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언약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을 시키셔서 시내산에 데려다 놓으시고 그들과 체결하신 언약이다( 8:9).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언약을 근거로 동일하게 진행하신 언약이다. 아브라함 언약과 이 언약을 비교해 보면 공유점이 많다. 순종을 요구하시고, 가나안 땅을 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큰 민족이 될 것, 등이다. 

 

1. 시내산에서의 언약

첫째, 시내산 언약(The Sinai covenant)이라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시내산에 이르렀을 때 하나님과 체결한 언약이기 때문이다. 

둘째, 모세 언약이라고도 한다. 사실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당사자였던 아담, 노아, 아브라함 등의 이름을 붙여 아담 언약, 노아 언약, 아브라함 언약이라 호칭한다. 그러나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하나님과 모세와 맺은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체결한 언약이며 모세는 이 언약의 중재자였다( 19:3-25; 20:19-20). 모세는 2,285m나 되는 시내산(Jebel Musa)을 일곱 번이나 오르락내리락 하면서 중재의 일을 수행하였다. 산 위에서 하나님과 더불어 40주야를 두번이나 보내기도 하였다( 24:18; 34:28). 

셋째, 언약을 언약(the old covenant)이라 한다. 언약( 31:31-34) 대칭 하여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신학적 용어이다. “…. 그는 (kainos) 언약의 중보자시니 이는 (protos) 언약 때에 범한 죄에서 속량하시려고 죽으사…”( 9:15). 여기서 프로토스는시작’, ‘처음이라는 뜻이지 낡았거나 옛날 (archaios)이라는 의미는 없다. 

넷째, 언약(the first covenant)이라고도 한다. 바울은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7; 9:1, 15, 18)라고 말해 정확하게 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했다. 물론 언약을 당연히 둘째 언약(the second covenant)이라고 일컫는다. 

네 가지 용어 중에 시내산 언약, 옛 언약, 모세 언약이라는 용어는 성경에 없는 신학 용어이다. 따라서 성경에 언급된 첫 언약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게 훨씬 더 성경적이라 할 수 있다. 그렇다고 다른 세 가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틀렸다고 말할 필요는 없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과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시기 전에 이미 창세 전 원래 언약과 아담, 노아, 아브라함과 맺으신 언약 등이 있었는데도, 왜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을 첫 언약이라 부르는가? 첫째, 언약의 비준 시점 때문이다. 첫 언약은 시내산에서 표상적인 짐승의 피로 먼저 비준되었고 새 언약은 시내산 이후 나중에 실체이신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흘린 피로 비준되었다. , 시내산 언약을 먼저 비준했기에 첫 언약이라 하고 새 언약을 나중에 비준했기에 둘째 언약이라 일컫는다. 둘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출하신 후 실지로 이스라엘을 처음으로 공식적 한 국가로서 제사장 나라로서 정식 인정하시어 그들과 맺으신 첫 번째 언약이었기 때문이다. 

 

2. 첫 언약의 배경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실 때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 들어가 400년의 기한이 지나면 그들을 구원하여 출애굽 시켜 가나안땅으로 인도하시겠노라고 약속하셨다( 15:13-16). 기한이 찼을 때 하나님께서 그 언약을 기억하셨다( 6:5). 하나님께서 친히 그분의 몫을 이행하여 내 언약을 성취하겠다고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알리셨다( 6:7-9). 따라서 출애굽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언약을 기억하시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2:24). 또한, 그것이 시내산에서 맺은 첫 언약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첫 언약( 19:5-6; 24:3-8)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후손을 한 나라로 선택하여 가나안땅을 주겠다고 약속하신 것을 실행하는 출애굽 과정에서 맺으신 언약이다. 아브라함 언약과 첫 언약은 불가분의 관계이다. 전자는 원인이고 출발점이며 후자는 결과이다. 이스라엘은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함으로 공식적으로 제사장 나라요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었으며, 동시에 여호와 하나님께서 공식적으로 저들의 하나님이 되었다( 19:5, 6). 

 

3. 출애굽 약속 이행 방법

그 방법은 속량이다. 속량(act as kinsman)이란 성경에 105회 나오는 기업 무를 친족 곧 고엘(goel)로 행동하는 것을 의미한다. “가족 중의 한 사람이 빚으로 노예가 되었거나 노예가 될 형편에 처한 다른 가족을 위해 속전(贖錢)을 지불하고 되찾아 오는 것을 말한다.” 하나님께서내가 애굽 사람의 무거운 짐 밑에서 너희를 빼어 내며 그 고역에서 너희를 건지며 편 팔과 큰 재앙으로 너희를 구속(속량)하여 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 6:6-7)라고 하셨다. “큰 재앙으로 속량한 것은 열째 재앙 때에 문설주와 인방에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어린양의 피를 바름으로 구속된 것을 말한다. 속량을 마가복음에는 그분이 대속물이 된 것으로 표현했다( 10:15).

이와 같은 구속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성육신이 되어( 1:14) 이 땅에 오사 기업 무를 자 곧고엘의 방법대로 우리의 친족이 되셔서 자기를 속전으로 지불하시고(딤전 2:6 5:9) 우리를 속량하신 것을 상징한다. 

 

4. 하나님께서 주도하심

하나님께서 이 땅에 내려오셔서( 3:8), 애굽 가운데로 들어가셔서( 11:4), 싸우시고( 1:30) 고통으로 신음하고 있는 그들을 안으시고( 1:31), 그리스도의 피를 상징하는 유월절 양의 피로 속량하셔서( 6:6), 손을 잡으시고( 8:9), 거기서 출애굽 시키셔서 강한 손과 편 팔로 인도하시어( 5:15), 광야에서 삼 개월 동안( 19:1) 물과 식량을 공급하시고, 눈동자같이 지켜 보호하시어( 32:11), 독수리 날개로 업으셔서( 19:4) 시내산까지 인도하셨다. 그리고 언약을 맺고자 하셨다. 전적으로 하나님의 주도하신 인도하심이었다. 이런 구속의 맥락에서 시내산에서 맺은 언약은 죄의 용서와 구속을 위해 하나님께서 희생 제물을 준비하시리라는 약속도 함께 포함되어 있었다. 그래서 첫 언약도 은혜의 언약이라 할 수 있다.

 

5.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으시려는 이유

아담의 언약이나 아브라함의 언약에 구원을 위한 충분한 계획이 이미 존재했는데도 왜 시내산에서 또 언약을 맺으셨는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언약을 체결한 지 400년이 지나서 하나님을 알던 전 세대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다 죽었고, 그 후손들은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는 동안 하나님과 그분의 율법에 대한 지식을 거의 다 잊어버렸다. 그들은 아브라함과 한 언약도 잊어버렸으며 자기들의 정체성마저도 잃어버리고 생활 습관이 이교의 풍속과 유전에 젖어 있었다. 거기에 걸핏하면 불평과 배도에 선봉이 되었던잡족”( 12:38)의 무리도 섞여 있었다. 그들을 재교육하는 것이 필요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는 그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교육하시므로 이 모든 것을 회복시키고자 하셨다. 

 

6.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민족을 택하신 이유는 다른 민족보다 수효가 많았기 때문이 아니었고 더 빼어난 민족이었기 때문도 아니었다. 선택받을 만한 자격이나 어떤 장점이 있어서도 아니었다. 노예 상태에 있었던 별 볼 일 없는 자들이었고 애굽과 비교할 때 정치적으로나 군사적으로 아주 하찮은 자들이었다. 섞인 무리가 있어 문화적 종교적으로도 혼합되어 있었다. 기회만 있으면 다수가 우상 숭배와 반역에 가담하는 골치 아픈 민족이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택하신 이유를 신 7:6-8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첫째,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때문이었다.” 둘째, 열조에게 하신 언약의 맹세를 지키시려는 그분의 신실하심 때문이었다. 즉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하신 언약을 성취시키시려는 의도에서 그렇게 하신 것이다. 

 

7. 이스라엘을 택하신 목적

하나님께서 그들을 구원받을 유일한 대상으로 택하신 것이 아니라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도구로 삼고자 택하셨다.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고 구속의 기별을 세상에 선포하도록 그들을 제사장 나라로 택하셨다( 19:6). 오늘날 하나님의 백성을 택하신 목적과 같다(벧전 2:9).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을 결코 구원을 독점하는 배타적인 무리로 삼기 위함이 아니라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도구가 되게 하려고 택하셨다. 예나 지금이나 구원은 어디까지나 개인적인 문제이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이 인류에게 그분의 품성을 알리고 그들이 세상에서 구원의 샘이 되기를 바라면서 그들을 택하셨다. 하나님께서는 그분의 율법과 구주를 알려 주는 표상과 예언의 지식을 인류 가운데 보존하여 사람들에게 하나님을 드러내게 하려고 그들을 택하셨다. 

 

8. 하나님의 언약 제안

하나님께서 아브라함과 맺은 영원한 언약 즉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고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7:7-8)라는 언약 조항을 성취하기 위해 이스라엘을 국가로 조직하려고 모세를 통해 그분의 제안을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라고 하였다. 그들의 자유 선택권을 존중하는 언약 제안이었다.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19:5, 6). 여기에서내 언약은 아직 첫 언약을 맺기 전이기에 아담과 맺어지고 아브라함에게 되풀이된 언약인 것으로 보인다. 즉 여호와께서 아브라함에게내가 내 언약을 나와 너와 네 대대 후손의 사이에 세워서 영원한 언약을 삼고 너와 네 후손의 하나님이 되리라”( 17:7)라고 선언하신 언약이다. 새번역은내가 세워준 언약을 지키면이라고 번역하였다. 또한, 앞으로 맺을 첫 언약을 가리키는 것으로 볼 수도 있다. 아무튼, 두 언약 다 은혜 언약이고 공유점을 갖고 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와 하나님의 제안을 장로들에게 전했을 때 백성들은 이 제안에 순간적으로 일제히 응답하여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 19:8)라고 호언장담하였다. 모세가 그 대답을 하나님께 보고했다. 그때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체결하시기 전에 그들을 미리 준비하게 하신 후( 19:9-25), 셋째 날에 시내산에 강림하셔서 십계명을 반포하셨다(20:1-18). 십계명은 하나님의 성품의 사본이요, 정부의 기초였다. 

하나님께서는 백성에게 전달할 율법의 구체적인 여러 법규는 모세만 불러 그에게 주셨다( 20:22-23:33). 제단에 관한 법, 종에 관한 법, 폭행에 관한 법, 임자의 책임, 배상에 관한 법, 도덕과 공평에 관한 법, 안식년과 안식일에 관한 법, 세 가지 절기에 관한 법 등이다. 이 법들을 가리켜율례(律例)”라고 일컫는데 법관들이 판결할 때 사용하도록 하셨다. 모세는 백성의 서약과 율례를 여호와의 말씀과 함께 책에 기록하였다.

하나님의 제안에 주목할 것은 첫째, 세상이 다 하나님께 속한 것을 세상 사람들은 모르기에 그것을 알리기 위해 이스라엘 백성을 제사장 나라로 택하시겠다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먼저 애굽에서 구원하셔서 시내산에 데려놓으시고 순종하면 소유가 되고 제사장 나라가 될 것이라 하셨다. 구원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순종을 말씀하셨다. 이미 그들을 구원하신 선재하는 은혜(pre-existing grace)를 기반으로 하여 순종을 강조하셨다. 율법에 대한 순종은 구원의 결과이지 구원의 수단이 아니다. 순종은 축복을 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오히려 받은 바 축복에 대한 자발적인 표현이 되어야 한다. 이스라엘을 선택하여 구원한 조건은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였지 그들의 순종이 결정적 이유가 아니었다. “우리가 순종하므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니 대개 구원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얻는 하나님의 값없이 주는 선물이다. 그러나 순종은 믿음의 열매이다”(SC, 61). 셋째, 중요한 점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구원하신 후에 계명과 율례를 주셨다는 사실이다. 구원이 율법보다 먼저이다. 

 

9. 첫 언약을 체결함

24:1-11에서 실제로 첫 언약이 체결되고 비준된다. 이 언약은 조건적 언약이다. 언약의 조건은 십계명과 언약서에 기록된 것을 순종하는 것이었다. 십계명은 하나님이 친히 선포할 때 그들이 직접 들은 것이고 언약서(the Book of the Covenant)는 율례와 법도( 20:22-23:33)를 기록한 것이었다. 모세가 백성 앞에서 언약서를 낭독할 때 백성들은 받아들여 세 번째로 또다시온 백성이 한목소리로 대답하기를 우리가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준행하리이다”( 24:7) 라고 반응하였다. 산기슭에 제단이 설치되고 그 곁에는 열두 기둥( 24:4)이 언약 제안을 수락한 증거로 세워졌다. 그리고 선택받은 청년들이 소를 희생물로 삼아 언약의 번제와 감사의 화목제를 드렸다. 모세가 그 희생 제물의 피 즉 언약의 피를 백성들에게 뿌려 그 언약을 비준하였다( 24:5-8). 그 제물의 피 일부는 제단에 뿌렸다. “제단에 뿌려진 피는 상징적으로 하나님과 유대(紐帶)를 묶는 것이었고, 백성에게 뿌려진 피는 그들을 언약 관계와 묶는 것이었다”(SDABC 24:6). 이것은 언약을 파기(破棄)하는 것이 생사가 걸린 문제임을 나타내는 것이었다. 

 

10. 언약을 맺은 후 후속 조치

첫째, 하나님께서 모세를 시내산 위로 부르셔서 40일을 지내면서( 24:12-18) 언약의 목적인 구속의 계획을 드러내 보여주는 성소를 지을 것과 그 제도에 필요한 기명들을 비롯한 모든 것을 만들도록 명하셨다( 25-31). 성소 의식의 표상과 상징을 통해 하나님 자신을 더욱 분명하게 나타내시고 그리스도의 희생과 제사장 봉사를 통한 인류의 구원을 예시하실 목적이요 수단이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세 번째로 안식일 준수를 명하셨다. 

둘째, 하나님께서 직접 손으로 십계명을 새기신율법과 계명의 돌판”( 24:12) 주셨다( 31:18; 32:15, 16). 

 

11. 언약 파기와 재언약

불행하게도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오기도 전에 금송아지 숭배로 언약은 이미 깨어져 무효가 되고 말았다. 시내산에서 40일 만에 내려온 모세는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경배하는 타락의 현장을 목격하고 불같은 의분이 일어나 돌비를 던져 언약 파기를 선언했다. 첫 언약은 전적으로 이스라엘이 먼저 언약을 어김으로 그만 파기되고 말았다. 이스라엘 백성은 영적인 교육에서 최초의 가르침에 실패하고 말았다. 첫 언약이 실패한 것은 언약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었고 백성들이 언약을 파기한 데 있었다. 

모세는 하나님께 백성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간구했다( 32:30-35).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용서해 주신다는 언급을 하시지 않은 체 다시 모세와 이스라엘 사이에 새롭게 하는 언약을 맺으셨다( 34:10, 27). 이 언약을 세울 때 모세는 언약 중재자가 아니라 당사자였다. 이 언약은 내가 친히 가서 이적을 행하리라고 갱신하신 언약이었다. 모세의 간절한 기도에 응답하여 하나님께서 다시 새롭게 하시려는 의도로 언약을 맺으셨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곧 내가 아직 온 땅 아무 국민에게도 행하지 아니한 이적을 너희 전체 백성 앞에 행할 것이라 네가 머무는 나라 백성이 다 여호와의 행하심을 보리니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34:10). 하나님께서 이적을 행하심으로 타민족이 두려워 떨 것을 말했다. 아마 요단강이 마른 것( 3:14~17), 여리고 성이 무너진 것( 6:15~21), 우박에 의해 대적이 살육당한 것( 10:1~11) 등의 이적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12. 첫 언약의 기초

첫 언약의 기초는 시내산에서 받은 율법(torah) 즉 모세의 책에 기록된 십계명과 율례와 구체적인 법도와 성소 제도 전체였다. 이것은 하나님의 뜻을 성문화시킨 것이다. 율법은 질서와 조화 그리고 안정감의 대명사였다. 언약의 중심에 있는 십계명은 하나님의 뜻의 표현이며 그분의 품성의 사본이며 그분의 정부의 헌법이다. 하나님의 본질적 속성이 사랑이요, 불변이듯이( 3:6 1:17) 그분의 법의 속성도 사랑이요, 변함이 없다( 5:17-18).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의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결코 변함이 없는 그분께서 천대까지 그의 언약을 이행하신다( 7:9). 언약 안에 있는 율법의 존재는 하나님의 영속성과 신뢰성을 나타낸다.

십계명을 언약의 한 부분으로 주신 이유는 하나님과 동료 인간들에 대한 인간의 의무를 규정하는 데 있었다. 그게 하나님께서 언약의 자녀들을 위해 계획하신 삶의 방식이다. 모세는 율법의 다른 부분들을 제외한 십계명을 특별히 언약이라고 일컬어 십계명과 언약은 불가분의 관계임을 말하였다( 4:13). 언약의 속성은 관계이다. 관계 유지에는 반드시 규칙과 경계가 필요하다. 십계명은 언약 관계를 굳게 결속하여 행복하게 살아가도록 해주는 필수적인 규칙이요 경계이다. 모세는 십계명이 새겨진 돌판을언약의 돌판들이라고 불렀다( 9:9). 그래서 십계명이 성경에서언약의 말씀”( 34:28), “여호와의 언약”(왕상 8:8, 9, 21), “언약의 말”( 11:3, 6, 8), “증거”( 25:16), “증거판”( 31:18; 32:15) 등으로 다양하게 불린다. 십계명이 하나님과 이스라엘 사이에 체결된 언약의 기초였기 때문에 그것을 안치한 궤를 하나님의증거궤또는언약궤라고 불렸다. 

특별히 언약의 한 부분인 율례와 구체적인 법도와 규례의 가르침은 언약의 동반자인 사람들에게 행복을 위하여( 10:12, 13) 제공된 새 생활의 지침이었다. 모든 규정은 질서를 유지하고 혼란을 방지하며 그들을 보호하는 울타리가 되었다. 그 모든 세부 규정은 농사일, 국가의 통치와 사회적인 관계, 종교 행사와 예배에 이르기까지 아주 광범위하다. 

또한, 언약의 한 부분인 성소 제도를 주셨다.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거하시고 행하심으로나는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는 언약을 성취하시기 위함이었다. “내가 내 성막을 너희 중에 세우리니 내 마음이 너희를 싫어하지 아니할 것이며 나는 너희 중에 행하여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될 것이니라”( 26:11,12). 하나님께서 그분의 백성 중에 거하여 행하심으로 친밀한 언약 관계를 성취하기 위해 성소를 짓게 하셨다. 

성소 제도의 핵심 요소는 희생 제도와 제사장 직분이었다. 지상 성소 제도는 새 언약의 그림자요, 상징이요, 참 것의 모형이다. 지상 성소 봉사는 그리스도의 대속적인 죽음과 하늘 성소에서 대제사장의 중보 봉사를 상징과 표상으로 예표하여 속죄 진리를 충분히 드러내 주었다. 짐승의 죽음이라는 구체적이고 명확한 형상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얻는 용서와 구원을 가시적으로 실감 나게 가르쳐 주었다. 

대속이란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죽어야 할 죽음을 대신으로 죽으신 것을 말한다( 1:4). 그것을 세상 죄를 위해 흘리신 속죄의 보혈이라 한다. 그분의 대속의 희생과 보혈이 없으면 죄의 용서도 없고 구원도 없으며 언약은 무효로 되며 그 효력을 잃게 된다. 지상 성소의 모든 제사 제도는 장차 대속적인 죽임을 당하실 그리스도를 바라보게 하는 역할을 하는 본질에서 예언적인 특징을 가졌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지상 성소 제도를 통해 죄인이 용서를 받고 하나님과 언약 관계를 회복하였다. 그러나 결국 희생 제물이 인간의 죄에 대해 속죄할만한 대속물이 될 수는 없었다. 

첫 언약 아래서 주어진 성소 제도에서 동물의 죽음은 장차 흘리게 될 그리스도의 피에 기초하여 허락된 구원의 상징이었지 그 자체가 사람을 구원시켜 온전하게 할 수는 없었다. 바울은이는 황소와 염소의 피가 능히 죄를 없이 하지 못함이라”( 10:4)라고 하였다. 동물들의 피 그 자체는 죄를 용서하기에 무력하였다. 단지 그것은 상징과 표상을 통해 제공되었던 죄의 용서와 구원이었는데, 장차 세상 죄를 위한 그리스도의 죽음을 보여주는 예표였을 뿐이었다. 물론 의식을 행함으로 용서를 경험하고 죄책감에서 자유를 얻었다. 이스라엘 백성은 성소 제도의 상징들을 통하여 장차 오실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을 연습하는 것이었다.

대속 제물의 실체가 되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시고 레위 제사장 직분을 대신하여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아 하늘 성소의 대제사장이 되셨을 때 지상 성소 제도는 끝이 났고 제사들의 효험은 없어졌다( 7:12, 18, 19). 지상 성소 제도의 모든 제사 제도가 그리스도를 표상했으므로 대제사장인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직임을 취하시기 전까지만 효력을 발휘하였고 그 후로는 폐기되었다( 9:27 8:13). 

 

13. 첫 언약의 표징

십계명의 중심에는 안식일 계명이 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의 주요한 외형적인 표징이다. 하나님께서는 안식일을 지키는 것을대대로 영원한 언약을 삼을 것이니 이는 나와 이스라엘 자손 사이에 영원한 표징”( 31:16, 17)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성경에 안식일을 일컬어 네 번이나 표징(sign)이라고 하였다( 31:13, 17 20:12, 20). 십계명 중 유독 안식일 계명이 언약의 표징이 될 수 있는 이유는 고대 근동 지역에서 언약(조약)을 체결할 때 문서에 찍었던 인(도장)의 전형적인 특징을 지녔기 때문이다( 20:10,11). 첫째, 신의 정체는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둘째, 통치 영역과 권세의 영역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이다. 

안식일은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실 때 제정된 것이 아니라 그전에도 이미 존재했다. 시내산에 이르기 전에 있었던 만나 사건은 그것을 증명한다( 16). 안식일의 기원은 창조주일 일곱째 날에 하나님의 안식을 선언한 창 2:2, 3에서 찾아볼 수 있다. 비록 거기에 일곱째 날이 안식일이라고 명시하지는 않았지만 일곱째 날이 안식일인 것을 성경에 처음으로 명시한 출 16:26, 29을 보면 확실하다. 또한, “안식하셨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샤바트(shabat)인데, 명사형으로 안식일을 가리키는 샵바트(shabbat)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다. 2:2, 3에는 안식일(sabbath)이라는 단어가 사용되지 않았지만, 저자는 하나님께서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신 일곱째 날이 안식일임을 분명히 확언하고 있다”(G.F. 워터만, 존더반, 그림성경백과사전, 5 183). 

일곱째 날은 하나님의 안식일이다. 성경은 분명히일곱째 날은 네 하나님의 안식일인즉”( 20:8)이라 하였다. 안식일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인간이 결코 변경할 수 없는 불변의 영속성이 있다. 안식일은 창조주일 이후에 모든 부조들이 준수하였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말씀하시면서 아브라함이 율법 즉내 계명과 내 율레와 내 법도”( 26:5)를 신실하게 순종했다고 인정하셨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의 오랜 노예 생활로 안식일을 잊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 시켜 시내산으로 인도하신 후 언약과 구원의 표징으로서( 5:15)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히 지키라고 명하셨다. 주목할 것은 십계명보다 구원이 먼저라는 점이다. 그분은 첫 언약의 당사자들도 아브라함의 모본을 따를 것을 기대하셨다.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언약의 표상(symbol)이 아니라 언약의 표징이다. 표상은 실체가 오면 없어지지만, 표징은 오히려 강화된다. 안식일은 구속의 은혜로 주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구원하는 은혜의 상징이다.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속에서 영원한 은혜 언약의 표징이 된다. 

또한, 안식일은 하나님을 깊이 알도록 마련된 지식의 표징이요 그분께서 구별하신 성화의 표징이다( 31:13-17). 아담 언약의 표징이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와 가죽옷이었다면, 노아 언약의 표징은 무지개였고, 아브라함 언약의 표징은 할례였으며, 시내산에서 맺은 첫 언약의 가시적인 표징은 안식일을 기억하여 지키는 것이다. 물론 둘째 언약의 표징은 십자가이다.

 

14. 첫 언약의 흠

얼핏 보기엔 첫 언약이 아주 잘 된 체결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바울은저 첫 언약이 무흠하였더면 둘째 것을 요구할 일이 없었으려니와”( 8:7)라고 했다. 뭔가 이 언약에 꺼림칙한 흠이 있다는 뜻이다. 그 흠은 언약 자체에 있었는가? 아니면 백성에게 있었는가? 첫 언약의 문제점은 언약 그 자체가 아니라 백성들이 믿음으로 언약을 지키지 못한 데 있었다. 

첫 언약과 둘째 언약은 언약의 기본 요건이나 구성에 있어서 동일할 뿐 아니라 첫 언약에서 제공된 구원이나 새 언약에서 제공된 구원은 같은 것이다. 언약 자체는 흠이 없었다. 그렇다면 백성에게 있었던 첫 언약의 흠은 도대체 무엇이었는가? 

첫째,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언약을 제안하셨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해하여 잘못되게 약속하였다. 그리스도 없이 자신의 힘으로는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식하지 못하고 선뜻 건성으로여호와께서 명하신 것을 우리가 다 행하리라”( 19:8; 24:3, 7)라며 스스로 자신이 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언약을 체결했다. “하나님께서 도와주신다면혹은성령의 도움으로라는 말이 보이지 않는다. 

둘째, 그들이 순종하겠다는 약속은 하나님께서 구원해 주심에 대한 사랑의 반응이 아니었다. 믿음이 아닌 자신들의 노력에 기초하여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하려 했다( 9:31, 32). 그들은 순종을 구원의 결과로서가 아니라 구원의 수단으로 믿고 있었다. 그들은 믿음을 통해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대신에 율법에 순종함으로써 자신의 의를 쌓고자 하였다. 바울은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0:3)고 하였다. 믿음이 기초가 되고, 그 위에 행위가 따라야 한다.

셋째, 결국 시내산 언약의 문제점은 백성들이 그 언약을 파기했다는 것이다( 31:32). 그들은 언약을 맺은 지 불과 몇 주일이 지나지 않아 하나님과 세운 언약을 깨뜨리고 새긴 우상에 엎드려 경배하였다. 현장을 목격한 모세는 의분이 일어나 두 돌판을 집어던져 깨뜨림으로 언약의 파기를 선언하였다. 주님께서 손을 잡고 이집트 땅에서 그들을 인도하셔서(32)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함으로 남편 역할을 하셨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은 불충실하여 언약을 어기고 남편인 하나님을 배반하였다. 그게 그들에게 있었던 흠이었다. 

그런데 이러한 몇 가지 흠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왜 첫 언약을 맺으셨는가? “이스라엘이 이행할 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던 것을 할 수 없다는 무력감을 깨닫게 하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율법을 지키려는 그들의 시도를 허용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아에 대한 신뢰심에서 하나님에 대한 신뢰심으로, 자신의 노력에 대한 확신에서 하나님께서 이루신 일에 대한 믿음으로 이끌리게 될 것이었다”(SDABC 19:6). 

 

15. 시내산에서 맺은 첫 언약이 은혜 언약이었을까? 아니면 행위 언약이었을까?

물론 첫 언약은 새 언약과 크게 다름없는 은혜 언약이다. 비록 첫 언약이 더 구체적인 명령과 율법과 함께 주어졌으나 이전의 모든 언약과 마찬가지로 은혜의 언약인 게 분명하다. 첫 언약은 성소 제도를 통해 그리스도의 희생과 제사장직을 예시함으로 용서와 구원의 은혜를 제공하였다. 첫 언약을 체결할 때 언약 그 자체가 은혜로 베풀어진 선물이었고 그 배경도 역시 이스라엘을 애굽으로부터 속량하신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 이삭, 야곱에게 약속하신 은혜의 언약을 기억하여 시작된 언약이기에 그 언약들과 별로 다를 바 없었다. 따라서 그 연속성을 생각하면 첫 언약도 그 이전의 모든 언약과 마찬가지로 마땅히 은혜 언약에 포함해야 한다. 그렇지 않고 홀로 불쑥 행위 언약으로 등장하는 것은 자연스럽지 못하다. 

31:31-34을 보면, 옛 언약의 많은 측면이 새 언약 속에 남아 있음을 볼 수 있다. 두 언약은 언약 조항에 하나님의 법이나 순종의 요구나너희로 내 백성을 삼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니라는 약속 등의 공유점이 있다. 첫 언약은 아브라함의 언약과도 공유 내용이 많다. 첫 언약이 다른 언약과 본질(substance)에 있어서 같다는 뜻이다. 따라서 첫 언약과 새 언약을 율법과 복음으로 대척 관계에 있는 것으로 볼 필요는 없다. 두 언약 안에 은혜와 율법이 통일을 이루며 조화롭게 공존한다. , 첫 언약은 서로 상충되어 보이는 은혜적 요소와 율법적 요소가 함께 만나 조화를 이룬다. 첫 언약도 결국 그리스도에게로 인도하는 몽학선생 기능을 한다. 이처럼 모든 언약의 본질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그 은혜는 하나님과 인간의 결속을 굳게 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