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5. 부르심-소명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사 거룩하신 부르심으로 부르심은 우리의 행위대로 하심이 아니요 오직 자기 뜻과 영원한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대로 하심이라”(딤후 1:9)

인간의 구원은 하나님의 부르심으로 시작됩니다. 아담과 하와가 범죄한 다음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 숨었을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3:9) 접근하셨습니다. 그리고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들을 구원하실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아브람을 부르셔서 구원자 메시야를 탄생시킬 조상으로 삼으셨고( 12:1), 미디안 광야에 있던 모세를 부르시어 애굽에서 고난당하는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하도록 사명을 주셨습니다( 3:4).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사람들을 부르고 계시며 목적은 죄인을 구원하시기 위한 것입니다. 목자가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 10:3)듯이, 우리 모두는 각각 하나님의 부르심을 통하여 구원을 얻게 되었고 그분의 백성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더욱 힘써 너희 부르심과 택하심을 굳게 하라 너희가 이것을 행한즉 언제든지 실족지 아니하리라”(벧후 1:10).

부르심을 굳게 한다는 말은 우리를 불러내어 구원하신 하나님의 은혜를 경솔히 여기지 말고 끝까지 간직하고 보존하라는 것이고, 하나님의 부르심과 택하심을 견고하게 붙들고 있지 않으면 얻은 구원을 놓칠 수도 있다는 말입니다. “만일 저희가 우리 되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를 앎으로 세상의 더러움을 피한 후에 다시 중에 얽매이고 지면 나중 형편이 처음보다 심하리니 속담에 이르기를 개가 토하였던 것에 돌아가고 돼지가 씻었다가 더러운 구덩이에 도로 누웠다 하는 말이 저희에게 응하였도다”(벧후 2:20,22).

또한 하나님께서는 땅의 백성들을 구원하시는 당신의 사업을 이루시기 위하여 일꾼들을 불러내십니다. 예수님께서 땅에 계실 때에 복음을 세상에 널리 전할 제자들을 교육하시고 훈련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가 만한 사람들을 먼저 부르셨습니다. 어부도 부르셨고 세리도 부르셨습니다. 당시 사회에서 별로 인정받지 못하는 소외 계층에서 사람들을 택하여 불러내셨습니다.

그들의 외모나 능력이나 지식을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고, 단순한 믿음으로 마침내 죽도록 충성할 있는 사람들을 불러내셨습니다. 그런데 12명의 제자들 스스로 제자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가롯 유다였습니다. 결과는 어떻게 되었습니까? 스스로 나선 사람만 실패하였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모두 성공적인 전도자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일과 하나님의 사업의 일꾼으로 쓰임 받는 일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에 의하여 이루어집니다. 초기 교회에서 일곱 집사를 선택할 때에 스스로 집사가 되겠다고 나선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후일에 감독(장로) 제도가 만들어졌을 때에도 스스로 장로가 되려고 사람은 없었을 것입니다. 우리 인간들이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스스로 어떤 직분을 맡기 위해 나서고 노력하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무릇 기다리는 자에게나 구하는 영혼에게 여호와께서 선을 베푸시는도다 사람이 여호와의 구원을 바라고 잠잠히 기다림이 좋도다”( 3:25,26).

 

26. 진리

그러므로 예수께서 자기를 믿은 유대인들에게 이르시되 너희가 말에 거하면 제자가 되고,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8:31, 32).

예수님을 심문하던 빌라도가 예수님에게 질문을 하였습니다. “진리가 무엇이냐”( 18:38). 물음은 오랜 세월을 두고 사람들의 입에 회자(膾炙)되는 질문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이미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내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자가 없느니라”( 14:6).

예수님이 하신 모든 말씀은 진리였고, 그분의 모든 삶은 진리에 입각한 행동이었습니다. 다시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17:17). 예수가 진리이고, 아버지의 말씀이 진리라면 예수님은 아버지의 말씀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아마도 요한은 예수님의 존재에 대하여태초에말씀 계시니라”( 1:1) 하였습니다.

진리(=예수=말씀) 우리를 자유케 한다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우리 모든 죄인들은 예수를 통해서 죄와 사망에서 자유롭게 있습니다. 예수님이 사신 것처럼 하나님의 말씀(진리) 따라서 때에 우리는 진정한 자유와 행복을 경험하게 된다는 말입니다.

죄악적인 삶에 익숙해진 인간이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산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니고 자유스러운 것도 아닙니다. 담배를 많이 피우던 사람이 금연을 하기 시작하면 금단(禁斷)현상이 있다고 합니다. 고민, 불면, 환각, 망상 등의 정신 증상 외에 가슴이 두근거리거나 통증이 있고 구토 등의 증상이 나타납니다. 그것은 호전을 위한 일시적인 증상이지 지속적인 것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죄인이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기 시작하면, 이전에 하던 일을 마음대로 하지 못하기 때문에, 사람마다 시간의 차이는 다르지만, 일시적으로 매우 힘들고 견디기 어려운 금단증상이 있을 있습니다. 그러나 고비가 넘어가면 자유로운 상태가 옵니다.

어떤 장로님이 알코올 중독이 매우 심한 환자의 가정을 방문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꽤나 성공적인 공무원이었는데, 술버릇 때문에 직장도 잃고 아내도 집을 나가고 아들과 둘이 비참한 생활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안에금주라는 말이 여기 저기 붙어 있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의미인가요? 술을 마시기 싫은데 마실 자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사람이 마음대로 무엇이든지 수도 있고 하지 않을 수도 있어야 진정으로 자유로운 것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 진리를 따라서 때에 진정한 자유를 누리게 됩니다. 성경은 인간을 가장 효율적으로 자유롭게 움직이며 살게 하는 사용설명서라고 있습니다.

일본의 의학자요 과학자인 하루야마 시게오 박사가 그의 명저 [뇌내 혁명 1] 이렇게 기록하였습니다. “전자현미경 발견자인 후나이 사치오 씨는우주 전체에 창조주의 의지가 작용하고 있다 말하고 있는데, 나는 의지가 유전자라는 형태로 우리 안에 새겨져 있다고 생각한다. 창조주의 의지에 합당한 사람은 살아남고 합당하지 않은 자는 소멸하는 메커니즘이 인간의 안에 장치되어 있는 것이다.”

인간을 사랑하시고, 사람이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기를 원하시는 우리의 아버지, 창조주의 의지가 기록된 책이 성경 진리입니다. 그러므로 성경, 진리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는 것이 진정한 자유이고 행복의 첩경입니다.

 

27. 은혜

우리가 하나님과 함께 일하는 자로서 너희를 권하노니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 가라사대 내가 은혜 베풀 때에 너를 듣고 구원의 날에 너를 도왔다 하셨으니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1, 2).

구약에 나오는은혜라는 낱말은 대체로 종류가 있습니다. []이라는 말은 강자가 약자에게 베푸는 호의, 특히 왕이 백성들에게 베푸는 관대한 처사를 말합니다(삼상 27:5; 5:8). [하난]이라는 말은 매우 어렵고 곤란한 처지에 빠진 사람에게 값없이 호의를 베푸는 행위를 나타내는 단어입니다( 7:7, 8; 33:9). 그리고 [헤쎄드] 친절한 행위나 언약에 의해서 성립된 사랑의 관계가 지속되는 상태를 말합니다( 2:12; 3:10; 21:23).

단어는 모두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베푸시는 은혜와 관련이 있습니다. 우선 하나님께서는 우주의 왕으로서 많은 백성들에게 매우 관대하시며 연약한 인간의 모든 필요를 제공하시며 열악한 환경에서 살아가는 인간들을 돌보십니다. 그리고 죽음이라는 절망에 빠진 인간을 구원하시기 위하여 사람에게 아무 조건도 요구하지 않으시고 어떤 약속도 받지 않으시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죽음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리고 아무런 대가 없이 우리의 믿음만 보시고 우리를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 주셨습니다. 예수께서 인성을 취하심으로 하나님과 일체이셨던 그분은 도무지 끊을 없는 줄로 자신을 인류에게 붙들어 매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를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 아니하시면서( 2:11) 우리와 지속적인 관계를 유지하고 계십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아무 조건이나 대가 없이 우리에게 베풀어주신 사랑의 행위를 은혜라고 합니다. 그리고 은혜는 지속적으로 유지되고 있습니다.

구약 룻기에 이러한 하나님의 은혜가 실물교훈으로 나와 있습니다. 보아스가, 가난하고 신실하지만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는 룻에게 호의를 베풀었을 룻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이방 여인이어늘 당신이 어찌하여 내게 은혜를 베푸시며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2:10).

그러나 보아스의 호의는 일시적인 것으로 끝난 것이 아니라, 마침내 그를 아내로 맞이하여 함께 살면서 그의 모든 필요를 채워 주었습니다. 이야기가 바로, 사망에 처한 무가치한 인간을 위하여 막대한 대가를 지불하시고 구원하신 다음에 사람과 함께 영원히 함께 살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설명하고 있는 것입니다.

신약에서 은혜를 표현하는 용어는 [카리스]인데, 말은 기쁨과 즐거움을 가져다주는 행위와 관련됩니다. 사람에게 진정한 삶의 기쁨과 구원의 즐거움을 가져다주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전체를 통하여 은혜의 본질이 반영되고 있습니다. 그분의 존재 자체가 하나님의 은혜의 상징이었고, 그분의 모든 가르침과 삶이 사람들에게 행복과 기쁨을 가져다주는 은혜의 원천이었습니다.

동일한 햇볕 아래서 구두약은 녹아내리고 진흙땅은 굳어지듯이, 동일한 하나님의 은혜를 통하여 변화되는 사람이 있고 마음이 강퍅해지는 사람이 있습니다. 태양처럼 내려 비치는 하나님의 은혜는 심령이 가난하고 겸손한 자의 몫입니다.

 

28. 생명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5:24)

생명이라는 말과목숨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경의 전반적인 내용을 깊이 살펴보면 단어의 서로 다른 의미를 발견하게 됩니다. “일락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딤전 5:6). 먹고 즐기고 노는 일이나 하며 사는 사람은 살았으나 죽었다는 말이 무슨 뜻입니까? 숨을 쉬고 있기 때문에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생명이 없이 때문에 죽은 자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연결되어 교통함으로써만 생명을 소유할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목숨은 잠시 부지할지 모르나 생명은 소유할 없습니다.

이와같이 성경에는 목숨’(breath)생명’(life) 다른 의미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목숨은 잠시 부지할지 모른다 말의 원문은잠시 존재할 수는 있지만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쨌든생명이라는 것은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상태에서만 유지될 있다는 말입니다. 짧은 지면이지만 원리를 간단히 살펴보겠습니다.

하와가 (사단) 통해서 선악과를 먹도록 유혹 받았을 때에, 선악과를 먹으면하나님과 같이 되어선악을 분별하게 된다는 말에 넘어 갔습니다. 하와에게 하나님과 같이 되고 싶은 마음이 일어난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하나님의 다른 이름여호와라는 말은스스로 있는 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으시고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생명으로 살아가는 하나님 의존적인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하나님처럼 되려면,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반납하고, 자기의 생명으로 스스로 존재해야 합니다. 하와가 하나님처럼 되기 위해 선악과를 먹었을 때에 순간 하나님과의 관계는 끊어지고 그의 생명은 끝났습니다. 다만 잠시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게 하는 목숨만 남아 있었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보실 때에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지 않은 사람은 것처럼 보이지만 죽은 것입니다. 한번은 예수께서 부친 장례식을 위하여 떠나려는 제자에게죽은 자들로 저희 죽은 자를 장사하게 하고 너는 나를 좇으라”( 8:21, 22)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에서죽은 자들이란 장례식에 참여하는 살아 있는 사람들을 가리키는 것이고, ‘죽은 실제로 목숨이 끊어진 시체를 말합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그들을 모두 죽은 자로 간주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과 연결된 믿음을 가지고 살던 나사로가 죽었을 때에는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 11:11)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생명과 사망은 사람이 생각하는 상식과는 다릅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믿음으로 연결된 사람은 생명이 있는 것이고, 하나님과 분리된 스스로 살아가고 있는 사람은 목숨만 있고 생명은 없는 것입니다.

우리의 의지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길 때에  그분께서 당신의 생명을 우리에게 주실 있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이 있음을 인하여 하나님께 날마다 감사하는 생활을 해야 합니다. 잠시 목숨이 끊어진다 해도 영원히 있는생명 우리에게 있습니다. 우리가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과 연결되어 있는 우리의 생명은 영원한 것입니다.

 

29. 소망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8:24, 25).

소망이라는 것은믿음 관련이 있는 단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믿음을 가지면 말씀이 성취될 소망을 가지고 날을 기다리게 됩니다. 중요한 것은, 약속의 성취는 사람이 원하는 시기에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약속의 말씀을 주신 하나님께서 가장 적절하다고 생각하시는 시기에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혹시 자신의 생각만큼 말씀의 약속이 속히 성취되지 않는다 할지라도참음으로 기다려야 합니다. 따라서소망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어떤 약속의 말씀을 믿게 되었을 때에 말씀이 성취되기까지 기다리는 마음의 상태를 말합니다. 사람이 미래에 일어날 어떤 일에 대하여 확실한 희망을 가지고 날을 기다린다고 하는 것은 사람의 건강이나 생존과도 매우 밀접한 관련을 갖습니다.

가뭄이 극심한 아프리카 지역 주민들에게 가장 좋은 선물 중의 하나는 종자(種子, ) 제공해 주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들에게는 가뭄의 기간이 너무 길어서 다음 파종시기가 되기 전에 씨앗을 먹을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파종시기에 맞추어 씨앗을 선물로 주는 것은 매우 선물 중의 하나입니다.

구호단체에서 아프리카의 어느 지역에 씨앗을 제공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씨앗이 모자라서 어떤 지역에는 씨앗을 제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파종을 뒤에 너무 가물어서 씨앗을 뿌렸던 지역이나 뿌리지 않은 지역이나 수확물이 하나도 없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은 씨앗을 뿌렸던 지역의 주민들은 극심한 가뭄 중에도 죽은 사람이 거의 없었는데, 씨를 뿌리지 않았던 지역의 주민들 중에는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는 것입니다. 이유가 무엇일까요? 씨앗을 뿌렸던 지역의 주민들은 언젠가 작물을 수확하게 것이라는소망 있었습니다. 소망이 힘이 그들에게 생명력을 주었던 것입니다.

신앙이 없는 일반인들에게는 일시적인 희망이 있을 수는 있겠지만 궁극적인 소망은 없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기독교는 희망의 종교, 기다림의 종교입니다. 에덴 동산에서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에 죽게 되었을 하나님께서는 즉시로 창세기 3 15절에서 장차 죄인들을 구원하실여자의 후손예수 그리스도가 인간 세상에 태어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아담과 하와는 비록 메시야를 보지는 못했지만, 메시야를 기다리는 소망을 품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죄악 세상을 이겨내며 살았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된 이스라엘 민족들은 한결같이 그들을 구원해 메시야의 출현을 기다리며 만난을 극복하며 기다리며 살았습니다. 오랜 세월이 지난 , 이스라엘이 민족적으로는 기다리던 메시야를 만나는 일에 실패하였지만, 가난한 마음으로 메시야의 오심을 기다리던 준비된 소수는 메시야를 만났고 희망을 보았고 구원을 받았습니다.

예수께서 죽음에서 부활하신 다음, 원래 계시던 ,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자들을 데리러 다시 오실 것을 약속하였습니다.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 22:20) 하셨습니다. 예수를 믿고 구원받은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그분이 다시 오셔서 우리를 데려가실 것이라는 소망을 가지고 살았습니다.

중세 로마교회에 저항하여 성경 말씀의 원칙대로 개혁을 외치던 수많은 사람들이 교수대에서 화형장에서 세상의 악한 세력을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는 평안하고 안정된 모습으로 죽을 있었던 것은 재림과 부활의 소망 때문이었습니다. 지금도 그리스도인들은 소망으로 모든 것을 극복하며 행복하게 있습니다.

 

30. 사랑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서로 사랑하자 사랑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니 사랑하는 자마다 하나님께로 나서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요일 4:7, 8).

사랑이라는 말은 가장 가치 있는 단어이면서도 너무 흔하게 함부로 사용하여 대부분의 사람들이 진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가 사랑의 의미를 제대로 깨닫게 되면생명 원리에 대하여 깊은 이해를 갖게 됩니다.

미국 버클리대학교 연구팀은 특별한 실험을 하였습니다. 종류의 흰쥐에게 먹이를 주었습니다. 먼저 마리의 쥐에게 외로운 상태에서 먹이를 먹도록 했습니다. 번째는 다섯 마리의 쥐들이 함께 어울려서 먹이를 먹게 했습니다. 그리고 번째 쥐에게는 사람의 애정을 전달하면서 직접 먹이를 먹여주었습니다

결과 번째 쥐는 세포 활동이 둔화된 작은 뇌를 지닌 6 일을 살다가 죽었습니다. 번째 그룹의 쥐는 약간 무거운 뇌를 가진 상태로 7백일을 살았습니다. 사람의 애정이 담긴 먹이를 먹은 번째 쥐는 활발한 세포활동을 보이는 뇌의 상태를 가지고 950일을 살았습니다(국민일보, 1993. 12. 3).

사랑과 생명, 이것은 분명히 상관관계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애타는 마음으로 우리를 위하여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서로 사랑하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사랑이라는 속성을 가지신 분이 아니라사랑 자체이십니다. 동시에 그분은 생명의 근원이시기도 합니다. 생명이 사랑과 함께 공존하는 것이 우주의 원리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사랑에 대한 올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사랑은 어떤 일시적인 감정이나 충동이 아니라 하나의 원칙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대한 최고의 사랑과 상호간의 이기심 없는 사랑, 이것이 우리의 하늘 아버지께서 주실 있는 최고의 선물입니다. 이것은 일시적인 감정의 충동이 아니고, 거룩한 원칙이며 항구적인 능력입니다. 성별되지 않은 마음은 사랑을 일으키거나 산출할 없습니다.

예수께서 다스리시는 마음 속에만 진정한 사랑이 나타납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거룩한 은혜로 새롭게 마음 속에서 사랑은 행동을 지배하는 원칙입니다. 남을 대접하라는 원칙을 실천하는 사랑은 품성을 계발하고 충동을 지배하고 감정을 억제하고 애정을 고상하게 줍니다. 마음속에 간직된 사랑은 생활을 유쾌하게 하고 주위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품위 있는 감화를 끼치게 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을 깊이 깨달았다는 증거는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가 진정으로 이웃을 사랑하고 있다는 증거는, 예수께서 자신을 온전히 희생하여 생명까지 포함하여 자신의 모든 것을 내어주신 것처럼 나도 이웃을 위하여 내가 소유한 모든 것을 아낌없이 베풀고 나누는 것입니다.

우주의 생명체들이 자신의 것을 내어주고 새로운 것을 받아들여 생명을 유지하듯이, 인간의 생명도 그러한 원리로 유지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이미 언급된 바와 같이, 영생의 도리를 묻는 부자 청년에게 가진 것을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라는 주님의 말씀의 진의가 무엇인지 우리는 깊이 생각해 필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