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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양은 고집이 세고 성질이 급한 동물입니다. 양은 목자 없이는 살 수 없는 약한 동물이지만, 화가 나면 목자의 말도 듣지 않는다고 합니다. 어떤 목동이 “양은 고집이 셉니다.”라는 제목으로 시를 썼는데, 이 시에는 양이 어떤 동물인지 잘 나타나 있습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사 53:6)

 

성경은 인간을 양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기 원하시는데, 우리는 양처럼 고집 세고 제 마음대로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 양 같은 사람들을 어떻게 구원의 울타리 안으로 불러들이실까요? 우리는 하나님께서 신자들을 불러 모으는 방법을 알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사탄은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강도와 삯꾼과 들짐승을 보내기 때문입니다. 성도 여러분, 강도와 삯꾼과 들짐승을 피하는 법을 아는 사람만이 주님의 양우리로 들어올 수 있습니다.

예수님 시대에 목자는 들에서 양을 돌보았습니다. 저녁이 되면 양들은 울타리가 쳐진 양우리에 들어가서 잠을 자게 됩니다. 대개 양우리는 입구가 하나인 원형을 이루고 있는데, 입구에는 문이 없습니다. 저녁이 되면 목자는 양들을 모아서 양우리로 인도합니다. 양들이 우리 앞에 모이면, 목자는 양우리의 입구에 등을 기대고 주저앉아서 양을 한 마리씩 부르면서 숫자를 셉니다.

양들은 자기 이름이 불려지면 목자의 무릎을 넘어서 양우리 안으로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양이 우리로 들어가려면 무엇을 지나야 합니까? 목자의 몸을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럼 양우리의 문이 무엇입니까? 목자의 몸이 양의 문이 되는 것입니다. 목자는 몸으로 입구를 막고 양우리를 지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요 10:7,9)

이 말씀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양의 문”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양우리의 문”이라는 사실을 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통과해야만 우리 안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을 문이라고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새로운 세계로 들어갈 수 있음을 알려주시기 위해서입니다. 예수를 통해서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양의 문은 구원의 문입니다. 그 문으로 들어가야만 구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의 문인 목자를 중심으로 해서 한쪽에는 죽음이 있고, 다른 쪽에는 생명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목자이신 그리스도를 넘어가지 않았으면서도 양우리 안에 들어왔다고 착각을 합니다. 양우리 밖에 있으면서도 생명을 얻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통과해야 생명이 있다

양의 문을 지키는 목자의 몸은 생명과 죽음이 나누어지는 선(線)인데, 그 선을 너무나 쉽게 넘어갑니다. 어떻게 할 때 목자의 몸을 넘어서 울타리 안으로 들어가게 될까요? 진리를 깨닫게 될 때 목자이신 그리스도의 몸을 넘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 말씀은 너무나 중요한 말씀입니다. 구원의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올바르게 깨달아야 양의 문으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할 때 양우리로부터 빠져나가게 되는 것일까요?

진리를 무시하고 버리면, 그것이 목자를 등지고 양우리로부터 빠져나가는 것입니다. 예수를 넘어서 우리 안으로 들어가지 못한 양들이나, 우리에서 뛰쳐나온 양들은 어떻게 될까요? 강도들 손에 붙잡혀갈 수 있고 들짐승에게 공격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므로 양이 목자의 몸을 등지고 울타리 밖으로 나가는 것은 정말 두려운 일입니다.

여러분은 양우리를 지키는 목자의 몸을 넘어 떠나가시겠습니까? 결코 그래서는 안 됩니다. 예수께서는 누구든지 문 안에만 있으면 안전하다고 했습니다. 가난하든지 병들었든지 암에 걸렸든지 누구든지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구세주 안에 있으면 구원입니다.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요 10:9)

 

선한 목자이신 그리스도께서 지키는 우리(진리) 안에 있으면 영원한 생명을 보장받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의 우리 안에 있으면, 우주의 왕이신 하나님의 보호와 인도하심을 받게 됩니다. 목자를 따르는 양은 목자가 책임집니다. 먹을 것, 마실 것, 입을 것을 포함해서 모든 것을 책임집니다. 그러나 조건이 있습니다. 어떤 조건일까요? 조건은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입니다.

 

따라가지 않는 자들은 구원을 잃어버린다

구원과 영생은 목자를 따를 때 시작되는데, 목자를 잠시 따르다가 더 이상 따르지 않으면 어떻게 됩니까? 구원과 생명이 거기서 끝나게 됩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한 번 예수를 영접하고 구원받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리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양과 목자 비유를 보면, 양의 생명은 목자를 따를 때에만 보장되는 것입니다. 목자를 계속해서 따라가야만 생명이 유지될 수 있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라고 하셨기 때문에 예수께서 인도하는 길과 진리를 계속해서 따라가며 생명을 받아야만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밤이 돼서 목자가 양우리 안으로 넣으면 좁은 우리가 답답해도 들어가야 합니다. 아침이 돼서 초장으로 인도하면 귀찮아도 일어나서 따라가야 합니다. 목자가 뜨거운 낮에 물을 찾아서 계곡을 찾아가면 힘들어도 따라가야 합니다. 목자를 따라가지 않으면, 초장을 찾지 못하고 물을 찾지 못해서 죽습니다. 성도 여러분, 목자는 자신을 따라가는 양들을 완전하게 책임집니다. 목자가 인도하는 대로 따라가는 것이 생명입니다. 한 번 목자를 따랐다고 해서, 구원과 영생이 계속 보장되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예수를 영접한 단 한 번의 결정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자기를 부인하고 십자가를 메고 따라가야 합니다.

 

한 명씩 이름을 부르면서 구원하신다

“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좇을 것이니라”(마 16:24)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문으로 들어가는 이가 양의 목자라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요 10:1-2)

 

선한 목자이신 예수께서는 하늘에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왜 오셨습니까? 양들을 우리로 불러들이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양들을 불러들이는데 한 마리씩, 한 명씩 불러들이십니다. 예수께서는 누가 “내 양”인지 정확히 아십니다. 누가 나를 의지하고 따르는 양인지 아십니다. 그래서 한 명씩, 한 명씩 세면서 정확하게 구원하시는 것입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독자 여러분도 한 명씩 구원하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우리는 정통이고 너희는 이단이다.”라는 주장으로 구원을 나누려고 하지만, 하나님의 구원은 교파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무더기로, 단체로, 한꺼번에 구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 양이 내 양인지 한 명, 한 명 살펴보면서 구원하십니다.

요한복음 10장 1절과 2절을 보면 목자 외에도 다른 사람들이 나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나옵니까? 목자가 있고 문지기가 있습니다. 그리고 절도와 강도가 나옵니다. 문지기, 절도, 강도. 이들은 누구입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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