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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하나님은 왜 침묵하실까요?

한 목사님이 세 살짜리 아들을 잃은 고통을 <내가 죽으면 아빠 울 거야?>라는 이름의 책으로 출간했습니다. 아이는 혼수상태로 중환자실에서 지내야 했는데, 그때 아들을 돌보면서 자신의 마음을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들아, 아빠는 말로 다할 수 없을 만큼 너를 사랑한다. 네가 당하는 고통을 줄일 수만 있다면, 아빠는 무슨 일이든지 다할 수 있단다. 할 수만 있다면 너 대신에 내가 그 자리에 누울 수도 있단다. 아들아, 너를 잃어버린다는 생각만으로도 내 마음은 견딜 수 없는 슬픔 때문에 심장이 아파오는구나. 오직 하나님만이 이 아빠의 눈물과 기도의 의미를 이해하실 것이다. 내 아들아, 네가 이 땅에서 없어진다고 생각하면 너 없이 목사로서 계속 살아갈 수 있을지 두렵구나. …사랑하는 아들, 아빠의 자랑이고 기쁨이었던 아들아 잘 자거라. 그러나 아빠는 기도하고 있단다. 네가 원래의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해 달라고.”

목사님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아들의 병은 점점 더 악화되어 결국 입원한 지 5주 만에 사망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하나님께서 세 살짜리 아들의 생명을 거두셨는지 이해할 수 없어서 날마다 밤마다 혼돈과 고통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러다가 한 생각이 떠올랐는데, 그 생각이 목사님을 고통에서 구원했습니다. 목사님은 침례 요한의 죽음을 막지 않으신 그리스도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목사님은 침례 요한이 사형장의 이슬로 사라지는 순간까지 예수께서 그를 방문하지 않으셨던 사실을 기억했습니다. 요한의 생애는 죽는 순간까지 고독과 외로움의 계속이었습니다. 목사님은 “왜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어두운 감방 속에서 신음하다가 죽어 가도록 내버려 두셨을까?”를 생각했습니다. 인간의 통찰력으로는 그 어두운 섭리의 신비를 투시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요한 역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한 한 사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께서도 십자가에서 외롭게 죽어가셨습니다. 마지막 죽음의 순간까지 홀로 그 길을 걸었습니다. 그러므로 침례 요한이 동참했던 것처럼, 그리스도를 따르는 종들도 하나님의 침묵 속에서 외로운 길을 걸어야 합니다.

침례 요한을 추종하던 사람들이 요한의 구명 운동을 위하여 애쓰고 있을 때, 예수께서는 당신의 종인 요한을 구출하는 일에 개입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요한이 그 시험을 견뎌낼 것을 아셨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요한의 감옥을 찾아가심으로써, 요한의 마음에 기쁨을 주실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슬픔을 마음에 숨기고 당신께서 지상에 오신 유일한 목적에 모든 초점을 맞추셨습니다.

장차 오랜 세월 동안 감옥에 갇혀서 살다가 외롭게 죽어 갈 예수님의 제자들과 초대 교회의 사도들을 위하여 요한은 고독한 순교의 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중세기의 종교 암흑시대 동안,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외로운 옥중에서 사람들로부터 완전히 외면당하고, 하나님마저도 아무런 기적적 증거를 주시지 않을 때, 그들은 침례 요한의 외로운 죽음을 기억하면서 위로받았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침묵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침묵하실 때, 그 침묵의 이유와 의미를 신뢰하는 사람들은 환난과 고통 가운데서도 끝까지 믿음을 지킬 수 있습니다.

비록 요한이 기적적인 구출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하나님께서 그를 버렸거나 그의 고통과 고뇌를 외면하셨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늘의 천사들을 옥중에 보내서 그와 함께 거하도록 하셨으며, 그리스도의 구속 사업에 관한 진리가 그 앞에 분명하게 펼쳐지도록 섭리하셨습니다. 죽음을 맛보지 않고 하늘로 승천한 에녹이나 불병거를 타고 하늘로 승천한 엘리야일지라도, 결코 옥중에서 외롭게 죽은 침례 요한보다 위대하거나 높은 영예를 받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심이라”(빌 1:29).

이러한 일련의 생각들은 목사님에게 다음과 같은 신앙을 가르쳐 주었습니다. “하늘의 하나님께서 내 아들의 고통을 보시면서 무거운 침묵을 지키셨으니 나도 침묵을 지키면서 믿음으로 전진해야 한다.”라는 결론을 얻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것이 고통과 시련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배우는 신앙입니다. 한동안 고통과 깨달음의 시간이 흐른 후에 목사님은 자신의 경험을 되돌아보며 이렇게 회고했습니다.

“내 아들이 의식주 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부모인 우리에게 완전히 의존하고 있었던 것처럼, 우리는 완전히 하나님께 의존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내가 아들을 위해 내 목숨까지 바치기 원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이 땅에 보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지극히 높으신 분이셔서 온 우주를 주관하시지만, 내 어린 아들의 생애도 지배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내 어린 아들을 구원하기 위해서 당신의 아들을 십자가에 내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나와 내 아내는 아들을 잠재우기로 결정하신 하나님의 선택을 신뢰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하나님의 섭리와 계획 속에 내 아들의 생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결론에 도달했습니다.”

목사님은 사랑하는 아들을 잃은 혹독한 시련을 통해 인류의 속죄를 위해서 독생자를 바치신 하나님의 사랑을 더 깊이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의 아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 갈 때 침묵하셨습니다. 당신의 아들을 구하기 위해서 어떤 행동도 취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그 길밖에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이렇게 단언했던 것입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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