더라.”( 32:16), “ 증거판이 그의 손에 있고 판의 양면 이쪽 저쪽에 글자가 있으니.”( 32:15). 십계명이 양면에 쓰인 까닭은 하나님의 법은 정확하고 유효한 , 충만하고 완전한 것이기에 어떠한 것도 첨가될 없음을 나타냅니다.

만나 항아리만나를 담은 항아리가 안에 들어있습니다.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속에 만나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사십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가나안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16:33-35). 광야에서의 삶과 하나님의 놀라우신 인도하심을 기념하고 기억하기 위하여 만나 항아리가 법궤 안에 보관되었고, 기적적으로 그것이 보존되었던 것입니다.

아론의 싹난 지팡이 지팡이는 고라와 다단 그리고 아비람이 모세와 아론에 대하여 반역을 일으켰을 때에 생긴 증거물입니다. 사건은 그들이 제사장이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졌기 때문에 발생했습니다.( 16:10). 일과 관련하여 하나님께 반역한고라의 일로 죽은 외에 염병에 죽은 자가 사천칠백 ”( 16:49)이나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재앙이 지난 , 지파를 대표하는지팡이를 회막 안에서증거궤 앞에 ”( 17:4)었고, “레위 집을 위하여 아론의 지팡이에 움이 돋고 순이 나고 꽃이 피어서 살구 열매가 열렸”( 17:8)습니다. 그리하여아론의 지팡이는 증거궤 앞으로 도로 가져다가 거기 간직하여 반역한 자에 대한 표징이 되게 하여 그들로 … (하나님께) 대한 원망을 그치고 죽지 않게”( 17:10)하는 증거가 되었습니다.

 

지성소의 속죄소가 주는 중요한 교훈들

속죄소(贖罪所) 인류가 범한 죄를 ()하는 곳이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입니다. 대부분의 성전 기물들이 나무에 금을 도금하였으나, 속죄소와 그룹(cherubim, 케루빔)만큼은 순금을( 25:17, 18) 쳐서 만들었습니다. 나무와 금의 조합은 인성과 신성의 연합을 보여주며 예수님에 대한 표상들에 적용되지만, 속죄소와 그룹들은 온전한 신성에 속한 것들이기 때문에 순전히 순금으로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속죄소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공간이므로, 이곳에 들어오는 일은 오직 대속죄일 날에만 가능했고, 대제사장만 출입할 있었습니다. 이곳은주께서 계신 이며주의 영광이 머무는 ”( 26:8)입니다.

그러나 언젠가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때가 오면 사람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집에서 그분과 함께 머물러 살게 것입니다. 신학적으로는 단계를영화(榮化)’ 혹은영광화’(Glorification)라고 합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사람을 대면하여 함께 살게 상태를 매우 감동적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지나갔음이러라.”( 21:3,4).

사도 바울도 일찍이 사람이 하나님을 대면하여 것에 대하여 예언하였습니다.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같이 희미하나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고전 13:12).

이것은 구원의 마지막 단계로 모든 악의 세력이 멸망당한 후에 구원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이상 죄의 시험에 빠질 없는죄의 존재로부터 영원히 자유하게 되는 것입니다.

속죄소와 그룹들이 순금으로 만들어진 것은 다른 의미도 있습니다. 순금을 쳐서 만들었다는 것은, 죄로 인하여 하늘이 겪은 고통과 상처를 나타냅니다. 십자가는 처음부터 죄가 하나님의 마음에 가져온 고통에 대한 계시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룹들이 겸손히 머리를 숙이고 바라보는 속죄소는자비롭고 은혜롭고 노하기를 더디하고 인자와 진실이 많은인자를 천대까지 베풀며 악과 과실과 죄를 용서”( 34:7, 8)하시는 하나님의 보좌임이 분명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99:1), “그룹 사이에 좌정하신 이여 빛을 비추소서.”( 80:1) 하며 찬양할 것입니다.

성소의 뜰과 성소와 지성소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죄인이 구원받는 과정을 도표로 요약하여 설명하면 다음과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