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장례식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기독교회의 어떤 목사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은퇴한 목회자였다. 그는 연거푸 소주병을 따고 있었다. 그의 말은 나에게는 귀가 의심스러운 것이었다. “은퇴했으니 이제 마음껏 마셔도 돼.” 목회하면서도 술을 마셨다는 뜻이고 이제 은퇴했으니 마음껏 취하며 살겠다는 의미였다. 정말 그래도 되는 것일까? 

미국의 어느 교회의 순서지에는 이런 설교 제목이 있었다고 한다. “하나님과 한잔하고 싶다.” 정신이 말짱해도 올바로 신앙하기 어려운 시대에 알코올에 취해 어떻게 그리스도인으로 살 수 있다는 말일까? 무엇보다도 그것이 성서적인 그리스도인의 삶일까?

술을 좋아하는 성직자가 목회하는 교회는 발걸음을 끊어야 한다. 그것이 성서적이 아닐 뿐만 아니라 술로 인하여 파괴된 개인과 가정이 얼마나 많은지를 생각한다면 종교지도자들과 그리스도인이 그런 삶을 살 수는 없는 것이다. 하나님은 성경 말씀을 통하여 육체적, 정신적, 영적인 건강을 유지하도록 하셨고 방법까지 말씀하셨다. 자녀의 건강에 관심이 없는 부모는 부모의 자격이 없듯이 사람의 건강에 관심이 없는 신은 진짜 신이 아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먹고 마시는 데에 관심이 있으시다. 그분이 하늘 아버지이시기 때문이다. 

 

성경은 술에 대하여 명확히 경고한다

재앙이 뉘게 있느뇨 근심이 뉘게 있느뇨 분쟁이 뉘게 있느뇨 원망이 뉘게 있느뇨 까닭 없는 창상이 뉘게 있느뇨 붉은 눈이 뉘게 있느뇨 술에 잠긴 자에게 있고 혼합한 술을 구하러 다니는 자에게 있느니라 포도주는 붉고 잔에서 번쩍이며 내려가나니 너는 그것을 보지도 말지어다 이것이 마침내 독사같이 쏠 것이며 또 네 눈에는 괴이한 것이 보일 것이요 네 마음은 망령된 것을 발할 것이며 너는 바다 가운데 누운 자 같을 것이요 돛대 위에 누운 자 같을 것이며 네가 스스로 말하기를 사람이 나를 때려도 나는 아프지 아니하고 나를 상하게 하여도 내게 감각이 없도다 내가 언제나 깰까 다시 술을 찾겠다 하리라”(잠언 23:29-35). 이 성경 말씀은 포도주를 보지도 말라고 하지 않은가! 거기에 무슨 인간적인 해석이 필요할 것인가?

성경에는 술에 취하여 저질러진 많은 죄를 기록하고 있다. 롯의 딸들은 아버지를 술에 취하게 하여 근친상간을 저질렀다(창세기 19:32-35). 바벨론이 멸망하는 마지막 날 밤에 벨사살 왕은 귀인들과 여자들과 함께 술잔치를 벌였다(다니엘서 5).

하나님은 성전에 들어갈 제사장은 독주와 포도주를 금하도록 말씀하셨다. “여호와께서 아론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나 네 자손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에는 포도주와 독주를 마시지 말아서 너희 사망을 면하라 이는 너희 대대로 영영한 규례라”(레위기 10:8-9). 제사장은 오늘날의 목회자를 가리키니 포도주와 독주를 성직자가 금하는 것은 성경의 가르침이다.

     

장로와 집사, 모든 그리스도인도 술을 금해야 한다

금주는 성직자들에게만 해당할까? 그렇지 않다. 성경은 분명히 장로도 알코올을 삼가야 함을 말하고 있다. “감독(장로)은 하나님의 청지기로서 책망할 것이 없고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 급히 분내지 아니하며 술을 즐기지 아니하며 구타하지 아니하며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며”(디도서 1:7). 바울은 술을 즐기는 것을 구타하는 것과 더러운 이익을 탐하는 것과 같은 수준에 놓고 있다. 

술 취해서 일어나는 가정 폭력이 얼마나 많으며 술 취해서 일어나는 불행한 사건이 얼마나 많은가? 집사에게도 바울은 명확히 경고하고 있다. 

집사들도 단정하고 일구이언(一口二言)을 하지 아니하고 술에 인박이지 아니하고 더러운 이()를 탐하지 아니하고 깨끗한 양심에 믿음의 비밀을 가진 자라야 할지니라”(디모데전서 3:8-9).

장로와 집사는 다른 평신도들의 모본이 된다. 교회의 건전하고 성서적인 문화의 질()은 목사와 장로들과 집사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있는 그대로 순종함에 달려 있다. 그러면 금주는 교회 지도자들에게만 해당할까? 

그렇지 않다. 사도 바울은 단호하게 말하고 있다. 

이 세상의 음행하는 자들이나 탐하는 자들과 토색하는 자들이나 우상 숭배하는 자들을 도무지 사귀지 말라 하는 것이 아니니 만일 그리하려면 세상 밖으로 나가야 할 것이라 이제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만일 어떤 형제라 일컫는 자가 음행하거나 탐람하거나 우상 숭배를 하거나 후욕하거나 술 취하거나 토색하거든 사귀지도 말고 그런 자와는 함께 먹지도 말지니라”(고린도전서 5:10-11).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복음을 안다고 하는어떤 형제, ‘그리스도인 형제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오용하면 세상 사람들을 어떻게 그들의 잘못된 길에서 돌이키게 할 수 있을 것인가라고 경고하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과 그리스도인이 똑같으면 그리스도인이 될 이유가 어디에 있는가? 세상에 하나님과 성경의 가르침을 잘못 대변하는 그리스도인은 큰 책임이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알코올의 경고는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해당하는 것이다. 

 

분명히 보이는 위험은 현실이 될 것이다

결혼 피로연 자리에서 미국의 한 신부가 그의 아버지로부터 신랑과 그녀의 새 가정을 위해 포도주로 축배를 들라는 요청을 받았다. 신부는 이를 거절했다. 하지만 아버지가 더욱 야단스럽게 권하자, 어린 신부는 어쩔 수 없이 일어나 잔을 높이 들고 이렇게 말했다. 

이 포도주 색깔과 거품은 저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 속에서 이혼한 남편과 마음이 상한 아내와 근심하는 어머니와 그늘지고 슬픔에 잠긴 우리 가정을 봅니다.”

그렇다. 유비무환(有備無患)이란 말이 있다. 예방은 사후수습보다 항상 지혜롭다. 결과를 알면서도 잘못된 일을 요행을 바라면서 계속하는 것보다는 사후수습이 백배 낫다. 위험을 알았다면 핑계를 찾지 말고 그만두는 것이 지혜로운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포도주는 거만케 하는 것이요 독주는 떠들게 하는 것이라 무릇 이에 미혹되는 자에게는 지혜가 없느니라”(잠언 2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