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께서 말씀하신 ‘성전’의 영적인 의미
[참고사항] 기독교계에 가장 탁월한 학자 중의 한 사람인 Bailey 박사는 성전 개념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제1성전–솔로몬 성전, 제2성전–스룹바벨 성전(헤롯성전), 영적 제3성전–예수를 통해, 그 위에 세워진 하나님 나라 : 그리스도인.
(Bailey,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 321-331).
예수는 성전에서 돈 바꾸는 자들과 비둘기 파는 자들을 두 차례 내어 쫓으셨습니다. 그뿐 아니라, 예수는 “아무나 기구를 가지고 성전 안으로 지나다님을 허락지 않으셨습니다”(막 11:16). 여기에서 “기구”는 ‘그릇’을 의미합니다. 장사하는 사람들을 내쫓았을 뿐 아니라, 성전 봉사에 필요한 것들조차 운반하지 못하도록 제지한 것입니다.
자신이 마치 메시아인 양 사람들 앞에서 나귀를 타고 들어오는 것이나, 거룩한 예식을 위한 공적 장소인 성전에서 소란을 일으키고, 성전이 무너질 것처럼 암시하는 예수님의 행동은 유대 종교인들 입장에서 볼 때, 도무지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백성의 두목들이 그를 죽이려고”한 것은 놀랄 일이 아니었습니다(눅 19:47). 예수의 신변은 위험해졌고, 결국, 그 주 금요일에 십자가에 달리시게 되었습니다. 왜 예수님은 그 생명이 위험해질 것을 알면서도 그 일을 행하셨을까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소굴을 만드는도다”(마 21:12~13).
예수께서 인용하신 이사야의 말씀을 보면, 내가 이방인일지라도 “그들을 성산으로 인도하여 … 그들을 기쁘게 할 것이며 … 그들의 번제와 희생을 … 기꺼이 받”으실 것이라고, 그래서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56:7). 이 말씀은 하나님이 계획하신 구속의 계획을 나타내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성전으로 인도함을 받는 “이방인”은 어떤 사람들이었습니까? 이 말씀은 매우 중요한 예언을 담고 있습니다.
“또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섬기며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며 그의 종이 되며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이방인마다”(사 56:6).
이사야서는 앞으로 성전에서는 유대인–이방인의 차별이 없어질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만나는 곳인 성전은, 준비된 자는 누구나 들어올 수 있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될 것을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유대인–이방인의 구분이 더 이상 유지되지 않고, 하나님을 만나기 위한 ‘본질적인 준비’를 갖추면 누구든지 하나님 앞에 나아오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그 준비가 여섯 가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지면관계상 그 여섯 가지(여호와와 연합, 그를 섬김, 그 이름을 사랑, 그의 종이 됨, 안식일을 지킴, 언약을 굳게 지킴)를 일일이 다 설명드리지는 않겠습니다. 이 말씀에서 주목해야 할 것은 “여호와의 이름을 사랑”하는 자는 “안식일을 지켜 더럽히지 아니하며” 그것이 “나의 언약을 굳게 지키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사랑–안식일–언약’이 ‘여호와와 연합한 자’(cf. 창 29:34)의 모습이라는 것입니다. 유대인이냐 이방인이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여호와와 연합”하여 ‘그를 사랑하고–그의 계명에 따라 안식일을 지키고–언약의 믿음을 굳게 지키는 자’는 누구든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간주 될 것이며, 그들은 하나님과 연합하였으니, 하나님의 특별한 사랑을 받게 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사 56:7)이라는 이사야의 예언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죽으신 후(사 53장), 복음이 온 세상에 전파될 것이며, 그래서 이방인일지라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될 것이며 그들이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 것이며(사 56장), 그리고 종국엔 복음 사업이 완성되고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구원받은 “만민”이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매 안식일에” 예배하게 될 것(사 66:22, 23)을 예고하는 말씀입니다. “내 집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불리게 될 것”(사 56:7)이라는 예언이 기록된 동일한 단락에서 하나님께서는 그 일에 방해가 될 ‘종교 지도자’들을 이렇게 예언해 놓으셨습니다.
“이스라엘의 파수꾼들은 맹인이요 다 무지하며 벙어리 개들이라 짖지 못하며 다 꿈꾸는 자들이요 누워 있는 자들이요 잠자기를 좋아하는 자들이니 이 개들은 탐욕이 심하여 족한 줄을 알지 못하는 자들이요 그들은 몰지각한 목자들이라 다 제 길로 돌아가며 사람마다 자기 이익만 추구하며 ‘오라 내가 포도주를 가져오리라 … 내일도 …크게 넘치리라’ 하느니라” (사 56:10~12).
이 모습은 정확하게 예수님 당시의 유대 종교인들의 모습이고, 예수께서 재림하시기 직전에 있는 오늘날 하나님을 믿노라고 하는 종교 지도자들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예수님은 이사야의 이 말씀을 인용하여, 실제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을 향하여 “화 있을지저”라고 거듭 경고하시면서 “맹인 된 인도자여”, “눈 먼 바리새인이여”(마 23:23~29)라고 책망하셨습니다. 그들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 (자신들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고 있었습니다(눅 11:52; cf. 마 23:13). 예수께서 그들에게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눅 20:47b)고 말씀하셨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사 56:7)라고 말씀하시고, 종교인들을 향하여 “더욱 엄중한 심판을 받으리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은 어떤 분이셨습니까?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하나님 나라를, 즉 유대인–이방인 구분이 없는 ‘영적인 제3성전’을 세우시기 위한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셨습니다(사 28:16). 실제로 예수님이 성전을 정결하게 하실 때에 성전 관리인들이 와서 “무슨 권세로 이 일을 하느냐”라고 따졌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두 비유를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악한 포도원 농부의 비유’(눅 20:9~16)이고 다른 하나는 ‘모퉁이 돌의 비유’(눅 20:17~18)였습니다. 이 두 비유를 통해, 예수님은 이사야가 예언한 “시험한 돌에벤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사 28:16), 바로 포도원 주인이 보낸 아들벤인 자신임을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께서 말씀하신 “내 집은” 유대인–이방인 구분이 없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이 될 것임이라”(사 56:7)라는 말씀에는 특별한 예언이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내 백성의 길에서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라”(사 57:14).
하나님 앞으로 나아오는 길에 거치는 것을 두는 것은 이사야 56장~57장에서는 ‘맹인 된 종교 지도자’와 같은 ‘사람’이었습니다. 예수께서 성전을 정결하게 하신 것이 주인이신 분이 직접 “거치는 것을 제하여 버리”는 행위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성전 정결 사건’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앞으로 예루살렘과 성전에 일어날 일들에 대한 일종의 ‘행위 예언’이기도 했습니다. 예수께서 ‘모퉁이 돌의 비유’를 ‘심판에 관한 말씀’으로 적용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돌이 사람 위에 떨어지면 그를 가루로 만들어 흩으리라 하시니라”(눅 20:18; cf. 사 28:18).
‘모퉁이 돌의 비유’(눅 20:17~18; 사 28:16)는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눅 19:46; 마 21:12~13; 사 56:7)라는 말씀에 이어서 하신 말씀이었는데, 그 비유는 이사야에게 하셨던 이스라엘의 멸망에 대한 예언의 반복이었습니다. 즉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영적 제3성전’은 ‘모퉁이 돌’이신 예수 그리스도 위에 세워질 것이고, 그의 백성이 그 영적 제3성전으로 나아오는 길에 “거치는 것”(사 57:13)이 되어버린 유대인들은 슬프게도 ‘제2성전’의 파괴와 함께 가루가 되어 흩어지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습니다(눅 20:18).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는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나아오는 길에 ‘거치는 돌’이었기 때문에 망한 것이었습니다. 남방 유다가 망할 때에 제1성전(솔로몬 성전)도 파괴되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스룹바벨을 통해서 기적적인 방법으로 폐허가 된 제1성전을 재건해 주셨습니다. 제2성전 시대가 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새로운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다시 배도하여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며 이방인들에게 대하여 배타적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그들이 기다리던 메시아가 왔음에도 불구하고 거짓 확신에 빠져 그를 배척하였습니다. 이에 예수께서는 포도원의 비유를 통해 이스라엘이 망할 것을 예고하셨지만, 유대인들은 “그렇게 되지 말아지이다”(눅 20:16) 라고 말하면서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결국 유다는 로마에 의해서 완전히 망하고 제2성전도 파괴되고 말았습니다.
이러한 사실은 이미 600여 년 전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예언되어 있었습니다. “시험한 돌 곧 귀하고 견고한 기촛돌”(사 28:16)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새로운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고, 예수께서는 그들의 멸망이 다가오고 있다고 경고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장래 일을 알지 못하는 맹인과 벙어리 같은 자들이 되었고 자기 이익에만 눈이 어두어 “만민이 기도하는 집”인 성전을 마침내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습니다.(사 56:11~13; 마 21:13; 막 11:17; 눅 19:46). 더 나아가 하나님 나라, 즉 ‘영적 제3성전’의 “기초를 삼”겠다고 예언하신 “시험한 돌이요 귀하고 견고한 기초 돌”이신 하나님의 아들이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 라고 하셨음에도 불구하고(사 28:14~18) 그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은 망했습니다. 예수께서 ‘두 집 짓는 자의 비유’를 통해 멸망을 이렇게 예언했습니다.
“내 말을…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주추 없이 흙 위에 집 지은 사람과 같으니 탁류가 부딪치매 집이 곧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눅 6:46, 49).
유대인들은 ‘성전을’ 무너지지 않는 집의 기초로 보았고, 쿰란 공동체는 ‘의인 15명을’ 집의 기초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동일한 이사야의 말씀들을 배경으로 “내게 나아와 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마다 … 집을 짓되 깊이 파고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사람과 같으니”(눅 6:47, 48)라고 바꾸어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나라’는 ‘제2성전’이나 쿰란의 ‘의인들’을 통해서가 아니라, ‘모퉁이 돌’에벤, 즉 하나님의 ‘아들’벤인 ‘나를 통해서’ 이뤄질 것이며, “주추아들 없이” 제2성전은 무너지고 ‘영적 제3성전’이 그것을 대신할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이러한 배경에서 볼 때에, 예수께서 말씀하신 “만민이 기도하는 집”(마 21:13; 막 11:17; 눅 19:46)의 의미는 ‘초청’이며 동시에 ‘멸망의 예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제2성전이 무너진 다음에 세워지는, 하나님이 그의 백성과 함께 하는 “집”성전은 어떤 집입니까?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사 56:7)라는 예언과 하나의 단락인 이사야 57장에는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내가 높고 거룩한 곳에 있으며 또한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와 함께 있나니 이는 겸손한 자의 영을 소생시키켜 통회하는 자의 마음을 소생시키려 함이라”(사 57:15).
하나님은 그분이 거하실 곳을 발견하셨습니다. 그곳은 “통회하고 마음이 겸손한 자”의 마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그 ‘사람’이 곧 ‘영적 제3성전’이 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처음으로 성전을 정결하신 후, 유대인들이 ‘이런 일을 행하니 표적을 보이라’고 했을 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 동안에 일으키리라”(요 2:19). 예수님은 “성전 된 자기 육체”(요 2:21)를 가리켜 “성전”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기초는 눈에 보이는 ‘성전’이나 ‘의인’이 아니라, 예수님 자신이 ‘새로운 성전’이며 동시에 그 ‘기초 돌’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 바울이 말한 ‘영적 제3성전’
무너지지 않는 ‘집’의 핵심은 ‘건물’이나 ‘의인들’이 아니라 예수님이었습니다. ‘사람’이 ‘건물’을 대신한다는 사상에 대하여는 바울도 언급한 바 있습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3:16; 6:19).
이 말씀은 이사야가 예언한 대로,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와 ‘연합한’(사 56:6) ‘사람들이’ ‘모퉁이 돌’이며 ‘영적 제3성전’의 “터”기초이신 “예수 그리스도”(고전 3:11) 위에 세워진 “성전”이라는 말씀입니다.
앗수르가 이스라엘을 멸망시켰고, 바벨론이 남방 유다를 멸망시켰고, 로마가 다시 회복된 그 성전을 무너뜨리고 유대 나라를 멸망시켰습니다. 또한, 장래에 ‘일곱 재앙’으로 하나님이 세우지 않은 모든 것들이 다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무엇 때문에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이 멸망하고 ‘성전’이 무너지게 되었습니까? “사람의 미혹”을 받아 말씀을 잘 아는 것처럼 보이는 ‘사람의 교훈’(마 24:4; 15:9; 막 7:7)을 따랐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때인 오늘날에도 ‘땅에 거하는 자들’ ‘전부를’ ‘미혹’하여 거짓 경배로 사람들을 망하는 일이 있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계 13:14 이하).
예수님 당시 사람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다시 와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는 “엘리야가 이미 왔으되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임의로 대우하였도다”(마 17:12; 막 9: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야도 왔고, 메시아도 왔지만, 유대인들은 여전히 ‘장래에’ 엘리야가 오고 메시아가 나타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미혹을 당하여 맹인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이러한 안타까운 일들이 오늘날 ‘유대인’과 ‘교회’를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는 ‘세대주의 종말론’에 오염된 허다한 교회에서도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에 제3성전이 건축되고, 제사가 회복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거짓 예언에, 사람에게 미혹 당한 것입니다.
– 이 문제는 <변화> 44호에서 상세히 다루었습니다. 연락하시면 보내드립니다. 010-3848-1116.
이사야의 건축자의 비유에서 히브리어 본문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사 28:14)라는 말씀으로 시작합니다. 성도들이 예수님을 가르쳐 준 인도자나 지도자를 존경하는 일은 좋은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여호와의 말씀”을 들으라고 명령하십니다. 예루살렘 성전의 ‘언약궤’ 안에 ‘언약의 돌비’가 없는 제2성전이 무너진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이 없는 집은 무너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백성을 ‘다스리는’ ‘파수꾼’된 지도자들을 ‘오만한 자’(사 28:14)라고 하셨습니다. 무엇이 오만한 것입니까? 바로 앞 절 말씀을 보면, “여기서도 조금, 저기서도 조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28:13). 그 바로 앞 절에서는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으므로”(사 28:1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을 온전히 듣지 않는 것, 순종하지 않는 것이 오만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은 그들의 생명을 사람에게 의존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는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루기로 하고, 모퉁이 돌이신 예수님 위에 세워진 ‘영적 제3성전’이 궁극적으로 완성되고 절정에 이른 모습인 ‘새 예루살렘 성’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