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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부, 이스라엘의 배도가 마지막 시대에 반복된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마음만 진실하면 되지 하나님을 경배하는 방법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기사에서는 예배와 음악의 방법이 달라지면서 하나님의 백성이 배도하고 무너지는 장면을 살펴보겠습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나서 가나안까지 들어가는 여정이 자세히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은 왜 그들의 여행을 자세히 기록하고 있을까요? 왜냐하면 광야를 지나 가나안까지 가는 그들의 여행은 우리가 광야 같은 이 세상을 지나 하늘 가나안까지 가는 여정을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역사는 ‘말세를 사는 우리에게 거울과 경계’가 된다고 했던 것입니다.

 

“저희(이스라엘 백성)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신고로 저희가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 그런 일은 우리의 거울이 되어 우리로 하여금 저희가 악을 즐겨한 것같이 즐겨하는 자가 되지 않게 하려 함이니 저희 중에 어떤 이들과 같이 너희는 우상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 …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전 10:5-7,11)

 

우리가 잊지 말아야 할 사실은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의 역사는 말세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거울과 경계’가 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 대부분이 광야에서 멸망당한 역사는 말세의 성도들에게 ‘거울과 경계’가 되어야만 합니다

독자 여러분, 애굽에서 노예로 살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능력으로 애굽을 빠져나왔고 홍해를 지나 광야로 들어갔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를 건너면서 침례를 받았다고 했습니다.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 있고 (홍해)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침례를 받고”(고전 10:1-2)

 

애굽을 떠나 홍해에서 침례받고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왜 광야에서 멸망당했습니까? 하나님을 믿고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하심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 중 대부분이 왜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을까요? 하나님 말씀에 불순종했기 때문에 광야에서 멸망당했던 것입니다.

이제 홍해를 건너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이 어떻게 배도하고 멸망당하게 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예배 속으로 왜 금송아지가 들어오게 되었는지를 보면 오늘날 교회의 모습이 보입니다. 이스라엘 교회의 배도 역사가 지금 기독교회 안에서 반복되고 있습니다. 눈을 떠서 무엇이 진리이고 어떤 것이 하나님의 의인지 보는 성도들은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와 있는 금송아지 예배와 음악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교회 속에 세워진 금송아지

홍해를 건너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의 첫 번째 배도는 예배와 음악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가 십계명을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이스라엘의 예배를 버리고 애굽의 예배를 받아들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스라엘 교회에서 하나님의 종, 모세가 사라지자 교회에서 금송아지가 세워지면서 예배가 애굽의 방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결과, 배도에 가담한 사람들 3천 명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 멸망당했습니다. 홍해를 건너 구원받았던 성도들이 배도하면서 3천 명이 죽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한번 예수 믿고 구원받으면 결코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 결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어질 수 없다. 단 한 번의 속죄로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에 구원을 잃어버릴 수 없다.”라고 생각하지만, 이스라엘의 역사를 살펴보면 구원받았던 사람들이 죄와 배도에 빠짐으로써 수없이 멸망당했던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시내산에서 일어났던 이스라엘의 배도가 지금 이 시대의 교회 안에서 벌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그 배도의 장면이 보이십니까? 시내산에서 있었던 이스라엘 교회의 배도를 살펴보면, 오늘날 기독교회가 어떻게 배도하고 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교회는 왜, 그리고 어떤 과정을 거쳐서 배도에 빠지게 되었을까요?

 

금송아지 배도는 ‘잡족’으로부터 시작되었다

모세는 십계명 돌비를 받기 위해서 시내산에 올라가 하나님과 긴 시간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 길어지면서 백성들이 사이에서 동요가 일어나기 시작했습니다. ‘모세’라는 하나님의 종이 자리를 비우자 배도의 정신이 일어나게 된 것입니다.

 

“백성이 모세가 산에서 내려옴이 더딤을 보고 모여 아론에게 이르러 가로되 일어나라 우리를 인도할 신(원어-엘로힘, 하나님)을 우리를 위하여 만들라”(출 32:1) 

 

이스라엘 백성에게 어떤 일이 생긴 것입니까? 그들은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만들어서 예배드리기 원했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거짓 신을 섬기려고 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는데 ‘애굽의 방식’으로 섬기려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믿고 섬기는 신은 하나님이 틀림없지만, 예배 방식은 애굽의 것을 사용하자고 요구했던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이 그런 요구를 했을까요? 이스라엘 교회에서 배도가 나타날 때마다 섞인 무리가 모습을 드러냅니다. 섞인 무리는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을 떠날 때 따라 나온 애굽 사람들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라암셋에서 발행하여 숙곳에 이르니 유아 외에 보행하는 장정이 육십만 가량이요 많은 잡족(섞인 무리)과 양과 소와 심히 많은 생축이 그들과 함께 하였으며 …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에 거주한 지 사백삼십 년이라 사백삼십 년이 마치는 그날에 여호와의 군대가 다 애굽 땅에서 나왔은즉”(출 12:37-41)

 

섞인 무리는 광야생활이 힘들어지자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고 싶어했습니다. 그들의 몸은 이스라엘 교회 속에 있었지만, 마음은 여전히 애굽에 남아 있었습니다. 이스라엘 교회에 죄와 배도가 생길 때마다 섞인 무리가 그 중심에 있게 되는 것이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이라는 책에서는 섞인 무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나온 잡족(섞인 무리)은 언제나 시험과 문제의 근원이었다. 그들은 애굽의 우상숭배를 버렸고 참 하나님을 경배한다고 말했지만 어린 시절에 받은 교육과 훈련으로 인하여 그들의 습관과 성품은 우상숭배와 하나님께 대한 불경으로 심하게 부패되어 있었다. 그들은 광야에서 문제의 원인이 되었고 제일 먼저 불평했으며 이스라엘 진영에서 우상숭배자와 같은 행태를 보이고 하나님께 대한 불평을 퍼뜨렸다.”(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 408)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가자, 섞인 무리의 주장에 흔들린 이스라엘 백성은 아론에게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달라고 요구했습니다. 이스라엘 교회의 지도자인 아론이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말씀 위에 굳게 섰습니까?

출애굽기 32장에는 이스라엘 교회의 교인들이 지도자를 끌고 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목자가 양떼를 진리로 인도해야 하는데, 양들이 목자를 끌고 감으로 배도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아론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 아내와 자녀의 귀의 금고리를 빼어 내게로 가져오라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 그들이 말하되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로다 하는지라”(출 32:2-4)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금송아지 배도에 참여했다고 했습니까? ‘모든 백성’이라고 했습니다. 믿기 어려운 일이지만, 레위족을 제외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배도에 참여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이것이 애굽에서 구원받은 이스라엘 교회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배도가 마지막 시대 교회에서도 반복될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사도 바울은 말세에 이스라엘의 역사가 “거울”처럼 반복될 것이라고 경고했던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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