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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 어떤 신앙을 선택하겠습니까?

성경은 “네 이웃을 사랑하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네 원수를 사랑하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계명에 순종하라”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거룩하게 살라”고 말합니다. 성경은 늑대와 같은 본성을 가진 우리에게 양처럼 살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늑대로 태어난 우리가 어떻게 양으로 살아갈 수 있을까요? 그리스도인의 영적 경험은 무엇을 믿는가에 따라서 달라지게 됩니다. 내가 믿고 추구하는대로 내 경험이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정말 “여자의 후손”이 되기 원한다면, 하나님의 복음이 어떤 것이고 그것을 어떻게 경험해야 하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는 세 갈래 길이 있습니다. 다음에 소개하는 세 가지 신앙 중에서 어떤 신앙을 따라가고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율법주의적 신앙

율법주의적 신앙으로는 “여자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율법주의는 늑대도 그 겉모습을 잘 바꾸면 양으로 변화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입니다. 늑대에게 성형 수술을 해주면 양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이런 신앙을 받아들이면, 늑대를 양으로 변화시키기 위하여 늑대의 겉모습을 완벽하게 바꿔 나가려고 애쓰게 됩니다. 늑대의 본성 위에 양의 탈을 씌우고 양처럼 말하는 훈련을 하고 발톱도 부드럽게 깍아주고 털을 하얗게 물들인 다음에 파마를 해주면 언젠가는 양이 될 수 있다고 믿는 분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래서 늑대의 본성이 올라오지 않도록 금식하기도 하고, 늑대가 원하는 쾌락과 정욕을 금지시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한다고 늑대가 양이 될까요? 늑대는 굶어도 늑대이고, 금욕을 해도 늑대일 뿐입니다. 기회만 오면 늑대의 본성을 드러내게 됩니다.

율법주의적 신앙을 갖게 되면, 마음속에는 이기심과 탐욕이 그대로 있어 마음속으로는 세상을 사랑하면서, 겉모습과 행위를 양처럼 바꾸어 가게 됩니다. 열심히 바꿔가다 보면 언젠가는 양이 되어서 구원에 이르게 된다는 헛된 희망을 갖고 살아갑니다. 이것이 바로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었던 문제였고, 오늘날에도 많은 그리스도인들에게 큰 영적 걸림돌이 되고 있습니다.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삶 전체가 종교적 행위로 가득차 있지만, 영혼의 평안과 구원의 기쁨이 없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내 힘, 내 노력으로 애쓰고 투쟁하다가 결국에는 지치고 좌절하게 됩니다. 율법주의적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 중 많은 분들이 신실하게 살려고 애쓰고, 말씀에 순종하려고 노력하지만, 새 언약의 경험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문제에 걸려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경험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은 성경 말씀 앞에서 깊은 고민에 빠지게 됩니다. “너희가 믿음 위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고후 13:3).

율법적 신앙의 덫에 걸리면 이렇게 됩니다. 죄를 범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죄를 범하게 되고, 선을 행하고 싶은데 자꾸 악을 행하게 됩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 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롬 7:14, 15, 18, 19). 이런 경험 속에 있는 그리스도인은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살고 싶은데, 자꾸 실패하게 됩니다.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고 싶은데 자꾸 불순종하게 됩니다. 내가 원하는대로 살지 못하는 노예의 모습으로 살게 됩니다. 그래서 늘 정죄받는 느낌을 갖게 되고, 양심의 가책으로 고통받아 깊은 절망을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열심히 노력하고 선교하고 봉사하지만, 마치 출구가 없는 방에 갖혀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여러분 중에 혹시 이런 문제를 가진 분이 계십니까? 그런 분들은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그는 육체에 상관된 계명의 법을 좇지 아니하고 오직 무궁한 생명의 능력을 좇아 된 것이니”(히 7:16). 율법적 신앙에서 벗어나려면, 법과 원칙을 쫓아가는 대신 생명을 쫓아가야 합니다. 그렇다고 해서 법과 원칙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라 법과 원칙을 지킬 수 있는 마음을 먼저 가져야 한다는 뜻입니다.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에 대한 말씀을 깊이 살펴보고 명상해야 합니다. 예수께서 나를 위해 흘리신 피를 바라보시기 바랍니다. 그렇게 될 때, 그리스도의 거룩한 사랑과 은혜가 성령을 통해서 마음속에 흘러들어가 더러운 양심을 씻어서 새로운 양심으로 변화시켜 주십니다.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뇨”(히 9:14). 그리스도의 피가 우리의 양심과 마음을 씻어주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 성령의 음성을 따라가는 열매가 우리 속에 자연스럽게 맺혀지게 됩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고 했습니다(롬 8:12). 바울은 우리가 빚진 자이기 때문에 육체의 욕망을 따라갈 수 없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에게 어떤 빚을 졌다는 말인가요? 그리스도께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습니다. 여러분과 저를 살리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늘의 왕께서 하늘을 포기하고 이 땅에 내려와 핍박을 피해서 이 동네 저 동네로 피신하면서 복음을 전했습니다. 더럽고 먼지나는 유대 땅에서 목수의 아들로 살다가 결국에는 십자가에 달렸는데, 아무도 그분을 구세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아무도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께서는 끝까지 죽음의 길을 홀로 걸으셨고 십자가에 피를 뿌리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외로운 삶과 피가 아니었으면 우리 모두는 소망이 없은 사람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무엇으로도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지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라”는 사도 바울의 말은 하나님께 큰 빛을 졌는데 어떻게 우리가 성령의 음성에 등을 돌릴 수 있냐는 말입니다. 갚을 수 없는 큰 빚을 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거절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너무나 큰 빚을 지고 있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배반할 수 없고 그분을 다시 십자가에 못질 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혹시, 율법주의적 신앙 때문에 고민하고 계십니까? 이제 십자가에 가셔서 모든 짐을 내려놓으시기 바랍니다. 어두운 금욕주의나 허망한 율법주의를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빚진 자”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생명을 받아서 예수님과 동행하게 되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말씀과 계명 안에 거하는 하늘의 열매가 맺히게 됩니다.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세속적인 신앙

세속적인 신앙을 가지면, “여자의 후손”이 될 수 없습니다. 세속적인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늑대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늑대처럼 살 수 밖에 없습니다.” 어떻게 보면 정직하게 들리는 말입니다. 그러나 그것처럼 그리스도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말도 없습니다. 그것처럼 깊은 기만도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예수께서 늑대인 자신들을 양으로 인정해주실 것이라고 기대하는 것은 세속적 신앙입니다. 그래서 세속적 신앙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죄와 세상에 대해서 “적개심(emmity)”을 갖지 않게 됩니다. 세속적 복음을 가르치는 사람들은 “우리가 양은 아니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양이 된 것으로 취급해주신다”고 가르칩니다. 정말 그럴까요?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너무나 분명한 말씀입니다. 늑대의 말을 하고, 늑대의 생각을 하고, 늑대처럼 살아가면 그것은 늑대라는 것입니다. 좋은 나무가 아니라 나쁜 나무라는 것입니다. 아름다운 열매가 아니라 나쁜 열매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주신 말씀에는 오해하거나 혼돈할 여지가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서 이상한 복음들이 인기를 끌고 있는데, 그런 복음들은 한결같이 늑대의 모습 그대로 살아도 구원받을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사람은 육체의 정욕에 끌려다니는 삶을 살 수밖에 없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그것은 위험한 복음입니다. 주 안에서 거듭나고 생애를 하나님께 드린 영혼은 사도 바울이 말한 이 경험을 하게 됩니다.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갈 5:16).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늘은 태초 이전에 루스벨의 반역으로 하늘 천사의 1/3을 잃어버리는 뼈아픈 경험을 했습니다. 하늘의 천사들은 반역의 정신과 불순종의 정신이 어떤 일을 일으키는지 잘 압니다. 만약 늑대같은 사람들이 구원받아서 천국에 들어 온다면, 그들의 변화되지 않은 성품과 반역의 정신 때문에 온 우주가 또 다시 큰 전쟁에 휘말리게 될 것을 잘 압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늑대의 정신으로 사는 악인들에게 반드시 형벌이 내려지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소돔과 고모라 성을 멸망하기로 정하여 재가 되게 하사 후세에 경건치 아니할 자들에게 본을 삼으셨으며 무법한 자의 음란한 행실을 인하여 고통하는 의로운 롯을 건지셨으니�. 주께서 경건한 자는 시험에서 건지시고 불의한 자는 형벌 아래 두어 심판 날까지 지키시며 육체를 따라 더러운 정욕 가운데서 행하며 주관하는 이를 멸시하는 자들에게 특별히 형벌하실 줄을 아시느니라”(벧후 2:4~10)

 

성경이 말하는 신앙

성경이 말하는 신앙대로 살아야 “여자의 후손”이 됩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아무리 잔인한 늑대라고 할지라도 양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신앙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지독한 구두쇠며 돈을 사랑하는 늑대 삭개오도 양으로 변화될 수 있음을 믿는 신앙입니다.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짜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 배나 갚겠나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눅 19:8, 9). 성경이 말하는 신앙은 일곱귀신 들렸던 창녀 막달라 마리아도 양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 동네에 죄인인 한 여자가 있어�. 향유 담은 옥합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뒤로 그 발 곁에 서서 울며 눈물로 그 발을 적시고 자기 머리털로 씻고 그 발에 입맞추고 향유를 부으니”(눅 7:37, 38).

늑대도 양으로 변화될 수 있다는 복음은, 예수께서 니고데모라고 불리우는 늑대에게 직접 주신 복음입니다. 한번은 니고데모라는 이름을 가진 젊잖은 늑대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이렇게 물어보았습니다. “내가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겠습니까?” 그때 예수께서 직접 가르쳐 주신 복음이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요 3:5~7). 예수께서는 니고데모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니고데모야 너는 늑대란다. 그러나 네가 진정 양이 되고 싶으면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야 한다.인간의 어떤 노력으로도 늑대는 결코 양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나님께서는 하실 수 있습니다. 늑대가 양으로 변화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하나님께서 늑대의 마음을 다시 창조해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애 전체를 주님께 드려서, 그분께서 직접 집도하시는 수술대 위에 누워야 합니다. 저항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주께서 우리의 마음속에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을 넣어주실 수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빌 2:5). 늑대의 본성을 가진 우리가 예수님의 마음을 품는 것은 창조의 역사입니다.

그런데 늑대의 본성을 가진 우리 속에 예수님의 마음을 넣어주시는 역사는 어떻게 일어나게 될까요?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할 수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예수님의 마음을 갖게 해 달라고 소원하고 간구하는 것입니다. 주 앞에 나가 교만과 죄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간구해야 합니다. 이기심으로부터 구원해 달라고 주님께 매달려야 합니다. 베데스다의 연못가에서 38년 동안 기다렸던 앉은뱅이와 같은 절박한 심령으로 “주여 나를 불쌍히 여기시옵소서”를 부르짖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던 혈루병 걸린 여인의 심령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어야 합니다.

그들의 간절한 심령은 어느날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오랜 세월동안 정죄와 절망 속에 살아온 사람들이었습니다. 인간적인 방법으로 이것 저것 다 해보았지만 모두 실패했습니다. 마지막 남은 희망은 예수님 밖에 없었습니다. 우리에게도 그런 간절함이 있어야 합니다. 오랜 세월동안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면서 죄와 세상에 끌려다니고, 사탄에게 이용당하는 지긋지긋한 삶을 산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유일한 희망으로 바라보게 될 것입니다. 그분을 향해서 손을 뻗게 될 것입니다.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구원해 주시옵소서”라고 부르짖는 간절한 영혼의 절규가 있는 사람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께 나갈 것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마음을 여기까지 이끌어 주시면, 늑대가 양으로 변화되는 창조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성령께서 죄책감과 세속에 지친 우리의 마음을 만지시고 위로해 해주실 것입니다. 그런 역사가 우리의 심령 속에서 일어나면, 오래 동안 주님을 믿었지만 한번도 하지 못했던 참된 회개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온 마음을 다해서 진리를 사모하게 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것을 최고의 특권으로 생각하게 됩니다. “내가 어떻게 해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을까?”를 고민하면서 살게 됩니다. 이런 마음에는 율법주의나 세속적 신앙 같은 것들이 발붙힐 틈이 전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물과 성령의 역사를 통하여 늑대가 양으로 변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성경에서 물은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간절한 심령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그 말씀을 통하여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시는데, 그때 그 말씀은 생명수가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말씀을 읽지만, 그것이 마음속에 들어가 생명수가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의 역사가 없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너무나 교만하고 세속적이어서 성령께서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영적 무기력증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간절한 소원이 없기 때문에 역사하실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들에게 있어서 성경은 죽은 글자와 지식으로 남게 됩니다. “그들은 들은 바 말씀이 저희에게 유익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을 화합지 아니함이라”(히 4:2). 그러나 낫고자하는 앉은뱅이의 심령으로 말씀을 읽으면, 낫고자 하는 문둥병자의 마음으로 말씀을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은 말라서 죽어가던 우리의 영혼에 생명을 주고 소생시키는 하늘의 능력이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죄와 세상을 사랑하는 늑대의 마음이 사라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무겁고 힘들게 생각하던 정신이 사라지게 됩니다. 그토록 버릴 수 없었던 죄가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늑대의 본성이 지배력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육체의 정욕이 마음을 지배하는 대신에 성령께서 마음을 지배하게 됩니다. 참된 거듭남은 물(말씀)에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말하는 빛과 진리를 거절하거나 무시하지 말아야 합니다.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요 8:32). 하나님의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거룩함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물과 성령의 역사가 우리 마음에서 시작되면, 성경에 나오는 위대한 믿음을 가진 사람들이 왜 그렇게 살았고, 왜 그런 신앙을 가졌는지가 이해되기 시작합니다. 예수님의 발을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씻겼던 막달라 마리아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내 속에도 그런 마음이 생겼기 때문입니다. 삭개오의 회개가 당연한 것으로 느껴지게 됩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애굽 왕의 자리를 포기했던 모세의 마음이 내 마음에도 생기게 됩니다. 성경에 등장하는 위대한 사람들의 심령이 내 마음에 와 닿게 됩니다. 이것이 늑대가 양으로 변화되었을 때 일어나는 하늘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마음과 생애 전체가 하나님께 드려지게 되면, 성경은 더 이상 어렵거나 지루한 책이 안 됩니다. 기도는 더 이상 형식적이고 무의미한 것이 될 수가 없습니다. 우리는 드디어 하나님을 “나의 하나님”이라고 부를 수 있게 됩니다! 성경 말씀이 생명수가 되어서 창조의 역사가 우리 속에서 시작되면 하나님은 내게 있어서 모든 것이 됩니다. 마음은 행복과 기쁨과 감사로 채워지게 됩니다. 전에 좋아하던 것을 싫어하게 되고, 전에 싫어하던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가난한 사람을 위해서 주머니를 열게 됩니다. 병든 사람의 귀에 위로를 들려 줄 수 있게 되고, 외로운 사람의 친구가 되어 줄 수 있게 됩니다. 마음이 진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사모하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의를 행하고 말씀에 순종하게 되는데, 이것이 성경이 말하는 열매맺는 신앙입니다. 늑대의 생애에는 가시나무가 자라고 추한 죄의 열매들이 맺히지만, 양에게는 아름답고 풍성한 성령의 열매가 맺히기 때문에 세상에 빛이 되어 살아갈 수 있습니다.

 

계명을 지키는 신앙

성경이 말하는 참된 거듭남을 경험한 그리스도인은 여자의 후손의 특징인 “계명을 지키는 신앙”이 어떤 것인지 이해하고 경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사랑은 그분의 계명에 대한 순종과 충성으로 이어집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다음 말씀의 의미를 명상하시면 성령께서 빛을 주실 것입니다.

“여호와의 율법은 완전하여 영혼을 소성케 하고”(시 19:7).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시 119:9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에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마 5:17~19)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요 14:15, 21, 24)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요 15:14)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면 이로써 우리가 저를 아는 줄로 알 것이요 저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요일 2:3, 4)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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