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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아마겟돈 전쟁과 마지막 엘리야의 투쟁

우리는 지금까지 엘리야 시대의 배도가 기독교 역사에서 계속해서 반복된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엘리야 시대의 배도가 크게 일어날 때마다 동일한 패턴으로 반복된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요한계시록은 중세기 종교 암흑기는 엘리야 시대의 이세벨을 이용해서 교회의 배도를 예언하였고, 짐승의 표 환난에서는 엘리야 시대 갈멜산에서 있었던 투쟁의 장면을 이용해서 거짓 선지자들이 미혹을 보여주었습니다.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 13:13-14)

 

성도 여러분, 요한계시록이 엘리야 시대의 배도를 이용해서 기독교회의 배도를 설명하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계시록은 풀 수 없는 책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그런데 엘리야 시대의 배도와 투쟁의 장면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지구 역사의 마지막 장면에서 다시 엘리야 시대의 갈멜산 투쟁이 전개됩니다.

 

아마겟돈 전쟁과 갈멜산의 투쟁

놀라운 사실은, 아마겟돈 전쟁도 엘리야 시대의 갈멜산의 투쟁과 연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계시록 16장에 나오는 아마겟돈 전쟁을 중동지방에서 일어나는 실제 전쟁으로 해석하는데, 그것은 요한계시록이 엘리야 시대의 배도를 반복해서 인용하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생기는 문제입니다. 구약시대에 엘리야가 갈멜산에서 거짓선지자들과 칼과 창으로 전쟁을 했습니까? 두 번째 엘리야가 그리스도의 초림을 준비하기 위해서 칼과 창을 사용했습니까? 중세기 암흑기 동안 일어난 배도가 칼과 창으로 싸우는 전쟁이었습니까? 마지막 시대 일어나는 짐승의 표 환난이 미사일과 탱크로 싸우는 투쟁입니까? 아닙니다. 엘리야의 투쟁은 항상 선과 악의 투쟁이었고, 진리와 거짓의 전쟁입니다. 엘리야 시대의 배도가 교회 안에 나타날 때마다 그것은 항상 “누가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가?”에 대한 영적 투쟁으로 나타나게 됩니다. 편견과 선입견을 버리고 여섯째 재앙으로 나오는 아마겟돈에 대한 말씀을 읽어보면 말씀 전체가 영적인 투쟁이라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또 여섯째가(여섯째 재앙) 그 대접을 큰 강 유브라데에 쏟으매 강물이 말라서 동방에서 오는 왕들의 길이 예비되더라 또 내가 보매 개구리 같은 세 더러운 영이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에서 나오니 저희는(세 더러운 영)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온 천하 임금들에게 가서”(계 16:12-14)

 

“세 더러운 영”으로 온 천하 임금들을 미혹하는 것이 사탄의 최종 목적입니다. 그런데 미혹의 수단이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이적”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사탄은 거짓 선지자들 통해서 온 천하 임금에게 가서, 다시 말해서 대통령과 국가 원수들 앞에 가서 놀라운 이적을 행할 것입니다.

너무나 놀라운 이적을 행하기 때문에 온 세상의 정치권력이 짐승과 거짓 선지자를 후원하고 지지할 것입니다. 정치 권력과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로 연합하게 될 것입니다. 짐승의 표 환난에서도 사탄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큰 이적으로 온 세상을 미혹했는데,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이적”으로 세상을 미혹합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미사일과 탱크로 싸우는 전쟁이 아니라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싸우는 영적 투쟁입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마지막 시대 초자연적인 현상이나 이적은 거짓 선지자의 특징입니다. 기적이라고 해서 모두 하늘에서 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회에서 이적과 은사가 크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천주교회 마리아 상에서 피눈물이 흐르고, 개신교회에서는 교파를 초월해서 방언이 터져나오고 있습니다. 귀신 쫓는 운동이 크게 퍼지고 있습니다. 이적과 초차연적인 현상이 무엇이 문제입니까? 거짓말하고 세상을 사랑하며 죄를 품고 있는 사람도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돈을 사랑하고 마음에 음욕을 품은 사람도 방언을 하고 있습니다. 말씀과 진리를 모르는 사람에게서 이상한 능력이 나가고 있습니다. 이것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초대 교회에서 오순절 성령을 받았던 성도들은 그런 사람들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세상을 포기하고 온 마음을 하나님과 진리에 바쳤던 거룩한 성도들이었습니다. 성도 여러분,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사탄은 지금 “세 더러운 영들”을 통해서 온 세상을 미혹하고 있습니다. 사탄이 영매를 통해서 역사하고 있는 실제 케이스를 살펴보겠습니다. 대통령과 정치인들이 죽은 자의 혼을 만나서 상담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점성가 죠앤 퀴글리 여인은 자신의 점성술을 통하여 레이건 대통령의 부인인 낸시 여사에게 여러 가지 정책들을 결정해 주었으며 그러한 자신의 점성학적 결정이 세계 역사의 흐름에 크고 작은 영향을 주었다고 말했다. … 심지어 그녀는 대통령의 일정표를 만들어주기까지 하였는데, 경우에 따라서는 분초까지 표시된 세밀한 일정 계획을 만들어주었다고 한다.” (1990년 3월 16일 자, The Morning News Tribune)

 

충격적인 이야기입니다. 이런 기사는 요한계시록의 빛을 아는 성도들만 그 의미를 꿰뚫어 볼 수 있는 기사입니다.

 

“미국의 노스캐롤라이나주의 민주당 의원이며, 미래 문제 연구 위원회의 의장인 챨리 로즈 의원은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낸시 레이건 여사에게는 영매 친구들이 많이 있다. … 워싱턴 정가는 영매들에 대한 관심이 많다. 미국 하원의원의 약 25%는 영매와 강신술에 매우 적극적인 관심을 가지고 있다. … 챨리 로즈 의원이 운영하는 미래 문제 연구 위원회를 통하여 영매들이 국회에 진입하여 의원들과 접촉하고 있다. … 소식통에 따르면, 많은 국회의원들이 정기적으로 점성술사나 영매들을 만나서 상담하고 있다고 한다.”(1988년 12월 5일 자, U.S. News & World Report)

 

성도 여러분, 사탄은 이미 오래전부터 온 세상을 아마겟돈 전쟁을 위해서 준비해왔습니다.

 

“세 영이 히브리 음으로 아마겟돈이라 하는 곳으로 왕들을 모으더라”(계 16:16)

 

이 말씀은 세 더러운 영이 아마겟돈이라는 장소로 왕들을 모으는 장면입니다. 사도 요한은 그들이 모이는 장소가 “아마겟돈”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아마겟돈”이라고 불리우는 곳은 어디일까요? 이 질문 속에 아마겟돈 전쟁의 비밀을 여는 열쇠가 있습니다. 아마겟돈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찾아보면 엘리야 시대의 투쟁과 아마겟돈 전쟁이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아마겟돈은 헬라어로 ‘하르 므깃도(Har-megedo)’인데, 그 뜻은 “므깃도의 산”입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은 “므깃도의 산”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므깃도의 산은 어떤 산일까요? 므깃도의 산은 바로 갈멜산입니다. 곧 엘리야와 이교 선지자들이 대결했던 산입니다.

 

아마겟돈 = 마지막 시대의 갈멜산

“아마겟돈”은 “갈멜산”이라는 뜻입니다. 놀랍지 않습니까? 요한계시록은 거대한 배도가 일어날 때마다, 하나님의 백성과 거짓 선지자들과의 거대한 충돌이 일어날 때마다, 엘리야 시대의 배도를 인용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다니엘과 요한계시록을 연구할 때 정말 중요한 개념입니다. 이 개념을 놓치면 예언 해석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게 됩니다.

왜 사도 요한은 아마겟돈 전쟁을 말하면서 갈멜산을 언급했을까요? 갈멜산은 엘리야가 기도해서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게 했던 산입니다. 엘리야는 갈멜산에서 사탄과 거짓 선지자의 연합세력과 대적해서 누가 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지 밝혔습니다.

성도 여러분,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의 두 중요한 예언인 ‘짐승의 표 환난’과 ‘아마겟돈 전쟁’을 모두 갈멜산의 투쟁을 이용해서 기록했습니다. 왜 그렇게 했을까요? 왜냐하면 갈멜산에서 이스라엘 교회의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로 연합해서 엘리야를 대적했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도 기독교회 안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하나로 연합해서 엘리야의 심령과 능력을 가진 성도들을 대적하고 핍박하기 때문입니다.

아마겟돈 전쟁이 언제 일어날까요? 아마겟돈 전쟁은 7재앙 중에서 여섯째 재앙의 때에 준비되는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 전쟁이 끝나면 곧바로 마지막 일곱째 재앙이 내리면서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오실 때까지 엘리야 시대의 배도와 투쟁이 계속 이어진다는 것입니다. 사도 요한은 마지막 시대에 교회 속으로 거짓 선지자들이 모여드는 장면을 이렇게 묘사했습니다.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 18:2)

 

성도 여러분, 이것이 마지막 시대의 교회 모습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질문을 생각해보아야 합니다. “아마겟돈은 구체적으로 어디를 말하는 것일까요?” 사도 요한은 계시록 16장에서 “세 더러운 영”이 아마겟돈으로 모인다고 했는데, 계시록 18장 2절에서는 “각종 더러운 영”이 바벨론이 된 교회 안으로 모여든다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아마겟돈이란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마지막 시대의 기독교회를 뜻하는 것입니다.

 

아마겟돈 = 영적 갈멜산 = 마지막 시대의 교회

마지막 시대에 기독교회가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의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의 모이는” 바벨론이 되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엘리야들을 보내셔서 거짓 선지자들과 투쟁하고 하나님의 진리가 드러나도록 하시는 것입니다. 지금은 하나님께서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들을 일으키시는 때입니다!

교회 안에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모여들어서 거짓 복음과 거짓 은사와 거짓 계명으로 미혹하기 때문에 마지막 시대의 예언이 나올 때마다 엘리야 시대의 배도와 투쟁의 장면이 반복해서 나오는 것입니다. 구약시대 갈멜산에서 엘리야와 투쟁했던 거짓 선지자들이 모두 죽임을 당했던 것처럼, 마지막 시대의 아마겟돈 전쟁에서도 사탄의 대리자인 짐승과 거짓 선지자들은 모두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짐승이 잡히고 그 앞에서 이적을 행하던 거짓 선지자도 함께 잡혔으니 이는 짐승의 표를 받고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이적으로 미혹하던 자라 이 둘이 산 채로 유황불 붙은 못에 던지우고”(계 19:20)

 

이것이 끝까지 거짓 계명과 거짓 복음을 붙잡고 있는 악인들의 최후입니다. 지금은 진리가 무엇인지 살피고 그 위에 굳건하게 서야 할 때입니다. 이제 우리는 가장 중요한 질문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누가 승리하게 될까요?” 물론, 마지막 엘리야가 승리합니다.

 

누가 승리할 것인가?

사도 요한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마지막 시대의 엘리야의 모습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계 16:15)

 

이 말씀은 어두운 바다에 우뚝 서 있는 등대처럼 아마겟돈 전쟁이 어떤 전쟁인가를 비춰줍니다. 아마겟돈 전쟁에서 누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까? 누구든지 자기 옷을 지키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바로 그들이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입니다. 유대인이 아닙니다. 대포와 미사일을 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아마겟돈 전쟁은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키는 자”가 승리하는 영적 전쟁입니다. 그래서 아마겟돈 전쟁에 대한 말씀 전체에서 “세 더러운 영”, “이적”, “용의 입과 짐승의 입과 거짓 선지자의 입”과 같은 말들이 나오는 것입니다. 이런 말들은 아마겟돈 전쟁이 실제 전쟁이 아니라 선과 악의 영적 전쟁임을 분명히 말해줍니다. 그런데 어떤 옷을 지켜야 승리한다는 말일까요? 예수께서 주신 흰옷을 지켜야 합니다.

 

흰옷이 무엇일까요? 흰옷은 그리스도께서 주신 의의 옷입니다. 흰옷이란 온 마음을 다하여 이웃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계명과 말씀에 순종하는 의의 열매를 뜻합니다. 그런데 흰옷은 사탄에게 빼앗길 수 있습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는 사탄의 미혹에 빠져서 “선악과를 따먹지 말라”는 계명을 범했을 때 의의 옷이 벗겨졌습니다.

 

“이에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창 3:7)

 

물론, 구원은 선한 행위와 계명을 지킴으로 얻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으로 얻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지 않으면, 의의 옷을 사탄에게 빼앗기게 됩니다. 아마겟돈 전쟁의 승리자를 다시 살펴보겠습니다.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며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자가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는 자들입니다. 그러므로 마지막 라오디게아 교회에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성도들이 복 있는 자들이고, 그들이 아마겟돈 전쟁에서 승리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라오디게아 교인들에게 흰옷을 사서 입으라고 호소하셨던 것입니다.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계 3:18)

 

성도 여러분, 이제 요한계시록 3장의 라오디게아 교회와 요한계시록 16장의 아마겟돈 전쟁이 어떻게 연결되는지 이해되십니까? 예수께서 라오디게아 교회에게 입으라고 호소하신 흰옷을 입어야만, 아마겟돈 전쟁에서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않”는 승리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흰옷을 입고 있다는 것은 순결하다는 뜻입니다. 순결하다는 것은 내 생각과 내 사상과 내 철학을 버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였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야만 마음과 생애가 순결해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여서 얻어진 순결이기 때문에 그것은 내 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의가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을 거절하고 계명에 불순종하며 성령의 음성을 무시하는 한, 순결함이 있을 수 없으며 그리스도의 의의 옷을 입을 수 없습니다.

 

“너희가 진리를 순종함으로 너희 영혼을 깨끗하게 하여”(벧전 1: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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