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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첫 번째 교회, 에베소 교회 사도 시대, 초대 기독교회

1세기 교회, The First Century Church

각 시대마다 그 시대에 꼭 필요한 말씀을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이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에도 그 시대에 전파되어야 할 말씀이 있었는데, 그것은 홍수가 오니 회개하고 구원을 얻으라는 기별이었습니다.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구원을 받았고, 거절하거나 무시하는 사람들은 멸망했습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당신의 종들을 통하여 말씀을 보내주셨고, 그 말씀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사탄의 기만과 세속으로부터 빠져나와 구원받았는데, 이것이 일곱 교회 예언의 내용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도시대 교회인 에베소 교회에도 그 시대에 반드시 순종해야 할 말씀을 전하는 종들을 보내셨습니다. 요한계시록의 저자인 사도 요한은 그들을 가리켜 “에베소 교회의 사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들이 전하는 말씀은 예수께서 주신 말씀이기 때문에 그 시대 사람들은 사자들이 전하는 말씀을 받거나 거절하는 태도에 따라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일곱 교회 예언을 살펴보면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라는 구원의 도가 실제적으로 어떤 경험인지 보고 만지고 느낄 수 있습니다. 일곱 교회 예언 속에 나타나 있는 성도들의 승리와 패배를 보면서 우리는 어떤 신앙을 가진 사람들이 구원받을 것인지 분명히 이해하게 됩니다. 일곱 교회 예언에는 과거의 교회가 있고, 현재의 교회가 있으며, 미래의 교회가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그 속에서 살아있는 구원의 복음을 보게 됩니다.

교회 이름의 의미

일곱 교회의 이름 속에는 각 시대의 교회가 갖게 될 특징과 경험이 담겨 있습니다. “에베소”라는 이름은 “바람직한, 흠모할 만한”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들이 직접 세운 서기 1세기의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에 나오는 오순절 성령이 퍼부어진 교회이고 신약성경을 기록한 교회입니다. 그 교회 교인들은 제자들과 사도들로부터 직접 말씀을 전수받았고, 그들이 가진 신앙을 실제로 목격했던 교회입니다. 그들은 진리를 알았을 뿐 아니라 진리를 가진 사람이 어떤 모습으로 살아가는지를 실제로 보았던 교회였습니다. 그래서 온갖 오류와 거짓 복음으로부터 보호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순결했고, 진리에 대한 불타는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진정 “바람직하고 흠모할 만한” 교회였습니다.

예수님의 칭찬

칭찬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계 2:2)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 교인들의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칭찬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에베소 교회는 로마제국 황제의 핍박 속에서도 지칠 줄 모르는 열심과 수고로 일하는 교회였기 때문입니다. 에베소 교회 성도들은 가난과 핍박 속에서도 성경 말씀을 그대로 순종하기 위해서 생애를 바친 사람들입니다.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는 이 점에서 큰 부족함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너무나 편안하고 너무나 “행위와 수고와 인내”가 없는 신앙입니다. 너무나 편하게 구원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누군가가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강조하면 율법주의라는 비난을 받습니다. 그러나 초대 교회의 신앙은 “행위와 수고와 인내”를 강조하는 신앙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로 그런 신앙을 칭찬하셨습니다. 계속해서 예수님의 칭찬을 살펴봅시다.

칭찬

“또 악한 자들을 용납지 아니한 것과”(계 2:2)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은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악한 자가 누구입니까? “행위와 수고와 인내”의 신앙을 무시하고 교회의 표준을 떨어뜨리며 세속을 교회 안에 가지고 들어오는 자들입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런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기 때문에 예수님께 칭찬을 받았던 것입니다. 교회에서 악한 자를 용납치 않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교회에서 악한 자를 용납치 않기 위해서 말을 하고 설교를 하면, 인기를 잃어버리고 사랑이 부족하고 까다롭다는 말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악한 자를 용납지 않는 일은 성령으로 감동된 거룩한 용기를 가진 사람들만이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자신에 대한 평판과 인기를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은 사람들만 그 일을 할 수 있습니다. 악한 자를 용납치 않는 일은 자기를 사랑하는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과 영혼을 사랑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칭찬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계 2:2)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가 거짓 사도의 정체를 드러낸 것을 칭찬하셨습니다. 여기서 “자칭 사도라고 하지만 아닌 자들”이 누구인가요?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위해서 사도를 보내지 않으셨는데, 에베소 교회에서 자기 스스로 사도 행세를 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하늘에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자로 보내지 않았는데, 이 땅에서 자기 스스로 하늘로부터 보낸 자로 행동하는 것을 말합니다. 에베소 교회는 그런 자들을 시험해서 그 정체를 드러냈다고 했습니다. 어떻게 시험했을까요? 성경 말씀으로 그들이 말하는 바와 가르침을 시험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삶의 열매가 거룩한가를 시험했습니다. 이것이 거짓 사도들을 시험하고 판단하는 방법입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이런 점에 있어서 매우 철저한 그리스도인들이었습니다. “베뢰아 사람은 데살로니가에 있는 사람보다 더 신사적이어서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행 17:11). 이 말씀이 어떤 장면입니까? 어느 날 사도 바울이 베뢰아 사람들에게 말씀을 강론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바울의 말씀을 듣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했습니다. 바울의 설교를 그 당시 그들이 갖고 있던 구약 성경과 비교하면서 검증했던 것입니다. 바울은 그런 베뢰아 사람들의 태도를 칭찬했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가 가지고 있던 성경 중심의 신앙이었고, 예수께서는 그런 신앙을 칭찬하셨습니다.

칭찬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계 2:3)

예수께서는 당신의 이름을 위해서 참고, 견디고, 열심히 일하는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그리스도의 이름을 위해서 산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높이기 위해서 사는 것을 뜻합니다. 말하고, 행동하고, 살아가는 모든 것이 내 행복과 내 축복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명예를 높이는 일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는 신앙을 뜻합니다.

예수님이 미워하는 니골라당

앞에서 살펴보았던 요한계시록 2장 2절에서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이라고 했는데, 사탄이 에베소 교회에 들여보냈던 “그 거짓된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니골라당의 가르침을 뜻합니다. “네가(에베소 교회)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예수님) 이것을 미워하노라”(계 2:6). 니골라당의 행위가 무엇인데, 초대 교회의 제자들과 사도들이 그것을 미워했으며, 예수께서도 그것을 미워했을까요? 성경 낱말사전은 니골라당의 주장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한 번 믿은 뒤에는 무슨 행동을 해도 죄가 되지 않는다고 주장하였다.” 니골라당은 그 당시 영지주의(Gnosticism)를 믿고 받아들인 무리들입니다. 영지주의란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도덕적 삶을 살기 살기 위해서 구태여 육체의 정욕과 욕구를 자제할 필요가 없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들은 물질과 육체는 악할지라도, 영은 항상 선하기 때문에 방탕하고 죄된 삶을 살아도, 영의 구원에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오늘날에도 이와 비슷한 가르침들이 기독교회 안에 많이 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았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성결한 삶을 살지 않아도 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다고 말하지만, 순종과 거룩함의 열매가 그 생애에 맺히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가르침이 현대 기독교회에 들어온 니골라당의 교리입니다. 현대판 니골라당은 “육적인 그리스도인”도 구원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니골라당의 가르침에 대항하여 일어선 에베소 교인들을 칭찬하셨습니다. “네가 니골라당의 행위를 미워하는도다 나도 이것을 미워하노라”(6절).

예수님의 책망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계 2:4, 5)

순결했던 에베소 교회도 세월이 흐르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세월이 흐르면서 그리스도와 제자들이 전해 준 진리에 대한 “처음 사랑”을 잃어버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를 책망하시면서 “처음 사랑을 버렸”다고 했는데 에베소 교회는 “처음 사랑”을 언제, 어떻게 버리게 되었을까요? 우리는 역사 속에서 이 중요한 질문에 대한 답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교가 조직된 지 반세기 이상이 지나자 한 사람 한 사람 연로한 기수들이 그들의 자리에 쓰러져 갔다. 초대 교회를 세운 열두 제자들과 사도들의 짐을 넘겨받아야 할 젊은 사역자들 중 어떤 사람들은 반복된 진리에 싫증을 느끼게 되었다. 그들은 옛 신앙을 싫어하게 되었고 신기하고 놀라운 어떤 것들에 대한 갈망으로 많은 사람의 마음을 만족시켰지만, 복음의 근본 원칙에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형태의 교리를 도입하고자 하였다”(The act of the apostles, chapter 1stcentry church).

초대 기독교회를 세운 제자들과 사도들이 하나씩 죽어갔습니다. 죽은 자를 살렸던 베드로도 죽어서 흙이 되었고, 요한은 밧모섬에 유배당했습니다. 예수께서 승천하시면서 남기셨던 말씀, “가서 너희를 위하여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영접하여 나 있는 곳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는 재림의 약속이 성도들의 마음속에서 잊혀져 갔습니다. 에베소 교회를 세운 나이 든 장로들이 순교하면서 젊은 세대가 올라왔는데, 그들은 더 이상 핍박 받으며 가난하게 살기르ㄹ 원하지 않았습니다. 회개하고 좁은 길을 걸으라고 호소하는 설교를 듣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새롭고 신기하고 놀라운” 복음을 찾고자 했습니다. 그들은 옛 신앙을 버리고 새로운 교리를 받아들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에베소 교회를 불타게 만들었던 “처음 사랑”이 식어지면서 좁은 길을 떠나게 된 과정입니다.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거의 모든 교파나 교단에서 이러한 역사는 반복되었습니다. 세월이 흘러가면서 그 교회를 세운 선조들의 정신과 신앙을 잃어버리고 세속화 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후서 2장에서 그 당시에 이미 “불법의 비밀”이 역사하기 시작했다고 했습니다. 그런 에베소 교회를 향하여 예수께서는 만일 너희가 “회개치 아니하면 내가 네게 임하여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촛대를 옮긴다”는 말은 두려운 경고입니다. 왜 예수께서는 에베소 교회로부터 촛대를 옮기시겠다고 경고하셨을까요? 교회에는 진리가 있어야 하고 그 진리가 성령의 은혜를 통해서 불타오름으로서, 교회라는 촛대가 환하게 빛을 내야 합니다. 그것이 교회가 존재하는 목적입니다. 그런데 “처음 사랑”이 식어지면서 진리가 흔들리고 성령의 은혜가 사라졌습니다. “처음 사랑”이 식어지면서 예수께서 칭찬하셨던 신앙의 특징들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교회에 선한 행위가 없어졌고, 참고 인내하지 않는 교회가 되었으며, 악한 자들이 교회 안으로 세속과 죄를 끌어들일 때 그것을 용납하는 교회가 되었고, 자칭 사도라 하는 자들이 나타나도 그들을 시험하지 않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지 않고 자신을 위해서 사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지금도 마찬가지입니다. 한 교회나 개인이 영적으로 몰락하게 될 때 이런 모습을 나타내게 됩니다.

예수께서 칭찬하셨던 특징들이 사라지자, 에베소 교회에서 분명한 빛이 나오지 않게 되었습니다. 교회가 빛이 나오지 않는 촛대가 되어버리고만 것입니다. 빛이 나오지 않는 교회는 그냥 건물이고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 에베소 교회의 모습을 보시면서 예수께서는 촛대를 옮기겠다고 경고하셨던 것입니다.

초대 교회가 세워진 지 반세기가 지나면서 “처음 사랑”이 식어갔는데, 그런 상황에서 예수께서 보내신 종들은 에베소 교인들에게 어떤 말씀을 전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에베소 교회에게 주시는 책망의 말씀을 전해야 합니다. 에베소 교회 시대에서는 그런 설교자들이 예수께서 직접 붙잡고 계시는 종들이었습니다. 그때는 새로운 복음과 교리를 받아들이려는 젊은 세대를 책망하고,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설교하는 사람이 예수께서 보내신 종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에베소 교회를 위하여 보낸 사자들은 “우리가 이렇게 살면 하나님께서 촛대를 옮기실 것입니다.”라고 설교해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각 시대마다 성도들은 말씀을 분별하는 영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누가 주께서 보내신 종인가를 구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을 분별치 못하면 길을 잃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일곱 교회 예언을 통해서 각 시대의 교회에게 책망의 말씀을 주셨는데 누가 그 책망의 말씀을 성도들에게 신실하게 전했는가를 살펴보면, 그 시대에 하나님의 종이 누구였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이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종들이 누구인지를 분별하는 중요한 원칙이고, 그런 원칙은 지금 이 시대의 교회에도 정확하게 적용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처음 사랑”은 어떤 것일까요?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초콜릿이나 아이스크림을 사주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값싼 감정입니다. 사랑은 사랑하는 사람에게 내 자신 전체를 주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예수님과 우리의 관계를 신랑과 신부로 설명하십니다. 에베소 교회는 신랑이신 그리스도에 대한 사랑이 식어버린 신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신랑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그가 지키라고 명한 계명을 지키지 않은 것입니다. 그런 상황이 에베소 교회에 일어났기 때문에 예수께서 “처음 사랑”을 회복하라고 호소하신 것입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신랑을 사랑하는 신부는 신랑을 위해서라면 하지 못할 일이 없습니다. 그래서 진짜 사랑은 행함을 만들어 내고 말씀에 순종하는 열매를 맺게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바로 그런 의미에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요 14:15).

예수께서는 첫사랑을 잃어버린 성도들에게 해결책을 제시해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진 것을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계 2:5). 첫사랑을 회복하기 위해서는, 어디서, 언제부터 첫사랑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 찾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깊이 살펴야 합니다. 말씀을 읽되, 눈으로만 읽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정직한 양심으로 읽어야 합니다. 가난하고 애통하는 심정으로 말씀을 읽어야 합니다. 자신의 죄와 부족을 변명하고 합리화시키려는 태도를 버려야 합니다. 고집과 편견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 앞에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서야 합니다. 그러면 성령께서 우리 생애의 수치스런 곳들을 보여주시며 무엇인가를 고치라고 하실 것입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받아들이라고 하실 것입니다. 그런 치유의 과정을 거치면서 자연스럽게 첫사랑의 순수함과 열정을 회복할 것입니다.

예수님의 약속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과실을 주어 먹게 하리라”(계 2:7)

귀 있는 자들은 성령께서 교회를 향해서 하시는 음성을 듣게 됩니다. 귀 있는 자들만 양심을 찌르는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순종하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이 귀 있는 자들일까요? 하나님께서는 침례 요한을 통해서 유대교회에게 말씀을 보내 주셨습니다. 요한은 유대교회를 향하여 귀 있는 자들만 들을 수 있는 설교를 했습니다. “독사의 자식들아 누가 너희를 가르쳐 임박한 진노를 피하라 하더냐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속으로 아브라함이 우리 조상이라고 생각지 말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이 능히 이 돌들로도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게 하시리라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마 3:7~10).

이런 설교를 들으면서 누가 겸손하게 무릎을 꿇고 회개할 수 있을까요? 성령이 교회에게 하는 말씀을 들을 귀가 없는 유대교회 지도자들은 침례 요한을 교회를 비난하는 자로 생각했습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성경에 나오는 많은 선지자들이 핍박당하고, 매를 맞고 목이 잘려 죽었던 것입니다. 여기에 중요한 교훈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는 말씀을 전하는 사람의 평판이나 외모나 지위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또한 교회가 그를 인정하는가를 보지 말아야 합니다. 오직 그 사람의 말하는 바가 진실되고 성경 말씀과 일치하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렇게 해야만 그 사람이 전하는 말씀 속에서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일곱 교회 예언을 살펴보면, 각 시대마다 성령이 교회에게 전하는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사람들만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았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일곱 교회에게 보낸 기별을 보면, 각 시대마다 이기는 자들이 구원을 받는다고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에서도 오직 이기는 자들이 구원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엇을 이긴다는 말인가요? 죄와 세속과 거짓 가르침의 미혹을 이긴다는 말입니다.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는 귀를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진리를 분별하고, 진리를 분별한 사람들은 그 말씀에 순종함으로써 신앙과 삶 속에서 열매를 맺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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