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 론
한 번 태어난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죽는다. 성경도 “한 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히 9:27)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렇게 피할 수 없는 죽음의 운명을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서 죽음 이후의 문제는 언제나 궁금한 것이었고, 지금도 여전히 쉽게 풀어지지 않는 숙제로 남아 있다. 그래서 인간의 사후 문제에 관해서는 늘 가설과 추측과 이론이 분분하다. 그러나 역시 가장 분명한 해답은 사람을 창조하시고 인간의 본질을 알고 계시는 하나님의 말씀, 성경에서 찾을 수밖에 없다. 물론 성경도 해석하기 나름이라고 하겠지만, 진지하고 정직한 양심으로 성경을 펼쳐서 살펴보면 확실한 해답이 있다. 이 중대한 주제에 대하여 분명한 해답을 알기 원하면, 우선 이미 가지고 있는 고정 관념이나 자기 상식과 지식을 접어두고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이 문제에 접근해야 할 것이다.
1. 인간의 사후( 死後)에 관한 대표적인 세 가지 견해
(1) 개신교의 견해
사람의 육체는 죽은 후에 티끌로 돌아가 썩는다. 그러나 그 영혼은 죽지 않는 생을 가지며, 의로운 자의 영혼은 하늘에 올라가 빛과 영광 가운데서 하나님의 얼굴을 보며 그들의 육신이 완전히 구속되기를(부활의 날을) 기다린다. 그러나 사악한 자의 영혼은 지옥에 떨어져 고통과 어두움 가운데서 대심판의 날을 기다린다(대한예수교장로회 헌법, 1997년판, 142쪽 참조).
(2) 가톨릭의 견해
“영혼은 죽지 않고 없어지지 않는 영체”이며, 사람이 죽은 후에, 의인의 영혼은 천국에 머물다가 최후의 심판 뒤에는 의인의 육신과 영혼이 함께 천국에 거하게 되며, 대죄를 지은 자가 죽으면 그 영혼이 분리되어 지옥에서 악마와 함께 영원한 벌을 받는다. 그러나 하나님께 귀의하여 죄를 용서받았으나 다소간의 흠이 있는 자의 영혼은 세상을 떠난 후 하나님 앞에 나아가기 전에 연옥의 불에 정화된다(최형락, 천주교 용어사전, 443, 451, 565, 575쪽 참조).
(3) 조건불멸적 견해
불멸은 하나님께만 있는 것이며, 죄인은 하나님을 믿고 예수를 구주로 영접한 경우에만 영육(靈肉)이 함께 불멸한다. 그 불멸은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에, 죽어 있던 자는 부활을 통하여, 산 자는 불멸의 몸으로 변화를 받아 시작된다. 악인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는 것이 아니라 심판의 부활로 일어난 후, 불로 소멸된다. 죽어 없어지는 것이다(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 기본교리 27 참조).
•올바른 선택과 믿음 – 개신교나 가톨릭의 견해는 모두, 사람이 죽은 후에 몸과 영혼이 분리된다는 사상을 전제로 하여 만들어진 이론이며, 죄인의 영혼은 영원한 고통을 받는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 세 가지 견해를 성서적으로 역사적으로 분석하여 성경의 가르침에 합당한 견해를 취해야 한다.
•올바른 믿음의 중요성 – 이 문제는 성경의 중심적인 주제라고 할 수 있는 ‘인간 구원’에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이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면 구원의 원리와 과정을 바르게 깨달을 수 없게 된다. 헛된 믿음을 갖게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미국 여행을 준비하면서, 필요한 준비물이 무엇인지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여 비자를 받아놓지 않았다면, 항공 티켓과 다른 모든 것들을 아무리 철저히 준비해도 여행은 실패로 돌아가듯이, 구원의 상태를 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면 주의 이름을 부르면서도 구원을 상실할 수 있다는 점을 신중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2. 영혼불멸설과 인간의 집단적 무지
(1) 집단적 무지의 사례들
구약에 예고되고 약속된 메시아가 이스라엘 땅에 왔을 때,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을 비롯한 대부분의 백성들은 메시아에 대한 무지로 인하여 예수를 구주로 영접하지 못하였고, 결국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 당시 왜곡된 사회적 환경이 일반인들로 하여금 메시아를 알아볼 수 없도록 만든 것이다.
가톨릭교회가 세계를 지배하던 종교암흑시대 당시, 교회는 일반인들에게 천동설(天動說)을 가르쳤으나, 갈릴레오는 지동설(地動說)을 주장했고 이로 인해 종교재판을 받게 되었다. 그는 강압과 고문에 못 이겨 지동설을 취소했으나, 여전히 지구는 돌고 있었다. 집단이 무지에 빠져 있으면 진실과 진리를 주장하는 소수가 웃음거리와 비방거리가 되는 역사적 사례는 얼마든지 있다.
(2) 영혼불멸 사상의 위력
영혼불멸 사상에 기초한 천당과 지옥의 교리는 원래부터 성경에서 유래된 가르침이 아니라, 민중 속에 유포되어 있던 철학적 추측과 가설을 1513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에서 사람들이 손을 들어 다수결로 결정한 교리이다. 그 후로부터, 영혼불멸설을 부인하는 사람들을 이단시하게 되었으며 이러한 전통과 관습이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랍고도 이상한 일이다. 오늘날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 교리를 믿고 있으며, 혹시 교리적으로는 믿지 않는다 할지라도, 사후에 죽은 자의 영혼이 별개로 존재한다고 믿는 사람들이 절대다수를 이루고 있다. 집단의 무지에서 비롯된 현상이라고 볼 수 있다.
(3) 오스카르 쿨만의 논문에 대한 반응
다음의 이야기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얼마나 철저하고도 깊이 영혼불멸설을 신봉하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 주고 있다. 현대 신학계의 가장 유명한 신약 학자 중 한 사람인 유럽의 신학자 오스카르 쿨만이 1958년에 “영혼의 불멸인가, 죽은 자의 부활인가?”라는 제목의 논문을 발표했다. 성서적으로, 철학적으로 영혼불멸설을 설명하면서, 죽은 자의 영혼이 별개로 존재한다는 영혼불멸설의 가르침은 부활의 신앙과는 공존할 수 없는 비성서적인 관념이라는 결론을 내린 것이다. 그것은 당시 신학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진 논문이었으며, 논문 발표 후, 그를 향한 비난과 공격은 참으로 맹렬한 것이었다(오스카르 쿨만, 전경연 편, 영혼의 불멸과 죽은 자의 부활, 복음주의 신학총서 제5권, 7, 8쪽 참조).
[쿨만을 향한 공격들]
① “그 논문은 생명의 양식의 주림을 채우려고 죽도록 갈구하는 프랑스 사람에게 비록 뱀은 아닐지라도 떡 대신 돌을 주었다.”
② 오스카르 쿨만에게, 당신은 “영적 번민을 불러일으키기를 좋아하는 괴물”이라고 공격하는 사람도 있었다.
③ 어떤 사람은 그 논문에 대하여 “놀라움과 슬픔과 그리고 깊은 번민의 원인”이 되었다고 실토했다.
[쿨만의 반응]
“어떤 비판자도 본문 주석으로 나를 반론하고자 시도하지 않았다. … 나의 글에 대하여 가하는 공격들이 주석학적인 논의에 근거되었더라면 이 공격들은 내게 더 큰 감명을 주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나는 철학적인, 심리학적인, 무엇보다도 감정적인 막연한 이유로 공격받고 있다.”
오늘날 영혼불멸을 믿고 있는 수많은 사람들은 그것을 어떤 확실한 근거를 가진 이론이나 성서적 배경에 의해서 믿는 것이 아니라 정서적으로 혹은 관념적으로 믿고 있기 때문에, 영혼불멸설에 대해서 어떤 반론이 제기되면, 지성적이고 이성적인 판단으로 이해하려고 하는 경향보다는 감성적으로 거부하려는 의도를 먼저 갖는다. 물론 영혼불멸설을 지지하고 인정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는 이론적 근거와 성서적 배경이 있다고 하겠지만, 그들이 제시하는 이론들을 면밀하게 분석해 보면, 그것은 이미 설정된 가설을 정당화하기 위한 설명에 불과한 것임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4) 부활과 공존할 수 없는 영혼불멸설
오스카르 쿨만의 주장대로, ‘영혼불멸 사상’은 기독교 신앙의 근간을 이루고 있는 ‘부활의 신앙’과 동시에 믿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신학자들은 헬라의 철학 사상인 영혼불멸설을 기독교 신앙인 부활과 조화시키기 위하여 상당히 무리한 방법으로 성경 주석을 시도하고 있다. 대략적인 내용은 다음과 같은 것들이다(대한 예수교 장로회 헌법, 143쪽 참조).
① “성도들이 죽으면 몸은 땅으로 가고, 영혼은 분리되어 천국으로 간다.”
② “마지막 날 … 모든 죽은 자들은 전과 같은 몸으로 부활할 것이다. 이 부활체는 질적으로는 전과 다를 것이나, 영혼은 이 육체와 하나가 되어 영원토록 계속될 것이다.”
(필자 註) 이것은 결국, 천당으로 갔던 영혼들이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이 땅으로 내려와 부활한 육체와 결합되어 다시 하늘로 간다는 뜻이다.
③ “불의한 자들의 육체는 그리스도의 힘으로 굴욕 당하기 위하여 부활한다.”
(필자 註) 그렇다면 이때도 역시 지옥에서 불타던 영혼들이 다시 육체로 와서 결합되어야 한다.
이 교리는 아무리 논리적으로 설명을 해도 무엇인가 석연치 않는 측면이 보인다. 하늘에 간 영혼들이 부활한 육체와 결합하기 위하여 이 땅으로 내려온다는 것은 좀처럼 납득하기 어려운 논리이다. 또한 악인들도 최후의 심판을 위하여 부활을 한다면, 역시 육체와 영혼이 결합된 상태에서 심판을 받게 될 것인데, 언제 부활하는 것인지, 부활 후에는 영혼과 육체가 같이 불타는 것인지 그리고 그 불타는 지옥의 위치는 어디인지 추측할 근거가 없는 것이다. 이렇게도 무리하고 막연한 구원관이 기독교를 지배하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랍고도 이상한 일이다.
‘집단의 무지’라고 하는 것이 이처럼 근거 없는 위력을 가지고 사람들을 지배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성경의 근거를 가지고 제시하려고 노력은 하지만 그것은 너무나 불충분하고 무리한 해석이 뒤따를 뿐이다. 오스카르 쿨만의 지적대로, ‘영혼불멸 사상’을 믿으려면 ‘부활의 신앙’을 포기해야 하고, ‘부활의 신앙’을 가지고 있으면 ‘영혼불멸 사상’을 포기해야 한다. 두 가르침이 공존할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러면 영혼불멸 사상은 언제부터 어떤 경로를 거쳐서 교회 안으로 들어와 그렇게 강력한 힘으로 인간의 사상과 구원의 원리를 지배하는 교리로 자리를 잡게 되었는지 그 발단과 과정을 살펴보자.
3. 영혼불멸 사상은 어떻게 시작되었는가?
(1) 선악과에 대한 하나님의 명령과 사탄의 거짓말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창 2:17).
그러나 사탄은 뱀을 매체로 하여 여자에게 이와 같이 말한다. “…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 3:4, 5). 하나님의 말씀과 사탄의 주장, 이 두 상반된 내용 중에 하나는 거짓말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말씀 사단의 주장
“정녕 죽으리라”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2) 사탄의 거짓말이 드러남
선악과를 먹은 사람은 결국 죽었고 결코 죽지 않을 것이라고 하는 사탄의 말은 거짓말임이 드러났다. 사탄은 이 거짓말을 감추기 위하여,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죽지 않았다는 생각을 사람들이 갖도록 하였으며, 사탄 자신이 죽은 자의 영혼 행세를 하며 인간들을 속이고 있는 것이다.
(3) 사탄의 속임수를 유지, 유포시켜 나간 대리자들
사탄의 이러한 속임수를 사람들에게 유포시키며, 사탄과 사람 사이에서 심부름꾼 노릇을 하며 활동하는 사람들이 이 땅에는 언제나 존재하고 있다.
성경(신 18:10, 11)에서는 그러한 사람들을 ① 아들이나 딸을 불 가운데로 지나게 하는 자 ② 복술자 ③ 길흉을 말하는 자 ④ 요술을 하는 자 ⑤ 무당 ⑥ 진언자 ⑦ 신접자 ⑧ 박수 ⑨ 초혼자 등으로 분류하고 있다.
(4) 무당이 죽은 사무엘을 불러 올렸는가?
사무엘상 28장에는 사울 왕이 신접한 여인에게 가서 죽은 사무엘을 불러 달라고 요청하는 장면이 나온다. 신접한 여인은 결국 사무엘을 불러내었고 사울과 사무엘은 대화를 나눈다.
이 신접한 여인에게 불려나온 유령은 사무엘이 아니라 사무엘로 가장한 사탄이었다. 무당이나 신접한 자들을 죽이도록 되어 있는 이스라엘 나라에서 선지자 사무엘이 무당에게 불려나온다는 것은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남자나 여자가 신접하거나 박수가 되거든 반드시 죽일지니 곧 돌로 그를 치라 그 피가 자기에게로 돌아가리라”(레 20:27).
사탄의 정체를 알지 못하는 사람들은 무당의 명령을 듣고 나타난 사무엘을, 죽은 사무엘의 영혼이 모양을 갖추고 나온 것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사탄은 인간 역사를 통해서 이와 같은 방식으로 사람을 미혹하여 마치 죽은 자의 영혼이 살아 있는 것처럼 역사해 온 것이다.
4. 영혼불멸설이 체계저긴 논리로 고착됨
(1) 이집트의 영혼불멸 사상
이와 같은 사탄의 거대한 속임수로 인해 영혼의 불멸 사상은 인간 사회와 인류 역사에 매우 깊이 자리를 잡게 되었으며, 특별히 이집트 사람들은 영혼불멸 사상을 대단히 철저하게 신봉하였다. 영혼이 다시 돌아올 때를 기다리며 무수한 미라를 만들어 놓았다. 그러나 지금까지 단 하나의 미라도 다시 살아난 일이 없다. 사탄에게는 죽은 자를 살리는 능력이 없기 때문이다.
(2) 헬라의 철학 사상
•피타고라스와 소크라테스 – 영혼불멸에 기초하여 윤회 사상을 철학적으로 체계화한 사람은 BC 6세기의 철학자 피타고라스였다. 그 후, BC 5세기 헬라의 철학자 소크라테스는 이집트를 방문하며 영혼불멸 사상을 더욱 깊이 확신하게 되었고 그것을 자신의 신앙으로 만들었다. “소크라테스는 영혼과 육신의 분리를 죽음이라고 보았다”(그리스도교대사전, 대한 기독교 서회, 1118면).
•플라톤이 영혼불멸 사상을 이론으로 정리함 – 죽음 직전에 처한 소크라테스가 보여 준 침착성은 영혼불멸의 신앙과 관련이 있다. 이에 깊은 영향을 받은 그의 수제자 플라톤은 마침내 영혼불멸 사상의 가장 열렬한 주창자가 되었으며, 그의 논집(論集)인 <파에돈>은 영혼불멸 사상의 교과서로 확고부동한 자리를 잡았다.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 – 플라톤의 이원론 사상을 간단하게 요약하여 정리하면 다음과 같은 내용이다. “철학자의 영혼은 사후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갈 것이며, 신들과 더불어 축복 가운데 살 것이다. 그러나 육체를 사랑하던 사람의 영혼은 묘지를 왕래하는 귀신이 되어 이리나 독수리와 같은 신체 속으로 들어갈 것이다. 참다운 철학자만이 죽어서 하늘로 간다.
마지막으로 플라톤은 소크라테스의 말을 빌려서 선한 영혼은 천국에, 악한 영혼은 지옥에 그리고 중간적인 영혼은 연옥에 간다고 결론짓는다”(그리스도교 대사전, 대한 기독교 서회, 1118면).
이러한 철학적 가설에 기초한 영혼불멸 사상을 천주교 용어 사전에서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영혼은 육신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것으로서, 감각의 욕정적인 원리인데, 탐욕은 복부에 있고, 용기와 정기의 원리인 기혼(氣魂)은 마음에 자리 잡고, 생각의 원리인 지혼(知魂)은 머리에 자리 잡고 있다”(최형락, 천주교 용어사전, 451쪽). 참으로 괴이하고 희한한 설명이다.
5. 영혼불멸설이 교회의 교리가 된 경위
•플라톤(Plato, BC 427~BC 347) – 영혼불멸 사상을 체계화시켜 하나의 이론으로 정립해 놓았다.
•필론(Philo, BC 20~AD 47) –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유대인 철학자로서, 몸과 영혼을 분리시킨 플라톤의 헬라 사상을 신플라톤주의 형태로 유대교에 끌어들이는 데 앞장섰다.
•오리게네스(Origen, 약 185~254) – 알렉산드리아 신학교에서 교장을 지낸 3세기 초의 천재적인 교사로서, 그는 하나님이 영원하고 불멸인 것처럼 인간의 영혼도 불멸이라고 했으며, 자신은 영혼불멸을 믿는 진정한 신플라톤주의자라고 자처하였다. 이러한 주장은 디모데전서 6장 16절에 하나님에 대하여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다”고 한 말씀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테르툴리아누스(Tertullian, 약 160~240) – 플라톤과 같은 영혼불멸을 주장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악인의 영혼은 지옥불에서 영원히 탄다고 하는 영원지옥(永遠地獄)을 최초로 주장한 사람이다. 이러한 역사적 사실들을 보면, 악인들은 지옥에서 영원히 불탄다는 이론도 처음부터 성경에 기초한 것이 아니라, 서기 2, 3세기경에 와서 한 개인이 추측하여 만들어 낸 이론에 불과한 것임을 깨닫게 된다.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e, 354~430) – 북아프리카 히포 출신으로 당대의 최고 신학 교부였다. 그의 가르침은 중세 가톨릭 교리의 기초가 되었다. 그는 플라톤의 영혼불멸 사상과 테르툴리아누스의 영원 지옥설을 확증하는 한편, 플라톤의 철학 개념을 빌려 연옥설을 만들어 냈으며, 대교황 그레고리는 서기 528년 그것을 교리로 인정하여 드디어 성경에도 없는 연옥 교리가 생겨난 것이다.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Aquinas, 1225~1274) – 아우구스티누스에 의하여 확인된 영혼불멸 사상과 영원지옥 그리고 연옥의 신앙은 13세기 스콜라철학자요 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에 의하여 중세 가톨릭교의 확고한 교리로 집대성되었다. 이러한 사상이 담겨진 그의 유명한 저서가 바로 <신학대전>이다.
•단테(Dante Alighieri, 1265~1321) – <신곡(神曲)>이라는 작품을 통해서 영혼불멸 사상에 입각한 지옥, 연옥, 천국을 민속신앙으로 소개하는 데 크게 기여했다.
•영혼불멸 사상이 교리화 됨 – 이러한 과정을 거쳐서, 성경에는 전혀 근거가 없고, 단지 이교의 철학 사상으로 전해지던 영혼불멸 신앙이 그리스도교 안에 깊이 뿌리를 내리게 된 것이다. 이러한 역사와 이론을 배경으로 하여 마침내 교황 레오 10세는, 1513년 제5차 라테란 종교회의를 거쳐 다음과 같은 역사적인 교서를 반포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사람들이 이성적인 영혼의 속성에 관하여 그것이 죽음과 더불어 죽게 된다고 감히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우리는 거룩한 공회의 동의로써, 영혼은 … 불멸이라고 한 교황 클레멘트 5세(1305~1314)의 종규에 따라, 지성적인 영혼은 죽게 된다고 주장하는 자들을 정죄하고 배척하며, 이와 같은 그릇된 주장에 집착하는 모든 사람을 멀리할 것과 이단으로 징벌하여야 할 것임을 명하는 바이다”(H. J. Schroeder, Disciplinary Decrees of the General Council, 1937, 483, 487).
•영혼불멸이 개신교 교리로 자리 잡은 경위 – 이렇게 이교적인 영혼불멸 사상이 중세 교회의 공식적인 교리가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종교개혁이 시작되었다(1517). 프랑스의 젊은 가톨릭 신자 칼뱅이 1532년 개신교 신앙으로 개종하였다.
그가 영혼불멸에 반대하여 죽음을 잠과 같은 무의식으로 가르친 재세례파 그리스도인들을 신랄히 비평하고, 개종한 지 2년 만인 1534년, 25세의 나이에, 이단으로 정죄하는 최초의 신학 논문인 <혼수론(魂睡論)>을 집필하였다. 그리고 그 논문이 오늘날 일반 개신교회들의 영혼불멸 신앙을 정립시키는 결정적인 계기를 만들어 놓았다. 참으로 어이없는 역사가 만들어진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사실은, 칼뱅 이전에 먼저 성서에 입각한 종교개혁을 주도했던 영국 옥스포드 대학의 교수 위클리프, 틴들, 독일의 루터 등이 이미 중세 교회의 영혼불멸설 교리가 이교적인 사상임을 공공연히 지적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러한 이교 사상이 개신교를 지배하게 되었다는 점이다.
6. 성경에 나오는 ‘지옥’이란 말은 무슨 뜻인가?
(1) 세 종류의 지옥
성경에는 세 종류의 지옥이 언급되어 있는데, 이것은 사람이 죽으면 세 장소 중 어느 한 곳으로 간다는 말이 아니다. 성경에 쓰여진 ‘지옥’이라는 말은 기독교인들이 일반적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첫째, 구약 성경의 ‘스올’과 신약 성경의 ‘하데스’ – 구약의 ‘스올’과 신약의 ‘하데스’는 동일한 곳이다(시 16:10; 창 42:38; 행 2:27 참조). 이곳은 선한 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모든 사람이 죽으면 가게 되는 장소인 ‘무덤’을 가리키며 때로는 ‘음부’(陰府, 욥기 7:9 등)라고도 한다.
•둘째, ‘타르타로스’ – 이 말은 신약 성경 베드로후서 2장 4절에 단 한 번 사용되었는데, 한국말 성경에는 “지옥”으로 번역되었다. “하나님이 범죄한 천사들을 … 지옥에 던져” 넣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범죄한 천사들[사탄]이 지금 지옥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다. 약간의 성경 지식만 있으면 그 범죄한 천사들이 지금 이 세상에 있다는 사실은, 누구나 다 인정하고 있다. ‘타르타로스’는 “어두운 구덩이”(a dark abyss)를 뜻하는데 유다서 1장 6절에서도 범죄한 천사들을 “흑암”에 가두셨다고 하였다. ‘타르타로스’는 범죄한 천사들이 쫓겨난 곳, 바로 죄로 어두워진 ‘이 세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셋째, ‘게헨나’ – 신약 성경에서 ‘지옥’이라는 낱말로 가장 많이 번역된 ‘게헨나’라고 하는 말은 12회 나타난다. 다음의 성경절을 보자.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 …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막 9:43, 48).
(2) ‘게헨나’가 왜 지옥이 되었는가?
•‘게헨나’의 의미 – ‘지옥’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게헨나’이다. 히브리어로 ‘골짜기’를 뜻하는 ‘게’와 사람 이름인 ‘힌놈’이 합성되어 ‘게힌놈’이라고 쓰고 있으며, 의미는 “힌놈의 골짜기”라는 뜻이다. 많은 사람들이 지하 어느 곳의 불타는 지옥으로 상상하고 있는 이 ‘게헨나’[힌놈의 골짜기]는 예루살렘 남쪽 비탈에 위치하고 있는 한 계곡의 이름이며 현재는 아래의 사진에서 보는 바와 같이 거의 평지와 같은 지역이다. 그러면 왜 이곳이 지옥을 상징하는 곳이 되었는가?
•‘힌놈의 골짜기’가 지옥으로 묘사된 이유
① 이스라엘의 배도와 타락이 극도에 달했을 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힌놈의 아들의 골짜기’에서 이방신에게 분향하고 몰렉신에게 자식들을 불살라 제사를 드리며 온갖 추악한 일을 자행하였다(대하 28:1~3; 33:1~6; 왕하 23:10).
② 오랜 세월이 지난 후에 그 골짜기는 처형당한 죄수들의 시체와 죽은 짐승들의 사체를 버리고 온갖 오물을 버리는 장소가 되어 그 쓰레기를 불태우는 연기가 밤낮 타오르고 있었으며, 구더기와 온갖 벌레들이 서식하고 악취가 풍기는 불쾌한 곳이 되었다.
③ 이러한 배경 때문에 “힌놈의 골짜기” 곧 ‘게헨나’는 장차 그리스도를 거절한 악인들이 최후의 형벌을 받아 유황불로 멸망당할 곳을 상징하는 장소가 되었다. 그래서 지옥을 묘사할 때 불이 꺼지지 않고 구더기가 있다는 표현이 나오게 된 것이다.
•성경이 말하는 지옥 – 성경에서 지옥이라고 하는 곳은 지하 어디에선가 영원히 타고 있는 불 못이 아니라, 이 지상에서 악인들이 멸망당하는 상태를 말하는 것이다.
“저희가 지면에 널리 퍼져 성도들의 진과 사랑하시는 성을 두르매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저희를 소멸하고 또 저희를 미혹하는 마귀가 불과 유황 못에 던지우니 거기는 그 짐승과 거짓 선지자도 있어 세세토록 밤낮 괴로움을 받으리라”(계 20:9, 10).
악인들을 멸망시키는 불은 분명히 지면에 떨어지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진실한 그리스도인이라면, 이미 성경과 원어의 의미를 살펴본 바와 같이, 지옥이 땅속에서 영원히 타고 있는 불 못이 아님을 인식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지옥’처럼 쓰여지고 있는 성경의 세 가지 단어들의 의미는 아래의 도표와 같이 요약될 수 있다.
스올(신약, 하데스) – 무덤, 타르타루스(신약) – 이 세상, 게헨나(신약) – 지옥의 상징 용어
7. 악인들이 불에 영원히 탄다는 말은 무슨 뜻인가?
“만일 네 손이 너를 범죄하게 하거든 찍어 버리라 불구자로 영생에 들어가는 것이 두 손을 가지고 지옥 꺼지지 않는 불에 들어가는 것보다 나으니라”(막 9:43).
(1) “영원히 탄다”는 낱말의 의미
성경절 마 18:8 – “영원한 불”, 마 25:41 – “영영한 불”, 계 20:10 – “세세토록”
•이러한 낱말들의 다양한 의미와 사용된 경우 – 모두 헬라어 ‘아이온’에서 유래한 ‘아이오니오스’(αιωνιος)인데 아이온의 본래 의미는 “시대”라는 뜻이다.
① 이 단어는 “영원”이라는 뜻이 있으며, 함축적으로 사용될 경우에는 “세상”이라는 말로도 번역된다. 유대인들의 개념 속에는 “메시아 시대”라는 의미도 있어, “영원”이라고 번역된 이 ‘아이온’이라는 말은 적용하는 대상과 경우에 따라서 다양한 의미로 사용된다.
② 적용하는 대상에 따른 의미들
•지옥에 사용될 경우 – 지옥을 묘사할 때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이 타오르고 있는 곳’이라고 하는 것은, 그 불타는 시간의 영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불타서 멸망당한 결과가 영원함을 뜻하는 것이다.
•소돔과 고모라의 영원한 불 –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도시들도 저희와 같은 모양으로 간음을 행하며 다른 색을 따라가다가 영원한 불의 형벌을 받음으로 거울이 되었느니라”(유 1:7). 이 성경절에서 말하는 불이 문자적으로 ‘영원한 불’이라면 옛날 소돔과 고모라가 있던 곳에 지금도 꺼지지 않고 계속 불이 타오르고 있어야 마땅하다. 장차 악인을 멸망시킬 ‘꺼지지 않는 영원한 불’이라고 하는 것은, 불타는 시간의 영원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끌 수 없는 불, 불타서 멸망당한 결과의 영원성을 묘사하는 표현이다.
•악인들이 받을 영원한 형벌의 의미 –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마 25:46). 죄의 삯은 사망이기 때문에 악인들에 대한 영원한 벌(징벌)은 ‘사망’이다. 영원한 형벌이란 사망의 결과가 영원함을 말한다.
악인들이 영원한 세월을 고통 가운데 존재한다고 하는 것은 사랑이신 하나님의 품성에 비추어 볼 때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악인이 불과 100년도 못되는 생애 동안 아무리 많은 죄를 지었다 해도 그것에 대한 형벌로 영원한 세월 동안 고통을 받게 한다는 것은 공의로운 심판의 결과라고 할 수 없다. 말라기 4장 1절에 보면 “그들을 살라 그 뿌리와 가지를 남기지 아니할 것”이라 하였고, 시편 37편 20절에는 “악인은 멸망하고 여호와의 원수는 어린양의 기름같이 타서 연기 되어 없어지리로다”라고 하였으며, 시편 37편 10절에는 “잠시 후에 악인이 없어지리니 네가 그곳을 자세히 살필지라도 없으리로다”라고 하였다.
8. 영원지옥설이 만들어 놓은 상처
(1) 하나님의 속성에 대한 오해
악인들이 영원히 불타는 지옥, 그것이 실제이고, 그것을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이라면 문제는 심각하다. 하나님께서는 아무도 멸망받기를 원치 않으신다. 누구나 다 구원받기를 원하신다. 다음의 성경절들을 살펴보자. “주 여호와의 말씀에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나는 악인의 죽는 것을 기뻐하지 아니하고 악인이 그 길에서 돌이켜 떠나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이스라엘 족속아 돌이키고 돌이키라 너희 악한 길에서 떠나라 어찌 죽고자 하느냐”(겔 33:11).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겔 18:32).
심판과 멸망이란, 끝까지 하나님을 거절한 죄인이 죄와 한 덩어리가 되어 죄와 분리되지 않았기 때문에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진노에 의해 죄와 함께 멸망당하는 것이다. 죄인이 소멸되지 않은 채 영원히 불타고 있다면, 이 우주 안에 죄가 여전히 남아 있게 되어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이 실패한 셈이 된다. 하나님은 죄와 공존하실 수 없기 때문에 이 우주 안에서 죄를 멸하시는 것이다. 제한된 시간의 인생살이에서 지은 죗값으로 영원한 불에 타도록 버려두시는 것은 공의로우신 하나님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이 영원지옥설 때문에 하나님을 오해하고 있다.
(2) 한 네티즌의 하나님 원망
“하나님은 너무 잔인한 분이시네요. 자기를 안 믿었다고, 태워 죽일 불을 준비해 놓으시고 … 암흑도 준비해 두시고 … 정말 사람이 불쌍하네요. 사람으로 태어난 것이 정말 불쌍하네요. … 믿는다고 해도 행복하지 않네요.
하나님 믿으면 정말 행복해지나요? 지옥 안 가려고 억지로 믿는 것 아닌가요? 진짜 목적은 지옥이 무서워서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소굴에 들어가기 싫어서 믿는 걸 거예요.
만약 지옥이 없다면, 아니면 지옥이 그렇게 고통스러운 곳이 아니고, 그저 하나님만 없는 곳이라면, 지금 믿는 기독교인들 다 자기 뜻대로 살 걸요. 난 아무리 하나님 믿으려고 해도 안 되는데, 기독교인들 정말 신기하네요. 하나님 믿으면 행복해지나요?
난 아니던데요. 보이지도 않고, 내겐 도움도 안 되는데요. 지옥이 진짜 뜨거운 불이 아니라면 하나님은 잔인한 분이 아니라는 걸 알고 더 믿겠는데요. 뜨거운 불이라니까 왠지 반항심이 생기네요. 사람을 마치, 고삐를 잡고 자기 마음대로 하려고 만들어 놓으셨나 하는 생각이 들어요. 뜨거운 불을 하나님이 만들어 놓으셨다면, 정말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고, 사람은 그저 하나님의 소유로 이용당하고 버림당하고 하는 거지요. 정말 나쁘지요.”
죄인이 지옥불에서 영원히 불타며 고통당한다는 생각은 사탄이 만들어 낸 것이다. 하나님을 오해하게 만들어 오히려 사랑의 하나님에 대한 올바르고 건전한 신앙을 갖지 못하도록 방해하는 데 결정적인 기여를 한 작품이기도 하다.
(3) 영국 성공회의 영원지옥설 포기
대표적인 기독교 교파 중의 하나인 영국 성공회는 오랜 세월 동안 고수해 오던 영원지옥설 교리를 포기하였다.
“지옥을 ‘벗어날 수 없는 영원한 고통과 징벌의 불구덩이’로 묘사한 기독교의 전통적 견해는 잘못된 것이며 지옥은 다만 ‘신이 함께하지 않는 총체적 부정과 무(無)의 상태’이다. … ‘가학적으로 표현된’ 전통적 지옥관이 많은 사람들에게 지워지지 않는 심리적 상흔을 남겼으며, 신을 학대를 즐기는 괴물로 만들었다”(동아일보, 1996. 1. 13.).
빌리 그레이엄 목사도 1993년 11월 15일 자 <타임(TIME)>지와의 인터뷰에서 불타는 영원지옥설을 부정한 바 있다.
(4) 순교자 틴들의 말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 출신의 탁월한 언어학자요, 영국을 대표하는 종교개혁자로서 헬라어 신약 성경을 영어로 번역한 후에 순교당한 틴들(W. Tyndale, 1490~1536)은 영원지옥설을 믿고 있는 기독교인들을 향하여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다.
“그대들은 몸을 떠난 영혼들을 천국이나 지옥, 연옥에 둠으로써 그리스도와 바울이 입증한 부활의 논증을 파괴하고 있는 것이다. … 참된 믿음은 부활에 근거하고 있으며 그것을 매시간 바라보도록 깨우치고 있다. 교황은 그리스도의 영적인 교리와 철학자들의 인간적인 교리를 함께 결합시켜 놓았으나, 이것들은 서로 어긋나기 때문에 일치할 수가 없고 그리스도인 한 사람 안에서 성령과 육신이 더 이상 역사할 수가 없다. … 내게 다시 말해 보라. 만약 영혼들이 하늘에 있다면 그들이 왜 천사들의 경우와 같지 못한가? 그런 뒤에 새삼스럽게 부활이 있어야 할 까닭이 무엇인가?”(윌리암 틴들, 토마스 모어경의 대화에 보내는 답변, 제4권, 2장, 180, 181)
(5) “소천(召天)이라니“
대부분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영혼불멸설과 영원지옥설을 가르치고 있지만, 성경 말씀에 기초하여 부활을 통한 영생의 신앙을 견지하는 용기 있고 양심적인 목사들도 있다. 다음의 내용은 기독일보(2011. 4. 25.) 칼럼에 H 목사가 기고한 글이다.
“OOO 장로님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소천하셨다.”는 말도 안 되는 부고 광고를 보고 친구 장로님 장례식에 참석했다가 크게 놀라고 말았다. “천국 환송 축하예배”란 타이틀이 적힌 순서지도 그렇고 “고인은 지금 천국에 들어갔다.”느니 “하나님 품에 안겼다.”느니, 게다가 아멘 소리까지 유도해 내는 K 목사의 황당한 설교가 너무 기가 막혔다. “이럴 수가! 저런 사람이 어떻게 성직자가 되었단 말인가?” 참으로 한심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식이 끝나기가 무섭게 친구 장로님들에게 K 목사의 신앙관을 크게 걱정했더니, “저희도 동감이지만, 그거 목사님께서 좀 도와주셨으면 ….” 하는 바람에 떠넘긴 공을 얼떨결에 받아 버리고 말았다. 조문객들을 위해 마련된 어느 식당의 구석진 테이블로 장로님들이 K 목사를 안내해 주었고, 다칠세라 권면은 아주 조심스러웠다. “부활도 없는 소천이 웬 말이며, 재림 예수 공중 접견도 없이 무슨 천당인가요, ‘소천’을 함부로 거론하는 건 비성서적인 것을 ….” 했더니 금방 얼굴색이 달라지며 발끈한다. “얼마 전 이 지역에서 내로라 하는 L 목사님도 그렇게 설교하셨는데, 뭐가 잘못됐습니까? 저도 보수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됐거든요 ….”
정곡을 얻어맞은 수치심일까, 자존심에 대한 반발심일까, 선배 목사에 대한 오만불손한 태도를 가까이서 지켜보던 장로님들의 얼굴에는 실망스런 기색들이 역력했다. 그리고 K 목사가 종적을 감춘 것은 얼마 후였다.
천당? 마다할 사람 없다. 문제는 교인이 죽으면 바로 천당으로 직행한다는 식으로 착각하는 잘못된 믿음이고, 그걸 진짜처럼 계속 믿게 해 주는 목사들의 무지이다.
음부에 떨어진 부자와 아브라함의 품에 안긴 거지 나사로의 비유는, 돈을 좋아하는 바리새인들의 몰인정, 비인간성을 질책하시고자, 단순히 애굽의 우화를 인용하셨다는 학설이 아니더라도, 앞줄의 문맥을 보면 해석상의 오해였음을 알 수 있는 일이다. 또 예수께서 “오늘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는 강도와의 약속은 “오늘”이란 명사의 위치 선택 잘못으로 생긴 원문 번역상의 오류였다는 사실 말고도,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못했노라” 하신 다음 장의 말씀으로 증명이 됐는데도, 마치 강도가 낙원으로 예수와 함께 직행했다는 식의 엉터리 설교를 계속해 대고 있으니, 이거야말로 목사를 그만 두었어야 할 자격 문제가 아닌가 싶다.
창세 이래로, 예언자 에녹과 엘리야 선지자 두 사람 말고는 아무도 천국에 들어간 사람이 없다. 인류의 시조 아담과 그 후손들 전부, 그 속에 아브라함은 물론, 심지어 예수의 육신의 부모님까지도 …. 그들은 지금 예수의 재림만을 학수고대하며 잠을 자고 있는 상태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다. 한데 누구 맘대로 “소천”인가? 하기야 이렇게 오역된 성경 구절로 설교하고, 믿게 해 주고, 그게 자그마치 백년인데 이제 와서 잘못을 시인하고 돌아설 용기 있는 목사가 몇이나 되겠는가?
(6) 기독교 신앙의 본질은 부활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 26). 우리가 진심으로 부활을 믿고 주님을 섬긴다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마련하신 구원의 계획을 혼란스럽게 하고 하나님의 속성을 왜곡시키는 ‘영혼불멸설’과 ‘영원지옥설’을 미련 없이 포기해야 할 것이다. 부활의 신앙을 기초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을 올바르게 인식하게 될 때에 우리의 건전한 신앙이 성숙되어 가는 것이다.
물론, 오랜 세월 동안 영혼불멸과 영원지옥설을 굳게 믿고 있던 사람들이 한두 시간의 강의를 통해서 그 사상을 정리하고 그러한 관념들을 씻어 버리는 일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지성적으로는 납득이 가지만 정서적으로는 쉽게 정리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문제이다. 이 문제가 성서적으로 바르게 해결되지 않으면, 성서적 구원관을 제대로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성서적 구원관을 이해하지 못하면, 신앙의 성숙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다음 과에서는, 마치 영혼이 별개로 존재하는 것 같은 느낌을 주는 성경절들을 주의 깊이 살피면서 올바른 이해를 도모하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