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 언약은 노아와 그의 가족을 살려주겠다고 약속하신 생명 보존의 언약이다. 죄로 참혹하게 된 세상에서 구원 얻는 은혜의 언약이다. 노아 언약은 재림과 심판의 모형이다(마 24:37-39). 각박한 세상을 살아가는 오늘날의 성도들에게 삶의 참된 길을 제시한다. 세상에 죄악이 관영할 때 안전한 방주 안에 있어야 노아 시대처럼 생명이 보존될 것을 가르쳐 준다.
1. 노아 언약의 배경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시고 “심히 좋았더라”라고 평가하신 아름다운 세상이 아담의 범죄로 인해 죄가 세상에 들어오자마자 상황은 바뀌기 시작하여 마치 박테리아의 번식처럼 죄가 점점 만연하였다. 살인이 일어나고(창 4:8, 23), 일부다처주의가 시작되어(창 4:19), 결혼의 질서가 무너지고(창 6:2). 창조 세계는 망가졌다. 하나님의 아들들(셋의 후손들)이 타락하여 죄가 심각하게 되었다(창 6:1-4). 역사는 흘러 노아 시대가 되자 세상의 도덕적 상태는 타락과 포악함이 극치에 이르렀다(창 6;5-7, 11-12). 하나님에 대한 반역과 죄악이 편만하여 온 세상이 부패하였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우상 숭배가 편만해졌다. 그 결과 무서운 범죄와 난폭한 행위로 인해 불행한 일이 신속하게 증가하였다. 식욕과 비열한 정욕의 과도한 방종으로 남의 아내나 소유물을 폭력으로 빼앗았다. 이에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관영함과 그 마음의 생각의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가라사대 나의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육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창 6:5-7).
2. 언약의 대상자 노아
그 와중에 당대에 하나님과 동행하는 의인이요 완전한 자가 있었으니 노아였다(창 6:9). 그는 마치 승천한 에녹처럼 하나님과 동행하였다(창 5:24).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하여 “의를 전파하는 자”(벧후 2:5)로 삼으려고 언약을 맺고자 하셨다.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창 6:8). 성경에서 “은혜”라는 단어가 처음 등장하는 곳이 바로 여기인데, 은혜란 모든 사람에게 보편적으로 베푸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은총이다. 하나님께서 노아를 선택한 것은 편애가 아니라 은혜였다. 노아가 은혜를 입었다는 말은 그가 마음을 열어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은혜(마 5:45)를 용인함으로 언약의 대상자가 되었다는 의미이다.
3. 노아와 언약 체결하심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내가 홍수를 땅에 일으켜 무릇 생명의 기식 있는 육체를 천하에서 멸절하리니 땅에 있는 자가 다 죽으리라 그러나 너와는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 너는 네 아들들과 네 아내와 네 며느리들과 함께 그 방주로 들어가”(창 6:17, 18)라고 하셨다. 방주에 들어가라는 이유에 대해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네가 이 세대에 내 앞에서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라”(창 7:1)고 하셨다. “언약”이라는 단어가 처음으로 등장하는 곳이 바로 여기 노아 언약과 관련된 창세기 6:18이다. 하나님께서 노아와 맺은 언약을 가리켜 “우리 언약”이라 하지 않고 “내 언약”이라 하셨다. 하나님께서 노아에게 그와 그의 가족은 방주로 들어가라 하신 일방적 명령만 나온다. 하나님의 그러한 명령에 순종해야 언약의 수혜자가 될 것이었다. 주목할 점은 본문에서 “내가 내 언약을 세우리니”에 사용된 히브리어 와하키모티(waháqìmotî)의 기본형 쿰(qûm 세우다)은 새로운 언약이 아니라 기존의 언약을 승인하거나 갱신 혹은 굳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즉 창 6:18에서 말하는 “내 언약”은 이미 존재하는 언약에 대한 최초의 언급이다. 따라서 노아 언약은 이미 존재하고 있었던 원래 언약과 아담 언약을 되풀이하여 확정하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홍수로 쓸어버리실 때 그분께서 창조하신 세상을 버리시는 게 아니고 세상을 지키시겠다는 그분의 뜻이 언약에 담겨 있다. 만일 노아의 식구들이 방주에 들어가면 그들을 지켜 주시겠다고 언약하셨다. 그것은 선물로 주신 은혜의 언약이었다. 노아 언약은 하나님께서 그의 거룩한 백성을 보존하시겠다는 언약이었다. 언약이라는 말에는 하나님께서 약속한 바를 반드시 지키겠다는 강한 의지가 포함되어 있다. 노아에게 “언약”이라는 단어는 하나님께서 약속에 충실하겠다는 맹세와 보증의 의미가 포함된다. 노아와 그 식구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방주 안에 들어갔고, 하나님께서 육중한 문을 닫으셨으며, 하늘의 인(印)이 그 문에 찍혔다. 오직 하나님께서만 그것을 여실 수 있었다(PP, 98. 2). 그들이 방주에 들어간 지 7일이 지나서 폭우가 쏟아졌다.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창 7:11)렸다. “물은 가장 높은 산 위로 15규빗이나 높이 올랐다”(PP 105.1). 방주 밖에 있던 자들은 모두 다 홍수에 엄몰되었다.
결국, 노아와 그의 식구들만 순종하여 방주에 들어감으로 하나님께서 언약을 성취하셔서 그들만 살아남은 자들이 되었다(창 7:23). 하나님께서 시작하셔서 그분이 실행하시고 성취하신, 전적으로 일방적인 언약이었다. 언약에 따라 구원 얻은 자가 “겨우 여덟 명”(벧전 3:20)이었지만 하나님께서 약속을 지키신 은총의 결과였다. 노아가 하나님을 경외하여 방주를 지어 그의 집이 구원받은 것을 두고 성경은 평가하기를, “이로 말미암아 세상을 정죄하고 믿음을 따르는 의의 상속자가 되었느니라”(히 11;7)라고 하였다. 세상을 정죄했다는 것은 악인들의 생활이 너무 악해 심판받게 했다는 뜻이다.
주목할 점은 하나님께서 노아 개인과 언약을 맺으셨으나 그로 인해 그의 가족뿐 아니라 동물에게까지 영향을 끼쳐 “모든 혈육 있는 생물 곧 새와 가축과 땅에 기는 모든 것”(창 8:17)이 생명을 보존할 수 있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한 분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심으로 모든 사람이 속죄받아 구원받는 이치와 같다(롬 5:17-19).
4. 언약 성취에 대한 감사의 번제
마침내 방주가 오늘날 터키 동쪽 국경에 있는 아라랏산(1,537m)에 머물렀다. 하나님께서 노아의 가족들에게 모든 생물을 데리고 땅으로 내려가라고 명하셨고(창 8:15-17), 노아는 방주에서 나왔다. 배 안에 있은 지 일 년 17일 만이었다. 아마 한 천사가 하나님의 명을 받들어 육중한 문을 열어 주었고 그분의 명을 전했을 것이다.
노아가 황폐한 땅에서 자기 집을 마련하기 전에 처음으로 한 일은 제단을 쌓고 하나님께 희생을 드려서, 언약 성취로 구원 얻은 것을 감사하는 일이었다. 하나님께서 흠향하시고 “내가 다시는 사람으로 말미암아 땅을 저주하지 아니하리니”(창 8;21)라고 하셨다. 이 제사는 노아의 가족뿐 아니라 땅에 살게 될 모든 인류에게 축복을 가져다주었다.
노아는 언약의 번제를 드림으로 위대한 희생 제물이신 그리스도께 대한 그의 신앙을 나타냈다. “성난 파도와 격량 속에서도 방주를 안전하게 지켜 주신 분은 그리스도이시었다. 방주 속에 있는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들을 안보해 주실 것을 믿었기 때문이다”(R&H 1901, 3.12). 방주 안팎으로 칠한 것은 역청이었다(창 6:14). 역청으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코페르(kopher)인데 속전이라는 뜻이다.
5. 노아 언약의 표징
창세기 9:11-16에 무지개 언약이 나온다. 하나님께서 언약의 표징으로써 아름다운 무지개를 구름 속에 두심으로 무지개를 보실 때마다 그분의 언약을 기억하시겠다고 선언하셨다. 무지개 언약은 언약의 주체자이신 하나님께서 “다시는 홍수로 멸하지 아니할 것”이라고 일방적으로 선언하시는 약속이다. 이 언약에는 언약의 수혜자가 수행해야 할 구체적 의무에 대한 명시는 없다.
무지개 언약은 다른 언약과는 달리 특수하게 무조건적이다. 오직 하나님의 인자(헤세드)로 주어진 일방적 언약이다. 하나님께 순종하든 불순종하든 상관없이 후대의 모든 사람과 세계와 그 안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향해 일방적으로 주신 언약이다(창 9:12-13).
무지개를 주시는 목적은 후대의 자손들이 무지개의 뜻이 무엇인지를 물을 때에, 하나님께서 다시는 세상을 물로써 멸망시키시지 않겠다는 언약의 증거(창 9:17) 즉 표징으로 무지개를 두셨다는 것을 저들에게 이야기해 주도록 했다.
노아와 맺은 하나님의 언약은 반드시 성취될 영원한 언약(창 9:16)이요, 은혜의 언약이다. 그 언약 덕분에 인류는 멸망하지 않고 주님 오실 때까지 이어질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