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예수님은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언제 예수께서 재림하실 것인가? 그때가 언제인가? 모든 기다림이 끝나고 그분이 약속하신 대로 천천만만의 천사들과 함께 구름 타고 오실 그 때가 언제인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남기시고 승천하신 후 2000여년이 지났는데, 수많은 기다림과 탄식의 세월이 지나갔는데, 그분은 언제 오시는가? 또 다시 백년이 지나고 천년이 지나도록 기다려야만 하는가?

기독교 역사를 살펴보면 예수 재림의 날짜를 정했던 사람들이 계속 있었고 수십 번 이상 그런 일이 반복되었다. 어떤 경우에는 그 정한 날자가 그럴듯하고 논리적이어서 사람들을 솔깃하게 했다. 어떤 것은 근거 없는 추측이나 소문에 불과한 것이어서 한때 돌아다니다가 소멸되기도 했다. 그러나 그 주장들은 모두 성경 말씀에 견고한 기초를 두지 않았기 때문에 다 상처를 남기고 사라져 갔다. 재림을 기다리던 무수한 사람들이 소망을 품고 기다리다가 죽었다.

도대체 예수께서는 언제 재림하실 것인가? 내가 다시 오리라는 말씀이 있었고, 기다림이 시작된지 2,000년이 넘었어도 아직 재림하시지 않았다면 도대체 마지막이 가깝다는 표현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우리 시대에 그분은 오실 것인가, 오시지 않을 것인가? 어떤 연대기에 의하면 지구 창조 이후 약 4000년의 세월이 흐른 후에 예수님이 세상에 오셨고, 그 예수님께서 십자가 희생을 치르시고 부활하신 후 다시 오시겠다는 약속을 남기시고 하늘로 올라가신 지가 2000년이 넘었는데 주님은 아직도 오시지 않았으니, 그분은 도대체 언제 오신다는 것인가? 이러한 의문들을 풀기 위하여 우리는 재림이 명확하게 기록되어 있는 성경으로 들어가 보아야 한다. 재림하실 분이 기록해 놓은 성경에게 직접 물어야 된다. 다시 오실 주인이신 그분은 재림의 시기에 도대체 무엇이라 말씀하셨는가를 살펴보지 않고는 인간들이 아무리 그럴듯한 계산을 해도 그것은 무의미한 것이기 때문이다.

 

2.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른다

놀랍게도 예수께서는 재림하실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철저히 모른다고 말씀하셨다. 심지어는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신다고 하셨다( 24:36). 사도행전 1 7절에 보면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라고 말씀하시고 재림하실 시간은생각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간일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렇기 때문에깨어 있어야된다고 하셨다( 24:44, 50).

이렇게 분명한 말씀이 기록되어 있는데도 왜 그렇게 사람들은 방황하는가? 재림하실 당사자가 모른다고 하신 그 시간에 대해 사람들은 왜 그다지도 끈질기게 흥미를 갖는 것일까? 거기에는 이유가 있다.  시기를 정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은 때를 아는 것이야말로 재림을 위해 깨어 준비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예수께서 비록 정확한 때와 시간은 말씀하지 않으셨다 하더라도 어느 시대에 재림이 있을 것인지 혹시 암시하지 않으셨나 하고 계속해서 성경을 연구해 본다. 하나님의 자녀들을 위해서 성경 어디엔가 그 힌트나 암호를 푸는 열쇠가 있을 것이라 굳게 믿고 연대도 풀어 보고, 희년도 계산해 보고, 예언도 다시 한 번 맞추어 본다. 지금까지도 그랬고, 앞으로도 계속 이런 일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그 때를 알려는 모든 시도는 실패하고야 말 것이라는 것이다. 때를 아는 그것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권한 밖에 두셨기 때문이다( 1:7). 중요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하셨다.

다시 주제로 돌아가자. 언제 그분께서 오실 것인가? 우리는 모른다. 단지 그분의 오심이 너무도 확실하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가깝다는 것만을 알 뿐이다. 그 순간에 우리의 삶 속에는 종말적 긴장이 생겨난다. 우리가 그 때를 안다고 대답하면 그 순간에 모든 종말적 긴장은 사라진다. 인간의 악한 본성은  때를 알게 된 순간부터 그 때를 이용하기 시작한다. 그렇다면 또 한 가지 의문이 생긴다.  언제 있을지도 모르는 재림을 어떻게 준비해야 하는가? 재림을 준비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3. 사람들은 왜 재림의 시간을 알고 싶어 하는가?

무수한 사람들이, 예수님의 재림하실 시간, 즉 이 세상의 마지막 때를 알고 싶어 했다. 그리고는 그럴듯하게 보이는 사건이나 연대를 기초로 해서 때를 계산해 내고 그것을 기다리고 전파하곤 했다. 그러나 그 모든 시도는 모조리 허사로 돌아가고 기억에서 사라져 갔다. 그것은 이미 정해진 실패였다. 왜냐하면 다시 오실 당사자인 예수께서 이미 때와 시기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모른다고 단언하셨기 때문이다( 24:36; 1:9).

그 이유가 무엇일까? 언뜻 생각되기로는 때와 기한을 알면 더욱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목표를 세워 그때를 위하여 준비하고 기다릴 것 같다. 때가 가깝다는 것을 알면 더욱 헌신하고 모든 것을 다 팔아서라도 교회를 돕고 개인의 삶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사업에만 전념하려 할 것이다. 교회는 차고 넘치게 되고 너무 많은 헌금을 바치기 때문에 어떻게 사용해야 할지 모르는 일이 일어날 것이다. 사람들은 더욱 경건하고 열성적이 되고 오직 그날을 세어 보며 살아갈 것이다. 이렇게 되는 것이 좋은 일이 아닌가? 우리가 바라는 일이 아닌가? 그런데도 왜 그날과 때를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까? 가르쳐 주지 않으셨을 뿐만 아니라 왜 너희의 알바 아니라고( 1:7)까지 말씀하셨을까?

 

4. 재림의 시간을 알려주지 않으신 이유

하나님께서는 무슨 중대한 이유가 있으셔서 그 때를 알려주지 않으셨음이 틀림없다. 우리는 크게 두 가지의 이유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첫째는 위에 말한 긍정적 효과, 다시 말하면 헌신과 열성과 인내는 그때가 아주 가깝게 설정되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이다. 만일 초대 교회의 사람들이 재림이 2000년이 지나도록 이르지 않을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아마 기독교는 존재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아니 2000년은 그만두고 재림의 때가 100년 후라는 것만 확실히 정해진다 해도 하나님의 사업은 심각한 타격을 받을 것임에 틀림없다. 자기 생전에 이루어지지 않는 사건에 대해 긴장과 사명을 느끼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둘째로 분명한 것은, 하나님께서는 날짜가 정해진 다음의 호들갑 떠는 준비와 헌신을 좋게 여기시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인다는 것이다. 그날을 위해 날마다깨어준비하는 것을 원하시지 게으름을 피우던 종이 주인의 도착 시간을 통보 받고 그제서야 야단법석을 떠는 것을 원하시지 않는 것 같다

 

5. 사람들이 재림의 때를 알고 있다면

(1) 사람들은 때를 아는 지식을 악용하게 될 것이다.

재림의 때가 확실히 알려지면 두 가지의 반응이 나타날 것이다. 그 때가 지금부터 너무 멀면, 가령 지금부터 200년 후라면 그리스도인의 삶에서 긴장은 사라지게 될 것이다. 적당히 세상과 어울려 살다가 노쇠해서야 죽음을 준비하는 그런 형태의 신앙이 주종을 이룰 가능성이 많다. 기독교인의 삶에서 기다림은 사라지게 될 것이요, 간절함과 헌신도 시들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그 때를 아는 지식을 악용해서 그들의 이기적 정욕을 만족시키는 일을 안심하고 실천에 옮기게 될 것이다. 회개할 시간은 어쨌든 200년이나 남아 있으니까 말이다.

그 반대로 마지막 때가 2년 앞으로 다가왔다고 가정해 보자. 고등학생들은 수능시험 준비를 그만두고 대학 진학을 포기해 버릴 것이다. 그까짓 2년을 못 견디랴 싶어 직장도 팽개치고 전도에만 전념하는 사람들도 생겨날 것이다. 사람들은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고 모두가 일손을 놓아 버릴 것이다. 모든 계획도 중지되고 단지 마지막 날을 기다리는 카운트다운의 시계 소리만이 세상에 들리게 될 것이다. 이런 기다림을 하나님께서 원하시는가? 그렇지 않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삶은 정해진 시간의 카운트다운이 아니라 그때와 시간이 언제일지 모르지만 깨어 기다리는 종말적 긴장이 유지되어 있는 삶이다. 그 속에서만이 참된 신앙과 헌신이 생겨나게 된다.

(2) 때를 알게 되면 하나님의 사업이 크게 지연되는 사태가 발생할 것이다.

때와 시간이 정해지면 헌신과 열성으로 하나님의 사업이 크게 발전해야지 왜 지연되는가? 앞에서 설명한바와 마찬가지 현상이 생겨난다. 즉 시간이 멀리 정해지면 하나님의 사업에 대한 포기와 무관심이 전반적인 현상이 될 것이며 이와 반대로 때가 2년 밖에 남지 않았다면 어떻게 될 것인가? 물론 정신 차려 준비하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이다. 열성과 헌신이 고조될 것이다. 그러나 그 모든 신앙적 부흥은 하나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카운트다운의 긴박감과 두려움 속에서 만들어지게 될 것이다. 그것은 인간으로서의 일상적 삶과는 유리된 일종의 비상시기에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행동들이 될 것이다. 시기를 정하고 살았던 많은 잘못된 과거 집단들의 생활에서 여실히 증명되었던 그런 종류의 삶은 많은 사람들에게 혐오감과 거부감을 일으켜 오히려 하나님의 사업을 방해할 것이다.

(3) 재림을 기다리는 삶은 항상 고대하고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마지막 때가 100년이나 200년 후에 있을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면 모든 기대와 흥분은 사라진다. 그러나 2년 후라면 시간적 흥분이 생겨난다. 기다림에 있어서 시간적인 흥분이 전혀 없을 수는 없으나 시간이 확정되고 사람들이 그 시간적 기대와 흥분 속에 살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가 아니다.

재림을 기다린다는 것은 때를 정해 놓고 시간적 기대 속에서 삶과 유리된 비정상적인 열성이나 흥분 속에 사는 것이 아니다. 재림을 기다리는 참된 삶은 항상 고대하고 준비하며 사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한마디로 표현하셨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24:42, 44).

항상 고대하고 준비하며 산다는 것은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 깨어 있으라는 말씀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정해진 시간도 없이 이것이 과연 가능한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