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에 관한 이 글이 죄의 문제로 슬퍼하는 분에게, 악의 문제로 고민하는 분에게 자그마한 빛이 되기를 바랍니다.

, , 정의의 문제는 개인적인 문제이기도 하면서 역사적인 문제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죄, , 정의의 문제는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존재하고 있습니다. 구주 탄생 대략 천 년 전에 지혜자 솔로몬은 이 세상이 참혹한 이유와 본질을 철학적인 용어로 분명히 드러냈습니다. 전도서 4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내가 다시 해 아래에서 행하는 모든 학대를 살펴보았도다 보라 학대받는 자들의 눈물이로다 그들에게 위로자가 없도다 그들을 학대하는 자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으나 그들에게는 위로자가 없도다

이 세상이 슬픈 세상이 되는 이유는 단지 죄나 학대나 부정의 때문만은 아닙니다. 이 세상이 고통스러운 세상이 되는 것은 그 학대의 문제가해결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위로자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 위로가 없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기 때문이고, 더 나아가 어떤 경우에는의 적용에 있어서 예외가 되는 사람이 있어 보이고, 그런 상황이 종종 있는 것처럼 차별적으로 혹은 억울하게 느껴지기 때문입니다. 이에 대해, 어떤 사람은 분노하고, 어떤 사람은 자조하고, 어떤 사람은 변혁을 시도합니다. 그럴수록 갈등은 커지고 행복감은 줄어듭니다. 마치 슬픔과 비극의 순환 열차 위에 올라탄 세상처럼 보입니다. 위로가 제공되지 않는, 위로자 없이 학대와 눈물이 계속되는 이 비극적인 세상을 지혜자는해 아래의 세상으로 명명했습니다.

그런데 말씀을 잘 살펴보아야 합니다. 지혜자는학대받는 자들의 눈의 눈물을 닦아 줄 위로자가 없으니 이 세상이 얼마나 슬프냐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1절 하반부에 말씀을 잘 살펴보면 거기에 등장하는 사람들은학대받는 자들이 아니라, “학대하는 자들입니다. “학대하는 자 그들의 손에는 권세가 있습니다. 하지만 지혜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학대하는 자들그들에게도 위로자가 없도다!”

학대하는 자와 학대받는 사람 모두 벗어날 수 없는 감옥에 갇혀 고통받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모두 위로자가 없는해 아래세상에서 살고 있는 가련한 인생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학대받는 자들의 문제는 그들을학대하는 자들이 아닙니다! 즉 그들의 문제는학대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없애버리는 것이 아니라, “해 아래에서 벌어지는 이 비극을 영원히 끝낼위로자가 없다는 것입니다.

인류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입니까? 먹구름 사이로 간혹 비쳐오는 햇빛과 같은 위로가 아니라, , , 불의를 영원히 끝내고 구원과 정의를 한낮의 광명처럼( 4:18) 가득하게 할 위로자입니다.

위로자가 누구입니까?

그 위로자는해 아래에서 난 사람이 아니라, “해 위에서해 아래로 내려오신 자가 참된 위로자가 될 것입니다( 10:20). 비가 하늘에서 내려와 마른 땅을 적시듯이(참고. 55:6~13) ‘하늘에서 내려온그분만이 죄, , 불의를 영원히 끝내고, 학대받는 자들과 학대하는 자들, 모두에게 위로자와 구원자가 될 것입니다.

하늘에서 내려온위로자는 누구입니까?

그분은 이 땅에 오신 구주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요셉은 천사로부터 위로자가 없는 슬픈 세상에 주어진진정한 좋은 소식을 듣게 됩니다.

이 일을 생각할 때에 주의 사자가 현몽하여 이르되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라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 1:20-21)

천사가 전한 이 말은 히브리어 또는 아람어로 되어 있으며, 이 단어들은 낱말 놀이(word play)로 이루어져 있는데 헬라어와 영어 번역에서는 그것이 누락되었습니다. 그런데 히브리어로예수예슈아이고, “구원하다라는 단어는야샤입니다. 그래서 히브리어 단어를 그대로 사용하여 번역하면 이렇게 될 것입니다. “그 이름이예슈아라 불리우게 될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야샤’(구원)할 것이다.” 예수님 그분이 구원이며, 그분의 말씀이 생명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말씀입니다.

천사는 구주께서자기 백성을” “저들의 죄에서저희를 구원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참으로 당혹스러운 말입니다.

왜냐하면, 유대인들이 로마에 의해 참혹한 만행을 당하던 시대에, 로마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툭하면 사형식을 치르고 있는 미친 왕 헤롯의 죄가 아니라, 또한 율법을 모독하고 성스러운 제단에서 학살을 자행하는 빌라도와 같은 사람들의 죄가 아니라, 하나님 백성( 1:11)의 죄가 문제라고 말하니 얼마나 당황스러운 말입니까!

그런데 구주께서는 바로 그 일을 위해 오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의 문제가 먼저 해결된 후에야, 비로소 다른 백성의 문제도 해결될 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리고 이 일이 우리에게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가까운 지금 이 순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의 죄의 문제가 먼저 해결되어야, 그 영광스러운 마지막 일 복음의 비밀이 완성되는 일도 곧이어 이루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와 뗄 수 없이 하나로 연결된 것이율법입니다. 일차적으로, 율법이 죄를 규정하기 때문입니다(요일 3:4). 율법이 없으면 죄가 성립되지 않습니다. 이 세상에서이 공정하게 집행되지 않기 때문에 혼란이 일어난 것처럼, 세상이 눈물과 비극으로 가득하게 된 것은 첫 사람 아담에게 주어진 그이 지켜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시는 일을 단지 죄의용서에만 국한하여 이해합니다. 하지만죄에서 구원한다는 것은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또한, 상당히 많은 사람들은 약속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왔으니, 믿으면 되지, 이제 율법은 필요 없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생각은 성경적으로 보아도, 상식적으로 살펴보아도 크게 빗나간 생각입니다.

이렇게 뒤틀린 복음을 믿고 있으니, 오늘날 많은 그리스도인들이율법과 은혜를 대립 관계로 오해하게 되었습니다. 당연히율법과 성령과의 관계는 거의 생각도 하지도 않고 있습니다. 그 결과, ‘율법적인 것과율법주의를 구분하지 못하는 눈먼 상태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런 오해들이 그리스도를 통해서 주어지는 구원을 오해하게 하고, 결국유사복음을 만들어 냈습니다. 그 쓴 열매가 무엇입니까? ① 신자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지 않고, 세상에 속하여 세상과 벗하여 살게 된 것이고, ② 하나님도 율법도 모르는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법대로 살지 않는 그리스도인들을 무시하고 경멸하는 형편이 된 것입니다.

에덴동산에서 문제가 된 것은이었고, 예수님 당시에도 주님의 생애와 관련되어 문제가 된 것이이었으며, 청교도 시대의 사람들에게 문제가 된 것도이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인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도이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을 경멸하는 세상 사람들에게, 그리고 무시당하는 그리스도인들에게도을 올바로 이해하는 것은 중요한 문제이고, 이것을 올바로 이해할 때에 죄 용서와 구원이 복음이 될 것입니다.

이번 호 <변화>에서는 율법폐기론, 율법무용론, 또는 율법의 역할을 단지 몽학선생의 역할로 제한하는 것이 왜, 참된 복음에서 벗어난 것인지, , 어떤 면에서 치명적인 오류인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약속하신 참된 믿음은 어떤 것인지 간략하게 살펴보려고 합니다.

죄와 율법에 관한 짧은 이 글이 그리스도를 주로 섬기지만, 개인과 가정과 사회에서 벌어지는 죄와 악의 일로 인해 상처를 입고 슬퍼하는 성도들과 악의 문제로 고민하는 사람들에게 자그마한 빛과 위로가 되기를 바랍니다

[참조1] 본문에 사용된 인용문은, 무디(Dwight L. Moody, Weighed and Wanting, 1898), 할러(W. Haller, Rise of Puritanism,1938), 제이콥(E. Jacob, The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1955), 케빈(Ernest F. Kevan, 율법, 황홀한 은혜: 청교도 신앙의 정수, 2006), 베일리(Kenneth E. ailey,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 2008), 거들스톤(Robert B. Girdlestone, Synonyms of the Old Testament,, 2015) 등과 같은 몇몇 저자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16세기에서 17세기를 살던 영국 국교, 성공회, 칼빈주의자, 청교도들의 글입니다. 그들은 존경받는 영적 지도자였으며, 목사였으며, 학자이자, 의원이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의 프로필을 지면상 자세히 소개하지는 않았습니다.

[참조2] 본 내용은 율법주의와 관련된 35가지 질문을 드리고 그 질문에 대답하는 문답 형식으로 전개될 것입니다. 율법폐기론, 율법무용론, 또는 율법의 역할을 단지 몽학선생의 역할로 제한하는 주장에는 조금씩 다른 부분이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주장들은 모두 크신 입법자의 권위를 무효화하거나 축소시키는 것이기 때문에 일괄적으로율법폐기론이라고 부르고자 합니다. 이번 기회에 율법에 대하여 명확하게 이해하기를 원하는 독자들이 율법에 대하여 올바른 이해와 인식이 이루어지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