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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감정을 따라가면 신앙이 무너진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가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사람들이 말씀에 충성하는 신앙과 감정적 신앙 과 거짓 이적 사이에서 혼돈하게 될 것입니다. 믿음과 감정을 구별하지 못해서 길을 잃어버리 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짜와 가짜를 분별할 수 있는 유일한 기준은 성경 말 씀입니다. 아무리 세상과 교회가 깊은 어둠 속에 있다고 할지라도 성경 말씀과 성령께서 주시 는 빛대로 순종하며 사는 성도들은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받을 것입니다. 월간지 <변화>는 이번 호에서도 그리스도인의 신앙을 곧바로 세우는 말씀을 전할 것입니다. 어떤 분들은 놀라운 진리 를 발견하고 기뻐할 것이고, 어떤 분들은 의미있는 고민을 하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 독자 여 러분을 진리의 길로 인도해 주시길 기도드립니다. (편집실)

미국에 있는 어떤 장로님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의사였는데 성경을 잘 가르쳤고 교회가 필요로 할 때마다 많은 헌금을 드렸습니다. 목회자가 부재 중일 때는 주일 설교를 했는데, 그분의 설교는 단순했지만 설교 도중에 방언이 터져나왔기 때문에 청중들의 마음을 뜨겁게 했습니다. 그분의 기도는 언제나 열정적이었으며 하나님께서 꿈과 계시로 자신을 인도하신다는 사실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놀라운 일이 생겼습니다. 그 장로님이 바닷가에 있는 자신의 별장에서 갑자기 사망해서 시체로 발견되었습니다. 부검 결과, 오랫동안 습관성 약물을 과다하게 복용한 결과로 나타났습니다. 그분의 가족 뿐 아니라 온 교인들이 충격에 빠졌습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충격적인 사실은 그분의 서재와 침실에서 수십개의 음란 비디오 영상과 잡지들이 발견되었다는 것입니다. 평소에 그를 존경하고 따르던 교인들과 청년들이 큰 실망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어쩌다가 이런 일이 생기게 되었을까요?

 

무엇이 문제입니까?

성령의 인도를 따라가면 진리를 통해서 마음과 생애가 변화됩니다. 그러나 사탄의 미혹을 따라가면 외롭고 공허하며 부패한 삶을 살다가 사탄의 미혹에 빠져 멸망당하게 됩니다. 사탄은 감정을 얻기 원하는 사람에게는 감정을 주고, 이적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이적을 줍니다. 사탄에게 미혹당한 사람이 겉으로 볼 때는 행복하고 하늘의 큰 권능을 가진 것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돌이키기 힘들 정도로 깊은 미혹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황홀하고 뜨거운 감정을 느껴야만 하나님의 임재를 느낄 수 있고, 구원에 대한 확신을 가질 수 있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사탄이 조작하는 초자연적인 현상과 이적에 미혹당하기 쉽습니다. 사탄은 감정과 신앙을 혼돈하는 사람들에게 거짓 은사와 이적을 던져줍니다. 그들의 감정을 뜨겁게 하여 황홀경으로 끌어들입니다. 감정의 극치를 맛보게 해서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하신다는 확신을 갖도록 유도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러한 경험은 성경이 말하는 참된 변화와 거룩함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감정적 신앙으로는 성품이 변화되지 않으며 의의 열매가 맺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삶을 이끌어 가는 원칙이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새롭게 거듭난 생애가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감정과 이적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능력을 경험할 때 생기는 감정과 실제 삶 사이에 존재하는 간격을 좁히지 못하여 깊은 낙담에 빠지게 됩니다. 어떤 사람들은 감정이 높이 올라갔다가 급격하게 떨어지는 오르내림을 되풀이 하면서 극도의 심리적 불안정과 우울증을 갖기도 합니다. 무엇이 문제입니까? 사탄에게 속은 것이며, 또한 스스로의 감정에게 속은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전혀 성령을 경험하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성령을 받았다고 말합니다. 회개하지 않았고, 말씀과 예언에 관심이 없으며, 세속적인 사람도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심령 부흥집회나 기도원에서 성령 안수를 받은 사람들은 대개 자신의 경험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등이 뜨끈뜨끈 했습니다! 눈앞에서 파란 불이 번쩍번쩍했어요! 가슴 속에서 뜨거운 기운이 나와서 온몸을 사로잡는 듯했습니다! 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리고, 나도 모르게 방언이 터져 나왔습니다! 병이 나은 것 같고 기분이 좋아져서 나도 모르게 바닥에 데굴데굴 굴렀습니다! 정말 황홀한 경험이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이 자신도 그런 초월적이고 경이로운 경험을 하기를 고대하고 있습니다.

 

감정적 신앙의 증거

감정을 따라가는 사람의 신앙은 감정 이상으로 향상되지 못합니다. 그런 사람은 모래 위에 집을 짓고 있는 것입니다. 고통과 시련이 닥치고 하나님의 임재가 느껴지지 않으면, 신앙은 무너져 내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증거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변화된 마음이며, 자아와 교만이 죽은 생애입니다. 세상을 미워하고 거룩한 것을 사모하면서 좁은 길을 걷는 삶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가장 분명한 증거입니다. 그렇다면, 감정적 신앙을 가졌다는 증거는 무엇인가요? 그것은 분명하게 제시되어 있는 하나님의 말씀과 진리를 무시하고 내 뜻과 내 주장을 포기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을 통하여 분명하게 밝히신 말씀을 알면서도 다른 길로 갈 수 있도록 인도해 달라고 기도하는 사람이야말로 감정을 따라가는 신앙을 가진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감정을 중요시 여기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알면서도 “성령께서 내게 개인적으로 알려주실 때까지 나는 이 길을 그대로 가겠다”고 고집하는 모습을 나타냅니다. 사탄은 그런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들이 원하는 감정과 느낌을 줌으로써 만족시켜 줍니다. 이렇게 해서 덫에 걸린 사람들은 사탄의 농간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허락하시는 놀라운 체험으로 받아들이게 됩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이 요구하는 것을 저버리고, 자신의 감정과 느낌이 요구하는 것을 따라서 넓은 길을 걷게 되는데, 그 길은 사탄이 인도하는 길입니다.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영적 경험은 언제나 거룩한 성경 말씀과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믿음이 먼저, 느낌이 나중

느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둘을 명확하게 구별할 수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이 믿음을 활용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믿음은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광경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어떤 특별한 감정이 생길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순종하고 전진하였을 때, 영광스러운 감격과 감사의 정신을 축복으로 받게 됩니다. 믿음은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지만, 느낌과 감정은 믿음을 활용한 결과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을 활용하지 않고 감정을 인위적으로 만들어 내려고 애쓸 때, 사탄이 개입할 수 있는 틈을 열어주게 됩니다. 죄를 버리지 않고 회개하지 않으면서 기쁨과 행복을 추구하면, 사탄의 덫에 걸리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시는 감정과 느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회개와 믿음과 순종의 결과로 얻어지는 하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기독교회 안에 이런 분들이 많습니다. 성령께서 크게 임하실 때에는 큰 믿음을 나타낼 수 있지만, 성령의 은사와 능력을 받거나 느끼지 못할 때에는 믿음을 발휘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정말 많이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신앙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결핍을 느낄 때야말로 믿음을 활용해야 할 때입니다. 칠흙같이 어두운 구름이 마음을 덮을 때야말로, 우울한 느낌이 마음을 어지럽힐 때야말로, 믿음으로 하나님께 나아가 밝고 유쾌한 정신을 달라고 간구해야 할 때입니다. 아무나 기도에 응답받고 아무나 성령의 은사를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모든 축복에는 반드시 조건이 있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무엇이든지 원하는 대로 구하라 그리하면 이루리라” (요 15:7).

 

느낌을 따라가는 교회

교회가 세속화 되면서 예배와 음악도 하나님 중심이 아니라 사람 중심으로 바뀌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배가 어떤 것인가를 생각하는 대신, 사람의 감정과 느낌을 행복하게 만드는 예배에 초점이 맞추어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이 세상을 압도하고 있는 사상이 인본주의(휴머니즘)입니다. 인본주의란 모든 생각과 사상은 인간의 행복에 그 초점이 맞추어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인간의 행복을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얼핏 들으면 인간애에 기초한 고상한 사상처럼 들립니다. 그런데 문제는 인본주의가 기독교회에 들어와서 하나님의 위치를 밀어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인본주의가 들어가는 곳마다 하나님은 두번째가 되고 인간이 첫 번째가 됩니다. 그래서 예배와 음악에서도 하나님은 두번째이고 사람의 느낌과 감정이 첫 번째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을 위해서 찬양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행복해지기 위해서 찬양합니다. 사도 바울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 했지만, 교회 안에 들어온 인본주의는 성도의 기쁨과 행복한 느낌을 위해서 노래하고 찬양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내 느낌과 내 감정을 즐겁게 해주지 않는 것은 무엇이나 바꿔야 한다고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신자들의 느낌과 감정에 부담과 무거움을 주는 것은 무엇이나 버려야 한다는 주장들이 교회 안에서 거세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여호와의 말씀과 경건함” 보다는 “나의 즐거움과 기쁨”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그래서 중후하고 엄숙한 음악보다는 가볍고 경쾌한 음악을 사용해서 분위기를 띄우려고 노력합니다. 성령의 호소와 회개와 좁은 길에 대한 찬송은 멀리하고 누구든지 쉽게 부를 수 음악이 예배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세상 사람과 성도들이 함께 부를 수 있는 멜로디와 음악이 선호되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런 분위기로 흘러가자, 예배 속에 발라드와 록음악이 들어오게 되었고, 그에 맞추어서 피아노나 올갠 대신에 드럼과 전자기타를 사용하게 되었습니다. 주일학교도 연극과 드라마로 채워져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런 변화에 맞춰서 설교 단상을 현대식 무대로 바꾸기 시작했고 조명도 바뀌게 되었습니다. 요즘 예배의 트랜드는 찬양을 할 때 마치 가수의 콘서트나 KBS 열린 음악회와 같은 분위기를 연출하는 것입니다. 동네 노래방이나 카페처럼 바뀌어 가고 있는 교회의 변화가 사람들을 행복하게 만들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늘어나고 있습니다. 대중가요와 같은 찬양과 강한 비트가 들어간 음악에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같은 느낌을 성령의 감동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어떤 기독교 언론인이 이런 글을 써서 세상에 내놓았습니다. “나는 몇 해 전에 로마서 12장 1, 2절을 연구하는 집회에 참석한 적이 있습니다.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1,2). 집회의 주제 찬양으로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라’라는 내용의 찬양을 모두들 열성적으로 불렀습니다. 교인들은 집회 내내 ‘이 세대를 본받지 말자’라고 소리치면서 밴드에 맞춰 머리를 흔들고 발을 구르면서 찬양을 했는데, 그 모습은 이미 세상을 그대로 본받은 모습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세상이 너무 교회 안에 깊이 들어왔기 때문에 이제 무엇이 거룩함이고 무엇이 세속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상황이 되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교회에서 드럼치 고 발라드와 록음악이 흘러나오는 것을 이상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데, 교회는 세상을 흉내내는 것이 행복해지는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지금 세상은 교회가 세속으로 물들어 있는 모습을 보면서 조롱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 말씀과 성도들의 거룩한 삶 때문에 세상으로부터 핍박을 받아야 하는데 조롱을 받고 있는 것입니다. 이 모든 일이 교회 안에 들어 온 감정적 신앙과 인본주의 때문에 시작된 재앙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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