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칠일 안식일이 의식법이거나 그림자라고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지금은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이날이나 날이나 똑같다.”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근거로 다음의 성경절을 제시합니다.

혹은 날을 날보다 낫게 여기고 혹은 모든 날을 같게 여기나니 각각 자기 마음에 확정할지니라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 14:5, 6).

우선 ’ ‘ 대한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사도 바울이 로마서를 기록할 당시 로마에는 유월절파와 요제절파의 대립이 있었고, 유월절파 내에서도 강경파와 온건파 사이에 유월절 양을 먹는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보면 ’ ‘ 안식일에 관련된 것이 아니고 절기의 날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먹는 문제도 바로 절기에 따른 문제였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유월절이나 요제절 날자)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유월절 먹는 문제)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 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 권면하였던 것입니다.

 

 1. 자기의 규례대로

예수님의 안식일 준수

예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믿음의 주로서자기 규례대로안식일을 준수하는 모본을 보여 주셨습니다.( 4:16),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12:12)라고 말씀하셨을 뿐만 아니라, 십자가 이후 서기 70년에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예언하시면서너희의 도망하는 일이 겨울에나 안식일에 되지 않도록 기도하라”( 24:20) 말씀하셨습니다.

만약에 예수님 십자가 이후에 안식일을 준수할 필요가 없다면, 십자가 이후 거의 40년이 지난 후에 있을 예루살렘 멸망을 말씀하시면서 안식일을 언급할 필요가 있었을까요? 말씀이 안식일의 주인이신( 2:28)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라는 사실을 생각해 보시면, 십자가 이후에는 안식일을 지킬 필요가 없고 주일을 지키면 된다는 주장은 안식일의 주인이 하신 말씀과 배치되는 것입니다.

사도바울의 안식일 준수

사도행전에는 바울 자신도자기의 규례대로”( 17:2) 안식일을 준주한 기록이 많이 나옵니다. 뿐만 아니라 그는 안식일을 중심으로 선교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들은 먼저 가서 드로아에서 우리를 기다리더라 우리는 무교절 후에 빌립보에서 배로 떠나 닷새 만에 드로아에 있는 그들에게 가서 이레를 머무니라  안식 첫날에[토요일 저녁] 우리가 떡을 떼려 하여 모였더니 바울이 이튿날[일요일 아침] 떠나고자 하여 그들에게 강론할새 말을 밤중까지 계속하매” ( 20:5~7)

여기에무교절’, ‘안식 첫날’, 그리고닷새라는 시간이 언급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무교절(15) 다음날에 출발하여, 5일을 항해한 끝에  드로아에 도착했습니다(20). 7일을 머물러 안식일(26) 지키고, 다음날 일찍 떠날 계획이었습니다. 26일이 안식일이니까 안식일은 19일입니다. 19일은 바울이 드로아로 오는 도중 4일째 날입니다. 아직 배를 타고 있었던 시간입니다. 사실 바울이 머물러 있던 빌립보에서 드로아까지는 ‘3 불과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은 드로아에 18(, 예비일) 도착하여 안식일을 그곳의 성도들과 보내려고 계획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오는 도중에 풍랑을 만나 이틀이 지체되어 불가피하게 안식일을 선상에서 보냈기 때문에닷새 만에도착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이 선교 활동 중에도 안식일이 되기 전에 목적지에 도착하려고 계획한 것은 그가 선교 여행 중에도 안식일을 철저하게 준수하였다는 중요한 증거 중의 하나입니다.

바울이 이튿날 떠나려고 했다는 것은 27 아침에 떠나는 것입니다. 그래서 떠나기 전날 저녁에 떡을 차려놓고 송별회로 모였는데, 시간에도 성도들이 말씀을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 그런데 설교가 밤중까지 계속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바울이 떠나기 전날 저녁이 바로 안식일 저녁 시간이었습니다. 성경상 하루는저녁부터 이튿날 저녁까지”( 23:32)이기 때문에, 토요일 저녁이 바로안식 날이었습니다. 새번역 성경에는 시간에 대하여㉠주간의 날에 ㉡또는안식일 밤에라고 번역해 놓았고, 영어성경(Good News Translation)에는 구체적으로 “On Saturday evening” 이라고 하여 토요일 저녁 시간임을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사도 바울이 드로아에서 안식 첫날 떡을 떼려 모여 설교한 것은, 주일 첫날 일요일이 아니고 토요일 저녁인 것이 분명합니다. 그렇다면 성경절을 주일 예배의 근거로 사용하는 것은 성경적으로 맞지 않는다는 것이 명백한 것입니다.

외에도 사도바울이 선교 여행 중에 안식일을 지킨 기록은 많이 나옵니다.

저희는 버가로부터 지나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 앉으니라”( 13:14). 

저희가 나갈새 사람들이 청하되 다음 안식일에도 말씀을 하라 하더라 다음 안식일에는 성이 거의 하나님 말씀을 듣고자 하여 모이니”( 13:42,44).

어떤 사람들은 사도 바울이 안식일을 지키려고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에게 전도하려고 안식일에 회당에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미 언급한대로 바울은자기의 규례대로”( 17:2) 안식일을 지킨 것입니다. 회당이 없는 곳에서는 기도하며 예배할 만한 조용한 장소를 찾아가서 안식일을 지켰습니다.

안식일에 우리가 기도처가 있는가 하여 강가에 나가 거기 앉아서 모인 여자들에게 말하더니.” ( 16:13).

 

2. 성령과 계명과 제7일 안식일

어떤 사람들은 신약시대는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계명에 얽메일 필요가 없고 모든 신앙의 원칙들을 무조건 영적으로 적용하며 살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성령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를 갖지 못한 결과라고 생각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진리의 성령”( 15:26, 16:13)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자신에 대해서도내가 진리”( 14: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말씀과 성령의 생각은 언제나 일치합니다. 다음의 성경절들은 사람이 성령으로 다시 태어난 이후에 하나님의 (계명) 어떤 관계를 가지고 살다가 구원에 이르게 되는 원리들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없느니라”( 3:5)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의 행한 의로운 행위로 말미암지 아니하고 오직 그의 긍휼하심을 좇아 중생의 씻음과 성령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나니”( 3:5)

이는 물로 씻어 말씀으로 깨끗하게 하사 거룩하게 하시고”( 5:26)

주께서 이르시되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것이니 법을 그들의 생각에 두고 그들의 마음에 이것을 기록하리라 나는 그들에게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게 백성이 되리라”( 8:10)

말씀들을 근거로 해서 신약시대 성령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정리해 보겠습니다. 일단, 모든 인간은 누구나 예외없이 그리스도인이 되려면물과 성령으로 다시 태어나야 합니다. 사람이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초기 과정에 성령의 역사는 필수적입니다. “성령님의 도움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님이라고 말할 ”(고전 12:3, 현대인역)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태어난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하여 성령께서 무엇을 하십니까? ‘새롭게 하신다’( 3:5) 하였습니다. 어떻게 새롭게 하십니까? “말씀으로 깨끗하게” “거룩하게”( 5:26) 하십니다. 성령 시대에 성령께서 그리스도인들을 위하여 하시는 가지 매우 중요한 사역은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나게 주시는 것입니다.

보혜사 아버지께서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리라”( 14:26)

성령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읽거나 들을 때에 말씀을 이해하게 주시고, 말씀을 우리의 마음 속에 담아주셔서 필요할 때에 생각나게 주십니다. 중에서도 매우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법을 우리생각에 두고우리마음에 기록”( 8:10)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구약 시대에는 지성소의 법궤 안에 있었지만, 신약시대 성령시대에는 하나님의 법이 우리 마음속으로 옮겨진 것입니다. 성령의 시대이기 때문에 법이 없어진 것이 아니고 법의 위치가 법궤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으로 들어온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 속에 새겨진 하나님의 법을 지킬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사도 바울은 문제에 있어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죄를 인하여 자기 아들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육신의 생각은 하나님과 원수가 되나니 이는 하나님의 법에 굴복치 아니할 아니라 수도 없음이라” ( 8:3-7).

사람이 스스로의 힘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지킬 없습니다. 인성을 쓰신 예수님도 성령의 능력을 빌려서 말씀에 온전히 순종할 있었습니다. 사도 바울도육신을 좇지 않고 영을 좇아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지게 하려 시는 성령의 법을 깨달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성령의 시대에는 계명을 지킬 필요가 없다는 것은 성경의 내용을 정반대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에 새겨진, 안식일을 포함한 하나님의 십계명을 생각나게 주시고, 7 안식일을 지킬 있도록 힘과 능력을 더해 주십니다. 성령께서 7 안식일을 폐한 것이 아니고 그것을 지킬 있도록 도와주신다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3. 계명이 사랑으로 대치되었는가?

많은 기독교인들이, 구약시대에는 십계명이 유효하였지만, 신약시대에는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물론 성경에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13:34).

그러면 계명이란 무엇인가요? 사도 요한은 요한1 1 5,6절에서, “부녀여 내가 이제 네게 구하노니 서로 사랑하자 권면한 , 이어서 다음과 같이 말합니다.

이는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사랑은 이것이니 우리가 계명을 좇아 행하는 것이요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바와 같이 가운데서 행하라 하심이라”(요이 15,6).

예수께서 말씀하신 계명 계명의 내용이 달라진 것이 아닙니다. 십계명의 근본 정신은사랑하라 것이고, 그것을 부분으로 나누면하나님을 사랑하라’ ‘사람을 사랑하라 것입니다. 하나님 사랑에 대한 구체적인 표현이 첫째 계명부터 넷째 계명이고, 사람을 사랑하는 구체적인 표현이 다섯째 계명부터 열째 계명까지입니다. ‘사랑하라 것이 구약의 십계명을 대치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사도 요한은 다시 강조하여 계명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 “계명은 이것이니 너희가 처음부터 들은 그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이나 이웃을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신 말씀은 이미 신명기 6 5절과 레위기 19 18절에 나왔던 계명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계명이라는 말을 사용하신 것은, 계명을 지킨다고 하는 유대인의 정신을 새롭게 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이 사랑의 정신은 없이 율법의 문자만 가지고 씨름하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라는 계명을 재차 반복하시면서 정신을 새롭게 주신 것입니다.

요즘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말하는, “계명은 폐했으니까 사랑만 하면 된다 것은 전혀 예수님이 의도하신 바가 아닙니다. 요한복음 14 15절에서는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요한1 5 3절에서는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권면하고 있습니다. 사랑이 계명을 폐하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계명의 참된 정신을 가지고 계명에 순종할 힘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진정한 사랑이 있으면 계명 지키기가 힘들지 않을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의 부탁을 들어주는 것은 오히려 즐거운 일이니까요.

사랑이 계명을 대치했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혹시 계시면,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곰곰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영원 불변의 법칙으로 인간들에게 내려주신 계명의 내용은 사랑의 구체적인 표현임을 깨닫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