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선물은 온전하고 흠이 없다. 하나님의 선물은 완전하여 더할 것도 없고 뺄 것도 없다. 하나님이 준비하신 예수 그리스도에게 부족한 점이 있어 사람이 조금이라도 채워 넣어야 한다면 사람에게는 쉼이 영원히 없을 것이다. 그것은 은혜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인간의 행위가 얼씬도 못하게 하신 전적인 선물이다.
선물이 아니면 은혜가 아니다. 그것은 믿음의 손을 내밀어 받을 수밖에 없다. 인간이 그것을 믿지 못하고 받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에 비하여 너무나 초라한 자신의 연약함과 흠 많음으로 더럽혀진 손을 차마 벌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것이 버려야 할 행위다.
하나님이 그 손을 잡아주시길 바라신다. 온전하고 흠이 없는 하나님의 손이 흠 많고 더러운 내 손을 기뻐 잡으시기를 원하심을 알고 담대하게 내밀어 하나님의 은혜의 손을 잡는 손, 그것이 믿음의 손이다. 아는 것 없이 어찌 믿으랴! 믿음이 없이 어찌 잡으랴! 완전하고 풍성하며 흠이 없는 하나님의 선물을 믿음의 손으로 받을 수만 있다면 그 사람은 쉼을 얻고 평안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구원을 얻는 것이다.
우리는 부족하나 하나님이 선물로 준비하신 예수님을 믿는 그 믿음은 흠이 없이 온전하다. 그 믿음의 원천이 하나님이 완전하고 흠이 없게 준비하신 예수님이기 때문이다. 사람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것은 그 믿음뿐이다. 하나님이 바라시는 것도 그것뿐이다.
그는 왜 장대에서 내려올 수 없었을까?
시므온(Simeon, 390~459)은 기둥성자로 이름을 날린 이집트인이었다. 그는 그리스도인이었지만 극심한 고행으로 죄를 끊어내려 시도했던 사람이었다. 그는 40일 금식을 26회나 실행했고 짐승 가죽으로 옷을 삼고 쇠줄을 목에 감았으며 오랫동안 머리를 자르지 않아 머리칼이 땅에 끌렸다. 그는 온종일 서서 기도했다.
그는 마음에서 일어나는 번뇌가 감각을 통해서 들어온다고 생각하고 423년에 2m 높이의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움막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했다. 그의 기둥은 점점 높아져 10m에 이르렀고 죽을 때까지 35년 동안 그 위에서 하늘만 쳐다보고 살았다. 위에서 몸을 씻으면 아래에서 사람들이 귀한 물이라 하여 받아 마시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는 번뇌를 끊고 마음의 평화를 얻었을까? 쉼을 얻었을까? 그가 한 일은 끝없는 장벽을 뛰어넘으려는 격이었고 흠 많고 불완전한 사람이 예수님만이 가능한 흠 없고 온전한 구원을 스스로 이루려는 어리석기 짝이 없는 시도였다. 그는 장대에서 결코 내려올 수 없었다.
예수님이 재림하셔서 ‘너는 땅에서 무엇을 하였느냐?’고 물으시면 그는 무엇이라 대답할 것인가?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로마서 1:17). 하나님이 온전하고 흠이 없는 선물로 준비하신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 자체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셔서 믿으라고 하신 선물이다.
하나님이 주신 예수님이 완전하고 흠이 없기 때문에 온전하신 예수님을 믿는 믿음이 온전한 것의 본질을 갖는 것이다. 예수 있는 믿음만이 온전하다. 예수 없는 어떤 믿음도 불완전하다. 믿음은 예수고 예수는 믿음이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 그 믿음이 온전한 것이 되는 이유다. 예수를 받아들인다는 것은 온전한 믿음을 받는 것이다. 믿음도 선물인 이유다. 그 믿음이 하나님이 나를 구원하실 근거다.
예수를 믿음으로 그 온전한 선물인 예수를 받아들인 사람은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아 사는 의인이다”(롬 1:17). 그 사람만이 마침내 주위를 둘러볼 수 있게 될 것이다. 자신의 구원에, 믿음에, 무언가를 내가 더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이웃을 돌아볼 마음의 여유가 있겠는가? 여유나 기쁨이 있을 수 없는 것이다. 위대한 사랑으로 가장 작은 자에게 눈을 돌리는 사람은 하나님의 구원과 믿음을 온전한 선물로 받은 사람이다. “임금이 대답하여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여기 내 형제 중에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이 곧 내게 한 것이니라”(마태복음 25:40). 작은 자를 섬기는 것은 구원받기 위한 수단이 아니라 구원의 감동으로 자연스럽게 솟구치며 넘쳐흐르는 생수의 시냇물이다.
믿음으로만 얻는 구원의 도(道)는 위기에 처해 있다
인간의 행위를 구원에 섞고자 하는 시도는 그 생명력이 질기고도 질기다. 중세기를 호령했던 교황권은 ‘행위로 말미암는 의’를 가르쳤다. 비성서적인 그 가르침은 사람의 마음에 자유와 평안을 가져다 줄 수 없었다. 수많은 고행자를 양산했으며 사람들은 쉼 대신에 하나님의 정죄에 메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루터의 위대한 종교개혁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는다는 로마서의 깨달음에서 시작되었다. 하나님이 준비하셔서 이루어주신 구원의 선물을 사람은 믿음으로 받아들이면 되는 것이었다. 그것 외에는 하나님이 준비하신 다른 구원의 방도는 없었다. 소나기의 뇌성에도 두려워 떨었던 루터는 마침내 예수님 안에서 마음의 쉼을 얻을 수 있었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로마서 1:17). 이 한 구절이 전(全)세계를 호령하던 무소불위의 교황권을 무너뜨린 것이다.
종교개혁의 물결은 견고한 교황권의 성채의 벽에 금이 가게 하더니 1798년 교황 피우스 6세가 나폴레옹의 부하장수 벌티어에게 사로잡혀 감옥에 갇히게 되면서 치명상을 입었다. 그때 마땅히 무너져 사라져야 했을 ‘행위로 말미암는 의’의 교리도 치명상을 입었을까? 예수회의 출범과 트렌트 종교회의(1545~1563)를 거치면서 그 교리는 교묘하게 살아남았다.
가톨릭교회는 구원, 즉 죄인이 의롭게 되는 것은 오직 예수를 믿음으로만 이루어진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부인한다. “의지는 타락하고 부패했지만 지성은 오염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며 예수님이 이루신 구원(칭의)은 미완성이므로 인간의 행위가 더해진다고 가르친다. 인간은 완전을 성취할 수 있으며 칭의를 쟁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내재하시는 성령이 그리스도의 사역을 대체함으로서 이 일이 이루어진다고 가르친다. 그 교리가 교묘한 것은 그리스도의 사역을 성령으로 대체하기 때문이다. 장대 위에서 믿음으로 내려온 사람을 다시 장대 위로 밀어 올리는 오류이다.
대쟁투의 핵심은 무엇인가?
그리스도와 사탄 사이에 벌어지는 대쟁투의 핵심은 늘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였다. 과거에도, 현재도,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이다. 기독교는 혼란 중에 있다. 가톨릭교회의 내재하시는 성령으로 인한 ‘행위로 말미암는 의’는 갈수록 힘을 발휘하고 동조자를 끌어 모으고 있다. 그렇게 되는 이유 중의 하나는 많은 기독교회가 값싼 은혜의 수준에 머물러 있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은 값없이 주어진다고 하여 값싼 것이 아니다. 그것이 값없이 주어진 것은 그것의 값어치가 너무 크기 때문이다. 태양빛과 공기가 공짜인 것은 그것이 인간이 값을 지불할 수 없는 가치를 지녔기 때문이다. 생명에 절대적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께서 제공하신 구원이 값없이 주어진 것은 사람이 갚을 수 없는 무한한 가치를 지니기 때문이다. 그것이 공짜인 것은 사람이 그것을 믿음 외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생명과 직결된 태양빛과 공기가 공짜이듯이 영생과 직결된 십자가의 공로는 선물일 수밖에 없다. 그것에 값을 매기고 사라고 한다면 모든 인류는 파산할 것이다. 가난한 사람은 아예 생각할 수도 없을 것이다. 값을 매길 수 없는 무한한 희생이 지불된 구원이 선물로 주어졌음을 명심해야 한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이 은혜를 값싸게 취급하여 지탄받는다고 하여 ‘행위로 말미암는 의’로 돌아갈 수는 없다. 그것은 중세암흑시대로 회귀하는 것이다. 오죽했으면 세상의 학자들이 ‘행위로 말미암는 의’가 지배했던 교황권의 시대를 종교암흑시대라고 했겠는가? 예수가 없는 시대는 암흑천지의 시대다. 오류가 주류가 되면 개인이나 사회나 역사가 암흑기가 되는 것이다.
온전하고 흠 없는 하나님의 선물인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은혜를 감사함으로 자연스러운 열매가 맺히는 그리스도인의 삶이 되지 않는다면 ‘행위로 말미암는 의’의 신앙과 ‘값싼 은혜’의 거짓 종교는 항상 되살아 날 것이다.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위하여 생명을 바친 순교자들이 오늘날 ‘값싼 은혜’로 전락한 그리스도인의 삶을 본다면 통곡하지 않겠는가? ‘행위로 말미암는 의’로 쉼과 평안을 잃고 마음이 고행 중에 있는 그리스도인을 본다면 애통해하지 않겠는가? 나는 어떠한 신앙을 하고 있는가?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