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나님의 대한 즐거움의 상실로 인한 곁눈질

죄는 하나님에 대한 즐거움을 상실한 것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사람의 최고의 선이며 행복인데 그것이 깨어져버렸다.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없으면 사람은 행복하지 않다. 그것이 사람이다.

죄의 본질은 무엇인가?

죄는 최고의 선과 가치인 하나님 외의 것에서 즐거움과 만족을 찾으려는 왜곡된 인간 본성의 뿌리 깊은 잘못된 욕망이다. 성경은 하나님을 거절한 인간의 마음이 어디로 향하는지를 보여준다. 에덴동산의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 안에서 최고의 기쁨과 행복을 누리고 있었다. 그런데 사탄이 찾아와 단 두 개의 유혹의 질문으로 그들의 행복을 빼앗아 버렸다. 사람의 운명이 한 순간에 죽을 존재로 바뀌어 버렸다.

에덴동산에서 있었던 동기 불순했던 대화를 마음의 귀를 쫑긋 세우고 들어보자

(사탄)이 여자에게 물어 가로되 하나님이 참으로 너희더러 동산 모든 나무의 실과를 먹지 말라 하시더냐

여자가 뱀에게 말하되 동산 나무의 실과를 우리가 먹을 수 있으나 동산 중앙에 있는 나무의 실과는 하나님의 말씀에 너희는 먹지도 말고 만지지도 말라 너희가 죽을까 하셨느니라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지라”(창세기 3:1-6).

이 대화에 죄의 본질이 나타나 있다. 사탄은 두 가지 악한 씨앗을 심는데 성공했다.

첫째는 하나님에 대한 불신이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아니하리라”(창세기 3:4). 하나님이 거짓말하시는 분이라는 것이다.

둘째는 하나님 자리에 사람이 앉으라는 유혹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사람의 선을 위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이다. 하나님이 사람의 행복을 원하지 않고 뭔가를 속이고 있다는 것이다.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창세기 3:5).

하나님이 사람의 최고의 선이심에 대한 불신은 마음의 보좌에 자신이 앉고자 하는 욕망을 잉태했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자신이 중심이 되고 싶은 교만이 잉태되는 순간 하나님에 대한 즐거움은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에 대한 기쁨이 사라져 버렸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교만이 마음에 자리를 잡자 그 마음이 사람을 이끌어 간 곳이 있었다.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창세기 3:6).

무슨 뜻인가?

그 전에는 하나님이 가장 아름답고, 기쁘고, 지혜로운 분이고, 최고의 가치였는데 이제는 하나님이 아닌 물질이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하고 탐스럽기도 한 것으로 보인 것이다. 하나님에게서 찾아야 할 행복과 기쁨과 즐거움과 만족의 자리를 물질이 대체하는 순간이다. 하나님의 영광이 훼손된 것이다.

죄는 사탄보다 나쁘다. 사탄은 유혹하지만 죄는 하나님을 상실한 마음을 의지적으로 선택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죄는 세대를 거듭할수록 인간의 마음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인간 본성을 지배하게 되었다. 죄는 인간의 마음에서 하나님을 대적하는군대”(마가복음 5)가 되었다.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즐거움은 깨어져 버렸다. 죄의 쾌락이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보다 훨씬 큰 것이 되어 사람은 고통과 멸망의 열매를 맺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이 죄로 인하여 훼손된 결과이다

 

2. 하나님의 의는 죄의 머리를 상하게 한다

바울은 로마서 1장에서 죄의 본질과 죄의 폐해를 기록하고 있다. “하나님의 진노가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의 모든 경건치 않음과 불의에 대하여 하늘로 좇아 나타나나니”(로마서 1:18).

진리는 무엇이고 그 진리를 막는 불의는 무엇인가?

진리는주는 곧 영원히 찬송할 이시로다”(로마서 1:25)에 나타나 있다. 진리는 영원히 찬송할 분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다. 하나님이 최고의 선이며 최고의 가치이며 행복임을 알고 찬송하는 것, 그것이 진리이다. 사람이 하나님을 즐거워할 때 하나님은 영광을 받으시고, 사람은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때 최고의 행복을 누린다. 그것이 진리다.

그렇다면 그 진리를 막는 불의는 무엇인가?

불의는하나님을 영화롭게도 아니하며 감사치도 아니하는 것”(로마서 1:21)이다. “하나님의 진리를 거짓 것으로 바꾸어 피조물을 조물주보다 더 경배하고 섬기는 것”(로마서 1:25)이다.

에덴에서 사람 눈에 피조물이 하나님보다 아름답고 매력적으로 보이기 시작했음을 보았는가?

불의는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로마서 1:28)이다. 하나님에 대한 불신으로 피조물을 경배하고 나아가 자신을 숭배하는 것, 그것이 죄가 지향하는 것이다. 기쁨의 근원을 영원히 파괴하는 것, 그것이 죄의 본질에 있다.

거짓된 기쁨과 즐거움을 찾도록 사람을 유혹하여 영원히 멸망시키는 것이 죄의 마지막 종착점이다. 죄의 본질은 하나님을 멸시하고 자신을 숭배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도 모자라 자신의 영광을 숭배한다.

그것의 결과는 무엇인가?

하나님은 사람들을내어 버려두신다”(로마서 1:24).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내어 버려두신다”(로마서 1:24).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두신다”(로마서 1:26).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신다”(로마서 1:28). 그것이 하나님의 심판의 한 면이다. 죄의 저주이다.

바울은 세 번이나 하나님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 사람들을내어 버려두셨다고 기록하고 있다.

결과는 무엇인가?

사람의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미련한 마음이 어두워졌다”(로마서 1:21). “스스로 지혜 있다 하나 우준하게 되어 썩어지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영광을 썩어질 사람과 금수와 버러지 형상의 우상으로 바꾸었다”(로마서 1:22-23). 마치 100캐럿 다이아몬드를 썩은 생선과 바꾸는 격이다. 가치의 혼란이 극심해서 무엇이 가치 있는 것인지 사람이 모르게 되었다.

하나님의 영광을 멸시하면 하나님의 원칙과 질서가 무너지고 그것은 인간 삶의 모든 면에 악영향을 끼치게 된다. “곧 여인들도 순리대로 쓸 것을 바꾸어 역리로 쓰며 이와 같이 남자들도 순리대로 여인쓰기를 버리고남자가 남자로 더불어 부끄러운 일을 행하도다”(로마서 1:27). 성적 타락은 하나님의 질서가 무질서로 변하는 것을 보여준다.

바울은 21가지 죄악을 기록한다: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 수군거림, 비방,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 능욕, 교만, 자랑, 악을 도모, 부모 거역, 우매, 배약, 무정, 무자비”(로마서 1:29-31).

처참하지 않은가? 이것들의 과정과 끝은 무엇인가?

죄의 쾌락에는 결국 깊은 아픔이 있다. 고난이 있다. 죽음이 있다. 인간 삶에 나타나는 모든 형태의 죄악은 하나님의 영광의 훼손과 관련이 있음을 알게 된다.

다시 말하면 모든 죄악의 해결도 하나님과 관련이 있다는 뜻이다. 하나님을 경배하고, 하나님을 최고로 아름다운 분으로 깨닫고 찬양하게 되는 것이 마음에서 죄의 뿌리를 근절하는 길이다. 하나님이 십자가로 하신 일이다.

하나님은 왜 사람을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가?

죄의 쾌락의 처참함의 결과를 통하여 하나님을 기뻐하는 것이 훨씬 즐겁고 행복한 것임을 깨닫는 것이 죄가 사람의 마음에서 터를 잡지 못하는 이유가 된다.

잘못된 즐거움은 더 큰 참된 즐거움으로만 물리칠 수 있다. 잘못된 기쁨은 더 큰 참된 기쁨으로만 끊을 수 있다. 고난과 아픔과 죽음은 죄의 쾌락에서 벗어나기를 싫어하는 사람에 대한 하나님의 언어이고 호소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사람은 죄를 깊이 슬퍼하게 된다. 죄가 하나님에 대한 즐거움을 가로막고 깨뜨리기 때문이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즐거움인 화목은 어떻게 회복될 수 있을까?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을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케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로새서 1:20). 우리가 십자가의 은혜를 받아들이면 즉시로 일어나는 일이 화목이며 화평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얻었은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으로 더불어 화평을 누리자”(로마서 5:1).

의롭다 하심은 무엇인가?

관계가 올바르게 되었다는 뜻이고 자유롭게 되었다는 의미이며 하나님의 진노가 사라지고 우리의 배반이 없어졌다는 뜻이다.

의롭다 하심의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과의 회복된 화목이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즐거워함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다면 우리는 하나님의 의를 선물로 받았음을 확신할 수 있다. 하나님 외의 것에서 만족을 얻으려는 죄의 본질은 하나님의 의의 선물이 제공하는 하나님과의 화목으로 회복할 수 없는 타격을 입게 된다.

의롭게 된 사람은 하나님을 최고로 즐거워함으로 죄의 머리가 상하게 되었음을 깨닫는다. 십자가의 은혜가 하는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