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하늘성소에서 부르는 그리스도의 커튼 콜
거듭났다면 죄가 없을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난 사람인데 어떻게 죄를 지을 수 있을까? 우리가 죄를 지으면 거듭나지 못했다는 증거라며 사탄이 공격할 때 우리는 절망감을 느낀다. 성경은 그리스도인에게는 정죄함이 없다고 하면서 또 죄가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고 말한다.
서로 상충되지 않는가? 무엇이 진리일까? 성경이 두 가지를 다 말하고 있으니 둘 다 진리다. 무슨 뜻일까?
사도 바울은 분명하게 말한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로마서 8:1-2). 그렇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정죄함이 없다. 결코 없다.
그런데 요한 사도는 이렇게 그리스도인들에게 말하고 있다. “만일 우리가 죄 없다고 말하면 스스로 속이고 또 진리가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할 것이요”(요한일서 1:8).
무슨 뜻인가? 요한은 죄 없는 그리스도인은 없다고 말하는 것이다.
“나의 자녀들아 내가 이것을 너희에게 씀은 너희로 죄를 범하지 않게 함이라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일서 2:1). 요한은 우리가 죄를 지어도 거듭나지 못했다고 말하지 않는다. 죄를 짓더라도 대언자가 있다고 말한다.
오직 거듭난 자들에게만 이런 대언자가 있다. 요한은 또 말한다. “누구든지 형제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 범하는 것을 보거든 구하라 그리하면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범죄자들을 위하여 그에게 생명을 주시리라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 모든 불의가 죄로되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도다”(요한일서 5:16-17).
요한은 “사망에 이르지 아니하는 죄도 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인이 짓는 죄는 이러한 죄이다. 거듭났어도 죄를 지을 수 있다.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도 있기 때문이다. 유전적인 연약함, 실수들, 어떤 나쁜 습관 등. 그러나 그리스도인에게는 대속자이며 대언자이신 그리스도가 계시다. 그리스도인은 실수하더라도 하늘 성소에 계신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성소에 계신 그리스도는 우리의 죄들이 십자가에서 사해졌음을 우리 마음에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망에 이르지 않는 죄가 있다고 해서 계속 죄를 지어도 된다는 의미는 아니다. 회개와 성령의 도우심을 통하여 죄를 극복해야 한다. 그렇다고 그가 거듭나지 않은 사람은 아닌 것이다.
우리는 중세 가톨릭교회를 대항하여 종교개혁을 이끈 마틴 루터가 불굴의 믿음의 소유자이임을 알고 있다. 그러나 그가 어떤 갈등을 겪었는가는 잘 모르는 경우가 있다. 신약성경 번역에 한참 열중하고 있어야 할 루터는 친구인 멜랑히톤에게 1521년 7월에 다음과 같은 편지를 보냈다.
“저는 굳고 냉랭한 마음으로 여기 편안히 앉아 있습니다. 불쌍하지요! 기도도 거의 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해 거의 슬퍼하지도 않으며, 오히려 길들여지지 않은 제 육신의 맹렬한 불길 가운데 타들어가고 있습니다. 그 결과, 제 영혼이 불타는 것이 아니라 제 육신이 정욕과 게으름과 나태함과 잠으로 불타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저에게서 떠나신 것은 아마도 여러분이 저를 위해 기도하기를 그쳤기 때문일 것입니다… 저는 8일 동안 한 줄도 쓰지 못했고, 기도나 연구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것은 부분적으로는 저의 방종 때문이기도 하고, 또 저를 귀찮게 하는(변비와 치질) 때문이기도 합니다… 저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습니다…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곳에 혼자 죄에 빠져 있는 저를 위해 기도해 주십시오.”(E. G. Rupp and Benjamin Drewery, eds., Martin Luther: Documents of Modern History, New York: St. Martin’s Press, 1970, pp. 72-73).
거듭난 그리스도인도 죄에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그는 그의 상태를 괴로워하고 죄를 미워한다. 그리고 기도한다. 대속자이며 대언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그리고 다시 힘을 얻는다. 그는 믿음의 사람으로 더욱 자라난다.
2. 성령은 거듭난 그리스도인을 경고로 지키고 대언자로 구원한다
거듭남을 경험하는 그리스도인들은 실수가 있고 연약하여 죄를 지을 수 있지만 삶은 꾸준히 하나님을 향해 가고 선한 열매들을 맺는다. 그런 과정에서 거듭난 죄인들은 자신들에게 대언자와 대속자가 있음을 잊지 않는다. 더욱 더 십자가의 은혜를 감사하게 된다.
요한 사도는 거듭난 사람이 죄에 휩쓸릴 때 “하나님께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그도 범죄하지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 났음이라”(요한일서 3:9)고 경고한다. 성령께서는 거듭난 그리스도인이 죄에 노출될 때 그가 얼마나 위험에 처해 있는지 일깨우신다. 그리고 그를 다시 대속자 되시는 예수님께 인도하고 용서를 바라보게 한다. 그는 죄를 고백하고 씻음을 받는다. 예수님을 향한 사랑이 새로워진다. 관계가 회복되고 죄를 다시 미워하게 된다. 하나님을 기뻐하고 용기를 얻는다.
그리스도인이 죄를 지어 자신을 바라볼 때 그동안의 신앙의 세월이 헛것처럼 보이고 자신이 한심하게 생각될 수 있다. 낙망과 절망에 빠질 수 있다. 양심의 칼날에 상처를 입는다. 자신이 거듭나지 못했다는 생각이 머리를 치켜세운다. 거듭난 사람이 이런 일을 경험할 때 요한의 말씀은 그 사람을 절망에서 건져낸다. “나의 자녀들아… 만일 누가 죄를 범하여도 아버지 앞에서 우리에게 대언자가 있으니 곧 의로우신 예수 그리스도시라”(요한일서 2:1). 참으로 위로되는 말씀이 아닌가!
거듭난 그리스도인, 때로 죄를 짓는 그리스도인은 경고와 위로를 받는다. 십자가의 용서를 바라보고 성소에서 대언하시는 그리스도를 바라본다. 거듭난 그리스도인은 죄의 쾌락보다 하나님을 즐거워하는 것이 훨씬 더 큰 행복을 주는 것임을 끊임없이 깨달으며 죄의 근원이 말라가고 죄의 뿌리가 뽑힘을 보고 경험하게 된다.
천로역정을 쓴 존 번연은 그리스도 안에서 온전한 구원을 얻은 경험을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나의 선한 마음이 내 의를 더 낫게 만드는 것이 아니며 나의 악한 마음이 내 의를 더 나쁘게 만드는 것도 아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신 예수 그리스도’(히브리서 13:8) 바로 그분이 나의 의이시기 때문이다. 이제 내 발목에서 사슬이 풀어졌다. 나는 고통과 사슬에서 해방되었다… 무서웠던 성경구절들이 더 이상 나를 괴롭히지 않았다. 이제 나도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뻐하며 집으로 돌아갔다”(John Bunyan, Grace abounding to the Chief of Sinners, Hertfordshire, England: Evnagelical Press, 1978, pp. 90-91).
“우리의 믿음은 부침이 있고 단계가 있다. 그러나 우리의 안전은 부침도 없고 단계도 없다. 우리는 믿음으로 인내해야 한다. 이것이 진리다… 어둠에 지나치게 억눌려 자신이 그리스도인인지 모를 수도 있다. 그러나 당신은 여전히 그리스도인이다”(존 파이퍼, 하나님을 기뻐할 수 없을 때, Ivp: 2005, p. 336).
우리의 안전은 부침도 없고 단계도 없는 우리의 의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다. 아멘 아닌가! 그러니 즐거워하라. 기뻐하라. 찬송하라. 예수님을 바라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