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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부, 양심에 문제가 생기면 구원을 잃어버립니다

2001년 9월 11일, 뉴욕 쌍동이 건물이 폭파된 후 미국 CIA에서는 5천만 불의 현상금을 걸고 빈라덴을 끈질지게 추적했습니다. 빈라덴은 온갖 고생을 하면서 드라마 같은 도주자의 삶을 살았지만 결국 10년 만에 붙잡혀서 살해되었습니다. 빈라덴의 아버지는 사우디아라비아의 최대 건설업체인 ‘빈라덴 그룹’의 소유주였기 때문에 줄곧 백만장자의 아들로 자라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슬람 극단주의 신학을 받아들이고 평생 테러리스트의 삶을 살았습니다. 그는 왜 돈과 명예를 버리고 깊은 산과 광야를 숨어다니는 삶을 선택했을까요? 참 이상하게 들리는 말이지만, 빈라덴은 양심의 음성을 거절할 수 없었기 때문에 그런 삶을 선택한 것입니다.

그는 뉴욕의 쌍둥이 건물을 폭파시켜서 3천 명 이상의 무고한 시민을 살상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양심의 음성을 따랐다고 믿었습니다. 오히려 자신의 살인 행위를 명예롭게 생각했습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을까요? 양심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입니다. 양심은 자신이 믿는 대로 음성을 냅니다. 이슬람 극단주의를 신앙으로 받아들으면, 양심은 아무런 거리낌 없이 “테러를 하라.”는 음성을 낼 수 있습니다. 빈라덴의 양심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지 못했기 때문에 의의 음성을 낼 수 없었습니다. 양심이 의의 음성을 내지 못하면, 죄를 범해도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되고 짐승의 수준으로 떨어지게 됩니다. 빈라덴처럼 3천 명을 죽이고도 “잘못했습니다.”라는 사과 한마디 하지 않게 됩니다.

 

진리로 교육받아야 하는 양심

성경은 양심의 음성에 순종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자기 양심만을 믿고 사는 그리스도인은 반드시 멸망당하게 됩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진리로 교육받지 않은 양심은 위험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에 들었던 양심의 음성과 이후에 들었던 양심의 음성은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의 양심은 바울에게 무엇이라고 말했습니까? 예수와 제자들을 핍박하고 죽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이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는 양심으로부터 무슨 음성을 듣게 되었을까요?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해서 예수님을 구세주로 섬기라는 양심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내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누구의 음성인지 확인해야 합니다. 내 욕심에서 나오는 음성인지, 성령께서 주시는 음성인지 확인해야 하는데, 그 기준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의와 불의를 결정하는 기준은 내 속에서 들려오는 음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십계명입니다. 아무리 선교 사업을 하고 기도하고 방언을 한다고 할지라도, 양심이 죄와 유혹에 대해서 저항의 음성을 내지 못하면 그 사람의 양심은 믿을 만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빈라덴처럼 양심이 내는 불의한 음성 때문에 더 깊은 자기기만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양심의 음성을 듣되, 진리로 교육받은 양심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는 양심은 선한 양심이 아닌데, 그 이유는 의의 음성을 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다”는 말은 양심이 진리로 교육받아서 나침반처럼 정확한 음성을 낼 수 있을 때에만 할 수 있는 말입니다. 아무리 선해보이는 사람일지라도, 양심이 진리로 교육받고 회개하여 거듭나지 않으면 의로운 음성을 낼 수 없습니다. 겉으로 보기에 착하고 도덕적이라고 해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에 의해서 거룩하게 변화된 양심을 가져야만 하늘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모든 사람은 타락하고 죄된 양심을 가지고 태어납니다. 정직하고 순결한 양심은 부모로부터 물려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양심은 그리스도의 은혜와 진리에 의해서 새롭게 태어나야만 의의 음성을 낼 수 있습니다.

 

진리를 통해서 구원받는 과정

우리가 이 땅에 태어나는 목적이 무엇일까요?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행 17:26, 27).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인생’이라는 시간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을 더듬어 찾고’ 진리로 양심을 교육시키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더듬어 찾’은 사람들은 진리가 양심을 교육시킬 수 있도록 성경 말씀을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예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거룩하게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7). 진리는 성경 속에 기록되어 있는데, 어떻게 성경 속에 있는 말씀이 우리를 거룩하게 할 수 있을까요? 먼저, 간절한 마음으로 성경에 담겨져 있는 진리를 캐내야 합니다. 그러면 진리가 우리 마음에 새겨지면서 양심을 교육시킵니다. 진리로 교육받은 양심은 하나님의 뜻과 일치한 의의 음성을 낼 수 있게 됩니다. 그때부터 우리는 양심의 음성을 신뢰할 수 있는데, 성령께서 양심을 통해서 들려주시는 의의 음성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의의 열매가 맺혀지게 됩니다. 사도 요한은 그런 경험을 하는 마지막 시대의 의인들을 요한계시록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했습니다. “땅에서 구속함을 얻은 십사만 사천 인밖에는 능히 이 노래를 배울 자가 없더라 이 사람들은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이 있는 자라 어린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사람 가운데서 구속을 받아 처음 익은 열매로 하나님과 어린양에게 속한 자들이니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계 14:3~5).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진리가 성경책에만 써 있으면 아무 역할도 할 수 없습니다. 진리가 양심에 새겨져야 합니다. 그러므로 진리가 무엇인지 알기 위해서 고뇌하면서 찾지 않는 사람들은 구원에서 멀어져 가게 됩니다. 사탄의 미혹을 받게 됩니다. 죄로 더렵혀진 양심에서 나오는 음성을 하늘의 음성으로 알고 따라가게 됩니다. 그러나 희망이 있습니다. 하늘은 간절한 심령으로 진리를 찾는 성도들에게 성령을 보내 주셔서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시고 ‘좁은 길’로 인도해 주십니다.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교육받는 경험이 정확하게 이루어지지 않으면, 교회를 수십 년 다녀도 성령을 통해서 양심에서 들려오는 의의 음성을 듣지 못하게 되고, 참된 구원의 경험을 하지 못하게 됩니다.

 

위험합니다. 조심하세요!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가 갖고 있는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진리로 교육시키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그리스도인들은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 그것이 죄인지도 모릅니다. 진리의 말씀으로 양심을 교육시키고 씻지 않았기 때문에 양심이 의의 음성을 낼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십자가에서 계명이 폐하여졌으므로 하나님의 계명에 불순종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가르침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십계명에 불순종하는 죄를 범하고 있으면서도 전혀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고 있습니다. 양심이 진리로 교육받지 못하면 죄를 분별하지 못하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결국 육신의 생각대로 살다가 구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죄를 범한 아담과 하와가 가장 먼저 느낀 것은 ‘두려움’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 가로되 내가 동산에서 하나님의 소리를 듣고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하여 숨었나이다”(창 3:9,10). 그들은 사랑의 하나님께서 부르시는데 왜 숨었을까요? 왜냐하면 양심의 가책을 느꼈기 때문입니다.죄를 범한 사람은 두려움과 양심의 가책을 느끼게 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의의 옷이 벗겨지면 두려움을 느끼는 것이 정상입니다.

바로 여기에 이 시대의 교회가 갖고 있는 문제가 있습니다.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 사람들은 죄와 세속에 붙잡혀서 살기 때문에 의의 옷이 벗겨지고 말았습니다. 그러나 자신이 벌거벗고 있는지 모르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자신이 벌거벗은지 모른 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계 3:17). 마지막 교회 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벌거벗고 있는데 왜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할까요? 양심이 “의의 옷이 벗겨져 있다.”고 말해 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양심은 자신이 믿는 대로 음성을 냅니다. 거짓을 믿으면 거짓을 말하고, 진리를 믿으면 진리를 말합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내 마음과 삶이 어떠하든지 간에 예수님을 영접하면 구원받는다. 한 번 믿고 회개했으면 누구도 구원을 빼앗아 갈 수 없다.”는 식의 거짓 가르침이 양심에 새겨져 있기 때문에, 불순종과 죄를 붙잡고 살아가고 있으면서도 “흰옷”이 벗겨져 있는지 모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 성도들에게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호소하시는 것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계 3:18). 죄를 범한 사람은 두려움 속에서 떠는 대신에 하나님 앞에 나와 죄를 고백하고 회개함으로써 “흰옷”을 입고 영혼의 평안을 회복해야 합니다. 그것이 죄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진리를 무시하고 죄를 범함으로써 양심의 가책이 생기면 죄책감을 잠재우면서 성령의 역사를 거절합니다. 참으로 두려운 일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성령께서 주시는 양심의 가책을 부정적으로 생각합니다. “정신 건강에 좋지 않은 죄책감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하면서 불순종 속에서 평안을 누리고,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면서도 기쁜 마음을 가질 수 있도록 유도하는 교리와 설교와 예배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조심하셔야 합니다. 십자가 앞에 나가 죄를 버리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만이 영혼의 평안과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할 수 있는 유일한 길입니다.

양심의 음성을 인위적으로 잠재우면 자기기만에 빠지게 되고 결국 구원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고 있는 평안이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평안인지, 아니면 양심의 음성을 잠재움으로써 인위적으로 만들어 낸 평안인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정로니 이 길로 가라.”는 성령의 음성을 소홀히 여기는 사람들은 양심을 통해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사탄은 다음과 같은 사람의 마음에 쉽게 들어갑니다. 자기 생각이나 판단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자기 느낌이나 감정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자기 이론이나 사상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기도 중에 떠오른 생각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명상 중에 들었던 음성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꿈에서 보았던 장면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자신이 경험한 기적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타락한 양심의 음성을 성경 말씀보다 위에 놓는 사람.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무엇을 들으셨습니까? 무엇을 보셨습니까? 무엇을 경험했습니까? 여러분께서 보고, 듣고, 경험한 것이 하늘로부터 내려온 것인지 성경 말씀을 통해서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지금은 미혹의 시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지 않는 것들은 결국 모두 흔들려서 떨어져 나가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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