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5부, 젊은 목회자에게 보내는 호소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롬 12:1)

젊은 목사들이시여, 저는 여러분이 무엇인가를 바꾸어 보려고 하고, 새로운 것들을 시작하려고 애쓰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또한 예배 분위기를 밝게 하기 위한 여러분의 고민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섬길 때 인간의 감정과 세상의 트랜드로 섬기지 말아야 합니다. 언젠가는 여러분의 뼈와 몸과 아이디어도 노쇠해서 쓸모없게 됩니다. 그때가 되도 후회하지 않을 충성된 심령으로 하나님을 섬기십시요. 여러분은 지금보다 훨씬 더 깊이 진리를 경험해야 합니다. 더 깊이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이제 신학교를 갓 졸업한 여러분이 어떻게 사람의 마음을 만질 수 있습니까? 인생의 희로애락이 무엇인지 모르는 젊은이가 어떻게 인생을 이해할 수 있습니까? 신학교를 졸업하고 안수를 받았다고 목사가 되는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은 더 많이 기도하고 더 많이 말씀에 젖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하나님의 것”이 아닌 “내 것”이 목회와 설교를 통해서 흘러나가게 될 것입니다. 목회는 방법이 아니라 말씀입니다. 재치 있고 말 잘하는 설교를 버리고 듣는 자의 심령을 주 앞에 굴복시키는 말씀을 준비해야 합니다. 설교 준비는 자신의 삶을 하나님께 온전히 바치는 데서 시작된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말씀과 분리된 것은 아무리 멋지게 보여도 예수께서 재강림하실 때 모두 불에 타서 없어질 것입니다.

청년 사역의 목표가 아이들을 교회 안에 붙잡아 두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청년 세대는 인터넷과 트랜드에 젖어 있는 세대입니다. 그들은 숨 가쁘게 뛰어도 따라가기 힘든 경쟁 속에 살고 있습니다. 사회에 대한 분노와 억울함과 무관심이 청년들의 정서 속에 깊이 깔려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의 정서와 마음을 뚫고 들어갈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그들을 생명으로 인도할 수 있을까요? 반드시 말씀을 높이 들어 올려야 합니다! 청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서 자신이 얼마나 참담한 형편 가운데 있는지 알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청년들도 구원받아야 합니다! 부모와 장년에게는 거룩함을 요구하면서, 왜 청년 예배는 감정과 엔터테인먼트로 끌어가려고 합니까?

젊은 목회자들이시여, 하나님께서 매 주일 청년들을 여러분 앞에 앉혀 놓고 기다리십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께 무엇을 기대하실까요? 하늘의 말씀을 나눠 주기를 기대하십니다. 청년들의 친구가 되어 주고 사랑으로 보듬어 주어야 하지만, 진리를 소홀히 여기고 가리운 채 그렇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날 많은 청년들이 진리가 무엇인지 모른채 교회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과 성령의 역사에 대해서 알면 알수록, 여러분은 방법과 수단을 내려놓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 하나로 하늘에 해와 별을 지으시고 땅을 만드신 분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인간의 방법과 수단은 너무나 초라하고 무력한 것입니다. 말씀에 집중해야 합니다. 진리가 청년들의 마음에 고민을 줄지라도 두려워하지 마십시요. 설교가 재미있는 바이블 스토리가 되어 버리면 안 됩니다. 마지막 날에 그대들이 왜 그런 설교를 했고 왜 예배를 그렇게 이끌어 갔는지 하나님께 대답해야 합니다.

 

겉과 속 

많은 사람이 이렇게 말합니다. “겉모습을 가지고 사람을 정죄하면 안 됩니다.” 물론입니다. 우리는 겉모습으로 사람을 판단하고 정죄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바울은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말합니다. 산 제사로 드리라는 말씀은 겉모습과 속마음 전체를 하나님께 드리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겉모습과 속마음이 그리스도인다워야 합니다. 겉과 속이 달라서는 안 됩니다. 입과 코에 구멍을 뚫고 팔과 목에 문신을 그리는 것이 신앙과는 상관없다고 생각하는 청년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보고 듣는 것은 기독교 신앙과는 상관없다고 믿는 사람들이 점점 더 많아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그런 생각과 믿음을 인정해 주는 설교를 하면 마음이 관대하고 사랑이 많은 목사로 존경받습니다. 지금 기독교회가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 것입니까? 영혼의 갈급함, 죄에 대한 애통, 그리스도 안에서만 누릴 수 있는 참된 행복, 진리를 위한 희생과 헌신, 이런 특성들이 성도들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겉모습은 속마음과 분리되어서는 안 됩니다.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마 15:18). 겉은 속을 나타냅니다. 속마음이 깨끗하면 겉모습도 세상을 따라가지 않게 됩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우리가 진정 하나님을 사랑한다면, 속에서 일어난 변화가 겉으로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겉모습을 억지로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속에 있는 것이 겉 열매로 맺히게 되는 것입니다.

 

가장 복음적인 설교 

우리는 더 이상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닙니다. 심장도, 손과 발도, 위장도, 입술도 내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우리가 하는 말, 우리가 가는 곳, 우리가 사는 물건,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의 삶 전체가 하나님의 말씀과 성품을 드러내기 위해서 준비되어야 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교파적으로 볼 때 이런 사상에 가장 충실했던 사람들은 청교도입니다. 그들은 정말 그들이 믿는 대로 살려고 노력했던 사람들입니다. 청교도들에게 그런 신앙이 있었기 때문에 유럽에서 그들이 누리던 기득권과 재산을 버리고 전염병이 들끓고 황량한 신대륙 미국으로 왔던 것입니다. 그들의 신앙은 율법주의가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헌신과 충성이었습니다.

사랑하는 후배 목회자 여러분, 여러분이 정말 그리스도께 사로잡혀서 그분께 모든 것을 바치고 싶다면, 제자들이 전했던 복음으로 돌아가야 합니다. 예수님께 매료되고 사랑에 빠진 사람은 모든 것을 바치고 헌신하게 될 것입니다. 그분께서 원하시는 것이라면 하지 못할 것이 없다고 느끼게 될 것입니다. 그런 심령은 신학이라는 학위를 받는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 나가는 사람에게 새겨지는 회개와 감사와 충성의 심령입니다. 그것은 교파와 교단을 초월한 하늘의 마음입니다.

 

설교와 손해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린다는 것은 손해를 뜻합니다. 그리스도를 따른다는 것은 엄청난 손실을 의미합니다. 가장 큰 손실은 자아가 죽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는 것을 포기하는 것입니다. 내 뜻을 버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억지로 포기하고 버리는 것이 아닙니다. 더 좋은 것을 바라보기 때문에 내려놓는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바라볼 때마다 너무나 죄송하고 감사하고 마음이 아프기 때문에 기꺼이 손해를 감수하는 것입니다. 더 이상 그분의 가슴에 못질하고 싶지 않기 때문에 희생을 무릅쓰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 접붙임을 당할 때, 우리는 그분의 마음과 생애를 받아들이게 되는데 그때 우리는 우리의 삶에서 많은 것들을 버려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사도 바울처럼 모든 것을 배설물처럼 버리고 싶다는 소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내게 유익하던 것을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다 해로 여길 뿐더러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인함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려 함이니”(빌 3:7~9).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는 데에는 대가가 필요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대가를 요구하기 때문에 지불하는 것이 아닙니다. 대가를 지불하지 않고는 그리스도께 갈 수 없도록 사탄이 이 세상을 만들어 놓았기 때문에 대가를 치루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손해를 보고 대가를 지불하는 과정 속에서 더 깊은 진리를 만나게 될 것이고 거룩함이 어떤 것인지를 알게 될 것입니다.

 

최고의 동기  

매일 아침 일어나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려야 합니다. 산 제사를 드리는 것은 우리에게 익숙한 습관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훈련이 필요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런 질문을 합니다. “우리 자신을 산 제사로 드릴 수 있는 위대한 동기가 어디로부터 옵니까?” 바울은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산 제사를 드리게 된다고 대답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사로 드리라”(롬 12:1). 하나님의 자비와 용서가 모든 신앙과 헌신과 희생의 동기가 됩니다.

설교를 할 때 우리는 “이것을 해라. 저것을 하지 말라”는 계명을 제시합니다. 그러나 그것만 가지고는 능력 있게 말씀을 전할 수 없습니다. 교인들에게 “어떻게(How)”를 가르쳐 주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세상을 사랑하지 말라고 말하고, 이기심을 버리라고 설교하면, 신실한 그리도인이라면 이런 질문을 하게 됩니다. “목사님, 저는 목사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그러나 제가 그렇게 할 수 있는 힘을 어디서 얻을 수 있나요? 저는 결심을 해도 자꾸 쓰러집니다. 제게 승리의 비결을 알려주세요!” 이런 질문에 정확한 답변을 주는 것이 목사의 임무입니다.

 

구원으로 나가는 길  

구원은 하나님을 아는 데서 시작됩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그리스도의 생애와 십자가를 아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향한 사랑이 충성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그리스도께 대한 감사가 의를 향한 욕망을 자극하게 됩니다. 성령의 거룩한 충동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간절한 마음으로 의를 사모하고 그것을 향해 나아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뜻과 계명이 무거운 멍에가 될 수 없습니다.

성령께서는 성경 말씀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를 펼쳐 보여 주시면, 심령은 하나님을 향한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사람의 의지에 영향을 주어서 죄가 왕 노릇 하지 못하게 합니다. 사람의 의지 자체에는 아무런 희망이 없지만, 사람의 의지가 성령께 붙잡히게 되면 그런 의지는 죄를 거절하고 의를 붙잡게 됩니다. “죄가 사망 안에서 왕 노릇 한 것같이 은혜도 또한 의로 말미암아 왕 노릇 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영생에 이르게 하려 함이니라”(롬 5:21). 은혜 아래 거하는 사람은 주의 거룩함을 따라가게 됩니다. “죄가 너희를 주관치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음이니라 그런즉 어찌하리요 우리가 법 아래 있지 아니하고 은혜 아래 있으니 죄를 지으리요 그럴 수 없느니라”(롬 6:14~15). 죄와 세상을 이기는 믿음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를 깨달은 사람의 심령 속에서만 만들어질 수 있는 거룩한 속성입니다. 오늘날 교회 다니는 사람들이 무신론자처럼 살아가는 이유는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에 거룩한 충동을 일으키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윤리에 대해서 설교하지 말고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설교해야 합니다. 도덕에 대해서 설교하지 말고 성령의 능력에 대해서 설교해야 합니다. 그래야만 교인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능력을 바라보며 살게 됩니다. 내 속에 있는 것을 다듬고 고치는 것은 기독교 신앙이 아닙니다. 십자가의 은혜가 죄인의 심령과 삶에 어떤 역사를 이룰 수 있는지를 설교해야 합니다. 그것이 목사의 임무입니다.

 

은혜와 설교   

억만장자인 빌 게이츠에게 맛있는 샌드위치 수십 개를 주어도 그는 감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제가 아프리카의 굶주린 아이에게 샌드위치 반 조각을 주면 어떨까요? 그 아이는 제 손에 입을 맞추고 온 동네를 다니면서 저에 대해서 이야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그것을 받는 자에 따라서 크게 달라집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정말 무엇인지 알려면, 우리가 얼마나 희망이 없는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얼마나 죗되고 교만하며 이기적인 존재인지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하나님을 향해서 손을 뻗게 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심령으로 하늘을 향해 손을 뻗는 그리스도인마다 하나님의 은혜를 만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모르면, 그리스도인이 세상 사람처럼 살아가게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와 십자가의 희생을 말하지만 마음에 감동도 없고 죄송함도 없게 됩니다. 도무지 갚을 수 없는 빚을 졌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 빚을 조금 졌지만 곧 갚겠습니다!”라는 모습으로 살아가게 됩니다. 그런 사람들 눈에 순수한 복음과 헌신과 희생은 맹목적이고 위험한 것으로 비춰집니다. 그래서 은혜를 모르는 사람의 설교는 메마르고 무의미한 강론에 그치게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하지만 실제로는 사랑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크다고 말하지만, 정말 그것이 무엇인지 모릅니다. 왜냐하면 자신의 죄를 사함 받기 위해서 어떤 무게의 희생이 치루어졌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치룬 희생을 정말 안다면, 우리 마음은 무너지게 됩니다. 머리를 꼿꼿하게 세우고 “하나님, 나는 내가 원하는 방식대로 살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세상을 대적하는 첫 번째 무기는 진리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두 번째 무기는 힘들고 곤궁한 자들을 껴안고 살아가는 사랑입니다. 그리고 세 번째 무기는 지치지 않는 기도입니다. 이것 외에 다른 수단과 방법을 찾는 사람들은 길을 잃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자신을 부인하지 않고 십자가를 지지 않으려고 하는 사람들은 수단과 방법에 매달리게 될 것입니다.

 

혼자 있을 수 있는 신앙  

신학교를 졸업하고 처음 목회할 때 저는 열정적으로 설교했습니다. 그때 나이 지긋한 장로님이 제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목사님은 혼자 있을 수 있습니까?” 저는 그 장로님의 말을 이렇게 받아들였습니다. “경건한 설교를 하면 따돌림을 당하고 결국 혼자 남게 될텐데 그래도 괜찮겠습니까?” 그러나 장로님의 말은 그런 의미가 아니었습니다. 그분은 “다른 사람들이 세상 풍습을 따라 살아갈 때, 목사님은 혼자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습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말씀을 무시할 때, 목사님 혼자 말씀을 붙잡고 있을 수 있습니까?”라는 뜻이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진짜 신앙은 혼자 있을 수 있는가로 나타나게 됩니다. 혼자 있는 신앙이란, 다른 사람들이 잠을 잘 때 혼자 일어나 기도하는 신앙입니다. 호텔방에 혼자 있을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 혼자 있을 수 있는 신앙인입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보고 있지 않을 때에도 여전히 원칙을 지키고 하나님의 손을 붙잡고 있는 것이 혼자 있을 수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기도가 필사적인 이유  

기독교 역사상 가장 많은 교회 활동이 이루어지고 있고, 가장 많은 전략과 아이디어로 선교하는 시대이지만, 목사는 전략과 아이디어에 매달리는 사람이 아닙니다. 목회자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을 배우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선포하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성직자는 지식이나 지성에 의지해서 일하지 말고 온전히 성령에 의지해서 일해야 합니다.

믿음은 보이는 대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하면 두려움에 빠지게 됩니다. 부자를 의지하게 되고 돈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사는 그리스도인은 많이 기도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살기 원하는 목사는 필사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그런 목회자는 성령의 인도하심을 받게 될 것입니다. 설교와 삶을 통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감동을 전하게 될 것입니다.

 

부서짐과 설교  

위대한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에 의해서 부서진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린양이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자”로 만드시기 위해서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이 없으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사실을 배울 때까지 우리를 깨뜨리십니다. 하나님의 깨뜨림이 싫은 사람들은 진리를 떠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깨뜨림을 받은 사람은 붙잡고 있는 것들을 내려놓고 자신을 비우게 됩니다. 인기와 평판과 자존심을 내려놓게 됩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수 있는 그릇이 됩니다. 깨뜨림 받지 않은 사람이 갖고 있는 학위와 재능과 지성은 아무 쓸모없습니다. 오히려 방해가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의지하는 대신 그런 것들을 의지하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열심히 목회를 하고 성경을 연구하며 주석을 살필지라도 하나님께 깨어짐을 받지 않은 사람은 쓸모가 없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정통이라고 인정해 주어도 하나님에 의해서 부서지지 않은 목사는 참된 목자가 아닙니다. 부서지지 않은 사람은 재능이 많으면 많을수록, 설교를 잘하면 잘할수록 자신을 높이게 됩니다. 양들을 주님께 인도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인도합니다.

 

매달림과 설교  

사랑하는 젊은 목사들이시여, 우리는 날마다 주 앞에 나가 마음과 생애를 보여 드려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모습을 주님의 생애와 비교해 보아야 합니다. 저는 누구보다도 부족하고 허물이 많은 사람입니다. 아침에 일어나서 시계도 제대로 찾지 못하고 신발도 어디에 벗어 놓았는지 잊어버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런 연약함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드립니다. 왜냐하면 그런 연약함 때문에 날마다 주님께 매달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는 사람은 하나님께 매달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집요하고 끈질기게 성령의 임재를 구하는 사람입니다. 영적 생애의 승패는 내 의지의 견고함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 내가 얼마나 필사적으로 하나님께 매달리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의지와 매달림은 다른 것입니다. 칠흙같이 캄캄한 밤에 바다에 홀로 떨어진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요. 그 사람은 수영할 줄 모르기 때문에 허우적거리면서 두려움에 떨게 됩니다. 무엇인가 붙잡지 않으면 죽는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에 잡을 수 있는 것을 찾고 또 찾을 것입니다. 그것은 살기 위한 몸부림이지 의지가 강한 것이 아닙니다. 바로 그런 상태가 자신의 연약함을 느끼는 사람이 하나님께 매달리는 모습입니다. 하나님의 손을 잡지 않으면 죽는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상태, 그것이 날마다 하나님을 찾는 우리의 태도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의 옷자락을 잡는다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는 확신이 믿음입니다. 그런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승리하는 생애를 살게 됩니다.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목사님, 그것은 신앙을 너무나 절박한 것으로 표현하는 것이 아닙니까?” 사랑하는 청년 목회자들이시여, 우리는 정말 절박한 존재입니다. 단 한순간이라도 하나님의 손을 놓으면 순식간에 죄를 범하고 절벽 아래로 떨어질 수밖에 없는 연약한 존재입니다. 주님께로부터 눈을 돌리는 순간 나를 높이고 교만해지는 존재입니다. 얼마나 절박한 상황입니까?

적당하게 주님을 찾았던 사람들 중 누가 좁은 길을 끝까지 걸었습니까? 적당하게 진리를 붙잡고 있던 사람들 중 어떤 사람이 끝까지 충성했습니까?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더 절박하게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얼마나 필요한 분인지 깨달아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의 설교를 듣는 사람들의 필요가 무엇인지 볼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령께서는 그런 설교자에게 해야 할 말과 강조해야 할 메시지를 가르쳐 주실 것입니다.

성령을 받은 사람만이 하나님께 쓰임 받을 수 있다는 단순한 진리를 무시하지 마십시요. 어떻게 하면 성령을 받을 수 있을까요? 새벽에 자신의 생애 전체를 하나님께 바치는 사람은 성령을 받습니다. 이른 아침 시간에 기도하고 말씀을 펼쳐서 묵상하는 사람은 성령 충만함을 받게 됩니다. 아침 시간에 받은 말씀을 성령의 능력으로 전하는 것이 설교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을 신실하게 전하고, 힘들고 어려운 자들을 품고 사는 설교자가 마지막 시대의 하나님의 종입니다.

 

마지막 시대의 설교

요한계시록은 마지막 시대의 교회와 세상을 “큰 성 바벨론”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시대의 설교는 예수께서 재강림하기 전에 바벨론에 갇혀 있는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내는 외침이 되어야 합니다. 예수께서 오실 때 바벨론은 완전히 무너지고 멸망당할 것입니다. 바벨론의 복음과 죄 가운데 남아 있기로 선택한 사람은 모두 칠 재앙을 받고 멸망당하게 될 것입니다. “힘센 음성으로 외쳐 가로되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의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 18:2~4).

이 세상은 너무나 악하고 어두운 바벨론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이 마음에 우상을 품고 악을 토해 내고 있습니다. 사탄이 주의 종들을 쓰러뜨리기 위해서 굶주린 사자처럼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우리 스스로의 힘과 의지로는 결코 악의 세력과 대항해서 싸울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겸손과 성령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말씀의 검을 휘두르면서 전진하는 목회자는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를 막고 있는 모든 산이 무너지고 바다에 던져질 것입니다. 먼저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면서 전진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것입니다. 세상이 우리와 우리의 설교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될 것입니다! ■

 

질문 또는 소감을 보내주세요

* 필수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