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 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은 왜 그곳에 있어야만 했는가? 왜 영광의 하나님의 모습 대신 십자가의 그리스도의 모습이 영원 전에 새겨져 있어야만 했는가?

그 죽임 당한 어린 양의 모습은 나에게 하나님의 깊은 사랑에 대한 감사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멸시가 가져다 준 하나님의 슬픔과 죄의 처참한 실체로 인한 슬픔을 느끼게 했다.

멸시받는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밤잠을 설치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사람은 하나님의 마음에 타격을 가하였고, 세상에 오신 그리스도의 뺨을 때리고 얼굴에 침을 뱉었다. 만약 우리의 육신의 부모가 남에게 그런 대접을 받았다면 우리는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냈을 것이다.

그런데 하늘 아버지가 받은 모욕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는 자녀가 얼마나 있을까?

그럼에도 하늘 아버지는 십자가로, 그분의 고난으로 사람의 죄악을 속량하기를 결심하셨다. 그것 외에는 사람을 구원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다.

로마서 1장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멸시를 당하고 짓밟히는 모습을 지켜보라. 끝없이 타락해가고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 채우며 기어코 멸망해 버리는 인류를 보라. 창세 전의 어린 양의 모습은 무한하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감사와 멸시받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형언할 수 없는 슬픔이다. 죄의 저주 아래 있는 사람들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는 사람에게 심장을 찔리신 하나님의 가슴 아픈 호소이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사람의 타락은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멸시이다. “그들은 영원히 살아계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오히려 썩어 없어질 사람이나 새나 짐승이나 기어 다니는 동물 형상의 우상을 섬기고 있습니다”(로마서 1:23, 현대인의 성경).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형상의 우상으로 전락한 것은 충격적이고 가슴 아픈 일이다. 타락하지 않은 천사들과 우주의 거민들이 볼 때에는 하나님의 영광에 대한 멸시는 하나님에 대한 멸시이다. 그것은 감당하기 어려운 슬픔이다. 그것은 사형 즉 죽음의 결과 외에는 해결책이 없는 막다른 골목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하나님의 아들로 사람의 죄를 대신하여 죄의 값을 치르게 하셨다. 그리고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즐거움과 화목을 회복하셨다. 찬양을 회복하셨다. 창세 전에 죽임 당한 어린 양 그리스도는 인류의 역사에 높이 세워진 십자가에 죽으신 어린 양이셨고 구원받은 성도들과 함께 영원한 기쁨의 노래를 부를 어린 양이시다(계시록 14:1-3).

무릇 시온에서 슬퍼하는 자에게 화관을 주어 그 재를 대신하게 하며 기쁨의 기름으로 그 슬픔을 대신하며 찬송의 옷으로 그 근심을 대신하시고 그들의 의의 나무, 곧 여호와께서 심으신 그 영광을 나타낼 자라일컬음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이사야 61:3).

이제, 너희는 기뻐 뛰며 길을 떠나 안내를 받으며 탈 없이 돌아가리라 너희를 맞아 산과 언덕들은 환성을 터뜨리고 들의 나무가 모두 손뼉을 치리라 가시나무 섰던 자리에 전나무가 돋아나고 쐐기풀이 있던 자리에 소귀나무가 올라오리라 이런 일이 야훼의 이름을 들날리고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 표가 되리라”(이사야 55:12-13).

하나님, 내 안에 하나님으로 인한 한없는 즐거움과 기쁨을 주시오니 감사합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입니다. 성령께서 마음에 임하시어 하나님을 소리 높여 찬양하게 하시오니 은혜가 넘치나이다.

주 예수여 속히 오시옵소서”(계시록 22: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