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애굽을 탈출하여 광야 생활을 시작하면서 세워진 지상 성소의 근원은 하늘에 있는 것이 확실합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성소 제작을 요구하실 때에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25:8,9)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말씀에 대하여 히브리서 8:5절에는저희가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과 그림자라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가라사대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본을 좇아 지으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하늘에 성소가 없다고 말하는 것은 성경절들을 무시하거나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이제 하늘 성소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1] 하늘에 있는 성소는 무엇인가?

광야의 진영 가운데 지상 성소를 가지고 있었던 때나 유다 왕국의 수도 예루살렘에 성전을 가지고 있었던 때를 무론하고 구약의 이스라엘 백성들도 여전히 하늘 성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이제 지상 성소의 시대가 끝나고 성소에 대한 관심이 사라지는 시대에 우리는 지상 성소가 아니라, 하늘 성소로 눈을 돌려야 합니다. 승천하신 예수께서 대제사장으로, 하늘 성소 봉사를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아니하고 오직 자기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2).

말씀의 시점은 분명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이후의 일입니다. 그리고 사도 요한도 예수께서 승천하신 이후에 하늘 성소에서 일하시는 모습을 계시로 보게 되었습니다. 그가 계시 중에 어떤 소리를 듣고몸을 돌이켜말한 음성을 알아보려고 하여 돌이킬 때에 일곱 촛대를 보았는데 촛대 사이에 인자 같은 이가 발에 끌리는 옷을 입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1:12,13) 있었습니다. 여기에서 촛대는 성소에 있는 기물이고, 가슴에 금띠를 띠고 있는 모습은 제사장의 복장입니다.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번개와 음성들과 뇌성과 지진과 우박이 있더라.”( 11:19).

요한이 계시 가운데서 언약궤 지성소에 있는 기물입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으로 지상 성소의 의미가 사라진 이후로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일에 대하여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하늘 성소가 실제로 존재하는가?

지상 성소에서의 봉사와 역할이 완결되고, 그것이 구원사적 사건으로 발전되어 하늘의 ”( 9:24) 봉사로 전환되는 사건이 예수님의 승천과 더불어 시작되었습니다. 증언이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주목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고 말하되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 7:55, 56) 언급된 것입니다.

다음에 나타나는 다른 증언은 히브리서에 나타납니다.

지금 우리가 하는 말의 요점은 이러한 대제사장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이라 그는 하늘에서 지극히 크신 이의 보좌 우편에 앉으셨으니, 성소와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8:1, 2).

사도행전과 히브리서를 통하여 얻는 결론은 예수님께서는 부활 승천하신 , 성소에 계신 하나님 보좌 우편에서 대제사장으로서 봉사를 시작하셨다는 것입니다. 존슨(William G. Johnsson) 하늘 성소의 실제성에 대하여 이렇게 언급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서는 하늘 성소와 의식에 관한 묘사를 시도하지 않지만, 그의 언어는 가지 중요한 결론을 제시한다. 첫째, 그것들의 실재성실제적인 신성, 실제적인 인성, 실제적인 제사장 직분을 지지한다. 우리는 여기에 실제적인 성소에서 행하는 실제적인 봉사를 덧붙일 있다.”(서울 : 한국연합회 선교전략연구소성소교리의 성경적 기초, 2015. 28p)

히브리서는 지상 성소를 하늘 성소로 연결하는 중요한 통로입니다.

 

원형으로서의 하늘 성소

하늘 성소에 관해서는 성경 어디에도 구체적인 형태와 규격이 제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늘 성소를 지상 성소의 실체적 형상과 규격에 연결시켜 해석하려는 노력들이 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 25:8, 9) 말씀에 기록된식양”(式樣, tabnit) 대한 해석 때문입니다. “식양”(tabnit) 영역본 다수에 “pattern (양식, 패턴)”으로 번역되어 있으며, “형상이라든지”( 4:16-18), “여호와의 모형”( 22:28), “ 먹는 소의 형상”( 106:20), “궁전의 식양대로”( 144:12), “ 같은 ”( 8:3) 등등에 사용되며 20회에 걸쳐 나타납니다.

어떤 측면에서 보면 하늘 성소에는 뜰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성소의 원형, 하늘 성소는 하나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는 구속사적 의미에서 기능을 온전히 수행할 있는 형태의 성소가 아닌가 생각해 수도 있습니다.

그들이 섬기는 것은 하늘에 있는 것의 모형(hupodeigma, example, copy) 그림자(skia, shadow, an outline) 모세가 장막을 지으려 때에 지시하심을 얻음과 같으니 이르시되 삼가 모든 것을 산에서 네게 보이던 (tupos, type, pattern) 따라 지으라 하셨느니라.”( 8:5).

 

히브리서에서 말하는 더 나은 성소

히브리서는 지상 성소 대신에 나은 것으로서 하늘 성소를 말하고 있는데, 이유는 지상 성소와 관련된 이스라엘과의 언약이 제한되고 잠정적인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언약이 무흠 하였더라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그들의 잘못을 지적하여 말씀하시되 주께서 이르시되 볼지어다. 날이 이르리니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과 더불어 언약을 맺으리라.”( 8:7, 8).

그리고 언약 성소는 지금 하늘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봉사하시는 곳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것의 그림자인 손으로 만든 성소에 들어가지 아니하시고 바로 하늘에 들어가사 이제 우리를 위하여 하나님 앞에 나타나시고”( 9:24).

또한[그리스도]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려고 죽으사 부르심을 입은 자로 하여금 영원한 기업의 약속을 얻게”( 9:15) 하심으로 좋은 언약의 보증이 ”( 7:22) 분입니다. 그분께서는 지금 지상 성소보다 나은 성소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장래 좋은 일의 대제사장으로 오사 손으로 짓지 아니한 창조에 속하지 아니한 크고 온전한 장막으로 말미암아 염소와 송아지의 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자기의 피로 영원한 속죄를 이루사 단번에 성소에 들어가셨느니라.”( 9:11, 12).

언약의 제사장은 아론 계통의 제사장들보다 월등한 자격을 갖추었습니다. “레위 계통의 제사 직분으로 말미암아 온전함을 얻을 있었으면멜기세덱의 반차를 따르는 다른 제사장을 세울 필요가 있느냐?”( 7:11). 그리스도의 제사장 직분이 우월한 다른 까닭은대제사장들이 먼저 자기 죄를 위하고 다음에 백성의 죄를 위하여 날마다 제사 드리는 것과 같이 필요가 없으니 이는 그가 단번에 자기를 드려 이루셨기( 7:27) 때문이며, “거룩하게 자들을 번의 제사로 영원히 온전하게”( 10:14) 하셨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에 기록된 하늘 성소

요한계시록도 역시 하늘 성소를 언급합니다.

다른 천사가 하늘에 있는 성전에서 나오는데 또한 이한 낫을 가졌더라.”( 14:17).

이에 하늘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이 열리니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가 보이며 번개와 음성들과 우레와 지진과 우박이 있더라.”( 11:19).

후에 내가 보니 하늘에 증거 장막(skēnēs, tabernacle) 성전이 열리며하나님의 영광과 능력으로 말미암아 성전에 연기가 가득 차매 일곱 천사의 일곱 재앙이 마치기까지는 성전에 능히 들어갈 자가 없더라.”( 15:5, 8).

구절들의 성전(naos, temple) 모두성소 같은 의미로 사용되는 동의어입니다.

요한계시록 15:5 쓰인장막”(skēnēs, tabernacle) 성전의 동의어로 쓰이면서하늘 있는 것으로 소개됩니다. 지상 성소에 있는 것처럼보좌 앞에 등불 일곱”( 4:5) 있고, “보좌 제단”( 8:3) 있으며, “성전 안에 하나님의 언약궤”( 11:19) 보입니다.

요한은 하나님의 보좌가 놓인 장소와 성전을 연결시키는데, 하나님의 보좌가 성소(sanctuary) 안에 있다고 밝혀줍니다. “그러므로 그들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있고 그의 성전에서 밤낮 하나님을 섬기매 보좌에 앉으신 이가 그들 위에 장막을 치시리니.”( 7:15).

요한계시록의 하늘 성소는 다양한 언어와 상징으로 기술되며, 지상 성소와는 비교할 없으리만큼 우월하고 영광스러운 곳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2] 하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심판과 1844년

예수님께서 지상에서의 공생애를 마치고 부활하신 이어서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으로 봉사하고 계신 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의 측면을 보여줍니다. 가지는 중보 사역이고 가지는 심판 사역입니다. 심판 사역은 지상 성소에서 연례적인 봉사로 행해지던 사역인데, 그리스도 승천 이후, 지금은 심판 사역이 우주적 사역으로 확대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 개념 – ‘죄 사함’과 ‘정결’

지상 성소 매일의 봉사에서 개인은 제물로 인하여 범한 죄에 대하여 그를 위하여 속죄한즉 그가 사함을 ”( 4:26, 35)었고, 사함의 결과는 완전한 것이며 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연례 봉사인 대속죄일 속죄는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16:30) 하였습니다. ’ 사함보다는정결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정결은 질병과 부정에 대한 완치의 선언으로 사용되지만, 사함의 대용어로는 사용되지 않습니다. 대속죄일의 정결은 매우 엄숙한 의식을 통해서 완성됩니다. 하나님께서는성소의 휘장 법궤 속죄소 앞에 아무 때나 들어오지 말라. 그리하여 죽지 않도록 하라. 이는 내가 구름 가운데에서 속죄소 위에 나타남”( 16:2)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 년에 ”( 16:34) 이루어지는 대속죄일의 정결 제사와 의식을 통하여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로부터여호와 앞에 정결”( 16:30)하다고 선언됩니다.

정결하다는 선언은 심판의 최종적인 선언이기도 합니다. 공의로우신 하나님께서심판을 위하여 보좌”( 9:7) 속죄소에 임하시어심판장”( 50:6) 되셨으며, “공의로 세계를 심판”( 9:8)하시며, “진실하심으로 백성을 심판”( 96:13)하셨기 때문입니다.

지상 성소에서 대속죄일의 정결케하는 심판이 있었던 것처럼, 하늘에서도 정결케 하는 최종적인 심판이 있을 것입니다. 심판에 관련된 예언이 다니엘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내가 보니 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는데 그의 옷은심판을 베푸는데 책들이 놓였더라.”( 7:9, 10).

내가 들은즉 거룩한 이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이가 말하는 이에게 묻되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하였느니라.”( 8:13, 14).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일흔 이레를 기한으로 정하였나니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때부터 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예순두 이레가 지날 것이요.”( 9:24, 25).

예언들 중에서 우리가 깊은 관심을 가지고 주시해야 대목은 다니엘서 8장의이천삼백 주야까지니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되리라.” 부분인데, 이유는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말이 매우 의미심장하기 때문입니다.

 

다니엘이 특별한 이상(異像) – 2300주야

다니엘서 8장에 나오는 2300주야 예언은 7장과 9 사건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2300주야의 예언을 풀어내려면 다니엘 9장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합니다. 다니엘 9:24-27 매우 중요한 기간들과 사건, 그리고 연대기적 기점이 포함되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9:24),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때부터”( 9:25).

구절들 속에 “70 이레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2300주야를 해석하는 매우 중요한 단서입니다. 기간 중에 일어나는 사건들을 역사적으로 확인하면 2300주야 예언의 진실성과 정확성이 입증될 것입니다.

8장과 9장은 하나의 역사를 묶은 예언입니다. 8장과 9장의 용어를 살펴보면 사실을 확인할 있습니다. 가브리엘은 다니엘에게 이상(mar’eh) 깨달을지니라.”(9:23) 하였는데, 말은 “2300주야 이상”, 8 이상(ḥazon) 관련된 부분을 지적하기 위하여 사용되었습니다. 가브리엘이 8장에서 다니엘에게 이상(ḥazon) 주었지만, 예언의 핵심이라고 있는 2300주야에 대해서는 설명하지 않았기 때문에, 다니엘은 환상(mar’eh)”으로 놀랐고깨닫는 사람도 없었”( 8:27)습니다.

2300주야의 시작점과 70이레의 시작점이 같은가다음의 내용을 살펴보면 기간의 시작점은 일치합니다. 첫째, 다니엘 8, 9장에서깨닫다(bin)”라는 동사가 사용되었는데( 8:27; 9:23), 경우 모두 성소와 관련이 있습니다. 둘째, 다니엘 9:24에서는 하늘 성소 봉사가 시작되는 반면, 다니엘 8:14에서는 동일한 성소가 정결케 됩니다.

내용을 연구해 보면 70이레 예언과 2300주야 예언은 서로 연결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다니엘 9:24 “70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ḥatak)”에서정했다라는 동사하타크분할하다” “잘라내다.”(to cut off)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70이레 2300주야라는 기간에서 부분을  잘라낸기간입니다.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에 70이레와 2300주야의 기산점이 같은 것입니다.

다니엘 9장은 8장을 설명하는 내용이다다니엘은 8장의 이상(異像) 보고 매우 놀랐고, 뜻을 이해할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9장에서 자신과 백성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면서 간절한 심정으로 하나님의 도움을 구했습니다. 때에이전 이상(8장의 이상) 중에 사람 가브리엘이”( 9:21) 다시 나타나서다니엘아 내가 이제 네게 지혜와 총명을 주려고 나왔나니그런즉 너는 일을 생각하고 이상을 깨달을지니라”( 9:22,23) 말하였습니다. 그리고 나서 70이레에 대한 설명을 시작한 것입니다. 이러한 순차적인 내용으로 보아서 다니엘 9장은 8장에서 이어지는 연관된 예언인 것이 분명합니다.

다니엘 7장과도 연관된 다니엘 9다니엘 7장에도 특정한 기간에 대한 예언이 나옵니다.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되어 때와 때와 때를 지내리라. 그러나 심판이 시작된즉 그는 권세를 빼앗기고 끝까지 멸망할 것이요.”( 7:25, 26). 때와 때와 ”( 12:7; 12:14), 반은 삼년 반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3 반은 42( 11:2; 13:5)이고, 42달은 1260( 11:3; 12:6)입니다. 성경절들을 찾아보면 모두 성도들이 세상의 세력으로부터 고난당하고 핍박당하고 순교당하는 내용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당하는 핍박의 기간입니다. 그러나, 심판이 이르면 하나님을 대적하며 백성들을 박해하던 악의 세력들이 모두 멸망 당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심판 성소와 관련이 있기 때문에 다니엘과 계시록에 예언된 핍박 기간 역시성소 정결 종결되는 2300주야 기간 안에 포함되어 있음을 확인할 있습니다.

역사 예언을 해석할 1일은 1년으로 환산한다 2300주야, 70이레(490), 1260 예언에 언급된 역사적 기간은 실제 역사에서 1일을 1년으로 환산하는 원칙이 있습니다.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 일로 정하였나니 일이 년이니라.”( 4:6).

너희가 땅을 탐지한 사십 일의 하루를 일년으로 환산하여 사십 년간 너희가 너희의 죄악을 질지니 너희가 나의 싫어 버림을 알리라 하셨다 하라.”( 14:34).

원칙에 의하면 2300주야는 실제 역사적 기간에서 2300년이고, 70이레(490) 490년이고 1260일은 1260년입니다. 사실을 염두에 두고 2300주야를 해석하면 순리적으로 해석이 되는 것입니다.

 

2300주야는 언제 시작되는가?

이제 예언(2300주야, 70이레) 시작되는 기산점을 가리키는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 9:25) 언제 내려졌는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역사적으로 예루살렘 중건령은 다음의 도표에서 보는 것처럼 있었습니다.

순서 조서를 내린 조서 연도 근거 성경절

3차에 걸쳐 내려진 조서 중에서 어떤 것이 다니엘 9:25 해당하는 중건령인지 가려내야 하기 때문에 차례의 중건령을 하나씩 점검을 보아야 합니다. 중요한 것은 명령에 의해서예루살렘 성전 중건되는 것이 아니고예루살렘성 전체 중건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유대인을 위하여 정해 주신 기간이기 때문에, 단지 성을 중건하는 정도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중건과 함께 그들에게 행정적 자치권까지 부여되어야 합니다.

고레스의 조서 의하여 스룹바벨과 세스바살의 인도 하에 유대인 42,000 명이 귀환하여 성전 건축에 착수하였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완공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므로 조서는 다니엘 9:25절에 해당되는 명령이 아닙니다.

다리오의 조서 공사 재개를 위해 내린 것으로, 516 BC 성전 중건 공사를 끝냈습니다. 그러나 전체를 복구하는 일이나 정치, 행정, 종교의 완전한 자치권은 회복이 되지 않았습니다.

아닥사스다의 조서 의해서 돌아온 에스라와 느헤미야 일행은 성읍과 성곽을 건축하고 지대를 수축하며 성전이 아닌 성읍 재건을 마무리하였습니다( 4:12, 13). 유대 역사에 정통한 존슨(Paul Johnson)느헤미야는 유다에 대한 총독권과 제국 내에서 유다를 독립적인 공동체로 세울 있는 권한을 부여받았다.” 증언하였는데, 이것은 정치적, 종교적으로 강력한 유대인 공동체의 출현을 예고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다니엘 9:25절에 해당되는 70이레의 시작점인 예루살렘 중건령은 457 BC, 아닥사스다가 내린 조서입니다.

 

70이레와 2300주야에 대한 해석

그리하여 70이레는 아닥사스다에 의해서 457 BC 내려진 중건 명령으로 시작하여 34 AD 끝납니다. 70이레 기간 중에 명시된 연도에 대하여 간단하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주전 457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9:24)

아닥사스다 왕이 주전 457년에 예루살렘 중건령을 내렸고, 이때로부터 이스라엘을 위한 70이레(490) 기간이 시작된 것입니다.

주전 408 그러므로 너는 깨달아 알지니라 예루살렘을 중건하라는 영이 때부터 기름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나기까지 일곱 이레와 육십이 이레가 지날 것이요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 9:25).

여기에서기름부음을 받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합니다. 주전 457년부터 7이레(49) 62이레(434) 지나면 그리스도(메시야, 기름부음을 받은 ) 출현할 것을 예언한 것입니다. 그런데 앞에 7이레가 먼저 분리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주전 457년에서 7이레(49) 지난 주전 408년에는 어떤 일이 일어났습니까?

본문 중에 곤란한 동안에 성이 중건되어 거리와 해자가 이룰 것이며라고 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 전체가 중건되는 기간이 49 정도 소요되었고, 주전 408년에 마쳤습니다. 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온 유대인들이 자치 행정을 시작할 만큼 예루살렘 전체가 준공되었고, 종교적 전통을 확고히 세우는 시점이 것입니다.

주전 408 이집트의 엘레판틴네(Elephantine) 공동체에서 유대 지도자들에게 보내온 파피루스 편지가 발굴되었는데, 엘레판틴네에 여호와를 위한 성전이 2 넘게 파괴된 있으니, 성전을 재건할 있도록 도와달라는 내용이 나옵니다. 유대인들이 아직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고 있었지만, 팔레스타인의 유대인 공동체가 자치권을 확보하고 해외 유대인 세계에 영향력을 발휘하기 시작하였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매우 중요한 내용입니다.

유대인 역사에 정통한 예일대학교 구약학 교수인 C. F. Kent 시기를유대인 역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린 시대라고 말하며, 정치적 종교적 변화의 때였다고 지적합니다. (“The Makers and Teachers of Judaism”, 11).

주후 27기름 부음을 받은 왕이 일어나기까지”( 9:25).

이미 언급한대로기름부음을 받은 메시야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께서 30세에 침례를 받으시고 공생애를 시작한 해가 바로 주후 27년입니다. 예수께서 실제로 탄생하신 해가 주전 4년이기 때문에 연대가 그렇게 됩니다. “ 물에서 올라 오실새 하늘이 갈라짐과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자기에게 내려오심을 보시더니”( 1:10). ‘기름 성령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침례받으신 시점에기름부음을 받은 일어났다고 하는 것입니다.

주후 31육십이 이레 후에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질 것이며  그가 장차 많은 사람으로 더불어 이레 동안의 언약을 굳게 정하겠고 그가 이레의 절반에 제사와 예물을 금지할 것이며”( 9:26,27)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해가 주후 31년입니다.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끊어져 없어 것입니다. 그리고, 기름부음을 받은 자가 일어난 이후 이레(7) 절반에제사와 예물을 금지하겠는다는 말은, 예수께서 십자가의 희생제물로 돌아가시는 순간 성소의 모든 제사와 예물을 드리는 일이 끝났음을 말합니다. 이레의 절반에 해당되는 해가 바로 주후 31 주님이 돌아가신 해입니다.

주후 34 백성과 거룩한 성을 위하여 칠십 이레로 기한을 정하였나니”( 9:24)

유대 백성을 위한 70이레(490) 기간이 주전 457년에 시작되었으니까, 기간이 끝나는 해는 주후 34년입니다. 유대 백성을 위한 기간은 스데반이 돌아 맞아 순교하는 사건(주후 34) 통해서 복음이 이방으로 전파되어 나감으로 끝났습니다.

사울이 그의 죽임 당함을 마땅히 여기더라 날에 예루살렘에 있는 교회에 핍박이 나서 사도 외에는 유대와 사마리아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8:1).

이렇게 해서 유대인은 위하여 설정된 70이레(490) 기간이 끝나고 기독교회 시대가 열렸습니다. 2300주야 예언의 출발점과 함께 시작된 유대인을 위한 기간(490) 끝났지만 2300주야는 끝나지 않았습니다.

주후 1844다니엘 8장과 9장에 걸쳐서 예언된 2300주야의 기산점은 이미 언급한대로 유대 백성을 위한 490 기간의 시작과 일치하는 주전 457년입니다. 그리고 유대 백성을 위한 기간은 실제 역사에서 주후 34년에 끝났습니다.

그러나 2300 기간이 마치려면 주후 34년부터 1810년이 지나야 하고, 해는 1844년이 됩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2300주야까지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8:14) 말씀을 다시 한번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까지 계산한 바에 의하면 2300주야는 1844년에 마쳐집니다.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고 하였는데, ‘성소 정결이란 성소 제도에서 대속죄일에 진행되는심판 관련된 용어입니다. 그러니까, 1844년에 하늘 성소에서 성소 정결 사건(심판)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2300주야는 지상 성소가 사라진 1800 이상이 지난 후에 끝나는 것이고,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고 하였으니 지상의 성소는 당연히 아니고, 하늘 성소와 관련이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3] 하늘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무엇인가?

죄악 세상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억울하게 박해를 당하고 순교를 당하는 것은 피할 없는 역사입니다. 세속의 세력들이 사탄의 지배와 영향아래 있기 때문에 끊임없이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그분의 교회를 파멸하기 위하여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세력이 강하고 마치 승리할 것처럼 보여도 마침내 모든 악의 세력들은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것이며 그분의 교회와 성도들이 승리할 것입니다. 다음의 성경절을 유심히 살펴보시면, 바로 이러한 역사와 과정을 문답식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 내가 들은즉 거룩한 자가 말하더니 다른 거룩한 자가 말하는 자에게 묻되 이상에 나타난바 매일 드리는 제사와 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일과 성소와 백성이 내어준 되며 짓밟힐 일이 어느 때까지 이를꼬 하매

[] 그가 내게 이르되 이천삼백 주야까지니 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하였느니라.”( 8:13, 14).

다니엘서 8:13, 14 성경 예언 중에서 가장 중요한 국면을 다룹니다. 이유는 거룩한 자들이 묻고 답하는 형식으로 계시되었고, 그들이 다루는 주제가 명백한 기간을 가리키며, 내용이 성소 정결이기 때문입니다. 거룩한 자들의 질문과 대답은 그들이 이야기의 주제를 철저히 이해하고 있으며, 예언을 만유 앞에 공개하고 확고하게 다지려는 의도입니다. 그리고 기간을 예측하거나 무리한 가능성으로 계산하지 않도록 정확히 제시한 역시 예언의 확실성과 역사성을 더해 주고 있습니다.

 

정결함에 대한 선언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선언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정결함은 대부분 사함의 의식을 드린 후에 얻는 결과이거나, 병으로부터 나음을 얻은 얻는 최종 판정이기 때문입니다.

제사장은 번제와 소제를 제단에 드려 그를 위하여 속죄할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정결하리라.”( 14:20).

사람이 정결하게 되는 것은 제사와 의식을 통하여 가능한 일이지만, 특정한 장소로서의 성소가, 어떤 공간으로서 성소가 정결하게 된다는 것은 매우 특별한 경우이고, 드문 표현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소가 정결하게 되는 특별한 과정을 속죄일에서 발견하게 됩니다. 속죄일에 성막이 정결하게 됩니다.

이스라엘 자손의 부정과 그들이 범한 모든 죄로 말미암아 지성소를 위하여 속죄하고 그들의 부정한 중에 있는 회막을 위하여 그같이 것이요.”( 16:16).

매일의 봉사를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의 죄와 부정이 성소로 옮겨졌기 때문에 이제 속죄일에 성소와 그곳에 오염된 것들의 정결이 필요하였습니다. 날의 의식들이 성소와 제단들을 정결케 하였지만( 16:16, 18; 30:10), 실제적으로는 예식들을 통해서 백성들을 정결케 하는 것이 최종 목표였습니다.

그날에 여호와께서는이스라엘 백성 심판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변론하러 일어나시며 백성들을 심판하려고 서시도다.”( 3:13). 그분은 그들이 자신을 낮추었는지, 참으로 그분의 정결케 하는 능력과 용서하시는 은혜에 의존하고 있는지를 평가하셨습니다( 23:29). 자신을 괴롭게 하거나 겸비케 하지 않고 여호와 안에서 쉬지 않은 사람들은 이상 하나님의 백성의 일원이 없이 하나님께서그의 백성 중에서 멸절”( 23:30)시키셨습니다. 속죄일은 백성들을 심판하시는 날로서, 구원받는 자들에게는 성결과 옹호를 선언하셨고, 멸망 받는 자들에게는 부정과 저주가 주어졌습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드리는 중보자로서의 의식은 매우 중요할 아니라 속죄일의 성과를 좌우하기도 합니다.

제사장의 직분을 행하는 제사장은 속죄하되 세마포 거룩한 옷을 입고 지성소를 속죄하며 회막과 제단을 속죄하고 제사장들과 백성의 회중을 위하여 속죄할지니 이는 너희가 영원히 지킬 규례라 이스라엘 자손의 모든 죄를 위하여 년에 속죄할 것이니라.”( 16:32-34).

년에 있는 속죄일과 제사장의 지성소에서의 봉사는 불가분의 관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늘 성소의 정결

성소가 정결하게 함을 입으리라.”( 8:14) 선언을 해석하려면정결하게 하다.”(nitsdaq, be cleaned) 의미를 확인해야 합니다. 용어는 몇몇 다른 방식으로 번역되는데, ‘성소 관련하여정결케 하다.”(cleanse), ‘관계 관련하여회복하다.”(restore), 그리고법률적인 입장에서옹호하다.”(vindicate)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다니엘이 사용한 동사의 형태는 구약의 다른 곳에서는 번도 사용되지 않고, 오로지 여기서만 물리적인 구조물인 성소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습니다.

차다크’(정결) 용례들 동사의 어근차다크’(tsadaq) 일차적인 용례는 사법적인 것인데, 변호가 필요한 사람의 법적 권리를 회복시키며( 7:8; 9:4; 50:8, 9), 의인들은 무죄하다고 선언되고 고소자들은 정죄를 당합니다(대하 6:23; 25:1). 이러한 사법적 용례는 종교적 입장에서 하나님의 구속이라는 개념과 일치합니다. 구속으로서의 하나님의 공의는 압제자를 멸망시키므로 완결되고, 조화와 질서가 다시 회복됩니다( 71; 143:11, 12). 차다크(tsadaq) 의미인정결케 하다, 옹호하다, 의롭게 하다.” 성소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사법적, 구속적 사역의 과정을 모두 포함하는 용어로서 적절하며, 문제가 어떻게 해결되는지도 보여주고 있습니다.

다니엘 7 심판의 국면하늘 성소의 정결은 다니엘서 7장의심판을 베푸는”( 7:10) 장면과 연관을 갖습니다. 심판은 하늘에서 진행되는 심판을 말합니다. 심판장이 등장하는데왕좌가 놓이고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가 좌정하셨”( 7:9)습니다. 옛적에 백성들을 심판하실 때에 그러하셨듯이불이 강처럼 흘러 그의 앞에서 나오며”( 7:10), 증인들로서섬기는 자는 천천이요 앞에서 모셔 자는 만만”( 7:10)이며, 심판을베푸는데 책들이 놓였”( 7:10)습니다. “책들 심판받는 자들을 면밀하게 조사할 있는 생애의 기록을 담고 있습니다. 증인들과 책들은 사람들을 조사하며 살펴보는 중이며, 아직 집행되는 것은 아님을 말합니다.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앞으로 인도되매”( 7:13),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 7:14) 주어집니다.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7:14) 되었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 7:14)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마지막은옛적부터 항상 계신 자가 와서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위하여 신원하셨고 때가 이르매 성도가 나라”( 7:22) 얻게 됩니다.

심판의 목적은 구원받은 자를 옹호하고 확정하는 것임하나님의 심판에는 양면이 있습니다. 첫째는 사탄의 입장에서 구원받기에 합당하지 않게 보이는 자들을 어떻게 해서라도 구원받을 있는 근거를 찾아내어 구원을 확정짓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성소를 정결하게 한다는 여러 의미 중의 하나는신원하심” “옹호하심입니다. 회개한 죄인을 그리스도의 은혜로 옹호하시어 구원을 받게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결론입니다.

하나님은 거룩하고 성결한 분이시기에 때문에, 그분과 함께 영원히 살게 성도들은 정결하게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다니엘 7장을 관통하고 있는 심판과정을 가장 설명하는 용어가정결하게 하다.”(nitsdaq)입니다. 그리고 심판의 다른 국면은, 하나님의 이러한 사랑과 은혜의 초청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하나님을 대적하며 불신하는 사람들이 결과적으로 받을 수밖에 없는 보응입니다. 하나님은 죄와 함께 거할 없는 분이기 때문에, 죄를 정결하게 함을 받지 못한 사람은 하나님과 함께 없기 때문에 결국 멸망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따라서 8장의 하늘 성소의 정결은 7장에서 시작한 심판대 앞에 놓인 책들을 통한 심판과 하나님의 옹호하심 그리고 악한 세력의 멸망으로 완성되고 완결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은혜의 시기

다니엘 8:13, 14절에 의하면망하게 하는 죄악에 대한 성소와 백성이 내준 되며 짓밟힐 2300주야 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그리고그때에 성소가 정결하게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말은 2300주야 끝에 성소 정결이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시작된다는 의미입니다. 그렇다면 지상 성소에서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 하나님 앞에 중보자로 서듯이, 1844년은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 들어가셔서 중보자로서의 봉사를 시작한 해가 됩니다.

그리고, 지상 성소에서 제사장이 언제 나올지 정한 바가 없었듯이, 1844 이후 대제사장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늘 지성소에서 언제 나오실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래서 그분이 지성소 봉사를 마치고 나오기까지 우리는 하나님께서 베풀어 놓으신 은혜의 시기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는 여전히 죄를 해결하여 정결케 함을 받을 있는 시기에 살고 있으며, 악인들이 회개하고 돌아오면 구원을 받을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는 말입니다.

이상 시간이 없다 말의 요한계시록 10:6에서 천사가시간이 이상 없으리니”(KJV, “There should be time no longer.”)라고 하였습니다. 개정표준역은지체하지 아니하리니.”라고 번역하였는데, 이것은 다소간 모호한 번역이라고 생각됩니다.

다니엘서(7:25; 8:14; 9:24; 12:11, 13) 요한계시록(9:15; 11:3; 12:6)에서 기간에 관한 예언들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1844년에 끝나는 2300주야는 예언적 시간 가장 기간인데, 요한계시록 10:6 예언 기간이 성취되었고 이상 시간에 대한 예언은 없다고 진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구원의 완성만이 여전히 미래일 뿐이고, 예언적인 모든 기간은 완료되었습니다. 그러니까, ‘ 이상 시간이 없다 말의 의미는, 2300주야 예언이 끝인 1844년이 예언적 기간으로는 마지막이고, 어떤 기간이나 시간에 관한 예언은 이상 없다는 말입니다. 지금은 예언적 시간으로 남은 때가 없으나 여전히 은혜의 시간은 남아 있습니다.

속죄일이 지나고 있는 동안 백성들이 지금은 속죄일의 어느 시점을 지나는 중입니다. 속죄일에 백성들이 해야 일이 있었습니다. “ 날에 너희를 위하여 속죄하여 너희를 정결하게 하리니 너희의 모든 죄에서 너희가 여호와 앞에 정결하리라.”( 16:30). 성소 정결의 대상으로 성막 자체도 해당되지만, 16:30너희라는 말이 반복되어 나옵니다. 그날의 주인공이너희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너희가여호와 앞에 정결해야 한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여호와 앞에 정결 인간 스스로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스스로를 정결함의 수준과 상황에 맞추어야 한다는 말이 결코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그분의 판단에, 그분이 요구하는 바에, 그리고 여호와께서 부여하신 기준에 따라 정결이 판가름 난다는 의미입니다.

날은성회를 열고 스스로 괴롭게 ”( 23:27) 날입니다. “스스로 괴롭게”(anah, to be afflicted, 23:27, 29, 32) 하는 일은 번역본에 따라 가지 해석이 있는데, 하나는 금식하는 (not eat anything at all)으로, 다른 하나는 자신을 부인하는 (to deny yourselves)으로 번역되었습니다. 둘은 서로 같은 의미로 자주 언급되는 , 하나님 앞에서 간구하며 기다리는 자의 모습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처럼 1844 이후로 시작된 대속죄일 기간에, 다시 말해서 정결하게 함을 입어야 하는 시기를 살아가는 성도들은, 오늘이 나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한 관계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기억해야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오늘의 의무를 이행하고 오늘의 시련을 감내하도록 요구하신다. 우리는 오늘 말과 행동에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찬양하고 그분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 오늘 믿음을 활용함으로써 우리는 원수를 정복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을 찾고 그분이 없이는 안식을 얻을 없다는 것을 결심해야 한다. 우리는 오늘이 우리에게 주어진 마지막 날인 것처럼 깨어 있고 활동하고 기도해야 한다. 그렇게 되면, 우리의 생애는 참으로 진지해질 것이다. 우리는 모든 말과 행동에서 예수님을 밀접히 따르게 것이다.” (2TT, 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