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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성령을 모르면 신앙이 무너진다

성령에 대한 이해가 흔들리면 큰 문제가 생깁니다. 한번은 어떤 모임에 참석했었는데 몇 분들이 자신은 성령을 받았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평소에 성령을 받기 원했던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서 그 사람들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성령을 받았을 때 어떤 경험을 했습니까? 그러자 성령을 받았다는 분들 중 한 사람이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성령을 달라고 기도하는데 갑자기 등줄기가 뜨거워졌습니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사람은 “천장에서 불덩어리 같은 것이 내려오더니 가슴을 쳤고, 그때 내가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우리 목사님이 내게 안수를 주었는데, 그때 어떤 이상한 힘에 의해서 바닥에 쓰려지면서 성령을 받았습니다.” 또 어떤 분은 “성령 내게 임하니까 참을 수 없는 웃음이 나왔는데 교회 전체가 한참 동안 웃었습니다.”

정말 놀라운 경험이지만 참 이해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습니다. 그들이 성령을 받았다고 했지만, 그들의 삶은 성령을 받기 이전과 이후가 전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부정직 했으며, 여전히 부부싸움을 했으며, 여전히 이웃과 경쟁하고 다투었고,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며 세속적이었습니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배우자 몰래 부적절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문제 때문에 오늘날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마음속에 이런 의문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을 받았다는 사람들이 저렇게 이기적이고 욕심이 많으니 성령은 아무에게나 내리는 것인가? 하나님께서 성령을 허락하시는 기준이 무엇인가?”

 

성령 충만한 그리스도인의 특징

성경은 성령을 받으면 마음과 생애에 풍성한 의의 열매가 맺힌다고 말합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 23). 이 말씀에 이어서 바울은 성령의 열매가 맺힐 수 있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갈 5:24). 육체의 정욕과 세상에 대한 사랑을 십자가에 못 박는 것이 성령받은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뚜렷한 특징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성령을 받아야 하고, 또 그것을 어떻게 받는 것인지 이해해야 합니다. 이것은 너무나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받지 못하면, 세속적인 삶을 살게 되고 결국 구원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은혜가 마음에 없으면, 삶은 메마르고 감동이 없는 인생이 됩니다. 성령을 받지 못하면 심령이 공허하게 되고 양심의 가책과 좌절감에 짓눌린 고통스런 생애를 살게 됩니다.

 

마지막 시대의 사탄의 전략

사탄은 성도들을 거짓 성령으로 미혹하기 위해서 사전 작업을 합니다. 먼저, 감정적인 신앙과 구원에 대한 이상한 가르침을 교회 속에 퍼트림으로써 미혹의 첫 단계를 시작합니다. “성령이 밝히 말씀하시기를 후일에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좇으리라하셨으니 자기 양심이 화인 맞아서 외식함으로 거짓말하는 자들이라“(딤전 4:1,2).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거짓 교리와 거짓 복음)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두 번째 미혹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그것이 거짓 성령의 기만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에 거짓 성령의 역사로 미혹당한 기독교회의 모습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예수께서도 마지막 시대 교회 모습을 보여 주셨습니다.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이어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게 하리라”(마 24:24). 그러므로 말세에는 성령께서 어떻게 역사하는지 모르면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탄의 미혹을 따라가고 있으면서, 자신은 성령을 받았다고 착각하게 됩니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미혹의 시대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거짓 교리로 미혹당하고, 감정적 신앙과 거짓 성령으로 미혹당하고 있습니다.

 

성령은 “진리의 영”이다

성경은 성령에 대해서 무엇이라고 말하고 있을까요? 성령의 가장 중요한 사역은 무엇일까요? “내가 아버지께로서 너희에게 보낼 보혜사 곧 아버지께로서 나오시는 진리의 성령이 오실 때에 그가 나를 증거하실 것이요”(요 15:26).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성령을 소개하면서 “진리의 성령”이라고 불렀습니다. 왜 “진리의 성령”이라고 부르셨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 이유는, 성령은 진리를 통해서만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들이 비성서적인 복음과 거짓 교리를 믿고 있으면서 성령을 받았다고 주장하면 그것은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자신이 경험하고 있는 기적과 은사가 정말 성령으로부터 온 것인지 아니면 사탄의 미혹인지 검증해 보아야 합니다. 만약 성령께서 거짓 복음과 비성서적인 교리를 믿고 있으며 그 마음과 삶에 의의 열매가 없는 사람들에게도 기적과 은사를 주신다면, 사도 바울이 성령의 열매를 강조하고,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주의하라고 경고할 필요가 어디에 있을까요? 이사야 선지자는 진리의 영과 거짓 영을 분별하는 중요한 기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땅히 율법과 증거의 말씀을 좇을지니 그들의 말하는 바가 이 말씀에 맞지 아니하면 그들이 정녕히 아침 빛을 보지 못하고”(사 8:20).

예수께서 성령을 “진리의 영”이라고 부르신 두 번째 이유는, 우리가 성경 말씀을 연구할 때, 성령께서 우리에게 진리가 무엇인지 가르쳐 주시기 때문입니다. 진리에 대하여 갈급하고 목마른 심령으로 말씀을 읽을 때 성령께서 깨달음을 주십니다. 또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진리를 가르치고 전하는 하나님의 종들과 만나게 되고, 진리가 담겨져 있는 책자들을 접하게 됩니다.

 

성령께서 하시는 일

성령을 받으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어떤 일을 하실까요? “내가 그(성령)를 너희에게로 보내리니 그가 와서 죄에 대하여, 의에 대하여, 심판에 대하여 세상을 책망하시리라” (요 16:7-8). 여기서 성령께서 죄와 의와 심판에 대해서 세상을 책망하신다 했는데,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성령께서는 우리에게 과거에 범한 죄를 고백하고 회개할 것을 호소하시고, 현재 의로운 삶을 살아야 한다는 양심의 자각을 주시며, 미래에 받게 될 심판을 깨닫게 해주신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하자면, 성도들이 구원의 경험을 유지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도와주신다는 뜻입니다. 유혹이 우리에게 다가올 때, 성령께서는 의의 음성을 양심 속에서 들려주십니다. “이 길이 정로니 이 길로 가라”고 말씀해 주십니다. 육체의 정욕을 십자가에 못 박고 유혹을 물리치라고 호소해 주십니다.

그리스도 없이 죄 사함을 받을 수 없는 것처럼 성령의 역사가 없으면 회개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 우리의 마음을 감동시키시면 마음속에 품고 있는 죄가 어떤 것인지 분명하게 보게 됩니다. 성령께서 심령의 구석구석을 살펴주시기 때문에 어둠 속에 감추인 것들이 드러나게 됩니다. 여호와 하나님의 거룩함과 의를 깨닫게 되고 자신의 죄악과 더러움을 보게 됩니다. 그리하여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께 나가 부복하게 됩니다. 그리스도 십자가의 보혈과 사랑에 의지해서 죄를 용서받고 정결케 되어 하늘과 교통할 수 있기를 사모하게 됩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고자 하는 거룩한 충동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의 큰 역사를 받고 있는 그리스도인의 경험입니다.

예수께서는 2천 년 전에 제자들과 함께 살면서 그들을 가르치고 인도하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제자들을 도우셨던 방법 그대로 성령께서 성도들을 도와주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요 14:16). 예수께서는 성령을 “다른 보혜사”라고 부르셨습니다. 왜 그렇게 부르셨을까요? 왜냐하면 예수님 자신이 제자들에게 보혜사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하늘로 승천한 후에는 예수님을 대신할 또 하나의 보혜사를 그들에게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것입니다. “보혜사”란 영어로 “Comforter”입니다. “Comforter”라는 단어의 뜻은 “필요할 때 도움을 주는 조력자”입니다. 다시 말해서 “Comforter”란 “항상 우리 곁에 있어서 위로하며 길을 인도해 주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예수께서 항상 제자들 곁에 계셔서 진리를 가르치고, 깨닫게 하시고 해야 할 일과 가야할 길을 보여주셨던 것처럼, 성령께서도 그와 동일한 역할을 해주신다는 의미에서 성령을 보혜사(Comforter)로 소개하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지금 하늘에 계시지만 성령께서 우리 곁에서 계셔서 우리를 위로하고 인도하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온 마음을 다해서 성령을 구해야 합니다. 성령의 임재와 친숙해져야만 합니다.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참으로 슬픈 사실은, 오랜 세월 동안 예수님을 믿었지만,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무지할 뿐 아니라 성령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입니다. 그런 분들은 수십 년 동안 교회 다녔어도 성령을 받는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성령과 교제를 나누는 것이 어떤 경험인지 모르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자신의 느낌과 감정으로 성령의 임재를 느껴보려고 애쓰게 됩니다. 우리는 성령에 대하여 정확히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령을 알면 우리의 신앙에 전격적인 변화가 생기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성령에 대해서 하신 다음과 같은 말씀에서 우리는 성령의 사역을 좀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요 16:13)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성령께서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진리 가운데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어둠 속에 있다가 빛 가운데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현재 빛 가운데 있다고 할지라도 더 밝은 빛으로 인도받게 됩니다. 이것이 성령께서 하시는 가장 크고 중요한 사역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진리를 깨닫고 온 마음을 다해서 그것을 받아들일 때마다 성령의 큰 역사 속에 있는 것입니다.

13절 “그(성령)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성령께서는 자기 마음대로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께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과 예수님과 함께 한뜻으로 역사하시고 한마음으로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13절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

성령은 우리에게 장래 일, 즉 예언을 깨닫고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도우심이 없으면,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깨달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 성령을 체험했다는 그리스도인들이 장래 일을 알려주는 예언에 무지하고 관심을 나타내지 않는 것은 이상한 일입니다.

성령을 체험한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진리를 깨닫고 진리에 대한 믿음과 확신을 갖는 것입니다. 의의 길로 인도받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의 예언의 의미를 깨닫고 순종하는 것입니다. “예언은 언제든지 사람의 뜻으로 낸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의 감동하심을 입은 사람들이 하나님께 받아 말한 것임이니라”(벧후 1:21). 예언은 성령의 감동하심을 받은 사람들이 기록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예언은 성령을 받아야만 이해할 수 있고 올바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내 삶 속에 성령의 임재와 역사가 있어야만 예언을 하나님의 뜻대로 해석할 수 있게 됩니다.

 

느낌으로 아는가? 열매로 아는가?

성령은 우리의 감정이나 느낌으로 체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을 체험하는 경험은 바닥을 뒹굴거나 소리를 지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오히려 성령의 체험을 매우 조용한 경험으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요 3:8). 바람은 어디서 어디로 부는지 알 수 없고 색깔도 없으며 느끼지 못할 수도 있지만, 바람이 분 결과는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사람의 마음에 역사하시는 성령도 이와 마찬가지 입니다. 만일 우리 마음이 성령으로 채워져 있으면, 우리의 삶이 그 사실을 증명하게 됩니다. 우리 품성과 습관과 생활에 놀라운 변화가 나타나고 성령을 받기 이전과 이후 사이에 분명한 변화가 생기게 됩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이 도둑질을 멈추게 되고, 더럽고 추한 것을 좋아하던 사람이 순결한 것을 좋아하게 됩니다. 성경 말씀을 지루하게 생각하던 사람이 말씀을 간절한 마음으로 사모하게 됩니다. 이런 변화가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것이 아니라 지속적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의의 열매를 맺게 됩니다.

 

성령을 받는 방법

허전하고 공허한 마음을 이적과 은사로 채우려는 것은 무의미한 시도입니다. 하나님을 느껴보고 싶은 마음으로 기적을 구하다가 사탄의 덫에 걸려들 수 있습니다. 뜨거운 감정과 느낌으로 구원에 대한 확신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은 허망한 노력입니다.

마음에 욕심이 있고 교만으로 목이 곧은 상태에서는 성령을 받을 수 없습니다. 세속과 이기심이 가득 차 있는 마음에는 성령께서 거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먼저 주 앞에 나가 마음에 품고 있던 죄를 고백하고 회개해야 합니다. 주님께 나가 짐을 내려놓아야 합니다. 죄에 끌려다니는 처참한 삶이 지긋지긋하고, 이제는 더 이상 그런 삶을 살고 싶지 않으십니까?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누가 이 사망의 몸에서 나를 건져내랴”라는 절규가 심령 깊은 곳으로부터 흘러나옵니까? 그렇다면 오늘 주 앞에 나가 회개하고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영혼을 짓누르고 괴롭혔던 죄를 주앞에 내려놓고 용서받아야 합니다.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용서를 만나고 그것을 받아들이게 되면, 성령의 은혜가 밀려오면서 육체의 정욕이 잠잠케 될 것입니다. 갈릴리 바다의 폭풍우가 예수님의 말씀에 잠잠해졌던 것처럼, 우리의 영혼이 성령의 임재하심으로 평온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세속이 싫어지고, 죄가 혐오스럽게 느껴지면서 그토록 버릴 수 없다고 생각되던 죄가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성령의 역사에 대한 바울의 설명은 분명합니다. “만일 너희 속에 하나님의 영(성령)이 거하시면 너희가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니라 .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성령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무릇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그들은 곧 하나님의 아들이라”(롬 8:9, 13,14). 성령의 지배를 받는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과 계명을 무겁다고 생각하거나 불편하게 느끼지 않게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요일 5:3). 십자가를 바라본 그리스도인은 이 세상과 사탄 앞에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는 삶을 사는 것을 큰 특권과 명예로 생각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성령을 어떻게 받는 것입니까? 여기 분명한 대답이 있습니다. “우리는 이 일의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행 5:22). 정말 성령을 받기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 그리스도인으로서 반드시 가져야 할 영적 경험을 하지 못할 뿐 아니라 사탄의 덫에 걸려서 길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떤 영의 지배를 받고 있습니까?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마 7:16~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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