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짐승의 모습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용처럼 말을 하더라”(계 13:11)
요한은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 짐승은 앞서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과도 다르고, 또 다니엘서에 나오는 여러 짐승과도 전혀 달랐습니다.
이 짐승은 뿔도 열 개가 아니라 두 개이며, 머리도 일곱이 아니라 하나이며, 뿔이나 머리에 면류관이 없습니다. 이 짐승은 본질적으로 지금까지 보아온 짐승과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1) 땅
다니엘서 7장의 네 짐승들과 요한계시록 13장의 첫 번째 짐승은 모두 “바다”에서 올라왔습니다. 일곱 재앙을 가진 천사는 “네가 본 바 음녀가 앉아 있는 물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들이니라”(계 17:15)고 해석하였습니다.
또한 이사야는 북방 이스라엘에 대한 앗수르의 침공을 묘사하기를 “슬프다 많은 민족이 소동하였으되 바다 파도가 치는 소리 같이 그들이 소동하였고 열방이 충돌하였으되 큰 물이 몰려옴 같이 그들도 충돌하였도다”(사 17:12)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이 “바다”에서 올라온 것은, 많이 사람들이 살고 있는 유럽지역에서, 전쟁을 통해 나라들이 일어날 것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요한계시록 13장의 두 번째 짐승은 “땅”에서 올라왔습니다. 이것은 이 나라가 명백히 거주민이 희박한 지역에서 일어날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어린 양 같은 모습은 이 나라가 전쟁이나 정복 그리고 점령에 의해서가 아니라, 인구가 적은 지역에서 발생해 거대한 나라로 발전해 갈 것을 의미합니다.
땅에서 올라온 이 짐승은 어떤 나라를 상징할까요? 세계 강대국 중 이러한 특성을 가진 나라는 미국 밖에 없습니다. 실제로 미국은 교황권이 상처를 받던 1798년에 현저한 강국으로 성장해 가고 있었습니다. 이 나라는 구대륙에서 “백성과 무리와 열국”들을 바탕으로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대륙에서 비교적 적은 수의 주민을 바탕으로 일어났습니다.
2) 새끼 양 같은 두 뿔
바다에서 올라온 첫 번째 짐승은 사자, 곰, 표범, 괴물, 일곱 머리, 열 뿔 등 맹수의 특징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특징들은 바벨론, 메대–페르시아, 헬라, 로마, 게르만 족 등이 가진 호전적인 자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또한 뿔에 있던 왕관들은 제국적 특성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미국은 “어린 양 같이” 묘사되었습니다. 이 표현은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요 1:29)이신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어린 양”은 신생국가인 미국의 순진하고 온순한 모습을 나타내는데 매우 적합합니다. 이 나라의 주된 관심은 평화롭게 살며, 자기 나라만 다스리며, 여러 나라에서 핍박을 받는 사람들의 안식처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미국인들의 이러한 신념은 “자유의 여신상” 기단부에 기록된 엠마 라자루스(Emma Lazarus)의 유명한 소네트(Sonnet) 중 한 구절에 잘 표현되어 있습니다.
“당신의 지치고 가난한, 자유를 갈망하는 웅크린 군중들, 풍요의 기슭에서 버림받은 가련한 이들을 내게 보내라. 세파에 시달리고 갈 곳 없는 이들 내게 오거든, 나 황금문 곁에서 등불을 높이 들어올리리라!”
그리고 두 뿔은 미연방 헌법에 보장된, 미국 정부 제도의 두 가지 두드러진 특징, 곧 시민의 자유와 종교적 자유를 상징합니다. 시민의 자유는 정부의 공화주의에 반영되어 있고, 종교적 자유는 개신교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미국 헌법 제4조 4항에서는 “연방 정부는 연방에 속한 모든 주의 공화정 체제를 보장한다”고 명시하고 있고, 수정헌법 제1조에서는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습니다.
3) 용처럼 말함
그런데 이 나라는 어린 양 같은 외모와는 달리 용처럼 말할 것이 예언되어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변질될 것에 대한 예언입니다. 미국이 용처럼 말하는 모습은 12~18절에 자세히 묘사되어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3장의 ‘용’과 ‘바다에서 올라오는 짐승’과 ‘땅에서 올라오는 짐승’은, 요한계시록 16:13에는 용, 짐승, 거짓 선지자로, 20:10에는 마귀, 그 짐승, 거짓 선지자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미국이 거짓 선지자로 묘사된 것은, 개신교 국가 미국이 신앙의 자유를 보장한 원칙을 포기할 것을 의미합니다.
순한 양처럼 시민의 자유와 종교적 자유라는 두 뿔을 가지고 올라온 미국이 어떻게 용처럼 말하게 되는지 하나하나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미국이 중세 교황권의 모든 권세를 행함
“그가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그 앞에서 행하고”(12절)
여기 먼저 나온 짐승은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을 의미합니다. 교황권은 전성기 때에 종교적인 일과 정치적인 일 모두에서 그 권위를 광범위하게 행사하였습니다. 특히 교황 이노센트 3세(Innocent Ⅲ, 재위 1198~1216) 때는 ‘교황은 태양, 황제는 달’로 표현될 정도로 교황권이 전성기를 이루었습니다.
이 성경절은 미국이 교황권이 전성기에 가졌던 모든 권세를 행할 때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헬라어 원문을 보면 동사의 시제가 여기서부터 부정과거에서 현재와 미래로 바뀝니다. 이 구절은 장차 미국이 정치 종교적 권세를 모두 행할 때를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국이 수정헌법 제1조에서 보장하고 있는 종교 자유의 원칙을 버릴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이 어떤 단계를 거쳐 어떤 방식으로 진행될 것인지가 여기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2) 미국이 교황권과 손을 잡음
“땅과 땅에 사는 자들을 처음 짐승에게 경배하게 하니 곧 죽게 되었던 상처가 나은 자니라”(12절)
1984년 이전에는, 미국이 교황권과 가까워진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미국은 교황권과 결코 가까이 할 수 없는 관계였습니다. 왜냐하면 미국은 교황권의 종교적 탄압을 피하여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람들이 세운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9세기 초중반에 약 3천만 명이나 되는 아일랜드와 독일의 가톨릭 신자들이 대거 미국으로 이민해 들어올 때, 미국 내 개신교계에서는 강렬한 위기의식을 느꼈고, 그 결과 이민배척주의자(nativist)들이 생겨나고, 일부 주(州)에서는 가톨릭 신자의 선거권 및 공직을 금지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1864년, 교황 비오 9세가 ‘오류(誤謬) 요강(Syllabus of Errors)’을 통해 종교와 언론의 자유 그리고 민주주의 등을 비난하자, 미국의 개신교계와 자유주의자들은 자신들의 가치와 신념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으로 여겨 크게 반발하였습니다. 그리고 1867년, 교황이 로마에서 미국 개신교 신자들의 종교활동을 제한하려 한다는 소문이 돌자, 미국 의회는 로마 주재 외교 공관 유지에 연방 기금 사용금지 결의안을 통과시켜 결국 외교관계가 단절되고 말았습니다.
이런 미국이 교황권과 손을 잡고, 더구나 교황권을 경배하게 한다는 예언은 어불성설처럼 여겨졌습니다. 그러나 그 불가능할 것 같았던 예언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그 역사적인 과정을 간단히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1981년 3월 30일, 미국의 레이건 대통령이 힝클리(John Hinckley Jr.)에게 총격을 받았습니다. 리무진 방탄 유리에 맞고 튕겨나온 총알이 레이건의 폐에 박혔지만 응급 수술을 받고 완전히 회복되었습니다.
▶ 같은 해 5월 13일, 성베드로 성당 광장에서 대중을 만나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메흐메트 알리 아자(Mehmet Ali Ağca)에게 저격을 받았습니다. 총알은 1밀리미터 차이로 심장을 비켜갔고, 교황은 5시간에 걸친 대수술 끝에 완치되었습니다. 건강을 회복한 교황은 감옥으로 가 자기에게 총을 쏜 아자를 만났고, 면회를 마친 후 교황은 “둘만의 대화는 비밀로 남을 것이다. 내게 총을 쏜 형제를 위해 기도합시다. 나는 이미 그를 진정으로 용서했다”고 말했습니다. 당시 그의 용서 메시지는 전 세계를 감동시켰습니다(2019.10.2, 중앙일보).
▶ 다음 해인 1982년 6월 7일, 미국 레이건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는 바티칸 시국에 있는 교황의 관저인 사도궁에서 비밀리 만났습니다. 이 만남은 10년 후인 1992년 2월 24일자 타임(TIME)지에 상세히 보도되었습니다. 당시 표지 제목은 ‘거룩한 동맹’(Holy Alliance)이었습니다. 그 기사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레이건과 요한 바오로 2세는 그들의 첫번 만남에서 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1981년 6주의 간격을 두고 발생한 암살 음모에서 살아났다는 이야기였다. 그리고 둘 다, 하나님께서 그 두 사람을 통해서 이루시고자 하는 어떤 특별한 사명이 있기 때문에 구원해 주셨다고 믿었다. 그리고 그들은 그렇게 살아난 것을 기적적인 사실로 받아들였다.”
두 지도자는 약 50분 간 가진 비밀회동에서 동유럽에서 자유와 민주주의를 증진시키는 일에 협력하기로 ‘거룩한 동맹’(Holy Alliance)을 맺었으며, 그 결과 동유럽의 반(反)공산주의 운동에 활기를 불어넣고, 궁극적으로 소련의 해체에 중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교황청은 공산권 치하에 있던 수백만의 가톨릭 신자들을 얻게 되었고, 미국은 세계 유일의 강대국이 되어 “먼저 나온 짐승의 모든 권세”를 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 그런데 조선일보 1994년 8월 8일자 해외토픽에 다음과 같은 충격적인 기사가 실렸습니다.
“지난 81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저격 사건은 교황청 고위 인사들이 지시한 것이며, 이탈리아의 지도자들도 이 음모에 개입됐다고 이탈리아의 ‘라 보체’지(紙)가 7일 보도했다. 이 신문은 교황 저격범 메흐메트 알리 아그차(아자)를 도운 혐의를 받았으나 무죄판결을 받은 터키人 오랄 셀리크의 말을 인용, 교황청 관리들이 범인인 아그차에게 총을 쏘되 죽이지는 말도록 지시했으며 저격범 아그차를 고용한 것은 이탈리아 고위인사들이라고 전했다.”
결국 저격 사건이 계기가 되어 두 지도자가 만났고, ‘거룩한 동맹’을 통해 세계 질서를 바꾸었으며, 1984년 1월 10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두 나라의 재수교가 이루어졌습니다. 이 놀라운 정치적이면서도 종교적인 사건은 어떤 논쟁이나 저항도 없이 조용히 이루어졌습니다.
“미국과 교황청은 1984년 1월 10일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과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간의 합의에 따라 외교 관계를 수립했다.”(https://history.state.gov/countries/holy-see)
사도 요한은 미국이 교황청과 단순히 수교를 맺을 뿐 아니라 그를 “경배하게 한다”고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매우 충격적입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당연히 종교에 관한 법령이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요한계시록 14:9~12에 기록된 셋째 천사는 그 법의 성격에 대한 힌트를 제공합니다.
“또 다른 천사 곧 셋째가 그 뒤를 따라 큰 음성으로 이르되 만일 누구든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이마에나 손에 표를 받으면 그도 하나님의 진노의 포도주를 마시리니 그 진노의 잔에 섞인 것이 없이 부은 포도주라 거룩한 천사들 앞과 어린 양 앞에서 불과 유황으로 고난을 받으리니 그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리로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 하더라 성도들의 인내가 여기 있나니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자니라”(계 14:9~12)
여기서 셋째 천사는 “성도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자들”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도들의 특징들 중 하나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12절)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과 관련되어 있음을 알려줍니다.
일찍이 다니엘도 작은 뿔이 “때와 법을 고치고자 할 것”(단 7:25)을 예언했습니다. 여기 “법”은 분명 하나님의 계명을 가리킵니다. 교황권은 성경의 가르침에 맞지 않는 많은 교리들과 관습을 끌어들였습니다. 그 중에 가장 대담하게 “고치고자”한 것은 십계명의 안식일 계명입니다. 교황권은 자신들이 안식일을 폐하는 대신 일요일 주일을 제정했음을 밝히고, 대담하게도 그렇게 고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합니다.
“성경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말한다. 그러나 천주교회는 말한다. 아니다, 나는 나의 신성한 권위로서 안식일을 폐하며 주일의 첫날을 거룩하게 지킬 것을 명한다. 보라 전 문명세계가 거룩한 천주교회의 명령을 공손히 굴복하여 복종한다.”(신부서한집, 1893. 6.1)
“가톨릭교회는 안식일을 일주일 중 일곱째 날인 토요일에서 첫째날인 일요일로 변경한 후 십계명의 셋째 계명을 고쳐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라고 하였다.”(가톨릭 사전, 제4권, 153)
천주교회 교리문답에 보면, 안식일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하게 된 이유에 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문] – 어느 날이 안식일인가?
[답] – 토요일이 안식일이다.
[문] – 왜 우리는 토요일 대신에 일요일을 지키는가?
[답] – 가톨릭교회가 라오디게아 공의회(A.D.364)에서 그 존엄성을 토요일에서 일요일로 옮겼기 때문에, 우리는 토요일 대신 일요일을 지킨다.
(Peter Geiermann, Convert’s Catechism of Catholic Doctrine, 50, 3rd edition, 1957)
예언은 교황권이 정한 주일 제도를 미국이 법령으로 강제할 것을 예고하고 있습니다. 이 일은 아직 미래에 속해 있으나 분명히 그런 일이 일어날 것입니다.
(3) 강신술의 미혹
“큰 이적을 행하되 심지어 사람들 앞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 하고 짐승 앞에서 받은 바 이적을 행함으로 땅에 거하는 자들을 미혹하며”(계 13:13, 14)
예수께서는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 큰 표적과 기사를 보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도 미혹하리라”(마 24:24)고 경고하셨습니다. 바울은 적그리스도가 말세에 “모든 능력과 표적과 거짓 기적과 불의의 모든 속임으로”(살후 2:9, 10) 일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현대인들은 이적을 잘 믿지 않습니다. 특히 미국의 제임스 랜디(James Randi)나 조 니켈(Joe Nickell), 영국의 데런 브라운(Derren Brown)이나 바나첵(Banachek) 같은 사람들은 거짓 이적이나 초자연적 능력의 속임수를 폭로하는 일에 일생을 바치고 있습니다.
사탄은 이러한 폭로와 이적에 대한 불신을 기뻐하고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탄이 바라는 것입니다. 후일에 때가 되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사탄의 능력을 받아 “큰 이적”을 행할 것이고, 사람들은 어떤 방법으로도 그 이적을 설명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큰 이적은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지구 거민들의 충성을 확보하는 수단이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새로운 조직 곧 짐승의 우상 위에 하나님의 축복이 머문다고 믿게 할 것입니다.
갈멜산에서 “불이 하늘로부터 땅에 내려오게”(왕상 18:17~39) 함으로 참 하나님의 능력을 입증한 것처럼, 짐승은 자신이 하는 일을 하나님께서 지지하고 승인하신 것으로 믿게 할 것입니다. 오순절에 성령이 각 사람 위에 “마치 불의 혀처럼”(행 2:3) 임한 것처럼, 사탄은 거짓 성령 운동을 통해 세상을 속일 것입니다.
요한은 “그들은 귀신의 영이라 이적을 행하여 천하 왕들에게 가서 하나님 곧 전능하신 이의 큰 날에 있을 전쟁을 위하여 그들을 모으더라”(계 16:14)고 하였습니다. 여기 말한 “귀신의 영”은 강신술(Spiritualism)을 의미합니다. 고대로부터 강신술이 존재했지만, 현대 강신술은 1848년에 뉴욕 하이즈빌(Hydesville)에 있는 폭스(Fox)가의 세 딸(Kate, Leah, Margaret)에 의해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새로 이사한 집에서 죽은 영혼과 교신에 성공했고, 그 영혼의 말에 따라 지하실에서 해골과 모피 등을 발견하였습니다. 이 사건이 보스턴 저널에 실린 이후 미국 뿐 아니라 유럽까지 큰 반응을 일으키게 됩니다.
강신술은 영혼의 존재와 죽은 자와의 소통 가능성을 강조합니다. 그래서 인간의 영혼이나 영이 사후에도 계속 존재하며 영매나 심령술사를 통해 살아있는 사람과 소통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최근 강신술의 인기와 영향력이 약해진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영매술(Mediumship, 사주, 타로, 위자 보드), 뉴에이지 영성(New Age Spirituality, 현대과학과 자연숭배, 서양의 마술, 동양의 신비주의 등), 심신수련(Mind-Body Practices, 요가, 명상, 심리치료), 절충주의 영성(Eclectic Spirituality, 강신술, 기독교, 불교, 기타 종교 등의 혼합) 등으로 모습을 바꿔 현대인들의 삶에 깊숙이 파고 들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신술의 영향은 영화, 드라마 등에도 강력한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이러한 강신술은 영혼불멸설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담과 하와에게 선악과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창 2:17)고 말씀하셨지만, 사탄은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 3:4)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탄을 가리켜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요 8:44)라고 하셨습니다. 범죄한 인간이 죽게 되자 사탄은 “그 몸은 죽었지만, 영혼은 살아 있다”는 영혼불멸설을 퍼뜨렸습니다. 이 주장도 거짓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범죄하는 그 영혼은 죽으리라”(겔 18: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사야는 어떤 사람이 백성들에게 “주절거리며 속살거리는 신접한 자와 마술사에게 물으라”고 하면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구하겠느냐”(사 8:19)고 반박하라고 지시했습니다. 산 자를 위하여 죽은 자에게 묻는 것은 어리석은 것입니다.
두려운 것은 이러한 강신술이 교회 안에도 침투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큰 권세를 가지고 하늘에서 내려오는 다른 천사는 힘찬 음성으로 “무너졌도다 무너졌도다 큰 성 바벨론이여 귀신의 처소와 각종 더러운 영이 모이는 곳과 각종 더럽고 가증한 새들이 모이는 곳이 되었도다”(계18:2)고 외칩니다. 바벨론이 무너졌다는 것은 교회가 배도했다는 선언입니다. 귀신의 처소가 되었다는 것은 강신술이 교회를 장악한 것을 의미합니다. 더러운 영이나 더럽고 가증한 새 등은 모두 교회의 타락과 배교를 강렬하게 묘사하는 은유들입니다.
하나님께 버림받은 사울이 엔돌의 신접한 여인을 찾았듯이(삼상 28장), 하나님의 성령이 떠난 사람들은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을 찾아 이적과 기사에 미혹되어 사탄을 따르게 될 것입니다.
이 강력한 강신술에 빠지지 않으려면 영혼불멸설 사상을 버려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사탄이 어떤 이적과 기사로 접근하더라도, 거짓 영임을 바로 파악할 수 있기 때문에 미혹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오늘날 대부분의 교회들이 영혼불멸설을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이 영혼불멸설이 기초가 되어 사탄은 강신술로 교회를 장악할 것이고, 교회는 마침내 “귀신의 처소”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 결과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8)는 예언이 성취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때가 되면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의 죄에 참여하지 말고 그가 받을 재앙들을 받지 말라”(계18:4)는 호소가 발해질 것입니다. 그때 아직도 바벨론 가운데 머물러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그곳에서 나올 것입니다. 그들은 “불에서 꺼낸 그슬린 나무”처럼 구원을 받을 것입니다. 당신이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지금 그러한 오류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4) 짐승의우상을만들고말하게함
“땅에 거하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칼에 상하였다가 살아난 짐승을 위하여 우상을 만들라 하더라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4, 15)
“우상”이란 헬라어로 “에이콘”입니다. 에이콘은 “닮은 것(likeness)”, “상(像, image)”이라는 뜻입니다. 우상은 원형(原型)은 아니지만 많은 면에서 원형을 닮은 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우상”을 만든다는 것은 “짐승의 복사품”을 만든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후일 미국에서 교황권(원형)과 동일한 원칙을 갖고 활동하는 조직체(우상)가 나타날 것을 예언하는 것입니다. 교황권이 행사한 원칙 중 하나는 종교적인 제도들을 지원하기 위해 세속적인 권력을 사용한 것입니다.
이 예언은 후일 미국이 수정헌법 제1조를 무시하거나 포기할 것을 의미합니다. 앞에서도 보았지만 다시 한 번 확인해 봅시다.
“의회는 종교를 만들거나, 자유로운 종교 활동을 금지하거나, 발언의 자유를 저해하거나, 출판의 자유, 평화로운 집회의 권리, 그리고 정부에 탄원할 수 있는 권리를 제한하는 어떠한 법률도 만들 수 없다.”
새끼 양같이 두 뿔을 가지고 올라온 미국이 이 원칙을 버리고 용처럼 말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짐승의 우상”은 미국의 개신교회들이 자기들의 신조를 강요하기 위해 국권의 도움을 구할 때 생겨나게 될 “배교한 개신교회들의 형태”를 나타냅니다. 배교한 교회들은 정부와 연합할 것이고, 자신들의 신조를 강요하기 위해 국가 위에 군림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의 개신교회들이 자기들의 종교적 목적을 이루기 위해 정치 조직들을 후원하고, 그 댓가로 그들에게 어떤 영향력을 행사할 때, 그런 활동이 바로 “짐승의 우상”을 만들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한다는 것은 어떤 뜻일까요? 예레미야는 우상을 만드는 자들을 책망하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마다 어리석고 무식하도다 은장이마다 자기의 조각한 신상으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나니 이는 그가 부어 만든 우상은 거짓 것이요 그 속에 생기가 없음이라”(렘 10:14)
우상은 본래 말도 못하고 움직이지도 못합니다. 그 이유는 그 속에 생기(호흡, 생명)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사람에게 생명을 불어넣어 하나님의 대리인으로서 기능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마찬가지로 둘째 짐승은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할 것입니다. 배교한 개신교는 앞서 말한 강신술의 이적과 정치 세력의 지지를 통해 생기를 얻게 됩니다. 그러면 짐승의 우상은 어떻게 말을 하게 될까요? 그것은 법령을 통해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배교한 개신교는 정치적 도움을 받아 자기들의 신조를 강요하는 법을 만들고, 그 법을 통해 “말”(명령)하고, 그 말에 순종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사형령까지 내릴 것입니다. 그렇다면 짐승의 우상은 어떤 법을 제정할까요?
(5) 짐승의 표와 666
“그가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 하고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 보라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계 13:16~18)
여기 “표”는 헬라어로 “카라그마”인데 “날인(impress)”, “도장(stamp)”, “표(mark)”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표란, 짐승에 대한 충성을 나타내는 어떤 표식(badge)이며, 그런 표식을 드러내 보이는 사람은 그 행위로써 자신이 처음 짐승을 경배한다는 것을 나타내게 됩니다(8절).
그렇다면 이 표는 무엇일까요? 17절을 직역하면, “이 표 혹은 곧 그 짐승의 이름 혹은 그 이름의 수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입니다. 표와 짐승의 이름과 이름의 수 사이에 “혹은”이라는 단어가 들어가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짐승의 낙인(烙印)에는 짐승의 이름이나 혹은 어떤 숫자를 찍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짐승의 표는 짐승의 이름일 수도 있고, 혹은 짐승의 수(number)일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짐승의 이름이란 무엇일까요? 요한은 계시록에서 이름을 “성품”의 상징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은 머리들에 신성모독하는 이름들을 가지고 있었습니다(계 13:1). 그리고 십사만 사천인들은 “그들의 이마에는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더라”(계 14:1)고 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짐승의 이름은 짐승의 신성모독적 성품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짐승의 수는 무엇일까요? 요한은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 곧 지성이 있는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고 말합니다. 헬라어 프세피조는 본래 “세다, 계산하다”는 뜻인데, 여기서는 “알아내다”는 뜻으로 사용되었습니다. 즉, 짐승의 수가 무엇인지 깨달으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그것은 사람의 수니 그의 수는 육백육십육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즉 “짐승의 수는 곧 사람의 수이고, 사람의 수는 곧 666”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16~18절 전체를 공식으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습니다.
“짐승의 표 = 짐승의 이름 혹은 짐승의 수 = 사람의 수 = 666”
666을 해석할 때, 이러한 맥락을 이해하고 그 범주 안에서 해석을 찾아야 합니다. 이 범주를 벗어나 컴퓨터 바코드나 베리칩 그리고 백신 등을 적용하는 것은 성경해석의 원칙을 크게 벗어나는 것입니다. 666의 의미를 알아가는 첫 단서는 이 구절 자체에 그것이 “사람의 수”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동안 666을 어떤 사람의 이름에 적용하려는 시도가 많이 있었습니다. 헬라어로는 “이는 그것이 사람의 수(혹은 인류의 수)이다”라고 되어 있는데, 제임스왕 역(KJV)에서 “이는 그것이 한 사람의 수이다”(for it is the number of a man)로 잘못 번역했기 때문에 생긴 오해입니다. 새 국제역(NIV)에서도 KJV과 똑같이 번역했지만, 난외에 “혹은 인류의 수”(Or is humanity’s number)라는 번역을 첨가해 놓았습니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것은 요한이 “사람의 수(혹은 인류의 수) = 666”이라고 했지, “사람의 이름의 합계”라고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름의 합계로 해석할 때는 어떤 언어를 사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에 직면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은 헬라어로 기록되어 있는데, 영어나 라틴어 등의 이름의 합계를 666에 대입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입니다.
666이 “사람(혹은 인류)의 수”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된 인간(인류)을 의미합니다. 미국의 Biblical Research Institute(B.R.I. 2001~2011) 소장을 지낸 앙헬 로드리게스(Ángel Manuel Rodríguez, 1945~) 박사는 “어떤 사람들은 666의 의미를 하나님과 분리된 인류의 상징으로 본다. 사람은 여섯째 날에 창조되었으며, 그 수는 거룩한 쉼(제칠일)이 없는 인류에 대한 상징일 수 있다. 인간은 하나님으로부터 궁극적인 독립(이것이 타락의 원인)을 요구했으며, 지금도 그리스도 안에서 안식을 찾으려 하지 않는다”(Sabbath School Lesson Quarterly, 2002.6.6)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4장의 셋째 천사는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밤낮 쉼을 얻지 못하리라”(계 14:11)고 경고하는 것입니다. 로드리게스 박사는 다음과 같이 결론을 짓습니다, “현재로서는 ‘6’을 세 번 사용한 것은, 강렬한 반역과 하나님으로부터의 전적인 독립에 대한 상징으로 보는 것이 최선의 선택인 것 같다.”(SSLQ, 2002.6.7)
요한 당시, 로마제국으로부터 격렬한 핍박을 받고 있던 그리스도인들은 황제숭배를 했던 사람들에게 발급된 증명서에서 “짐승의 표”가 적용되는 것을 보았을 것입니다. 시대마다 짐승의 표가 다른 의미로 이해되었지만, 요한계시록 13장은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짐승의 표가 궁극적으로 적용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최후 위기의 때가 되면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자”들이 대조를 이루게 됩니다(계 14:9~12).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짐승을 경배하는 것이고 그 행위가 짐승에 대한 충성의 표가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이고, 그 행위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표가 됩니다.
특히 최후의 위기의 때에 십계명의 첫 네 계명은 하나님께 대한 충성의 시금석이 될 것입니다. 이 네 계명은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경배와 관련되어 있습니다.
(1) 하나님께만 드려야 할 경배를 짐승이 요구하는 것은(계 13:4, 8),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출 20:3)는 첫 계명에 대한 직접적인 공격입니다.
(2) 짐승의 우상을 만들어 경배하게 하는 것은(계 13:14, 15), “너를 위하여 새긴 우상을 만들지 말고 … 그것들에게 절하지 말”(출 20:4, 5)라는 둘째 계명을 위반하는 것이며,
(3) 짐승의 머리들에 있는 “신성모독하는 이름들”(계 13:1)은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 20:7)는 셋째 계명에 대한 위반입니다.
(4) 또한 “모든 자 곧 작은 자나 큰 자나 부자나 가난한 자나 자유인이나 종들에게 그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계 13:15)하는 것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출 20:8)는 넷째 계명에 대한 공격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들을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알게 하려고 내 안식일을 주어 그들과 나 사이에 표징을 삼았노라”(겔 20:12)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안식일은 하나님과 그의 언약의 백성 사이의 특별한 관계를 나타내는 외적 표였습니다(출 31:13; 겔 20:20).
최후의 위기의 때에 짐승과 그 우상에게 경배하고 오른 손이나 이마에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 안식일에만 국한되지는 않을지라도, 안식일은 분명히 충성과 순종의 ‘리트머스 시험’이 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 직전에 지상 거민(居民)들에게 보내는 하나님의 최후 호소를 묘사한 세 천사의 기별에서, 첫째 천사는 하나님의 심판하실 시간이 이르렀음을 경고하면서 “하늘과 땅과 바다와 물들의 근원을 만드신 이를 경배하라”(계 14:7)고 촉구합니다. 이 진술은 분명 출애굽기 20장 11절의 “이는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 일곱째 날에 쉬었음이라”는 말씀을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첫째 천사가 ‘창조주를 경배하라’고 호소하는 것은 사실상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호소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안식일은 창조의 기념일로 창조주를 기억하도록 제정되었기 때문입니다.
2. 토요일 안식일인가, 일요일 주일인가
첫 짐승은 그 머리들에 “신성모독 하는 이름들”이 있었습니다. 교황권은 대담하게도 가톨릭교회가 성경 위에 있으며, 하나님의 율법을 변경할 수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일요일은 우리의 표 또는 권위이다(Sunday is our mark or authority). … 교회는 성경 위에 있으며 안식일 준수의 변경이 그 사실의 증거이다.”(Catholic Record of London, Ontario, September 1, 1923)
“물론 가톨릭교회는 (토요일 안식일에서 일요일로) 변경한 것이 자신의 행위였다고 주장한다. … 그리고 그 행위는 종교적인 면에서 교회적 권위의 표이다.”(H.F. Thomas, Chancellor of Cardinal Gibbons)
“개신교인들은 일요일을 지킴으로써 교회의 대변인인 교황의 권위를 인정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하고 있다.”(Our Sunday Visitor, February 5, 1950)
“이 휴일(안식일)을 일요일로 변경시킨 것은 바로 가톨릭 교회였다. 이러므로 개신교도들이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그들의 본의와는 달리 가톨릭교회의 권위에 충성을 표하게 되는 것이다.”(몬시뇨르 세구르, 현대 개신교에 관한 일반적인 토론, 225)
“장로교, 침례교, 감리교 및 기타 모든 기독교인들은 일요일을 준수하는 데 있어 성경 그 어느 곳에서도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이 좋다. 일요일은 로마 가톨릭 교회의 제도이며, 그 날을 준수하는 사람들은 가톨릭교회의 명령을 준수하는 것이다.”(Priest Brady, The News, Elizabeth, New Jersey, March 18, 1903)
이 진술들을 보십시오. 일요일 예배는 분명 가톨릭교회에서 만든 사람의 계명입니다. 그러나 토요일 안식일 예배는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이 ‘장로들의 유전’을 지키지 않는 것을 지적하자, 예수님은 이사야의 글을 인용하여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였느니라 너희가 하나님의 계명은 버리고 사람의 전통을 지키느니라”(막 7:7, 8)고 책망하셨습니다. 만일 예수께서 현대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에 주일을 준수하거나 주장하는 것을 들으신 다면 같은 말씀으로 책망하실 것입니다.
3. 일요일을 준수하는 것은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인가?
지금까지 살펴본 진술들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오늘날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이 일요일을 주일로 준수하고 있습니다.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 중에 가장 많은 사람들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일요일에 부활하셨고, 그것이 기독교 신앙의 중심 사건이기 때문에 일요일을 주일로 지켜야 한다고 믿습니다. 어떤 분들은 안식일은 유대인들이 지키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 기독교인들은 주일을 지키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일부는 일요일 주일이 성경이 말하는 안식일이라고 잘못 알고 있기도 하고, 어떤 분들은 성경의 안식일이 토요일인 것은 맞지만, 신약시대에는 일요일을 지키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는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율법을 “완전하게 하려” 오셨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여기 “폐하러”와 “완전하게” 사이에는 접속사 “알라(but)”가 있습니다. 이것은 두 단어를 강하게 대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완전하게”는 “폐하러”의 반대 의미로 사용된 것입니다. “완전하게”는 헬라어로 ‘플레로오’인데, “채우다, 충만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자신이 율법을 폐하러 오신 것이 아니라 율법의 의미를 충만하게 채우기 위해 오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은 그분의 가르침에서도 율법을 폐하는 것 보다는 그 정신까지 지키도록 강조하셨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마 5:27~28)
“또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으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 누구든지 네 오른편 뺨을 치거든 왼편도 돌려 대며”(마 5:38~39)
따라서 신약시대에는 계명을 안 지켜도 괜찮은 것이 아니라, 더욱 철저히 외적 행동으로 뿐 아니라 내적 마음으로까지 지키는 것이 올바른 신앙입니다.
안식일은 십계명의 네 번째 계명입니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는 첫째 계명을 신약시대인 지금도 지켜야 하는 것처럼,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라”는 넷째 계명도 역시 지켜야 합니다. 다른 계명은 다 지켜야 하지만, 안식일 계명만 폐지되었거나 다른 날로 변경되었다는 주장은 타당성이 없습니다.
그렇다면 지금 일요일을 주일로 지키는 그리스도인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것일까요? 다음 성경주석이 아주 적절한 설명을 제공해 줍니다.
“일요일 준수가 그러한 표가 될 것이나 짐승의 권세가 회복되고 안식일 준수를 대신하는 일요일 준수가 법으로 제정될 때에 그렇게 될 것이다. … 쟁점이 그들 앞에 분명해지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짐승의 제도를 지지하고자 선택하여 그것을 지키고 하나님의 안식일 계명을 불순종할 때, 그를 통해 그들은 짐승의 세력에 대한 그들의 충성을 보여 주게 되며 표를 받게 된다.”(SDABC, vol.7, 822)
오늘날 주일을 지키는 분들이 교황권이나 사람의 계명에 순종하기 위해 일부러 주일을 지키는 것은 아닐 것입니다. 대부분 잘못 알고 있거나 몰라서 그렇게 할 것입니다. 그러나 어떤 분은 이 글을 읽으면서 안식일과 주일 중 어떤 것이 하나님의 계명인지 깨닫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때가 되면 교회가 정치 위에 군림하고, 국회를 움직여 일요일 준수를 법으로 제정할 것입니다. 안식일의 의미를 깨닫고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반대하는 청원을 할 것이고, 여러 경로로 그 불법성이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그때는 일요 법령이 사람의 계명이라는 사실이 명백해질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알고도 여전히 일요일을 준수한다면, 그 행위가 주일 제도를 만든 교황권에 충성한다는 표가 될 것입니다.
예언은 세상 모든 사람들에게 “오른손에나 이마에 표를 받게”할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이 표가 노동(손)뿐만 아니라 믿음(이마)에도 영향을 미칠 것을 나타냅니다. 단순히 일요일에 노동을 쉬든, 혹은 주일이 옳다고 믿고 그 날을 지키든, 그 행위 자체가 교황권에 충성한다는 표가 된다는 것입니다. 또한 이것은 두 계층, 편의상 이 법령에 복종하든지 아니면 개인적 신념으로 복종하는 것을 상징할 수도 있습니다.
당신은 누구에게 충성할 것입니까? 하나님입니까 사람입니까? 여호수아는 이스라엘 각 지파의 지도자들을 세겜에 모으고 이렇게 호소했습니다.
“만일 여호와를 섬기는 것이 너희에게 좋지 않게 보이거든 너희 조상들이 강 저쪽에서 섬기던 신들이든지 또는 너희가 거주하는 땅에 있는 아모리 족속의 신들이든지 너희가 섬길 자를 오늘 택하라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수 24:15)
우리에게도 이 결단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지혜가 여기 있으니, 총명한 자는 그 짐승의 수를 세어보라(깨달아라)!
4. 사탄의 멸망 작전
사탄은 사람들의 구원을 방해하기 위해 집요하게 노력합니다. 사탄은 첫째, 예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왜냐하면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요 3:16)
그래서 사탄은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이나 부정적 인식, 사회적 나쁜 평판 그리고 가족들의 반대 등을 통해 그리스도를 믿지 못하게 방해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믿는다면, 각종 실망이나 상처 그리고 흥미를 느끼지 못하게 함으로 교회로부터 분리시키고자 합니다.
둘째, 사탄의 방해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이제는 거짓 것을 믿게 합니다. 왜냐하면 거짓 것을 믿는 것은 헛된 예배가 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마 15:9)
셋째,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믿고 진리를 따르면 박해를 가합니다. 이것은 과거에도 있었고, 어떤 사람에게는 지금도 박해를 가하고 있지만, 최후의 때에는 범세계적으로 매매 금지를 통해 인간의 기본권과 생존권을 위협하고 심지어 사형령까지 내리게 될 것입니다.
“누구든지 이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하니 이 표는 곧 짐승의 이름이나 그 이름의 수라”(계 13:17)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에게 생기를 주어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계 13:15)
5. 백신 패스제를 통해 본 짐승의 표
여러분들은 “방역패스제”에 대해 잘 알고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나라 뿐 아니라 전 세계 여러 나라들도 시행했습니다. 프랑스는 보건 패스(health pass), 이탈리아 그린 패스(green pass), 독일 2G(geimpft und genesen) Rule, 덴마크 코로나 패스(corona pass), 캐나다 백신 여권(vaccine passport), 이스라엘 그린 패스(green pass) 등입니다.
반대론자들은 기본권 침해라며 격렬하게 저항했지만, 프랑스와 독일 등 유럽의 법원들은 줄줄이 정부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미국에서는 존 바이든 대통령의 ‘백신접종의무화’ 명령이 연방대법원에서 제동이 걸렸지만, 주에 따라 백신패스제를 시행하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도 2021년 11월부터 ‘위드 코로나’(with Corona) 정책을 실시하면서 백신 접종완료자에게 인센티브를 주는 ‘방역 패스제’를 시행했습니다. 백신접종을 완료하지 않은 사람들은, 나중에 일부 조정이 되긴 했지만, 식당이나 카페, 학원, 영화관과 공연장, 독서실이나 PC방, 실내 경기장 등의 출입이 금지되었습니다. 단계적 일상회복(위드 코로나)과 코로나19의 확산으로 방역 강화가 절실한 상황에서 어쩔 수 없는 조치라는 의견과 함께, 개인 인권침해와 의료윤리 문제를 고려하지 않은 잘못된 방침이라는 주장이 대립하였습니다.
이러한 제한과 통제는 특히 교회에 더욱 강력하게 적용되었습니다. 아예 교회를 봉쇄하고, 대면예배를 전면 금지한 것은 국내외에서 매우 날카로운 논쟁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물론 영국과 미국, 독일 등에서도 교회에 대한 봉쇄조치가 취해지긴 했으나, 법원의 판결에 의해 그 불법성이 인정되었습니다. 독일의 경우에는 교회 봉쇄의 정당성이 인정되었지만, 그 요건이 매우 엄격할 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와는 달리 차별적인 제한이 아니었습니다.
물론 초기에 모(某) 기독교 유사 단체 때문에 대구 경북지역에 코로나19가 폭발적으로 확산된데 따른 불안감이 있었던 것은 사실이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식당이나 카페보다 교회에 더 엄격한 제한을 가한 것은 매우 우려되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방역 패스제나 백신 패스제는 절대 짐승의 표는 아닙니다. 그러나 이러한 조치들은 앞으로 더 심한 사태가 일어날 때 전례(前例)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코로나19 사태는 종말적으로 짐승의 표를 가진 자 외에는 매매를 못하게 할 때, 어떤 방식이 가능한지 체험해 볼 기회가 되었습니다.
일요 법령(Sunday Law)은 민주주의 국가에서 그렇게 쉽게 제정될 수 없는 것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예수께서는 예고하신 사람의 미혹과 난리와 난리의 소문, 민족과 나라들의 대적, 기근과 지진, 전염병 등 수많은 재난과 무서운 일들이 일어날 것입니다(마 24:3~8, 눅 21:7~11). 종말에 이를수록 이러한 일들은 더 빈번해지고 더 비참해질 것입니다. 우리는 코로나19를 통해 전염병이 세계를 어떻게 마비시키고 곤궁에 빠뜨릴 수 있는지를 경험했습니다. 최근에는 튀르키예에서 진도 7.8의 강력한 지진으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고 있고, 세계는 핵전쟁을 염려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중동에서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 오랫동안 충돌이 지속되고 있고, 시리아 내전, 이란 핵 문제, 예멘 내전 등 다양한 위기가 중동지역을 불안하게 하고 있습니다. 중국의 대만 문제나 한반도 문제도 시한폭탄과 같습니다.
언젠가 기후변화 등으로 전 지구적으로 엄청난 재난이 일어나고, 사람들의 생존이 위협을 받게 되면, 폭동이 일어나고 정부의 어떤 통제도 소용이 없게 될 것입니다. 예언에 따르면, 그 때에 큰 기만자는 사람들이 거룩한 주일을 범했기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를 받고 있다고 주장하며, 일요 법령(Sunday Law)을 제정하여 강력하게 시행하기 전에는 재난이 그치지 않을 것이라고 주장할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일요 법령이 만들어 질 때, 짐승의 우상이 말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들에게는 매매금지와 심지어 사형령까지 내리게 될 것입니다.
일요일 준수를 강요하기 위해 가칭 “일요 패스제”가 시행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일요일에 교회에 가서 휴대폰에 QR 코드로 인증을 받아야 한 주일 동안 식당이나 마트 출입이 가능하다면, 일요일 준수를 거절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생존에 필요한 식품들을 구입할 수 없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만일 약을 사거나 병원에 가는 일까지 적용된다면, 여기에 굴복하지 않을 사람이 거의 없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은 짐승의 표를 거절하는 사람들에게 매매를 금지하는 효과적인 방법 중 하나가 될 것입니다. 요한은 그때의 광경을 이렇게 예언하고 있습니다.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이름이 기록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그 짐승에게 경배하리라”(계 13:7, 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