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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부, 모세와 같은 목사, 아론과 같은 목사

아론과 같은 목사는 배도의 주역이 된다

이스라엘 교회의 배도 중심에 아론이 있었던 것처럼, 오늘날 기독교회의 배도 중심에도 아론과 같은 지도자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 안에는 언제나 섞인 무리가 있고 가라지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런 교인들이 있다고 해서 항상 금송아지가 세워지고 애굽의 예배와 음악이 생기는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그 지도자로 있을 때에는 꿈도 꾸지 못했던 일이 아론의 지도하에서 교회 안에 일어난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어떤 사람들이 교회를 이끌어가고, 어떤 신앙을 가진 목회자가 예배를 인도하는가에 따라서 완전히 다른 예배가 드려지게 되는 것입니다. 아론처럼 우유부단한 지도자는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애굽의 예배 방식으로 끌고 갑니다. 예배 속으로 온갖 세상 음악과 감성을 극도로 자극하는 악기들이 들어오게 될 것입니다.

아론은 모세의 형이었고 이스라엘의 영적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이스라엘 교회가 어떻게 예배드리고 찬양해야 하는지 잘 알았습니다. 그런데 아론은 왜 이스라엘 배도의 주역이 되었을까요? <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은 다음과 같이 놀라운 설명을 해줍니다.

 

“애굽 사람들이 신의 상징으로 섬긴 대상물 중에 황소와 송아지가 있었다. 애굽에서 이런 형태의 우상을 숭배하던 사람들(섞인 무리)이 송아지를 만들어 경배하자고 제안했다. … 그런 위기는 확고부동하고 결단성이 있고 불굴의 용기를 가진 사람, 곧 군중의 인기나 개인적 안전이나 자신의 생명보다도 하나님의 명예를 더 높이는 지도자를 필요로 했다. 그러나 그 당시 이스라엘의 지도자, 아론은 그런 인물이 아니었다. 아론은 무기력하게 백성들에게 저항했다. 그 중대한 시점에서 그가 보인 동요와 소심한 태도는 백성들을 단호하게 만들 뿐이었다. … 아론은 자기 자신의 안전을 염려하였다. 그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당당히 일어서지 못하고 군중의 요구에 굴복하였다. … 아론은 백성들이 가지고 온 금을 가지고 애굽의 신을 모방해서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었다. … 오늘날에도 교회에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의 욕망에 굴복하여 그들이 죄에 참여하도록 방관하는 아론과 같은 우유부단한 지도자들이 있다.”(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 316~317)

 

독자 여러분, 사탄이 교회를 공격하는 위기의 순간에 침묵하는 것은 사탄의 편에 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을 두려워하고, 하나님 말씀보다 자신을 높이는 목사와 지도자들은 군중의 요구에 굴복하게 됩니다. 그런 목사와 지도자는 교회의 가라지들에 의해서 배도의 늪으로 끌려가게 될 것입니다. 왜 아론은 백성들의 배도에 무기력하게 대응했을까요? 백성의 기분을 상하게 할까 봐 두려워했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을 위해서 담대하게 일어서는 대신, 백성을 기쁘게 하려고 금송아지를 만들었습니다. 배도에 대한 요구가 처음 제기되었을 때 아론은 그것을 저지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아론은 교회 안에서 악이 시작될 때 졸고 있었습니다. 그는 교인들을 두려워했기 때문에 그들의 요구를 따라갔습니다.

누가 누구를 끌고 간 것입니까? 목자가 양들을 이끌었습니까? 아니면 무지하고 강퍅한 양들이 목자를 끌고 갔습니까? 아론은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보다 교인들의 기분과 감정을 먼저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양들에게 끌려갔던 것입니다. 독자 여러분, 이것이 말씀 위에 굳게 서 있지 않은 지도자들에게 나타나는 문제입니다.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자고 주장했던 것은 잡족(섞인 무리)이지만 그것을 만든 장본인은 이스라엘 교회의 지도자인 아론이었습니다. 오늘날에도 아론과 같은 목사와 지도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론은 진리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만 자신의 인기와 교회에서의 입지 때문에 죄와 배도를 묵인하는 지도자를 상징합니다. 교인들에게 듣기 좋은 말만 하기 원하는 사람, 조금이라도 자신에게 손해가 되면 진리를 말하지 않는 사람, 그런 사람들은 아론의 발자취를 따라가고 있는 것입니다. 아론과 같은 신앙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은 모세의 의분과 단호함을 이해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은 모세와 같은 지도자들을 “사랑이 부족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라갈 줄 모른다.”고 판단할 것입니다.

각 시대의 교회마다 잡족(섞인 무리)과 가라지가 있었고 지금도 있습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교회 안에 죄와 배도를 들여오려고 요구하며 진리의 표준을 낮추어 달라고 요구합니다. 그러나 가라지와 섞인 무리가 요구한다고 해서 모든 교회가 배도하는 것은 아닙니다. 어떤 교회는 그들의 요구를 받아들이고 어떤 교회는 거절합니다. 왜 그럴까요? 무엇이 그런 차이를 만들어낼까요? 이 질문에 대한 답은 간단합니다. 아론과 같은 지도자가 있는 교회는 가라지의 요구에 끌려다니고 배도하게 됩니다. 그러나 모세와 같은 지도자가 있는 교회는 가라지의 요구를 단호하게 거절하고 배도에 참여하지 않게 됩니다.

독자 여러분, 교회 안으로 죄와 배도를 갖고 들어오는 사람들은 몰래 술 먹고 담배 피는 교인들이 아닙니다. 그런 사람들은 신앙이 없기 때문에 교회에 아무런 영향력도 행사하지 못합니다. 죄와 배도는 말씀에 대한 지식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신앙이 있는 것처럼 보이고, 교회에 헌신하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들을 통해서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됩니다. 아론처럼 진리가 무엇인지 알고 있지만 ‘하나님의 뜻과 영광’보다는 ‘내 뜻과 내 영광’을 높이는 사람들 때문에 죄와 배도의 문이 열리게 되고 금송아지 예배가 시작됩니다. 독자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가라지와 섞인 무리의 주장에 대응해야 할까요?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요구와 주장을 받아들여야 할까요? 모른 척하고 그들을 따라가야 할까요? 그런 태도는 ‘사랑’이 아닙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고전 13:6).

 

금송아지 예배에 대응하는 모세의 모습

우리는 애굽의 예배와 찬양에 대해서 모세처럼 반응해야 합니다.

 

“대노하여 손에서 그 판들(십계명 돌비)을 산 아래로 던져 깨뜨리니라 모세가 그들의 만든 금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우니라”(출 32:19-20)

 

얼마나 분명한 태도입니까? 이것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종들에게 나타나기를 원하시는 신앙과 태도입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성소에서 이루어지는 배도를 보면서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그의 거룩한 분노는 불길처럼 타올랐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의 배도에 대한 혐오감을 나타내 보이기 위하여 십계명 돌비를 내던졌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만든 금송아지를 가져 불살라 부수어 가루를 만들어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에게 마시”게 했습니다(출 32:20). 얼마나 단호하고 결정적인 지도자의 모습입니까? 이런 하나님의 종 앞에서 누가 감히 죄와 배도를 요구할 수 있겠습니까? 독자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마지막 시대에 침례 요한의 정신을 가진 목사와 성도들을 당신의 종으로 부르시고 계십니다. 금송아지 예배가 기독교회를 뒤덮고 있는 이 시대에 누가 하나님의 높으신 부르심에 응하게 될까요?

 

군중은 아론과 같은 지도자를 좋아한다

군중은 모세와 같은 사람을 싫어하고 아론과 같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군중은 모세와 같은 사람은 지나치게 엄격하다고 생각하고, 아론과 같은 사람은 균형 있고 점잖은 사람으로 평가합니다. 그래서 많은 목사들과 그리스도인들이 아론과 같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합니다. 독자 여러분, 조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설교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사람의 눈을 무서워하고 그들의 인기를 갈망하는 설교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다음의 글은 우리에게 분명한 빛을 주고 있습니다.

 

“모세의 날카로운 책망과 의분 그리고 신성한 십계명 돌판을 깨뜨림으로 나타낸 분노는 백성들의 눈에 그의 형 아론의 유쾌한 말과 품위 있는 태도와는 대조적으로 보였다. 백성들은 동생 모세에게 책망을 받는 아론을 동정했다. 자신을 정당화하기 위해 아론은 자신의 연약함에 대한 책임을 백성들에게 전가하려고 노력했다. ‘아론이 가로되 내 주여 노하지 마소서 이 백성의 악함을 당신이 아나이다 … 내가 그들에게 이르기를 금이 있는 자는 빼어 내라 한즉 그들이 그것을 내게로 가져왔기로 내가 불에 던졌더니 이 송아지가 나왔나이다’(출 32:22,24). 군중은 아론의 점잖음과 참을성을 존경했지만,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보는 것처럼 보지 않으신다. 아론의 양보하는 정신과 백성들의 비위를 맞추고 싶어하는 정신은 그가 죄와 배도의 악함을 볼 수 없도록 눈을 멀게 만들었다.”(구약의 조상과 선지자들, 323~324)

 

진리를 타협하고 다른 사람들이 악을 선택하도록 이끄는 것은 하나님의 가슴에 큰 고통을 주는 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종들이 아무리 고통스러울지라도 죄와 배도를 경고하는 것으로 자신의 충성을 나타내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종들은 약하고 구부러지기 쉬운 기회주의자가 되지 말아야 합니다. 그들은 자신을 보호하거나 높이려는 정신을 갖지 말아야 하며 자기 취향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거룩한 의무를 피하지 말아야 합니다. 주께서 사용하는 종들은 위기의 순간에 흔들리지 않는 충성을 드러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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