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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나님은 정말 공평하신 분인가요?

한번은 친구가 찾아와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자와 멸망당할 자를 이미 예정해 놓으셨어. 아기가 어머니 배속에서 나오기도 전에 이미 구원 또는 멸망이 결정되어 있는 거야.” 그런데 얼마 후 그 친구가 다시 찾아와서 이런 고민을 털어놓았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하지? 솔직히 말해서 구원에 대해서 생각할 때마다 두려운 생각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없어. 사춘기 아들이 신앙에 관심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어쩌면 내 아들을 멸망시키기로 예정하셨는지 모른다는 생각이 떠오를 때마다 잠이 오지 않는단다. 나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는 성경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지 모르겠어.” 그 친구는 지금도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천국행 그리스도인들’ 속에 자신과 아들이 포함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는가를 두려워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여러분도 마음속 깊은 곳에 그런 두려움을 갖고 계십니까?

인간의 구원과 멸망이 예정되었다는 가르침은 중세기 천주교회의 어거스틴에 의해서 첫 번째 기초가 놓여졌는데 그때부터 지금까지 다음과 같은 반대와 의문이 끊임없이 제시되고 있습니다.

1) 만일 모든 사람의 구원과 멸망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전도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결국, 하나님께서 예정해 놓은 대로 어떤 사람은 구원받고, 어떤 사람은 멸망받게 될 텐데 전도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2) 만일 모든 사람의 구원과 멸망이 하나님에 의해서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성경을 공부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진리에 대한 지식이 구원과 멸망에 영향을 주지 못하는데, 우리가 왜 성경을 공부하고 예언을 연구해야 합니까? 적그리스도가 누구이고 짐승의 표가 무엇인지 알아야 할 필요가 어디 있습니까? 구원과 멸망이 이미 결정되어 있다면, 성경은 왜 우리에게 하나님을 더듬어 찾으라고 합니까?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희의 연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행 17:26~27).

3) 하나님께서 미리 정하신 대로 사람들이 멸망받게 된다면 왜 하나님께서는 악인의 죄를 책망하고 심판하십니까? 그들은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대로 살아갔을 뿐인데 왜 그들에게 죄에 대한 책임을 묻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미리 예정해 놓으셨다면, 천국에 갈 사람들은 행운아지만, 지옥 불에 들어갈 사람들은 너무나 억울한 것이 아닙니까? 유대인 6백만 명을 죽인 히틀러도 억울하고, 수많은 사람들을 굶주려 죽게 한 김정일도 억울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단지 하나님께서 예정해 주신 역할에 충실했던 것이기 때문입니다.

4) 어차피 모든 사람의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어 있다면, 예수께서는 왜 넓은 길을 걷지 말고 좁은 길을 걸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까? 왜 우리에게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선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마 7:13~14).

5) 하나님께서 이미 모든 사람들의 구원과 멸망을 결정해 놓으셨다면, 성령께서는 왜 우리의 양심 속에 의의 음성을 들려주십니까? 우리가 죄악의 길을 걸어가려고 할 때, 성령께서 왜 “이 길이 정로니 이 길로 가라.”고 호소하고 가책을 주십니까?

예정론이 기독교회에 들어온 지 수백 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이런 도전과 질문에 대한 명백한 답을 내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단지 “구원과 멸망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하심과 의도를 믿고 받아들이라.”는 설명만 되풀이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불공평하고 설명되지 않는 예정론을 따라가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 

분명한 사실은, 성경은 하나님의 예정을 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예정하심에는 온 인류에 대한 깊은 사랑과 자비와 동정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으며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딤전 2:4)

“주의 약속은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후 3:9)

그렇습니다!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은 모든 사람이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주를 믿으면 구원받게 하려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whosoever)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킹제임스 성경)

하나님의 예정은 참으로 공평하고 자비로우며 사랑이 충만한 예정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예정이야말로 다른 어떤 가르침보다도 복음적이고 하나님의 성품을 정확하게 반사하는 교리입니다. 하나님의 예정을 올바로 이해해야만 하나님의 사랑과 십자가의 희생이 분명하게 우리 가슴에 와서 닿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진리를 올바로 알면 감사의 정신을 가지고 좁은 길을 끝까지 걸어가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 수 있게 됩니다.

 

미리 아시는 하나님의 능력

물론, 하나님께서는 전지전능하시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구원받을 것이고 또 어떤 사람은 멸망하게 될 것을 아십니다. 그러나 미리 아는 것과 미리 정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 입니다. 하나님께서 강제적으로 어떤 사람은 구원하고 어떤 사람은 멸망하기로 정하신 것이 아니라 미리 아시는 것일 뿐입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신 자들로 또한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기 위하여 미리 정하셨으니 이는 그로 많은 형제 중에서 맏아들이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또 미리 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롬 8:29~30)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구원과 멸망을 이미 알고 계신다.”는 사상에 대해서 이상하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의 ‘미리 아시는 능력’을 의심스런 눈으로 쳐다봅니다. 그러나 성경에는 하나님의 미리 아시는 능력이 분명하게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 다니엘에게 2,500년 동안 나타나게 될 제국들의 순서와 특징을 정확하게 미리 보여 주셨습니다(단 2장, 7장). 바벨론 다음에는 누가 메데-페르시아를 일으키고, 그다음에는 누가 그리스를 세우고, 그다음에는 어떻게 로마제국이 세워지고 분열될 것인지에 대한 예언이 정확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국가의 흥망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인간의 구원과 멸망도 미리 예지(豫知)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사도 베드로는 하나님의 미리 아심과 구원에 대해서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의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입은 자들에게 편지하노니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더욱 많을지어다”(벧전 1:2). 이 말씀이 무슨 뜻인가요? 하나님께서는 어떤 사람의 미래를 보시면서 그가 언제, 어떤 상황에서 양심을 통해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받아들일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피로 죄를 용서받고 정결하게 될 것을 보십니다. 그리고 용서받은 기쁨과 감사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성도가 될 것을 보시고, 은혜와 평강이 넘치는 생애를 살아가게 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음성을 주시고 호소하실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새로운 빛과 진리를 주실 때 그 말씀에 순종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것입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과 멸망을 미리 아신다고 할지라도, 우리에게 구원 또는 멸망을 강요하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결정과 선택을 존중해 주십니다. 아무도 억지로 구원받거나 멸망을 강요당하지 않습니다. 구원과 멸망은 태어날 때부터 정해지는 팔자소관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반응하는 우리의 태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사랑과 공의에 대한 매우 아름다운 균형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공평한 예정을 믿는 사람들은 몇가지 성경절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각자의 구원과 멸망을 이미 정해 놓으셨다고 생각합니다. 다음과 같은 말씀은 불공평한 예정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미래를 내다보시는 하나님께서 당신께서 사용할 종들을 미리 선택하는 모습입니다.

내가 너를 복중에 짓기 전에 너를 알았고 네가 태에서 나오기 전에 너를 구별하였고 너를 열방의 선지자로 세웠노라 하시기로”(렘 1:5)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한 평생의 삶을 미리 보실 수 있기 때문에 어떤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의 진리를 받아들여서 구원을 받게 될 것이지만 어떤 사람은 끝까지 구세주를 거절하고 말씀에 불순종함으로써 멸망받게 될 것을 아십니다. 또 어떤 사람은 큰 그릇으로 사용될 수 있고, 어떤 사람은 자기 혼자만 겨우 담을 수 있음을 아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어머니 복중에 있는 태아를 당신의 선지자로 선택하실 수 있는 것입니다. 우주를 지으신 하나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인정한다면, 이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 어렵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의 생사고락과 구원과 멸망을 모두 아시지만 우리 모두에게 십자가의 은혜를 허락하시고 그것을 붙잡고 믿을 기회를 주심으로서 누구든지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되기를 원하십니다(요 3:16). 구속의 역사가 이렇게 이루어져야만 각 사람은 마지막 심판의 날에 자신이 범하기로 선택한 죄와 그리스도를 등진 반역과 진리를 거절한 것에 대한 책임을 지게 되고, 하나님께 아무런 원망이나 불평을 할 수 없게 됩니다.

 

불공평한 예정론이 가져오는 어둠과 그늘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구원과 멸망을 미리 정해 놓으셨다는 불공평한 예정론을 믿게 되면 그것은 곧바로 하나님의 성품에 대한 깊은 오해로 이어집니다. 내가 원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혹시라도 하나님께서 이미 정해 놓으신 구원의 예정에 포함되지 않았을 때는 지옥불 속에서 엄청난 형벌을 받아야 하는 상황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런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나님의 자비와 공의를 이해할 수 있겠습니까? 어떻게 온 마음을 다해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섬길 수 있습니까? 자신의 구원과 멸망에 대해서 전혀 선택의 여지를 남기지 않는 하나님을 생각할 때마다 마음 깊은 곳에서 “왜 하나님은 이렇게 불공평하게 우리를 취급하실까?”라는 의혹이 생기지만 입을 다문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불공평한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예정 때문에 자신이 피해자가 될까 봐 두려워하면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은 죄를 범하고 악한 결정을 할 때 이런 추측을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이 땅에 태어나게 하신 것은, 예수님을 은 30냥에 팔아 넘긴 유다처럼 악역을 담당하게 하기 위함이 아닐까?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유다를 이용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나를 이용해서 사탄의 불의를 드러내시는 것이 아닌가?” 얼마나 두려운 생각입니까? 이런 생각을 마음속에 갖고 있는 사람이 어떻게 십자가의 사랑과 복음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습니까?

불공평한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 중 어떤 사람들은 극심한 영적 요요 현상에 시달리게 됩니다. 상황이 좋아지고 신앙이 좋아지는 것같이 느낄 때는 “나는 구원받았다.”라는 확신을 갖습니다. 그러나 사업이 잘 안 되고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영적으로 낙담이 될 때 “혹시, 하나님께서 나를 멸망시키기로 예정하셨는가?”라는 의혹을 마음에 품게 됩니다. 신앙과 정서가 상황에 따라서 구원이 크게 흔들리기 때문에 우울한 생애를 보내게 됩니다.

불공평한 예정을 받아들인 사람들은 어차피 구원과 멸망 여부가 자신이 태어나기 전에 이미 하나님의 손에 의해서 결정되었다고 믿기 때문에 성경에 기록된 수많은 경고와 교훈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게 됩니다. 그 결과 말씀에 순종하는 신앙이 사라지게 되고, 점점 더 세속적인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예정론을 믿으면, 예수를 영접하고 교회 문턱을 넘어가는 순간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기로 예정하셨다.”는 오해를 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구원을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다.”고 착각하기 때문에 죄를 죄로 여기지 않게 되고 세속 안에서 거짓 평안을 누리게 됩니다. 복음 안에 믿음과 순종이 함께 있다는 진리를 보지 못하게 됩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두려운 사실은, 수많은 사람들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보다는 불공평한 예정론을 믿기 원한다는 것입니다. 왜 그럴까요? 왜냐하면 불공평한 예정론은 구원을 매우 쉽게 만들어 주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천국행 그리스도인들’ 속에 포함되면, 돈을 사랑해도 구원받고, 세상을 사랑해도 구원받을 수 있는 길이 열리기 때문에 예정론은 기독교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르침 중 하나가 되었습니다. 오늘날 예정론은 여러 가지 모습으로 진화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한 번 받은 구원은 결코 잃어버릴 수 없다. 예수를 영접하고 거듭나면, 죄를 붙잡고 있을지라도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와 같은 말로 포장되어 있습니다. 얼마나 매혹적인 설교입니까? 누가 그런 복음을 거절하겠습니까? 믿기만 하면 구원은 바로 결정되고 한 번 얻은 구원은 자신의 삶과 관계없이 항상 보장된다는 식의 설교가 얼마나 아름답게 들립니까? 아무리 죄를 범하고 진리를 거절할지라도 이미 결정된 구원 속에서 평안과 안전감을 느끼면서 사는 길을 누가 거절하겠습니까? 이런 이유 때문에 불공평한 예정이나 그와 유사한 복음을 제시하는 교회마다 교인들이 가득 차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즘 새로 올라오는 신흥 종교들도 이런 가르침을 그들이 전하는 복음 속에 깊이 새겨 놓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한때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었던 사울왕도 구원을 잃어버렸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울은 한때 참된 신앙을 갖고 있었습니다. “네게 여호와의 신이 크게 임하리니 그도 그들과 함께 예언을 하고 변하여 새사람이 되리라”(삼상 10:6). 사울은 “여호와의 신”(성령)을 받았으며, 예언을 했고 새 사람이 되는 놀라운 경험을 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사울은 왕이 된 후 교만과 질투의 화신이 되었고 하나님을 거역하는 삶을 살다가 결국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삼상 31:1~6).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에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한 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여한 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히 6:4~6).

 

진실로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되기 원하는가?

오늘날 예정론은 교회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가르침 중의 하나입니다. 그러나 만일 성경 학자들과 목사들이 하나님의 예정을 성서적으로 교인들에게 설교하고 가르친다면, 예정에 대한 가르침은 교회에서 가장 인기 없는 가르침이 될 것입니다. 만일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이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의 예정을 참으로 이해한다면, 여러분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놓고서 고뇌하게 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예정을 받은 사람들은 가시밭길을 걷게 될 것이고, 진리의 좁고 가파른 길을 걸어가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로부터 예정받은 경험을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내가 수고를 넘치도록 하고 옥에 갇히기도 더 많이 하고 매도 수없이 맞고 여러 번 죽을 뻔하였으니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는데 일 주야를 깊음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에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후 11:23~27).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된 그리스도인은 핍박과 박해, 가난함,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 교회로부터 쫓겨남, 악인으로 취급받음 그리고 모든 의무를 짊어지고 인생의 길을 걸어가게 될 것입니다.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걸었던 고난의 길을 걷게 될 것인데 그것이 하나님의 예정을 받은 자들의 삶이었습니다. 독자 여러분은 감사와 충성으로 하나님의 예정에 응답하시겠습니까?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예정하셨다는 사실은 기쁜 소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된 나머지 절반의 모습을 보아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예정에 의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에 들어가는 특권을 누릴 뿐 아니라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달리는 고통에도 참여해야 합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고통이 먼저 오고 영광이 나중에 오는 것입니다. 좁은 길이 먼저 나타나고 하늘 진주 문은 나중에 나타납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가르치고 있는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이 이 사실을 알게 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의 예정 속에 포함되지 않게 해 달라고 간절히 원하게 될 것입니다.

하늘의 예정을 받았던 예수 그리스도께서도 십자가의 고통을 목전에 두시고 “아버지여 할 수만 있다면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시지 않았습니까! 옛적부터 지금까지 하늘의 예정을 받은 사람들의 삶을 성경 속에서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예정하신 12제자 중 11제자가 순교당했습니다. 그들을 따르던 수많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예정하심을 받아들였기 때문에 감옥에 갇히고 매를 맞고 맹수에 뜯겨서 죽었습니다. 그런 기독교 역사를 깊이 명상한 다음에 “하나님께서 나를 구원하시기로 예정하셨다!”라고 말해야 합니다. 세상은 하늘의 예정을 받았던 사람을 부러워하거나 흠모하지 않았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히려 하나님께 예정받지 않았음을 다행으로 여기고 그것으로부터 가능한 한 멀리 떨어져 있으려고 애를 썼습니다. 예정받은 자들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에 속한 자들이 아니었기 때문에 세상은 그들을 미워했습니다.

 

우리의 몫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위로 구원과 멸망이 결정되기 때문에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구원을 위해서 우리가 해야 할 몫이 있습니다”라고 말하면, 예정론을 믿는 사람들은 “그렇다면, 우리가 무엇을 행해야만 구원받을 수 있다는 말입니까? 그것은 행함으로 말미암는 의가 아닙니까?”라고 질문합니다. 우리의 몫이 분명히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 대한 우리의 믿음을 고백해야 하고, 나뭇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어야만 생명이 유지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 계속해서 붙어 있어야만 합니다. 계속해서 말씀에 붙어있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그리스도의 생명이 우리의 성품과 생애 속에 들어와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 됩니다. 그리스도와 그분께서 주신 진리를 굳게 붙잡는 것, 바로 그것이 구원을 위하여 우리가 해야 할 몫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내쫓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우리 자신을 분리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우리 스스로 끊어 버리는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선택권이 주어져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하나님 대신에 사탄을 선택할 수 있습니다. 하늘 대신에 세상을 선택하기로 결정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택과 결심을 통하여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순종은 단순한 행위가 아니라 하늘 아버지의 사랑과 희생에 대한 우리의 반응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에 순종하고 옳은 일을 하기로 선택하는 것은 성령께서 마음속에 의를 사모하는 심령과 거룩한 충동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선한 행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구원받았기 때문에 의의 열매가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십자가를 바라보는 영혼마다 주님의 은혜에 조금이라도 보답하고 싶은 심령이 생기고,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고자 하는 열망이 끊임없이 샘솟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참된 복음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에게 나타나는 <변화>입니다.

“악을 행하는 자마다 빛을 미워하여 빛으로 오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 행위가 드러날까 함이요 진리를 쫓는 자는 빛으로 오나니 이는 그 행위가 하나님 안에서 행한 것임을 나타내려 함이라 하시니라”(요 3:20~2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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