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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부, 금송아지 예배는 반드시 심판받는다

기도는 받아졌지만 심판은 이루어졌다

하나님께서는 금송아지 예배에 참여한 사람들 모두 진멸하겠다고 하셨습니다. 독자 여러분, 금송아지 예배는 작은 죄가 아닙니다. 애굽 방식의 예배와 그들의 음악에 참여한 사람은 모두 진멸하시겠다는 것이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또 모세에게 이르시되 내가 이 백성을 보니 목이 곧은 백성이로다 그런즉 나대로 하게 하라 내가 그들에게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너로 큰 나라가 되게 하리라”(출 32:9-10)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최후의 중보자로 나서게 되었습니다. 모세는 교회에 들어온 죄와 배도를 강력하게 책망했지만, 백성을 미워하지는 않았습니다. 그는 이스라엘 교회를 사랑했기 때문에 책망했던 것입니다. 모세의 마음이 출애굽기 32장에 그대로 나타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 교회의 죄와 배도를 지적하는 하나님의 종들에게는 이런 정신이 필요합니다.

 

“여호와께로 다시 나아가 여짜오되 슬프도소이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신을 만들었사오니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버려 주옵소서”(출 32:31-32) 

 

죄와 배도로 죽어가는 교회를 살리기 원하는 사람들은 모세처럼 “나는 교회를 살리기 원합니다. 주의 백성을 진멸하시려면 차라리 생명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주시옵소서.”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죽어가는 이스라엘 교회를 살리기 위해서 생명을 바치는 선지자 정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중보 기도를 들으시고 이스라엘을 멸망 하려는 뜻은 거두셨지만, 그들이 선택한 금송아지 예배는 반드시 처벌되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예배 방식과 음악을 지키고 보존하기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뜻과 진리가 무엇인지 알면서 감행한 배도에 대해서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는다면, 백성들 사이에서 악은 두려움 없이 파급될 것이기 때문에 배도에 대한 형벌은 피할 수 없었습니다.

 

금송아지 예배 때문에 3천 명이 죽었다

놀라운 사실은, 이스라엘 교회에서 대부분의 교인들이 금송아지 예배에 참여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백성이 그 귀에서 금고리를 빼어 아론에게로 가져오매 아론이 그들의 손에서 그 고리를 받아 부어서 각도로 새겨 송아지 형상을 만드니”(출 32:3-4)

 

이스라엘의 모든 백성이 금송아지 배도에 참여했던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 충성하는 소수의 남은 무리가 있었습니다. 남은 무리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우상을 섬길 때 우상을 섬기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남은 무리란,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을 무시할 때 대가와 희생을 치르면서까지 순종하는 사람들입니다. 배도의 순간마다 나타나는 기독교 역사가 있는데, 그것은 교회가 두 무리로 나누어지는 것입니다. 각 시대마다 교회 안으로 거짓 복음이 들어오고 거짓 예배가 들어올 때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과 거절하는 사람들로 나누어졌습니다.

불순종하는 대다수의 군중과 남은 무리로 나눠지는 역사는 지금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한쪽에는 순종의 백성이 있고 다른 쪽에는 불순종의 군중이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하나님의 말씀에 정확하게 서는 사람들은 대부분의 경우에 소수였습니다. 성경 역사에서 사탄이 교회를 공격할 때 대다수가 하나님의 편에 서 있었던 적은 거의 없었으며, 소수의 남은 무리가 온갖 협박과 생명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습니다. 그러므로 숫자로 상황을 판단하는 사람들은 사탄의 미혹과 공격에 무너지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유일한 기준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항상 남은 무리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배도에 가담하지 않은 백성을 골라내었습니다. “모세가 진문에 서서 가로되 누구든지 여호와의 편에 있는 자는 내게로 나아오라 하매 레위 자손이 다 모여 그에게로 오는지라”(출 32:26). 누가 금송아지 배도에 가담하지 않았습니까? 하나님의 예배를 지키기 위해서 생명을 바쳤던 사람들은 레위 자손이었습니다. 모세는 레위 자손에게 하나님의 심판을 행하도록 명령했습니다.

 

“레위 자손이 모세의 말대로 행하매 이날에 백성 중에 삼천 명 가량이 죽인 바 된지라”(출 32:28)

 

금송아지 배도에 가담한 3천 명이 죽임을 당했습니다. 독자 여러분, 애굽의 예배와 음악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조용하고 엄숙한 예배에 대해서 부정적이고 비판적입니다. 텔레비전과 엔터테인먼트에 익숙한 현대인들은 경건하고 거룩한 찬양과 예배를 좋아하지 않습니다. 그런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이제는 예배도 현대적 음악의 감각과 트랜드에 맞추어서 변해야 합니다. 가사만 기독교적이면 악기와 리듬과 멜로디는 세상 음악에서 가져와도 됩니다. 이미 수많은 교회들에게 그런 음악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온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께 경배와 찬양을 드리는데 왜 예배 방식과 음악에 구속받아야 합니까?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예배드리고 그분을 찬양하기 원하는 우리의 마음입니다.”

독자 여러분, 올바른 신앙생활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 마음이나 느낌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입니다. 기도하는 마음으로 성경을 펼쳐서 하나님께서 금송아지 예배와 찬양을 어떻게 취급하셨는지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성령께서 양심 속에 무엇이 하나님의 뜻인지 말씀해주실 것입니다. 대중가요와 같은 찬양과 강한 비트가 들어간 음악에 목청 높여 노래를 부르고 나면 속이 시원하고 스트레스가 풀리는 것 같은 느낌이 정말 성령의 감동일까요? 그런 느낌을 받을 때 정말 죄가 떨어져 나가고 의의 열매가 맺히고 있습니까?

 

참회의 증거, “단장품을 제하라”

금송아지 예배 때문에 3천 명이 죽임을 당하는 심판이 이스라엘 교회를 지나갔습니다. 이스라엘은 깊은 참회의 경험으로 들어갔고, 백성은 하나님을 따르고 충성하는 증거로 놀라운 결정을 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 너희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이르게 하려니와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목이 곧은 백성인즉 내가 중로에서 너희를 진멸할까 염려함이니라 하시니 백성이 이 황송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그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니 … 너희 단장품을 제하라 그리하면 내가 너희에게 어떻게 할 일을 알겠노라 하셨음이라 이스라엘 자손이 호렙산에서부터 그 단장품을 제하니라”(출 33:1-6)

 

성경은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갈 때까지 다시는 몸에 단장품을 장식하지 않았다고 했습니다. 왜 그런 결정을 했을까요?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것을 회개와 슬픔의 증거로 보셨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단장품을 제거하는 것은 자기 자신을 낮추고 회개하는 증거입니다. 마음에는 세속과 욕심이 가득한데 바리새인처럼 겉으로만 보석과 장식품을 하지 않는 것은 아무 의미도 없지만, 우리가 정말 하나님께 회개하는 심령을 나타내기 원하면 사치스런 장식과 단장품을 제하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성도들은 하나님께 기쁨과 영광이 되지 않는 것들을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옷을 입는 외모로 하지 말고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온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벧전 3:3,4)

 

지금부터 30년 전만 해도 교회와 세상 사이에 분명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의복과 차림새로 교회와 세상을 구별할 수 있었습니다. 말씨와 생각에서도 차이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보수적인 교파가 아니더라도 교인들이 보석류로 치장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현대 기독교회의 예배 모습을 보시기 바랍니다. 찬양을 인도하는 사람에게 나타나는 세상 가수의 모습, 다리를 흔들면서 탬버린과 기타를 치는 모습, 머리를 흔들면서 드럼 치는 모습, 진한 화장과 요란한 옷과 단장품들, 이런 모습들은 하나님의 이름으로 경배한다고 하지만, 인간의 교만과 자랑을 그대로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롬 12:2)

 

어떤 분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들에게 보석으로 치장하도록 허락하셨습니다.”

그러나 성경을 더 깊이 읽으면,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루비와 각종 보석으로 입히셨을 때에는 그것은 거룩함의 증표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대제사장 예복에는 귀한 보석을 달도록 명령하셨는데, 거기에는 영적 의미와 상징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사람 스스로 보석으로 자신을 치장하는 것은 회개하지 않은 증표였습니다.

 

“또 이와 같이 여자들도 단정하게 옷을 입으며 소박함과 정절로써 자기를 단장하고 땋은 머리와 금이나 진주나 값진 옷으로 하지 말고”(딤전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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