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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론,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는 이유

예수께서는 “진리가 너희를 거룩하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저희를 진리로 거룩하게 하옵소서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요 17:16~17). 진리가 어떻게 우리를 거룩하게 할까요? 먼저 진리가 우리의 양심을 교육시켜야 합니다. 그래서 양심이 의의 음성을 낼 수 있도록 변화되어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양심에서 나오는 음성을 신뢰할 수 있고, 그 음성대로 따라갈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이 의의 경험이고 거룩한 삶입니다.

그런데 문제가 있습니다. 양심이 진리에 의해서 교육받아서 의의 음성을 내기 시작하면, 그때부터 우리 마음속에서 치열한 전쟁이 벌어진다는 것입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알게 되면, 우리의 마음속에서 선의 음성과 악의 음성이 싸우는 전쟁이 훨씬 더 치열해집니다. 우리가 양심의 의로운 음성을 받아들이고 따라가면 그곳에는 영혼의 평안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와 반대로 양심의 음성을 거절하고 따라가지 않으면, 정죄를 느끼게 되고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바로 여기에 그리스도인이 날마다 겪게 되는 갈등이 있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진리를 깨닫고, 양심이 살아서 움직이기 시작하면 하늘의 행복을 누려야 합니다. 그것이 정상입니다. 그러나 실제에 있어서 그렇지 못한 경우가 매우 많습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의 삶이 양심의 음성에 순종하고 따라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진리로 교육받은 양심은 계속해서 의의 음성을 내는데, 그 음성을 거절하고 육체의 요구를 따라가기 때문에 마음이 괴롭고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게 됩니다. 그런 삶이 오랫동안 지속되면 정죄받는 느낌이 점점 더 심해지게 되고 스트레스 때문에 마음에 그늘이 생기게 됩니다. 그래서 교회는 다니지만 깊은 좌절을 갖고 살아가게 됩니다. 성경과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면 읽을수록 부담이 커지기 때문에 점점 더 말씀을 등지게 됩니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쉬운 구원”을 찾게 됩니다. 넓은 길을 걸어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식의 설교를 들으면 금새 그것을 붙잡고 싶은 충동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의 시작  

이번 호에서 우리는 “왜 우리가 영혼의 평안을 잃어버리며, 어떻게 하면 잃어버린 평안을 다시 찾을 수 있는가?”라는 문제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 미션스쿨에 다녔습니다. 그런데 부모님이 교회를 다니지 않았기 때문에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일반 공립 학교로 진학하게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교회를 다니지 않게 되었고 멀리서 교회를 바라보면서 살았습니다. 그러다가 20대 후반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자연스럽게 누님을 따라서 교회를 다니게 되었습니다. 저는 지금도 처음 교회에 간 날을 기억합니다. 17년 만에 다시 교회를 찾아간 그날을 잊지 못합니다. 주차장에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나오는데 정말 오래간만에 듣는 찬양 소리가 창문 너머로 들려왔습니다. 그 음악 소리가 얼마나 아름답게 들렸는지 모릅니다. 교회를 다니는 것이 정말 행복했습니다.

그런데 교회 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서 참 이상한 일을 접했습니다. 그때 교회 청년반에는 대학생들이 많이 있었는데, 그들 중 여러 학생들이 불행한 모습으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크리스천 가정에서 편하게 살고 있는데 불행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들이 불행을 느끼는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그들이 양심의 음성대로 살지 않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교회 청년들 대부분은 어려서부터 교회에 다녔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양심이 진리로 잘 교육받았습니다. 그래서 양심이 계속해서 그들에게 의의 길을 걸으라고 말해 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들의 삶은 다른 곳을 향해 가고 있었습니다. 주중에는 세상 아이들과 섞여서 세속적으로 살다가, 교회에 오면 거룩한 말씀을 듣게 됩니다. 양심이 그들의 세속적인 삶을 책망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정죄받는 느낌을 가진 채 교회 다니게 되었고 불행하게 된 것입니다.

그 당시 나는 그들이 왜 스스로 불행하다고 생각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참 이상한 일이 생겼습니다. 교회를 다닌 지 1년이 지나면서 나도 불행해지기 시작했습니다. 내가 왜 불행하게 되었을까요? 양심의 음성을 따르기 싫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를 다니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알게 되었습니다. 진리에 대한 지식이 쌓이면서, 양심이 진리에 의해서 교육받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마음속에서 치열한 전쟁이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내 육체는 세속과 쾌락을 즐기라고 소리치는데, 양심은 내가 동의하고 받아들인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양심의 음성을 거절하고 무시하자, 양심이 나를 불편하게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나를 책망했습니다. 세상에 살면서 내 멋대로 살 때는 거칠 것이 없었는데, 교회에서 성경을 공부하면서 마음의 평안을 잃어버리고 불행을 느끼게 된 것입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청년들뿐 아니라 그 교회의 많은 어른들도 동일한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모두가 겉으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비슷한 고통을 갖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인데, 왜 그리스도인이 자꾸 불행과 정죄를 느끼게 되는 것일까요?

그때 나는 심각하게 고민했습니다. 도대체 언제까지 내가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를 생각할 때마다 정말 마음이 힘들었습니다. 나는 결정해야만 했습니다. 양심의 음성에 순종하고 영혼의 평안을 누리면서 교회에 남든지, 아니면 신앙을 포기하고 다시 세상으로 돌아가든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와중에 결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또 생겼습니다. 아내의 신앙과 나의 신앙이 달랐습니다. 아내는 이제 자녀들을 갖게 되니 한적한 곳으로 이사 가서 신앙적인 삶을 살자고 했습니다. 아내의 제안은 성서적이고 영적인 것이었는데 나는 그런 삶이 싫었습니다. 그래서 조용한 곳으로 이사 가자는 이야기가 나오면 대화를 다른 곳으로 돌리려고 애를 썼습니다. 내가 왜 그런 반응을 했을까요?

저는 대학원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고, 교회를 다니지만 적당하게 세속적인 삶이 좋았습니다. 은근히 죄를 붙잡고 사는 삶이 좋았습니다. 내가 붙잡고 있는 것을 포기하고 싶지 않았습니다. 그때 나는 그리스도인 신앙에서 중요한 사실을 한 가지 깨달았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마음을 다해서 받아들이지 않은 상태에서 신앙생활을 하면 그것은 내 마음과 인생에 큰 부담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우리 부부는 조용한 곳으로 이사 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나는 마음속으로 주님께 이렇게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는 영혼의 평안을 얻기 위해서 시골로 갑니다. 주님, 참된 그리스도인의 삶과 행복이 어떤 것인지 알기 원합니다. 학교에 대한 꿈도 포기하고 장래 계획도 버리겠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저에게 영혼의 평안을 주셔야 합니다.”

 

절망

조용한 시골에 살면서 나는 세상과 연결된 것들을 하나씩 버려 갔습니다. 처음 신앙의 길로 들어설 때에는 외적인 문제들이 이슈가 되었습니다. 술을 포기하고 담배를 끊고 엄격하게 원칙을 지키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하라와 하지 말라”의 신앙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눈에 보이는 문제를 모두 개혁하고 나면 내 영혼 속에 평안이 생길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서 그런 기대가 완전히 무너졌습니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투쟁이 점점 심해졌습니다. 처음에는 눈에 보이는 것들을 고치는 것이 신앙이라고 생각했는데, 가면 갈수록 문제가 외적인 것에서부터 마음속 중심으로 옮겨졌습니다.

처음 한동안 나의 결심과 개혁은 잘 진행되었습니다. 새벽에 일어나서 기도하며 말씀을 보고 경건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한 삶이 내게 많은 유익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앞에서 세상과 자아를 버리고 참된 중생의 경험을 하지 않은 상태에서 경건은 지속될 수 없었습니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성결은 오래가지 않았고 부자연스러웠습니다. 옆에서 보는 사람도 부자연스럽고, 내 자신도 부자연스럽게 느껴졌습니다. 겉모습은 그리스도인처럼 되었지만, 내 속에는 여전히 영혼의 평안이 없었습니다.

그 당시 나를 가장 힘들게 했던 것은 아침에 기도하고 말씀을 읽으면서 하루를 시작했는데, 오후에 유혹과 시험을 받으면 내 속에 숨어 있는 악한 본성이 여지없이 나를 제압하고 쓰러뜨리는 것이었습니다. 많은 습관과 문제들을 고쳤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죄에 넘어지고 끌려다니는 내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좌절했습니다.

그런 상황이 반복되고 길어지면서 영적으로 지쳐 갔습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이므로 이제 더 이상 하나님 말씀에 대한 순종은 생각하지 말자는 유혹이 고개를 쳐들기 시작했습니다. 더 이상 죄와 싸우고 투쟁하는 피곤한 삶을 살지 말자는 음성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들려왔습니다. 마음이 흔들리니까 신앙의 표준이 떨어지기 시작했고, 버렸다고 생각했던 세속적 습관들이 교묘하게 다시 들어오게 되었습니다. 말투와 얼굴 표정이 다시 옛날로 돌아가기 시작했고, 그동안 지켜 온 원칙이 무너져 갔습니다. 세상에 대한 미련과 그리움이 밀려왔습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걸어왔던 길을 포기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다음과 같은 사도 바울의 말씀이 나를 붙잡고 놔주지 않았습니다.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롬 6:16)  

 

로마서 7장에서 본 나의 모습      

나는 여러 번 주 앞에 나가 기도했습니다. “주님 저에게 어떤 문제가 있는 것입니까? 왜 저는 성령께서 주시는 의의 음성에 순종할 수 없습니까? 왜 제 속에서 악한 충동과 이기심이 올라오나요?” 그러던 중 주님께서 로마서 7장을 읽도록 나를 인도해 주셨습니다. 나는 로마서 7장을 읽으면서 너무나 놀랐습니다. 왜냐하면 거기에 내 모습이 적나라하게 나타나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 투쟁에 지치고 죄에 시달리는 내 영혼의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속사람은 거룩함을 따라가려고 애쓰는데, 어쩔 수 없이 죄에 붙잡혀서 끌려가는 모습이 거기에 있었습니다.

“우리가 율법은 신령한 줄 알거니와 나는 육신에 속하여 죄 아래 팔렸도다”(롬 7:14)

나는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은 선하고 거룩하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에 순종하려고 최선을 다했지만, 내 마음과 삶이 자꾸 죄를 범하고 죄 아래에 팔려 가게 되었습니다. 내 의도와 목적은 선했지만, 마음과 삶이 하나님의 거룩한 말씀에 순종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다가 큰 고민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나의 행하는 것을 내가 알지 못하노니 곧 원하는 이것은 행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미워하는 그것을 함이라…원함은 내게 있으나 선을 행하는 것은 없노라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롬 7:15, 18~19)

로마서 7장에 나오는 사람은 죄를 범하고 싶지 않은데 자꾸 죄를 범하게 되었고, 선을 행하고 싶은데 자꾸 악을 행했습니다. 양심을 통해서 들려오는 성령의 음성을 따라서 살고 싶은데 실패했습니다. 내 뜻대로 살지 못하고 죄에 끌려다니는 노예로 살아갔습니다. 그래서 심령 깊은 곳에서 다음과 같은 탄식이 나오게 됩니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롬 7:24)

이런 그리스도인은 늘 정죄받는 무거움 속에서 살아가게 됩니다. 양심의 가책 때문에 고통받아서 깊은 절망과 좌절을 품고 살아가게 됩니다. 마치 출구가 없는 방에 갖혀 있는 느낌을 받게 됩니다. 이런 사람들은 영적인 투쟁을 포기하고 “믿기만 하면 구원받습니다. 한 번 예수님을 영접하고 구원받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습니다.”라는 거짓 복음을 받아들일 수 있는 위험 속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사탄은 죄를 붙잡고 있으면서도 율법의 정죄와 양심의 가책을 피할 수 있는 거짓 복음을 기독교회 속에 깊이 심어 놓았습니다. “믿기만 하면 구원받는다. 내가 어떻게 살든지 간에 예수를 영접하면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는 거짓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충성하는 신앙을 버리고 성령의 음성을 잠재우는 삶을 살아가게 됩니다.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나는 로마서 7장 말씀을 읽고 정말 기뻤습니다. 왜냐하면 나 혼자만 이렇게 외롭고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로마서 7장에 나와 같은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서 7장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 마음속에 또 하나의 질문이 생기게 되었는데, 그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죄에 끌려다니는 것이 정상인가? 말씀에 순종하기 원하지만 순종할 수 없고, 선을 행하기 원하지만 악을 행하는 것이 당연한 것인가? 누구나 다 이렇게 살다가 하늘 가는 것인가? 이렇게 육체의 요구에 끌려다니는 사람에게도 영혼의 평안이 존재할 수 있는가? 성경이 말하는 영혼의 평안은 정말 가능한 것인가?”

로마서 8장에서 사도 바울은 육체의 욕망과 성령의 음성이 크게 충돌할 때, 우리가 그 가운데서 어떻게 성령의 음성을 붙잡고 의의 종으로 살아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 말해 주고 있습니다. 어떻게 영혼의 평안을 누리면서 생명의 길을 걸어갈 수 있는지 보여 줍니다. 로마서 8장은 그리스도인이 반드시 경험해야 할 중요한 진리를 보여 줍니다. 이번 호에서 다루는 복음을 정직한 심령으로 대하는 분들은 성령께서 놀라운 빛을 보여주실 것입니다. 이 세상이 줄 수 없는 하늘의 평안과 행복을 소유할 수 있는 길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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