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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부, 금송아지가 세워지면 예배와 찬양이 변한다

‘금송아지’라는 애굽의 우상이 세워지면서 예배 방식 또한 애굽 방식으로 바뀌어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보면 한 가지 반복되는 패턴이 있는데, 그것은 금송아지가 세워질 때마다 예배와 찬양이 바뀐다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금송아지가 세워질 때마다 이스라엘의 예배 방식을 버리고 애굽의 방식으로 예배드렸습니다. 시내산에서뿐 아니라 북방 이스라엘에서도 금송아지가 세워지면서 예배와 음악이 바뀌었습니다. 조용히, 엄숙하게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일어나서 뛰기” 시작했습니다.

 

“아론이 보고 그 앞에 단을 쌓고 이에 공포하여 가로되 내일은 여호와의 절일이니라 하니(절일, a feast to the LORD, 주님을 위한 예배의식일), 이튿날에 그들이 일찌기 일어나 번제를 드리며 화목제를 드리고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더라”(출 32:5-6)

 

번제와 화목제는 성소에서 드리는 거룩한 의식입니다.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양을 죽이면서 하나님께 마음을 바치는 성스러운 의식입니다. 그런데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면서 “앉아서 먹고 마시며 일어나서 뛰놀”았습니다. 왜 그렇게 예배드렸을까요? 왜냐하면 그것이 금송아지를 섬기는 예배 방식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입으로는 하나님께 예배를 드린다고 했지만, 속마음은 그들이 즐길 수 있는 예배를 원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말했지만, 실제로는 자신의 감정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일어나서 뛰놀았”던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일어나서 뛰노는” 예배와 음악이 들어왔습니다. 구약시대 이스라엘 교회를 공격했던 사탄의 미혹이 현대 기독교회 속에 깊이 들어온 것입니다.

 

금송아지가 세워지면 언약이 깨진다

금송아지를 세워놓고 예배드리는 동안 모세는 어디에 있었습니까?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함께 있었습니다. 시내산 아래에서 일어난 배도를 아시는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그 상황을 알려주셨습니다. “모세야, 네 백성이 시내산 밑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린다고 하면서 애굽의 우상을 세워놓고 축제를 하고 있다. 나에게 예배드린다고 하면서 금송아지를 만들었고 소리치고 뛰놀면서 예배드리고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모세의 백성)이 부패하였도다”(출 32:7)

 

독자 여러분, 여기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나의 백성”이라고 부르지 않으신 것을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세우고 예배를 애굽의 예배로 바꾸었을 때,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내 백성”이 아니라 “모세의 백성”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시내산에서 벌어진 금송아지 예배를 통해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입니까? 그들은 더 이상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것은 너무 지나친 해석이 아닙니까? 한번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는데 어떻게 그 언약이 깨질 수 있습니까?”라고 항의합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깨신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백성이 깬 것입니다. <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은 언약이 깨진 상황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너는 내려가라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 부패하였도다 그들이 내가 그들에게 명한 길을 속히 떠나 자기를 위하여 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숭배하’였다고 말씀하셨다(출 32:7-8). … 하나님의 백성과 더불어 세우신 그분의 언약이 무효가 되었으므로 …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백성을 버리셨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에 대하여 모세에게 말씀하실 때 ‘네가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네 백성’이라고 하셨던 것이다.”(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 317,318)

 

시내산을 내려오면서 모세는 이스라엘이 찬양하고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들이 이스라엘의 예배 방식을 버리고 애굽의 방식으로 예배하고 찬양하는 것을 본 것습니다. 모세가 그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모세가)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십계명 돌판)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출 32:19)

 

하나님의 손가락으로 기록하신 십계명 돌비를 던진 것은 이스라엘의 배도에 대한 분노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나 거기에는 분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모세가 십계명 돌비를 던져서 깨뜨린 이유가 무엇이었을까요? 다음 글을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이스라엘 진영에 가까이 이르렀을 때에 모세와 여호수아는 백성들이 우상의 주위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것을 보았다. 이것은 애굽의 우상숭배적 축제를 모방한, 이교적인 방탕의 장면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께 대한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와는 얼마나 다른가! 모세는 너무나 놀라 어찌할 바를 알지 못했다. 그는 방금 하나님의 영광이 임재해 있는 데서 왔으며 비록 벌어지고 있는 사건에 대해 경고를 받았지만 이스라엘의 이처럼 무서운 타락의 장면을 보고 견딜 수 없었다. 모세의 분노는 불처럼 뜨거웠다. 백성들의 배도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그는 십계명 돌비를 내던졌다. 그러자 그것은 백성들의 목전에서 깨어지고 말았다. 돌비가 깨졌다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깨뜨린 것처럼 하나님께서도 그들과 세우신 언약을 파기하셨다는 것을 나타냈다. … 이스라엘 사람들은 하나님의 권위에 순종하겠다고 서약한지 얼마 안돼서 하늘 왕께 대역죄를 범하였다.”(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 319, 320, 324)

 

독자 여러분, 이것이 애굽의 예배 방식에 대한 하나님 종들의 반응이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전혀 공로가 없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을 애굽의 종살이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들은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하나님의 구원을 찬양하고 감사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서 눈에 보이지 않자 이스라엘 교회는 예배 방식을 애굽식으로 바꾸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는 날에 모여서 애굽의 금송아지를 만들어놓고 몸을 흔들고 뛰놀면서 “이것이 우리를 애굽에서 구원한 하나님이시다.”라고 찬양했습니다. 만약 누가 와서 그들에게 “왜 당신들은 애굽의 금송아지를 경배합니까?”라고 물으면, 그들은 “무슨 말입니까? 우리는 지금 창조주 하나님을 경배하는 중입니다.”라고 대답했을 것입니다. 그들의 문제가 무엇이었습니까? 하나님을 섬기고 예배드린다고 하면서 애굽의 예배 방식과 그들의 음악을 사용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지금 기독교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장면인데, 여러분은 그 모습이 보이십니까?

 

이스라엘 교회의 배도 장면

여호수아와 모세가 금송아지 예배를 보았던 장면을 살펴보면, 그 모습 속에서 현대 기독교회의 예배 모습이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백성의 떠듦을 듣고 모세에게 말하되 진중에서 싸우는 소리가 나나이다”(출 32:17)

 

여호수아의 귀에는 멀리서부터 들려오는 예배 소리가 떠들고 싸우는 소리처럼 들렸습니다. 왜 여호수아의 귀에는 이스라엘의 예배가 싸우는 소리처럼 들렸을까요? 그때까지 이스라엘 백성은 엄숙하고 거룩하게 찬양하고 예배드렸습니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백성이 그런 모습과 소리로 예배를 드릴 것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번제와 화목제는 그리스도의 피로 드리는 예배입니다. 크게 소리를 지르면서 시끄럽게 드릴 수 있는 예배가 아닙니다.

모세는 상황을 정확하게 판단했습니다. 모세는 진영 가까이 이르렀을 때 이스라엘 백성이 금송아지 주변에서 노래하고 춤추는 장면을 보았습니다.

 

“모세가 가로되 이는 승전가도 아니요 패하여 부르짖는 소리도 아니라 나의 듣기에는 노래하는 소리로다 하고 진영에 가까이 이르러 송아지와 그 춤추는 것(dancing, 댄싱)을 보고 대노하여”(출 32:18-19) 

 

이 장면은 애굽의 우상숭배적 축제를 모방한 예배였고 이교도들이 방탕하게 우상을 섬기는 장면이었습니다. 모세가 본 장면은 이스라엘 교회가 하나님께 드렸던 엄숙하고 경건한 예배와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격분했던 것입니다. 만약 모세가 현대 기독교회가 예배드리고 찬양하는 모습을 보면 어떻게 반응할까요? 드럼과 온갖 “애굽”의 악기를 들고 나와서 소리치며 손뼉을 치고 손을 들고 머리와 몸을 흔들면서 애굽의 음악으로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반응할까요? “대노”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백성은 그런 모습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그리스도께 예배드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독자 여러분, 시내산에서의 금송아지 예배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그대로 재현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들이 교회에 모여서 몸을 흔들고 소리를 지르면서 온몸에 땀이 흐르도록 찬양합니다. 그런 모습으로 찬양하는 사람들의 얼굴 표정을 보면, 황홀함 그 자체입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성령의 역사라고 생각합니다. 가사를 들어보면 하나님께 대한 내용이지만, 음률과 박자와 멜로디는 유행가이고 리듬앤블루스이고 록뮤직입니다. 교회마다 거룩한 단에서 세상 음악을 흉내 낸 찬양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바로 이것이 금송아지 배도가 교회에 들어온 모습입니다. 금송아지가 교회 안에 세워지면서 엄숙하고 거룩한 예배가 사라져 버렸습니다. 금송아지 예배에 밀려서 <말씀과 거룩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교회의 금송아지 예배를 심판하셨던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에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해서 심판하실 것입니다.

 

금송아지가 세워질 때 나오는 말

독자 여러분, 오늘날 수많은 교회 안에 금송아지가 세워져 있고 지금도 세워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수십 년에 걸쳐서 서서히 세워지고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눈치채지 못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 금송아지가 세워지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거룩하고 경건하게 예배드리던 교회에서 갑자기 “손뼉 치자.”는 말이 나오고, “가사만 기독교적이면 세상 음률과 그들의 멜로디와 박자로 찬양하는 것이 더 열정적인 예배가 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나타나면, 그때가 금송아지가 세워지는 때입니다. 피아노와 오르간으로 찬양하던 사람들이 갑자기 드럼을 때리고 전기기타를 치면서 크게 비트를 올리면 금송아지가 이미 세워진 것입니다. 조용하던 교회에서 손과 몸을 흔들면서 찬양하자고 요구하면, 그들은 교회 안에 금송아지를 세우는 사람들입니다.

지금 여러분의 교회에서 “교회를 성장시키고 청년들을 모으려면 드럼으로 비트를 올리고 감성을 자극하는 음악을 사용해야 한다.”는 주장이 들려옵니까? 그렇다면, 지금 여러분의 교회에서 금송아지가 세워지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목사들과 찬양 인도자들이 예배를 하나님의 말씀 중심에서 감정과 느낌으로 옮기고 있습니다. 독자 여러분, 지금은 위기의 순간입니다. 왜냐하면 교회가 예배와 음악을 통해서 하나님과 맺은 언약을 파기하기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북방 이스라엘 교회에서 음악과 예배가 바뀐 이유

시내산에서 금송아지 예배가 나타났을 때 하나님의 형벌을 받고 3천 명이 죽었는데, 북방 이스라엘 교회에 금송아지 예배가 다시 나타났습니다. 이번에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요?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무리에게 말하기를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하고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둔지라”(왕상 12:28-29)

 

북방 이스라엘 교회는 사람들의 마음이 남방 유다로 기울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웠습니다. 남방 유다 교회와 경쟁하기 위해서 애굽의 금송아지 신을 가져온 것입니다.

북방 이스라엘 교회는 왜 송아지에다 금가루를 발라놓았을까요? 불상에 금가루를 발라놓는 것과 같은 이유입니다. 우상에 금가루를 발라놓는 이유는 그 우상이 돈과 재물과 풍요로움을 가져다 준다는 약속을 나타내기 위해서입니다. 금송아지는 돈의 신이고 재물의 신이며 풍요로움의 신입니다. 여로보암 왕이 백성들의 마음을 붙잡기 위해서 꺼낸 비장의 카드는 돈과 재물을 축복하시는 새로운 하나님이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 교회는 나름대로 생각을 많이 했습니다. 자아를 부인하고 율법에 순종하라고 요구하는 하나님, 좁을 길을 걸으라고 요구하는 하나님이 아니라 돈과 재물을 약속해 주시는 하나님을 소개한 것입니다.

얼마나 매력적인 금송아지 복음입니까? 여로보암 왕은 백성들의 마음을 정확하게 읽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 앞에 나가 이렇게 선포했습니다.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 신이라” (28절)

 

금송아지를 세워놓았는데, 그것을 하나님이라고 소개했기 때문에 백성들이 속았던 것입니다. 북방 이스라엘 교회 지도자들이 “모양은 애굽의 신이지만 실제로는 하나님이시다. 중요한 것은 모양이 아니라 내용이다.”라고 설교하자, 그런 설교를 듣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모두 미혹당했습니다. 북방 이스라엘 교회는 금송아지를 세우고 돈과 세속적 축복을 약속하는 설교를 하면서 예배 방식과 음악을 바꾸기 시작했습니다. 그러자 어떤 일이 생겼습니까?

12지파 중 유다와 베냐민 지파를 제외한 나머지 열 지파가 북방 이스라엘 교회에 남기로 결정했습니다. 남방 유다의 예루살렘에 가서 예배드리려고 하던 교인들이 북방 이스라엘에 남기로 결정한 것입니다.

북방 이스라엘 교회에 금송아지가 세워지자, 이스라엘이 원래 갖고 있던 예배와 음악을 버리게 되었습니다. 교회 안에 금송아지가 세워지면 반드시 함께 따라서 들어오는 것이 있는데 그것이 무엇일까요?

애굽의 예배 방식입니다. 애굽의 금송아지가 세워지면 애굽의 예배가 시작됩니다. 금송아지가 교회 안에 들어오면 교회 예배가 갑자기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엄숙하고 경건하게 예배드리던 사람들이 갑자기 박수를 치고 드럼을 때리고 기타를 치면서 몸을 흔들게 됩니다. 지금 독자 여러분의 교회에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까?

그렇다면, 여러분의 교회에 금송아지가 세워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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