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 탄생의 역사적 배경
기독교를 거부하는 무신론자들의 절반 정도는 놀랍게도 예수 그리스도를 역사적 실존 인물이 아닌 신화적 인물로 본다. 모든 지식이 대낮같이 펼쳐져 있는 이 개명한 시대에 아직도 이런 가장 기본적인 역사적 상식도 갖지 못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은 기이한 일이다. 만약 그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예수가 실존 인물이 아니라면 기독교는 그 근거를 잃어버리고 기독교를 믿는 사람들은 설화적 인물을 추종하는 황당하고 비이성적인 사람들이 된다.
기독교는 진공 가운데서 홀연히 생겨난 종교가 아니다. 기독교의 등장에는 역사적인 시점과 장소 그리고 사건이 있다. 태동 시기와 장소는 1세기의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이스라엘 국가이다. 창시자는 요셉과 마리아 사이에 출생한 예수라는 사람이다. 예수는 그 당시의 시대적인 배경 속에서 활동했다. 예수는 1세기의 이스라엘의 예루살렘과 갈릴리를 비롯한 여러 지역의 지명과 풍습, 통용되던 화폐, 이름과 통치 기간이 밝혀져 있는 로마 총독들과 이스라엘 지배 세력자들의 정치, 종교 체제, 로마와 이스라엘의 정치적인 알력 등과 같은 구체적인 상황과 부딪히며 활동했다. 예수의 행적이 진공 상태에서 나온 것이 아니기에 그의 활동 시기 동안의 모든 배경이 되는 정보들은 역사의 기록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쉬운 예를 들어보자. 필자가 ‘박문수교’라는 새로운 종교를 시작한다고 가정해보자. 먼저 사람들을 주변에 모으기 위해 사람들이 따를만한 가르침과 활동을 할 것이다. 사람들이 놀랄만한 비범한 능력과 기적들을 행사한다면 더욱 많은 사람들을 모아서 종교의 형태를 갖추게 될 것이다. 지역에서 명성을 얻어 한국 전역에 알려지는 종교가 되기까지 종교가들의 면밀한 검증이 있게 될 것이다.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박문수교’가 탄생했다고 하자. 그러면 그 종교를 세운 박문수라는 사람의 탄생 시점부터 현재까지의 기간에 생활했던 도시와 학교, 한국의 경제 상황, 대통령들의 이름, 여러 사회적 이슈들이 서로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을 것이다. 후대의 사람들이 ‘박문수교’를 추적하면 그러한 정보들을 확인할 수 있는 것이다. 기독교의 창시자인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정보도 당대의 역사적 정보와 궤를 같이한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성경의 기록
예수 그리스도의 생존 기간의 활동과 예수 그리스도 사후에 일어난 기독교의 형성 과정에 대한 기록은 성경과 일반 세속역사 모두에서 발견할 수 있다. 먼저는 성경의 기록을 살펴보고 다음은 세속역사의 기록을 살펴보자. 예수의 활동에 대한 가장 직접적이고 정확한 기록은 성경 사복음서에 나온다. 마태복음의 기록자인 마태는 예수의 족보를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해서 밝혔다. 아브라함은 이스라엘 모두에게 알려진 조상이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 형제들을 낳고 …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마 1:1~16).
누가는 역순으로 추적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가계를 기록했다. “예수께서 가르치심을 시작하실 때에 삼십 세쯤 되시니라. 사람들의 아는 대로는 요셉의 아들이니 요셉의 위는 헬리요 그 위는 안나요 그 위는 요셉이요 그 위는 맛다디야요 그 위는 아모스요 그 위는 나홀이요 그 위는 에슬리요 그 위는 낙개요. …그 위는 야곱이요 그 위는 이삭이요 그 위는 아브라함이요 그 위는 데라요 그 위는 나홀이요”(눅 3:1~33). 이것보다 더 확실히 한 사람의 신원을 파악할 수 있을까? 예수가 신화적인 인물이라면 인간 조상들의 족보를 가질 수 없었을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 활동의 역사적 현장
필자는 예수가 활동했던 땅들을 여행한 적이 있다. 성경에 기록된 역사의 현장을 둘러보며 기독교가 진공 상태에서 발생한 것이 아니란 것을 다시 한 번 새기게 되었다. 예수 생애 당시의 옛 이스라엘의 도시들에는 로마를 향하여 만들어진 로마 대로(Via Egnatia)가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실감이 났다. 로마는 정복지를 효율적으로 다스리기 위해 가장 먼저 도로를 닦았다. 도로는 1m 깊이로 땅을 파서 자갈과 잡석으로 채우고 석회석과 돌가루를 다진 후 그 위에 견고하고 넓은 박석을 깔아 튼튼하게 만들었고 그 폭은 3~4미터가 되었다. 2000년 전에 완성한 도로가 지금도 유럽 곳곳에 건재한 것을 보면 얼마나 견고하게 건설했었는지를 알 수 있다. 로마를 향한 도로가 건설된 도시는 발전하고 번영하게 되었다.
예수의 대적자들이 예수를 함정에 빠뜨리려 “우리가 가이사에게 세를 바치는 것이 옳으니이까 옳지 않으니이까”(눅 20:22)라고 질문했다. 이에 대해 예수는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눅 20:25)고 답했다.
이처럼 예수와 유대교 지도자들 사이에 있었던 사건들과 다른 사건들이 로마의 속국이었던 이스라엘을 배경으로 한 것이었다. 또한,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을 담고 있는 현장을 발로 걸으며 두 눈으로 확인하며 역사 속에 실존했던 예수의 흔적을 확인하게 되었다. 복음서에 나오는 예수의 행적은 사건이 발생한 시기와 장소와 문화를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예수께서 실존했던 인물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일반 역사의 기록
다음의 내용들을 살펴보면 일반 세속역사의 기록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기간의 활동과 사후에 어떻게 기독교가 생성되었는지를 확인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 당대에 이스라엘은 로마의 식민지로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스라엘을 다스리도록 파견된 로마의 총독들은 본토의 황제에게 이스라엘의 정치적 사회적 상황에 대해 보고를 했고 그 공식문서들이 남아있다. 그 공식 기록들에서 당시 이스라엘의 신흥 종교를 이끌고 있었던 예수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 기록들은 예수의 행적에 대한 중요한 단서를 준다.
❶ 플리니가 로마 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서신과 답변
터키의 비시디아 (Bithynia) 지방 총독이었던 플리니(Gaius Plini, 62~113)가 로마황제 트라얀에게 보낸 공식문서가 있다. 그는 예수님 사후 30년 후에 태어나 활동했다. 그 편지의 내용이 다음과 같다.
“가이어스 플리니가 로마황제 트라얀에게: “저는 그리스도인들에 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를 마치 신처럼 찬양하기 위해 모였습니다. 그들은 서로서로 맹세함으로써 자신들의 그룹을 결집했습니다. 이는 어떤 범죄 행위를 하기 위함이 아니라 반대로, 절도나 강도 그리고 간통을 하지 말 것과 약속을 지키고 맡겨진 재화가 요구될 때 거절하지 말고 내어줄 것을 서약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임 후 그들은 일단 헤어집니다. 그러고 나서 평범한 식사를 함께 나누기 위해 재차 모이는 것이 그들의 관례입니다. 하지만 이마저도 그만두었다고 그들은 말했습니다. 제가 폐하의 명령을 따라 그와 같이 폐쇄적인 모임을 금하는 칙령을 내렸기 때문입니다…. 누구든지 기독교도가 되면 꼭 그렇게 처형되어야만 합니까? 그들은 실제로 무슨 나쁜 일을 한 것이 틀림없는 사실입니까? 만일 피고 스스로 기독교도가 아니라고 한다면 그를 놓아주어도 되겠습니까? … 이 일 후에 저는 무엇이 과연 진실인가 더 알아내는 것이 더욱더 필요하다고 느꼈습니다. 그래서 집사라고 불리는 두 피의자에게 고문을 가했습니다. 하지만 타락한 거대한 미신 외에 아무것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따라서 저는 수사를 연기하고 이제 폐하께 조언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이 문제는 그와 같은 위험에 처한 사람들의 막대한 수만 놓고 봐도 분명히 자문을 구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연령층과 각 계층의 수많은 사람이 남녀를 가리지 않고 이미 그와 같은 위험에 빠져 있습니다. 그리고 더 많은 사람이 똑같은 위험에 처할 것입니다. 이 미신은 단지 도시뿐 아니라 지방의 여러 곳까지 퍼졌습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런 어리석은 것에 감염되어 우리의 신전은 거의 텅 비어버렸습니다. 그런데도 전 아직 이 일을 억제하고 시정하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비시니아 총독의 질문을 담은 공문에 대하여 트라야누스 황제의 답변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로마 통치 영역에 거주하는 모든 주민은 로마의 법령에 따라야 한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의 처벌에 관해서는 별도로 규정한 법이 아직은 없다. 따라서 그들이 특별한 죄를 범하지 않는 한 기독교인이라는 이유로 그들을 색출해낼 필요는 없다. 그것은 시간과 국력을 낭비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단 고발된 자들은 로마법대로 처벌하라. 황제 신상에 분향하고 예를 올리는 자는 방면하되 그것을 거부하는 자들은 처벌하라. 그러나 익명으로 고발하는 것은 받아들이지 말라. 그것은 로마의 법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다.”(Correspondence, Trajan with Pliny, Letters X. 96~97, AD. 112)
❷ 유대인 역사가 요세프스의 기록
다음은 [유대인 고대사]를 쓴 정치가이자 역사가인 요세푸스(Flavius Josephus, AD 37~100)의 증언이다. 그는 예수 사후 몇십 년을 사이에 두고 당시의 현상을 기록했다.
“이때 현자라고 말해야 할 예수가 있었다. 그는 믿기 어려운 공적을 행한 사람이었고, 진리를 기꺼이 받아들일 줄 아는 사람의 선생이었고, 수많은 헬라인들 뿐만 아니라 수많은 유대인의 관심을 끌었다. 본디오 빌라도가 우리 가운데서 지도자 역할을 하는 유력한 사람들의 고소 때문에 이 사람을 십자가형에 처했을 때, 처음부터 그를 사랑했던 사람들은 그를 버리지 않았다. 게다가 그의 이름을 따 ‘그리스도인들’이라 불리게 된 족속들이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다. (유대인 고대사, BK 16, Ch3, 63~64).
❸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의 기록
타키투스(Publius C Tacitus, 55~117)가 110년경에 쓴 [연대기]에도 그리스도에 대한 기록이 나온다. 그는 아시아의 집정관(consul)이며 역사가로 AD 14년부터 68년까지 약 55년간의 로마역사를 기록했다.
“그래서 네로는 그 소문을 잠재우기 위해, 수치스러운 행동 때문에 미움을 받고 있던 자들을 범죄자로 몰아 가혹한 형벌을 가하였다. 군중은 그들을 그리스도인이라 불렀다. 이 명칭의 기원이 되는 그리스도는 티베리우스 재임 때 재정 대리인(procurator)본디오 빌라도에 의해 극형에 처해졌다. 이 황당한 미신 분파는 얼마간 잠잠해졌지만, 그 악의 근원지인 유다에서뿐만 아니라 온갖 끔찍하고 수치스러운 것들이 몰려들어 유행하는 로마에서도 퍼져 나가고 있다.”(타키투스의 연대기 / Annales, 15.44)
이 모든 내용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요세푸스는 예수가 유대 종파에서 분리되어 새로운 종파 활동을 했고 그가 죽은 이후에 그를 추종했던 사람들이 있었고 이것이 로마 제국에 성가신 문제였다. 타키투스는 64년에 일어난 로마 화재사건을 언급하면서 기독교를 ‘혐오스러운 미신’으로 불렀고 이 종파의 설립자인 예수는 테베리우스 황제 때 빌라도 총독에 의해 십자가 처형을 당했다고 언급했다. 플리니우스의 기록은 기독교 종파를 ‘그리스도를 하나님으로 찬양하였던 무리들’이라고 했다. 이처럼 이들은 믿음이 없이 일반 세상 역사가의 눈으로 그 당시의 현상을 기록한 것이다.
이러한 당대의 기록들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 존재했던 실제적인 인물이 확실하다.
현대 학자들의 인정
이러한 여러 자료와 현상들 때문에 진지한 역사학자들은 예수의 실존을 부인하지 않는다. 불가지론자이면서 신약 신학자인 바트 D 어만 (Bart Denton Ehrman)은 말했다.
“그는 확실히 존재했다. 그리스도인과 비그리스도인을 막론하고 고대사를 연구하는 사실상 모든 권위 있는 학자들이 이에 동의한다”.
예수에 대한 증거들은 그 시대의 어떤 사람보다 압도적이다. 진지한 학자라면 예수의 실존을 부정하지 않는다. 이 시대의 대표적인 진화론자인 리처드 도킨스는 “하나님은 만들어진 신이다.”라고 했다. 그런 그도 예수의 존재를 인정했다. “역사를 보면서, 내가 어떤 역사학자들에게 예수가 존재한 적이 없다고 언급한 적이 있지만 이제 그것을 철회한다. 예수는 존재했다.” 그는 역사상 예수 그리스도의 존재와 그 활동의 기록들이 너무나 분명해서 그 존재를 인정했다. 하지만 여전히 기독교가 믿는 예수가 아니라 훌륭한 인간 교사로 인정할 뿐이다.
반 부스트 로버트(Van Voorst, Robert)는 말했다.
“신약성서 학자들과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은 명백하게 죽은 이론으로 간주한다. 성서학자들과 고대 그리스, 로마 역사학자들은 예수가 존재하지 않았다는 학설이 사실상 논박되었다고 여긴다.”
예수 그리스도와 고대 인물에 대한 기록 비교
모든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보다 약 350년 전에 태어난 알렉산더 대왕이 역사적으로 실존했다는 사실을 조금도 의심하지 않는다. 알렉산더에 대한 기록은 알렉산더 사후 400년 이상이 지난 후에야 나왔다.
아리안과 플루타르코스가 쓴 그의 생애에 대한 두 개의 원본 전기 기록이 알렉산더의 역사적 존재성을 입증하는 근거가 된다. 예수보다 350년 전에 활동했고 그의 사후 40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된 두 책에 의해서 알려진 알렉산더와 예수를 비교해 보라.
예수 그리스도의 활동에 대한 기록은 거의 동시대에 쓰였고 고대의 어떤 유명한 인물보다 더 방대한 자료들의 뒷받침을 받고 있다.
또한, 사람들은 로마 황제 아우구스투스, 클라우디우스, 네로, 티베리우스의 통치에 대해 연대순으로 기록한 리비우스와 타키투스의 기록의 정확성에 대해 의문을 갖지 않는다. 리비우스와 타키투스의 작품들과 고대 로마 박물학자 플리니우스 세쿤두스의 작품들은 원본 기록보다 500년 후에 기록된 자료에 나온다.
그런데 예수님의 행적에 대해서는 수백 년 후에 쓰인 것이 아니라 예수의 생애의 한두 세대 안에 기록되었다. 또한, 예수의 역사적 생애의 기록은 다른 고대 유명 인물보다 수천 배가 많다. 이런 역사적인 예수에 대해 의문을 품고 부정하는 것은 지극히 편견에 치우친 태도이다.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상 존재했던 어떤 사람보다도 그 끼친 영향이 커서 많이 언급되고 인용되고 있는 인물이다. 그의 삶의 업적이 너무나 지대해서 세상 역사는 그의 탄생을 기점으로 기원전(BC)과 기원후(AD)로 나누어진다. 예수가 역사상 실재했던 존재라는 것을 알지 못하는 사람은 2023년의 의미조차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이제 예수를 역사적으로 실재했던 인물로 인정하는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보자.
그분은 과연 인류사에 영향을 남긴 훌륭한 성인 정도에 그치는 인물인가? 아니면 많은 기독교인이 믿는 것처럼 하나님의 아들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변에 따라 신앙인과 비신앙인이 구별된다. 이 질문은 이 땅에서와 다가올 세상에서의 영원한 삶의 운명을 결정하는 중요한 질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