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7:21).

말씀을 보면, 하나님을 믿는다고 무조건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는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이 있고 방법이 있는 것입니다. 경기로 말하자면 신앙에도 (Rule) 있고 규칙이 있다는 말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많은 이야기나 사건들 중에 하나님을 믿긴 믿었으나 하나님이 정해 놓으신 길을 따라 믿지 않고 인간의 생각을 섞어서 다른 방법이나 방향으로 행동했다가 낭패를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가지 사례를 들어 보겠습니다.

 

[1] 가인의 다른 제사

창세기 3장에는 인간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타락한 이야기가 나오고, 바로 이어지는 4장에는 아담의 아들 가인과 아벨이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런데 이야기는 비극적인 이야기이도 합니다. 제사 문제에 연루되어 가인이 동생 아벨을 죽이므로 최초의 살인자가 것입니다.

 

제사와 제물의 유래

창세기에는 제사와 제물의 유래가 자세히 언급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가지 사건을 가지고 유추할 있습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이후 갑자기 두려움, 수치심, 공포심이 몰려 왔습니다. 우선 수치심을 가리기 위해 무화과 나무 잎을 엮어서 옷을 만들어 입었습니다. 그야말로 근본적으로 해결책이 없는 임시방편의 옷이었습니다.

에덴 동산에 내려오신 하나님께서 모습을 보시고가죽 지어 입히셨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3:21).

그런데 가죽이 어떤 동물의 가죽이었을까요? 하나님께서 인간을 구원하시는 성경 전체의 흐름을 살펴보면 그것은 틀림없이 장차 인류의 죄를 대속(代贖)하기 위하여 십자가에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이었음이 분명합니다. 인간이 만든 무화과 나무 잎사귀 옷이 때문에 발생한 인간의 수치와 공포와 죽음의 문제를 해결할 없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방법을 제시하신 것입니다.

당시 어떠한 죽음도 없었던 시대에 사람의 죄를 해결하기 위한가죽 만들기 위해서 마리가 사람보다 먼저 죽었습니다. 아무 없는 순결한 양의 죽음은, 장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값을 치르시고 돌아가실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후로 죄인들은 하나님과 교통하고 교제할 때에 양을 잡아 제사를 드리는 방법으로 죄를 해결하며 하나님을 예배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가인과 아벨의 다른 제사

부모로부터 이와 같은 원리에 따른 제사 방법을 배운 가인과 아벨이 제사를 드렸습니다.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새끼와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하신지라”( 4:3-5).

사람의 제사에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다는 것이고 제물을 가져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물만 받으시고 가인의 제물은 받지 않으셨습니다. 제물만 받으신 것이 아니고가인과 제물 받지 않으셨습니다. 가인이라는 사람도 하나님께서 거부하셨습니다.

이유가 무엇인가요? 제물이었습니다. 가인은 하나님이 정하신 방법을 자기의 생각으로 변형시켰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치명적인 것이었습니다. 죄인과 하나님과를 연결시켜 주는 중보자를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어린 양이 없이 하나님과 교통하려고 시도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제사가 아닌 다른 제사를 드렸습니다.

얼마 , 결국 가인은 동생 아벨을 죽였습니다. 하나님을 다르게 믿던 사람이 하나님을 바르게 믿는 사람을 죽인 것입니다. 가인이 동생을 죽인 행위는, 이후로 세상에 일어날 선악간의 싸움이 성격이 어떤 것임을 보여주는 매우 의미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하나님을 올바르게 믿는 사람들을 핍박하는 것이 선악간의 일어날 투쟁의 본질임을 예고한 것입니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 16:2).

예수님의 제자들을 박해하는 사람들이 그것이 하나님을 위한 일인 것처럼 생각하고 말한다는 것입니다. 인류는 종교암흑시대를 통해서 이러한 현상을 경험하였고, 앞으로도 종말의 시대에 이러한 일이 일어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2] 다른 불을 사용하다가 죽은 제사장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그들의 행적을 간략하게 정리한 민수기에는 아론과 모세의 가계(家系) 언급하는 장면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진 구절이 별도로 언급되어 있습니다.

나답과 아비후는 다른 불을 여호와 앞에 드리다가 죽었더라”( 26:61; 비교 10:1).

나답과 아비후는 단지 아론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께서십계명’, 언약의 계명과 율례를 반포하신 후에( 20~23), 백성의 대표로 거룩한 산에 올라가 모세, 아론, 이스라엘 장로 칠십인과 함께하나님을 뵙고 먹고 마신이스라엘의 지도자였습니다( 24:9~1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키도록 내려주신 계명과 율례를 모세가 선포하였을 , 백성들은 이렇게 약속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24:3).

약속의 가나안으로 행진하는 이스라엘 민족들은 애굽의 습관을 버리고 하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계명에 따라 살겠다고 언약한 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모세에게 성소를 지으라고 명하셨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이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모양대로 장막을 짓고 기구들도 모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25:8, 9).

아론의 아들 나납과 아비후는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서 세워진 성소에서 중대한 직임을 맡은 제사장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제사장들이 갑자기 죽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언약 식사 하였던 나답과 아비후는 어떤 사람들이며, 죽은 것입니까?

그들은 출애굽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원을 경험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모든 , 계명과 율례를 준행하기로 언약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백성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언약 식사 특별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드릴 제사(예배) 그분이 명령하신 대로 드려야 제사장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향로에 불을 붙일 , 번제단의 ( 16:2 참조) 사용했어야 하는데다른 사용하다가 하나님 앞에서 죽었습니다.

하나님이 명하신 하던제사장 갑자기 죽은 것은 오늘날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나 그들을 인도하는 지도자들은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을 가지고하나님의 명령대로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것입니다. 이런 점에 있어서는 선지자도 마찬가지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께서 전하라고 하시는 바로 말씀만 전해야 합니다.

내가 고하라고 명하지 아니한 말을 어떤 선지자가 만일 방자히 이름으로 고하든지 다른 신들의 이름으로 말하면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리라 하셨느니라”( 18:20).

나답과 아비후 사건과 하나님이 명하지 않은 것을 전하는 선지자와 관련하여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핵심은 가지 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이름으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 아닌 인간의 , 사람의 신학, 교회의 전통을 전하는 사람들은 멸망 당할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그분이 명령하신 대로 말씀을 전하지 않고, 주신 말씀에 인간의 생각을 더하거나 제하여 전하면, 예배는 우상 숭배와 다름없는 것입니다.

가인의다른 제사’, 나답과 아비후가 사용한다른 주는 매우 중대한 현대적 교훈이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다른 대한 것입니다. ‘성령 아닌사탄의 마치 성령처럼 역사하는 일들이 오늘날 기독교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제, 문제를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