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1. 왜 하나님을 신실하게 믿는 사람도 암에 걸리고, 재난을 당해야 합니까?

누가복음 13장에는 예수께서 18년 동안 온 몸이 꼬부라져 있던 한 여인을 고치신 이야기가 나옵니다.

거기서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십팔 년 동안 사단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이라고 불렀습니다. 다시 말해서 예수께서는 그 여인을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딸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딸이었지만 사단 때문에 18년 동안 고통 당해야만 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아담과 하와에게 죄와 슬픔과 죽음과 고통이 없는 에덴동산을 창조해 주셨던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인류의 조상에게 완전한 행복과 건강을 주셨습니다.

그런데 사단에 의해서 죄가 이 세상에 들어오게 되었고, 그때부터 슬픔과 고통과 죽음의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모든 고통과 슬픔의 책임은 사단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단이 바로 이 세상에 재난과 파괴를 초래한 장본인입니다. 그러나 사단은 마치 슬픔과 고통이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처럼 오해하도록 사람들을 기만하고 유도하고 있습니다.

이 지구를 현재 사단이 지배하고 있기 때문에 진실한 그리스도인도 교통사고로 죽고, 암이 걸리며, 테러 사건으로 인하여 죽임을 당하게 되는 일들이 일어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지구를 사단의 손으로부터 구원해주실 때까지 이러한 사고와 재난들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섭리와 역사에 의해서 결국 모든 것은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우연이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는 모든 일이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이루어집니다.
에스겔이 본 게시와 같이 거룩한 손이 바퀴들 위에 놓여 있고 바퀴 안에 바퀴가(겔1:16) 일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각 사람의 형편을 잘 아십니다. 우리의 눈이 열릴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공의가 이 세상에 역사하고 있음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시고 하늘에 가면, 이 세상에서 이루어졌던 이해할 수 없는 모든 사건과 사고에 대해서 정확하게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우리의 구원과 영생을 위해서 역사하신 하나님의 섭리와 은혜에 대해서 감사와 찬송을 드리게 될 것입니다.

질문2.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실 때 어떤 느낌을 갖게 되나요?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받아주신다는 증거를 자신의 감정 속에서 찾으려고 합니다. 그래서 행복한 감정을 갖게 되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생각하고, 감정이 흔들리고 정신적으로 힘들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조심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임재를 느낌과 감정으로 판단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행복해지기 위해서 교회다니고 행복해지기 위해서 찬양하고 기도합니다. 행복한 감정을 얻기 위해서 교회 음악과 예배 분위기를 바꿔나갑니다. 그래서 내 감정과 느낌이 행복해지면,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신다고 믿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이 옳을까요?

그리스도인은 행복해지기 위해서 하나님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해서 신앙을 하는 것입니다. 행복한 감정은 하나님을 믿고 순종하는 결과로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앨매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다음과 같은 신앙을 가지라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찬양을 하고, 예배를 드리는 목적도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 위함이지 내가 느끼는 감정과 만족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느낌은 믿음이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둘을 명확하게 구별할 있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믿음을 활용하는 대신에, 자신에게 어떤 특별한 느낌이 올 때까지 기다립니다. 믿음은 홍해가 갈라지는 놀라운 광경을 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아닙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는 마음으로 전진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전진했을 때, 감격과 감사의 정신을 축복으로 받게 됩니다. 믿음을 먼저 활용할 때, 행복한 감정과 느낌이 따라오게 됩니다. 믿음은 환경과 조건에 상관없이 활용할 수 있는 것이고, 느낌은 믿음을 활용한 결과로서 얻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믿음으로 살지 않으면서 행복한 느낌과 감정을 추구하는 사람에게 사단은 미혹의 덫을 놓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축복으로 허락하시는 감정과 느낌은 우리 스스로 만들어 없는데 왜냐하면 그것은 하늘에서 내려오는 선물이기 때문이다.

참된 믿음은 약속된 축복이 실현되고 느껴지기 전에 그것을 붙잡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막 11:24).   하나님의 축복이 눈에 보이기 전에도 감사의 정신을 소유해야 하는데, 왜냐하면 하나님의 선하신 섭리가 최선의 방법으로 이루어질 것을 믿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참된 믿음입니다. 약속된 축복이 실제로 임해서 그것을 느끼고 즐기게 될 때, 그것은 믿음이 아니라 느낌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령이 자신에게 많이 부어질 때에는 큰 믿음을 얻게 되며, 자신이 성령의 큰 능력을 느끼지 못하는 경우에는 아무런 믿음도 가질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령의 결핍을 느낄 때야말로 믿음을 활용해야 할 때입니다. 어두운 감정의 구름이 마음을 덮을 때야말로 믿음을 활용하여 어두운 구름을 흩어버리고 유쾌한 정신을 받아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밝은 감정을 갖고 행복을 느껴야 하지만, 그런 감정을 어떤  과정을 통하여 얻게 되는가가 중요합니다. 자신의 느낌과 감정에 의존하여 신앙하는 그리스도인은 사단의 미혹을 당하기 매우 쉽습니다. 왜냐하면 사단은 사람의 정신을 흥분시키고 자극하는 방법으로 오류와 거짓을 퍼뜨리기 때문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유혹을 저희 가운데 역사하게 하사 거짓 것을 믿게 하심은 진리를 믿지 않고 불의를 좋아하는 모든 자로 심판받게 하려 하심이니라.” (살후 2:12)

성경 말씀은 영원불변한 것이지만, 인간의 느낌과 감정은 상황에 따라서 변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느낌과 감정에 의해서 신앙을 판단할 것이 아니라, 다음과 같은 진지한 질문으로 자신의 영적 상태를 판단해야 합니다.

1.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무엇을 하고 있는가? 
2. 나는 복음과 진리에 순종하고 있는가? 
3.
나는 영적인 것을 좋아하고, 육적인 것을 싫어하는가?
4.
나는 내 자신을 위해서 살아가는가? 그리스도를 위해서 살아가는가?

이러한 질문에 대한 대답이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인지를 판가름하는 증거가 될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도 항상 밝으실 수는 없으셨습니다. 그분께서도 우셨고, 사단의 공격 때문에 고뇌하셨습니다.

사단은 오늘날 교회 안에서 감정과 믿음을 섞어 놓으려고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기쁨과 환희가 있어야 믿음이 향상되었다고 생각하는 것은 사단에게 기만당할 수 있는 위치에 자신을 놓는 것입니다. 

질문3. 날마다 드리는 기도를 어떻게 해야 하나요?

기도는 친구에게처럼 하나님께 마음을 털어놓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뜻을 알리기 위하여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의 뜻을 알고 받아들이기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우리에게로 내려오게 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그분에게로 올라가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겸손한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의 기도를 마치 예수님 자신의 소원처럼 받아들이십니다.

진실한 마음으로 드리는 기도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의 심령을 울립니다. 비록 기도가 유창하게 표현되지 않았을지라도 그것이 마음의 중심으로부터 우러나왔다면, 그 기도는 하늘에 올라갈 것이며, 예수께서는 그것에 자신의 완전하고 선하신 향기를 담아서 하늘 아버지께 바치십니다.

우리의 기도는 정직하고 겸손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생각은 우리의 생각과 같지 않고 우리의 방법은 그분의 것과 같지 않으니 그분의 길은 언제나 완전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우리 자신의 소원 위에 하나님의 소원을 두어야 하고 받아들여야 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뜻과 계획을 이루어 달라고 하나님께 강요하기 위해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우리에 대한 하나님의 완전하신 때와 섭리가 무엇인지를 알기 위해서 드리는 것입니다. 기도는 하늘의 지혜를 여는 믿음의 손 안에 쥐어진 열쇠입니다.

질문4. 하나님의 구원이 우리의 행위로 이루어질 수 있나요?

구원은 우리의 어떤 공로나 행위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거저 베푸시는 은혜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구원받은 사람은 계명을 지키는 삶을 살게 됩니다. 구원받기 위해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감사하기 때문에 그분의 계명과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선한 행위가 열매로 자연스럽게 맺히게 될 것입니다. 사도요한의 말씀에서 우리를 그 사실을 볼 수 있습니다.

요 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요 14:21 “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라야 나를 사랑하는 자니…”
요 14:24 “나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내 말을 지키지 아니하나니…”
요일 2:4 “그를 아노라 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지 아니하는 자는 거짓말 하는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있지 아니하되..”
(요일 2:5) “ 누구든지 그의 말씀을 지키는 자는 하나님의 사랑이 참으로 그 속에서 온전케 되었나니 이로써 우리가 저 안에 있는 줄을 아노라”
(요 15:14) “ 너희가 나의 명하는 대로 행하면 곧 나의 친구라”
(요일 5:3)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것이니 우리가 그의 계명들을 지키는 것이라 그의 계명들은 무거운 것이 아니로다”

주님께 마음과 생애를 드린 사람들은 성령의 거룩한 열매가 마음과 생애 속에 맺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그 사실을 예수님의 말씀에서 보게 됩니다

“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혀 불에 던지우느니라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 하며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마 7:16-23)

목사님께서 질문하신 문제와 연관된 주제를 월간지 변화 2호에서 다루게 될 것입니다. 관심을 갖고 살펴봐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멀리 완도에서 사역하시는 목사님의 앞날에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이 항상 함께 하시길 기도드립니다. 또한 진리횃불을 위해서도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영적으로 참 어두운 세상에서 목사님과 같은 분과 교제를 나누게 된 것을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됩니다. 감사합니다.

질문5. 성경에서 남북한의 통일에 대해서 예언한 것이 없나요?

마태복음 24장에 나오는 재림의 징조가 성취되는 동안, 다른 쪽에서는 또 다른 예언이 성취되어갈 것인데, 그것은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해지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되기 위해서 방해가 되는 나라와 민족들 사이에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라는 징조가 성취될 것입니다.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는 징조들이 생길 때마다 복음의 문호가 열려서 천국복음이 땅 끝까지 전파되는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말세의 시작점임 산업혁명 시대 이후부터 교통이 발전되고,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개신교 시대가 시작되면서 다니엘서 예언의 빛이 밝아졌는데, 그와 함께 각 교파를 통해서 복음이 온 세상에 빠르게 전파되기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시대가 시작되자, 사단도 다아윈의 진화론을 퍼트리기 시작했습니다. 진화론을 앞장 세워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사상을 온 세상에 퍼트렸습니다. 진화론의 영향 때문에 유물론과 공산주의 사상이 불길처럼 일어났습니다.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났습니다. 그 결과 세계 곳곳에서 하나님을 부정하는 공산국가들이 생기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복음을 땅 끝까지 전파하기 위한 역사를 중단하지 않으셨습니다. 아무도 예상치 못한 때에 갑자기“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일들이 일어나면서” 동유럽과 구 소련의 공산권이 무너지면서 복음이 전파될 수 있는 길이 열렸습니다(1989년).

이제 남은 것은 북한과 이슬람권입니다. 이 두 지역에서도 복음이 전파되기 위해서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는” 징조가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북한과 남한은 같은 민족끼리 대적하고 있고, 중동의 이슬람 나라들은 이스라엘과 서구 나라들과 대적하고 있습니다. 그 두 지역은 어떻게 될까요? 민족과 나라가 대적하면서 복음 전파를 할 수 있는 문이 열리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몇 년 전에 중동지역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는 징후를 보였는데, 그것을 “중동의 봄”이라고 부릅니다.

현재 이슬람 인구가 전 세계적으로 15억 명입니다. 지구 인구의 20%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 이슬람권이 복음의 문을 열지 않는 한 천국 복음은 땅끝까지 전파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중동국가들은 반드시 복음에 대해서 문호를 여는 방향으로 변화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북한 역시 가까운 장래에 복음에 대해서 문을 여는 방향으로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예수께서 예언하신 “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다는 징조는 북한과 중동지역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날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민족과 나라 사이에 대적하는 징조와 자연재해가 도처에서 극심해지는 징조를 함께 말씀하셨습니다.“민족이 민족을, 나라가 나라를 대적하여 일어나겠고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으리니”(마 24:7). 그러므로 복음이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 민족과 나라들 사이에서 대적하고 다투는 일이 생길 때, 자연재해가 극심해지는 일들이 함께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예언의 말씀 그대로 이슬람권에서 시민혁명이 일어나면서 왕권이 흔들리고 있으며, 북한이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상황 속에서 자연재해가 지난 10년동안 매해 기록을 깨면서 극심해지고 있습니다. 지금은 마지막 시대의 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시기입니다. 고개를 들고 일어나 그리스도의 재림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질문6. 말세는 언제부터 시작되었나요?

말세는 이미 오래 전에 시작되었습니다. 한가지 분명하게 이해해야 할 사실은, 말세란 어떤 시점이 아니라, 기간이라는 것입니다. 다니엘서와 요한계시록 예언은 세상 역사를 몇 개의 기간으로 나누어서 예언하고 있습니다. 다니엘 2장의 금신상, 다니엘 7장의 네 짐승, 요한계시록 일곱 교회, 일곱 인, 일곱 나팔 예언은 모두 세상 역사를 몇개의 기간으로 나누어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말세” 또는 “마지막 때”란 세상 역사를 나누는 기간 중에서 가장 마지막에 있는 기간을 뜻합니다. 기간에는 시작과 끝이 있으므로 말세에도 시작점과 끝나는 때가 있는 것입니다. 오래 전에 말세가 시작되었고, 지금은 말세의 끝인 재림을 향해 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렇다면 말세란 언제 시작되었나요? 다니엘 12장 4절은 이 질문에 대한 분명한 답을 줍니다.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 이 예언은 마지막 때가 언제, 어떻게 시작되는가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예언은 장차 사람이 왕래하는 속도가 급속히 빨라지고, 지식이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는 때가 올텐데 그때가 말세의 시작점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말세가 시작되면 봉함되었던 다니엘서 예언의 뜻이 공개될 것이라는 뜻이 담겨져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왕래하는 교통의 속도가 빨라지고 지식이 크게 늘어나는 때가 되면 그때부터 말세가 시작되고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보내신 종들이 나타나서 봉함되었던 다니엘서 예언의 의미를 세상에 공개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만물을 창조하신 이후, 인간은 말이 달리는 속도로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다니엘 12장 4절이 예언했던 시간이 되자 “많은 사람이 빨리 왕래하며 지식이 더하리라”는 예언이 성취되기 시작했습니다. 영국에서 갑자기 산업혁명이 일어나면서 증기 기관차가 나오게 되었고, 엔진이 개발되고 급속하게 발전되더니 지금은 음속의 몇배로 날아다니는 우주시대가 되었습니다. 마지막 시대가 되었습니까? 그렇습니다. 성경은 산업혁명 무렵부터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다니엘 12장 4절에 기록된 “다니엘아 마지막 때까지 이 말을 간수하고 이 글을 봉함하라”는 예언도 성취되었을까요? 그렇습니다.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교통의 속도가 급격하게 빨라질 무렵에 다니엘서의 예언의 의미가 공개되었습니다. 그 무렵부터 하나님의 종들이 나타나서 구약시대부터 봉함되어 온 예언을 펼쳐서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천년의 종교암흑시대가 끝나면서 종교개혁자들이 여기저기서 일어나면서 개신교회가 등장하더니 그들이 세계 선교를 하면서 다니엘서의 예언을 해석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마지막 때가 분명하고, 예수께서 마태복음 24장에서 말씀하신 재림의 징조는 마지막 때에 일어나는 재난과 사건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