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go

6부, 어떤 인도 목회자의 고백

“나는 옛 언약 속에서 살아왔다”

올해 저는 70살이 되었는데, 50년 전에 주님을 영접하고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목사의 길을 걸은 것은 43년이 되었습니다. 지나간 세월을 되돌아볼 때 가장 뼈아픈 것은 옛 언약의 경험 속에서 너무나 오랫동안 빠져나오지 못했던 것입니다. 20세에 예수님을 영접했는데, 16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누구도 나에게 옛 언약에서 벗어나는 방법을 가르쳐주지 않았습니다. 나는 새 언약에 대해서 설교했지만 새 언약의 경험이 무엇인지 몰랐습니다. 그래서 언약에 대해서 설교할 때 항상 이런 식으로 말했습니다.

“우리는 새 언약 시대에 살기 때문에 계명에 묶이지 않아도 됩니다. 새 언약 시대에는 예수를 영접하고 서로 사랑하기만 하면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구약시대는 율법으로 구원받았지만, 신약시대는 십자가의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므로 누구든지 예수를 믿고 영접했으면 누구도 하나님께서 주신 구원을 흔들 수 없습니다. 불순종과 죄는 사람의 본성에서 나오는 자연스런 열매입니다.” 

나는 목사였지만 사탄의 종이었고 거짓 선지자였습니다. 나이는 많았지만 영적으로는 사춘기 소년처럼 무지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영적 무지함과 과거에 했던 나의 설교를 용서해 주시길 기도하고 있습니다. 내 무지한 설교 때문에 수많은 영혼들이 사탄의 기만에 빠져서 구원을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지금도 두렵습니다.

인도는 18세기부터 영국의 식민지로 살다가 1947년에 독립했습니다. 인도 사람들 중 누구도 억압받는 식민지 상태로 돌아가고 싶어하지 않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새 언약 시대에 사는 그리스도인들이 옛 언약 시대의 유대인들처럼 억지로 경건의 모양을 만들어내는 삶을 살면 안 됩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의 피로 새 언약을 주셨고 성령께서 우리 속에서 역사하시는데 옛 언약으로 돌아가면 안 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인들을 미혹하기 위해서 거짓 새 언약을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나는 그리스도와 새 언약을 맺었다.”고 믿으면서 실제로는 옛 언약의 신앙을 하고 있습니다. 나 역시 새 언약의 놀라운 은혜를 깨달은 것은 예수님을 믿은 지 16년이 지난 후였습니다. 16년이라는 세월 동안 옛 언약의 신앙을 했던 것입니다. 나는 예수를 믿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지만,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나를 사랑하고 보호하고 인도하시는 분으로 믿지 못했습니다. 지식적으로는 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늘 내 마음은 목사들과의 경쟁에서 뒤떨어지고 교인들에게 인정받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습니다. 겉으로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사역을 한다고 했지만, 속으로는 은근히 나의 영광을 추구했습니다. 장래에 대한 염려를 전적으로 하나님께 맡기지 못했습니다. 나는 예수님이 나를 죄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으로 이해했지만, 예수께서 나를 정욕과 분노와 질투에서 건져주고 내 감정의 쓴 뿌리에서 구원해 주시는 분인지 몰랐습니다.

그런 모습으로 살 때 예수께서 나에게 구원의 선물을 보내주셨는데, 그것은 “고난이라는 선물”이었습니다. 나는 고난 속에서 내가 얼마나 참담하고 헐벗었는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주님만 바라보고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통해서 새 언약으로 들어가는 경험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새 언약의 경험을 하면서, 성령께서 내 마음의 중심, 특히 동기를 변화시켜 주셨습니다. “내가 목사를 하는 이유, 내가 사역을 하는 이유, 내가 설교하는 이유”가 하나님의 영광에만 맞춰지게 되었습니다. 전에는 복음 전파에는 관심이 없고 교회의 확장과 교인 숫자에 관심이 있었는데 이제는 교인들이 천국에 가도록 도와주기 위해서 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이제 내 설교는 “좁은 길”과 “진리가 무엇인가?”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말씀을 전할 때마다 참된 구원의 경험이 무엇인가를 강조합니다. 내가 사는 이유와 목적이 하나님께만 맞추어지자 진리를 있는 그대로 설교하는 것이 두렵지 않게 되었습니다. 오랜 세월 동안 나의 인생은 “내 뜻”으로 채워져 있었는데 새 언약을 경험하면서 “내 뜻”은 사라지고 “주님의 뜻”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는 오랫동안 예수께서 말씀하신 다음과 같은 경험이 무엇인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 하시니”(요 7:38)

 

배에서 생수가 흘러나온다는 것은 내 마음과 심령 속에서 하늘의 생명과 거룩한 분위기가 흘러나온다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경험은 심령이 의와 진리로 풍요로워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사마리아 여인에게 주신 것도 “영원히 목마르지 않는 속에서 솟아나는 생명수”였습니다(요 4:14).

 

늙은 종의 호소

옛 언약하에서 나의 모습은 말씀에 순종하는 것처럼 보이고 말씀을 전하고 예배를 드리는 것처럼 보였지만, 마음과 심령은 언제나 목마르고 만족이 없고 공허했습니다. 겉모습을 신앙으로 포장했지만 속은 썩어가고 있었습니다.

옛 언약의 신앙으로 살 때는 6일 동안 은근히 불평하고 은근히 비난하고 은근히 세상을 사랑하면서 살다가 예배일만 거룩하게 지키려고 애썼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내가 걸었던 옛 언약의 길을 걷고 있습니다. 6일 동안은 하나님을 까마득하게 잊고 삽니다. 평일에는 남들에게 크게 욕 얻어먹지 않을 정도로 삽니다. 그러다가 예배일이 되면 거룩한 모습으로 하나님께 나가 예배드립니다. 그런 사람은 옛 언약의 덫에 걸려 있는 것입니다. 새 언약의 경험은 내 삶 전체가 하나님께 산 제사로 바쳐짐으로 영혼 속에 하늘이 주는 평안이 있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은 표정과 말에서 여유와 확신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참된 새 언약을 경험하지 못하는 사람은 성경을 채찍과 당근으로 보게 됩니다. 형벌에 대한 두려움(채찍) 때문에 순종하고, 순종에 대한 약속(당근) 때문에 열심히 교회를 섬기는 사람들은 주님과 인격적인 관계 속으로 들어가지 못하게 됩니다. 잘 믿고, 헌금하고, 교회에서 봉사하면 직장에서 승진하고 자녀들이 잘된다고 믿는 신앙은 옛 언약의 신앙입니다. 옛 언약에 속한 사람들은 다음과 같은 사도 베드로의 말씀이 이해되지 않을 것입니다.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 1:4)

 

옛 언약의 신앙으로는 결코 신의 성품에 참여할 수 없습니다. 옛 언약에서 사는 사람들은 억지로 순종하려고 애쓰다가 좌절하게 됩니다. 그러나 새 언약의 길로 인도함 받은 성도들은 범사에 감사하고 가난 속에서도 나눔의 삶을 살게 되고 주님을 늘 찬양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이런 모습으로 살아가는 것이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해주신 목적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새 언약의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편지처럼 살아야 한다고 했던 것입니다.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한 것이며 또 돌비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심비에 한 것이라 … 저가 또 우리로 새 언약의 일꾼 되기에 만족케 하셨으니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이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임이니라”(고후 3:2,3,6)

 

나는 오래전에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의 계명대로 순종해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구약시대의 율법주의이고 하나님께서 저주하는 행위신앙이다. 왜냐하면 구원은 전적으로 은혜로 받는 것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에도 과거의 나처럼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은 사도 요한의 말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아들을 믿는 자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치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 3:36)

 

이 글을 읽는 분들 중 저처럼 옛 언약에 머물러 있는 분들이 있습니까? 이제 새 언약으로 나와야 합니다. 의인은 빛이 주어질 때마다 점점 더 밝은 빛으로 가는 사람들입니다. 의인의 길은 돋는 햇볕 같아서 점점 빛나서 원만한 광명에 이르거니와 악인의 길은 어둠 같아서 그가 거쳐 넘어져도 그것이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느니라(잠 4:18-19).

 

Do you know? 구약시대는 행위로 구원받고 신약시대는 은혜로 구원받습니까?

구약시대나 신약시대나 구원의 경험은 동일합니다. 신약시대에 그리스도의 피로 사함 받는 것처럼, 구약시대에도 어린양의 피로 죄를 용서받았습니다. 그들은 장차 올 메시아의 죽음을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양을 죽이고 피를 성소에 뿌렸는데 그것이 속죄제였습니다. 성령께서는 속죄제를 드리는 죄인의 심령 속에 역사하여 새 마음을 주심으로써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경험으로 인도하셨습니다. 구약성경의 에스겔서 36장과 예레미야 31장에 이미 새 언약의 경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신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겔 36:26,27)

 

많은 사람들이 구약시대는 옛 언약의 시대라고 생각하지만, 구약시대에도 새 언약의 경험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이스라엘 백성과 언약을 맺었지만, 그분의 소원은 언제나 성도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과 계명이 기록되는 새 언약을 맺는 것이었습니다. 구약성경의 예레미야서에도 새 언약의 경험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새 언약을 맺으리라 이 언약은 내가 그들의 조상들의 손을 잡고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내던 날에 맺은 것과 같지 아니할 것은 내가 그들의 남편이 되었어도 그들이 내 언약을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러나 그날 후에 내가 이스라엘 집과 맺을 언약은 이러하니 곧 내가 나의 법을 그들의 속에 두며 그들의 마음에 기록하여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1:31-33)

 

성도 여러분, 구약시대에는 옛 언약의 행위로 구원받고 신약시대는 은혜로 구원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늘은 행위로 구원받는 성도들과 은혜로 구원받는 성도들로 나눠지지 않습니다. 구약시대에도 죄인은 내 죄 때문에 죄 없는 양이 피를 흘리고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면서 깊은 회개의 경험으로 들어갔습니다. 다시 말해서, 구약시대에도 양의 죽음을 바라보면서 새 마음을 받는 경험을 통해서 구원받았습니다. 구약시대와 신약시대 모두 하나님의 목적은 신자들의 마음이 성령의 역사로 변화되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새 계명도 구약시대부터 존재해온 계명이었습니다.

 

신약시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구약시대: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레 19:18)

 

Q & A : 이런 질문을 갖고 계십니까?

 

  1. 첫 번째 질문: 바울은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서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고 했는데, 이 말씀에서 “우리 어머니”는 누구인가요?

제가 이런 질문을 하는 이유는, 요즘 어떤 교회들에서는 “아버지 하나님”만 있는 것이 아니라 “어머니 하나님”도 있다고 가르치기 때문입니다. 이런 주장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요?

 

어떤 신흥교회에서는 “어머니 하나님”을 가르치고 “하나님은 아내가 있다.”고 말합니다.

성도 여러분, 이 땅의 인간 생활에 대한 관념을 갖고 하나님을 해석하면 이상한 길로 들어가게 됩니다. 우리에게 어머니가 있고 아내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도 어머니와 아내의 관념으로 보면 진리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성경을 읽을 때 우리는 그 말씀이 실제로 표현되었는지 비유나 상징으로 표현되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위에 있는 예루살렘”을 설명하기 앞서 24절에서 “이것은 비유니”라고 말씀했습니다. 그러므로 갈라디아서 4장 26절에 나오는 “위에 있는 예루살렘이 어머니”는 비유이고 문맥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해야 합니다.

 

하갈과 사라 = 두 언약

바울은 갈라디아 4장에서 아브라함의 두 아내 이야기를 통해서 새 언약과 옛 언약의 경험을 설명하였습니다. “여종(하갈)에게서는 육체를 따라 났고 자유 있는 여자(사라)에게서는 약속으로 말미암았느니라 이것은 비유니 이 여자들은 두 언약이라”(갈 4:23,24). (하갈 = 옛 언약 / 사라 = 새 언약)

그런데 바울은 옛 언약을 상징하는 “하갈”을 사용해서 다음과 같은 말씀을 했습니다.

 

“하갈(옛 언약)은 아라비아에 있는 시내산으로서 지금 있는 예루살렘(유대인의 예루살렘)과 같은 곳이니 그가 그 자녀들과 더불어 종노릇하고(율법주의)”(갈 4:24,25)

 

이 말씀에서 바울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저버리고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만들어내는 경험을 유대인의 “예루살렘 성”으로 비유했습니다. 다시 말해서, 유대인들의 예루살렘은 인간의 힘으로 구원받으려고 애쓰는 옛 언약의 신앙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갈 = 옛 언약 = 유대인의 예루살렘 = 율법주의)

 

이와 반면에 바울은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자녀를 낳은 “사라”는 다음과 같이 말씀했습니다.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하늘 새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 형제들아 너희는 이삭과 같이 약속의 자녀라”(갈 4:26,28)

 

이 말씀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능력을 통해서 약속의 자녀(이삭)를 낳은 <어머니 사라>를 하늘 새 예루살렘 성으로 비유했습니다. 그러므로 사라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삭을 낳은 것처럼, 새 언약하에서 하나님의 능력으로 마음이 새롭게 창조된 성도들은 하늘 새 예루살렘(천국)을 유업으로 받게 됩니다.

(사라 = 약속의 자녀를 낳은 어머니 = 새 언약 = 하늘 새 예루살렘)

 

바울은 두 명의 다른 어머니가 두 명의 다른 아들을 낳은 것처럼, 두 개의 다른 예루살렘 성이 두 개의 다른 언약, 즉 옛 언약과 새 언약의 자녀들을 낳은 것으로 설명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성”이라는 상징적 표현을 통해서 하나님의 율법을 자기의 힘으로 지켜서 구원 얻으려 했던 유대인들의 율법주의를 지적한 것입니다. 

 

  1. 두 번째 질문: 요한계시록 마지막에 나오는 “신부”가 누구인가요? 요즘 어떤 교회에서 “하나님은 아내(신부)가 있다.”고 말하는데 정말 하나님도 우리처럼 결혼하나요?

우리의 입장에서 하나님을 바라보면 성경을 크게 오해하게 됩니다. 우리가 결혼하고 아내가 있다고 해서 하나님도 우리처럼 아내가 있을 것이라고 추측하면 말씀 밖으로 나가게 됩니다.

오늘날 어떤 사람들은 사도 요한이 다음 말씀에서 성령과 신부를 나란히 기록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인간처럼 아내를 갖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계 22:17)

 

이 말씀에서 신부는 누구일까요? 요한계시록 21장과 22장은 구원받아서 하늘에 간 성도들에 대한 말씀인데, 사도 요한은 하늘에 있는 “새 예루살렘 성”을 “신부”라고 표현했습니다.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준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계 21:2)

 

사도 요한은 왜 새 예루살렘 성을 아름답게 “단장한 신부”라고 표현했을까요? 왜냐하면 새 예루살렘 성 안에 구원받은 성도들이 살기 때문입니다. 사도 요한은 “신부”를 “어린양의 아내”라고도 표현했습니다. 구원받아서 새 예루살렘 성에 들어간 성도들을 “어린양, 그리스도의 아내”로 설명한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신부 곧 어린양의 아내를 네게 보이리라 하고”(계 21:9).

그러므로 우리는 다음과 같은 등식을 만들 수 있습니다.

 

새 예루살렘 = 신부 = 어린양의 아내 = 구원받은 성도들

 

그렇다면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의 끝에 나오는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계 22:17)라는 말씀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성령과 신부(죄로부터 구원받은 성도들)가 함께 성경의 마지막 장면에서 온 우주를 향해서 이렇게 외치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자 하는 자, 목마른 자, 원하는 자는 모두 값없이 생명수를 마시고 구원받았습니다. 아무도 죄에 대하여 핑계를 댈 수 없습니다. 누구든지 구원받기 원하는 자는 모두 생명수(말씀)를 마시고 구원받았습니다.”

질문 또는 소감을 보내주세요

* 필수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