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31] ‘입혀주시는 의로 우리는 구원을 받은 것 아닌가요? 그리스도로 옷을 입었으니 그것으로 충분한 것 아닌가요?

[답변]누구든지 그리스도와 합하기 위하여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침례를 받은 자는 그리스도로 옷 입었느니라”( 3:27)라고 말합니다. 이 말씀은 당시 로마에서 이뤄지던 어떤 일을 배경으로 합니다. 로마 황제는 포로로마노 광장에 원로원과 장군들과 관료들과 백성들이 모이도록 하고, 자신의 후계자인 아들에게 황제의 옷을 입혀 등장시킵니다. 황제의 옷을 입은 그가 로마의 상속자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로 옷 입었으니, 황제의 옷을 입고 들 나귀처럼 살 수 있을까요? 결코, 그럴 수 없습니다.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마다 불의에서 떠날지어다”(딤후 2:19), “복음에 합당하게 생활하라”( 1:27)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화와 관련하여 두 가지 의가 있습니다. “전가된 의가 있으며, 나누어주신 의가 있습니다. 전가된 의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고유의 것으로 우리에게 전가되며, 나눠주신 의는 그리스도께서 나누어주셔서 우리 안에 있는 고유의 것입니다.”맨튼, Ephesians (1678), p. 266.

많은 사람들이전가된 의입혀진 의를 단순한호의정도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모든 것이 생명이 있고, 역사하는 힘이 있습니다. 단순한전가된 의구원의 망또가 아닙니다. 한편, ‘나누어 주신 의하나님의 의라 불리는데, 신자가 그것과 전혀 관계가 없어서가 아니라, 그것이하나님의 율법과 일치되기때문입니다.가타커, Christian Mans Care (1624), p. 24.

따라서, “그리스도의 의가 완전히 우리 밖에 있으며 우리 안에는 전혀 없다고 하는 견해 전혀 성경적이지 않은, 그리스도께서 용서는 하시지만, 삶을 거룩하게 하시는 데는 무력하다고 하는 신성모독적인 견해입니다. 백스터, Scripture Gospel Defended (1690), “To the Reader”; 케빈, p. 269.

 

[질문32] 두려운 마음으로 율법을 지키는 것은 종의 마음이 아닌가요? 이것은 그리스도인의 자유의 반대가 아닌가요?

[대답] 앞에서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진 이중적인 신분에 대해서 말씀드렸습니다. 은혜의 언약과 부르심에 대하여 우리는자녀의 마음으로 순종하지만, 엄위한 입법자 앞에서 우리는종의 마음으로 순종합니다. 경외하는 마음에는 마땅히 가져야 할 두려움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그것은 자의적인 충동과도 다르고 노예 근성과도 다른 것입니다. 예수께서 보여주시고 걸어가신 온전한 순종의 길, 믿음의 좁은 길이 두 극단 사이에 있습니다.

 

[질문33] 어쨌든 순종이 강요된다면 그것은 강제 아닌가요? 그것이 율법 아래에 있는 상태 아닌가요?

[답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안락의자 정도로 생각하시는 분들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의 사랑은 피 뿌린 사랑입니다. 그 사랑이 바울을 사로잡았고 굴복하게 했습니다. 바울은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고후 5:14) “강권하다라는 말은에워싸다’, ‘포로로 잡다’, ‘억압하다라는 의미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그의 의지를 사로잡았다는 말씀입니다.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라 할지라도 그것이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어 내기에는 전적으로 무력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8:35). 하물며 죄나 유혹에 굴복하겠습니까? 하나님의 법에 불순종하겠습니까? 결코, 그럴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는 상태(고후 5:14)하나님의 법이 우리의생각에 있고, 우리의 마음에 그 법이 기록된 상태( 8:10)입니다. 사랑은 죽음보다 강합니다.

결코, 참된 신자는 순종으로 내몰린 적이 없습니다. 또한, 그는철저한 순종의 요구를 가혹하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프레스톤, 1630,, pp. 20, 27. 그는 하나님을 기뻐하듯이, 그분의 율법을 기뻐하기 때문입니다. 십계명 서문을 보십시오. 구원의 은혜가 먼저 주어졌다고 선포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자유하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20:2). 하나님의 계명을 중하게 여기고 순종하지 않는 사람이 하나님의 자녀일 수 있을까요? 율법에 불순종하는그것은 대단히 나쁜 징후입니다.”제이콥, The Theology of the Old Testament (1955), pp. 280, 281.

 

[질문34] 어쨌든 율법은 멍에이고 짐이 아닌가요? 율법의 행위에 매여 있으면, 신자의 삶에 기쁨이 사라지지 않나요?

[대답] 앞에서도 기쁨에 대해서 말씀을 드렸는데 또 말씀하시는군요. 이미 충분히 설명을 드렸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님 율법의 수월함과 가벼움은 우리의 힘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교통하심과 더불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에 비례합니다.”에임스, 1641, p. 338, 그리고 그 생애에는 생명의 샘에서 솟아나는 기쁨과 활력이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순종의 상태가 죄의 멍에에서 벗어난 상태입니다.

 

[질문35] 율법 안에는 자유가 없고, 그리스도 안에 자유가 있는 것 아닌가요? 어떻게 은혜의 자유와 율법의 계명이 함께 있을 수 있나요?

[답변] 이 질문 역시 율법을 속박으로 보고, 기쁨과 자유가 없는 종의 상태로 보는 것입니다. 위에서 그리스도인의 마음에는 이중적 충성이 이뤄지는 마음이 있다고 이미 말씀드렸습니다. 참된 신자, 그는삶의 규칙으로서의 계명으로부터는 해방되지 않았고, 반대로 그분의 자유로운 영에 의해 그것에 기꺼이 순종하도록 준비되었습니다.

따라서 중생한 사람에게는 율법이 복음, 심지어는 자유의 법이 됩니다. 크룩, True Blessednesse (1613), p. 85.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의 뜻 행하기를 즐기오니 주의 법이 나의 심중에 있나이다 하였나이다”( 40:8). 하나님의 법은 자유를 침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은혜 아래 있는 사람은” “더욱 자유로운 섬김에 더욱 충실한 순종으로 이끌려 갑니다.”크래독, 1650, p. 162. “모든 경우에 신자로 하여금 행하게 하는 제1의 동기는 하나님으로부터의 계명이며 이것은 그가 하나님 안에서 온전해진 징표 중 하나입니다.프레스톤, 1629, pp. 290-94.

 

[최종 요약]

우리의 삶을 새롭게 하는 충분하고, 넉넉하고, 강력한 은혜그리스도와 약속성령 이 주어졌습니다. 이 은혜에 따라 합당한 삶의 열매가 그의 행위로 드러나지 않는다면 신약성경에서열매행위는 한 낱말이다, 그 은혜는 철회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적 음성은 신실한 안내자가 아닙니다. 성령은외부의 법을 통회하는 자의 마음에 새겨주시는 분입니다.새 언약.

바울은 모세의 입을 빌려서 말합니다. ‘하나님은 심히 두려운 분이라구요( 12:21). 하나님의 권위와 사랑과 약속이 그분의 법으로 주어졌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자녀의 마음’, 하나님은 아버지으로종의 마음하나님은 주권자 으로 율법을 순종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그리스도의 사랑이 강권하고, 성령께서 역사하여 순종하게 하십니다.

는 관계적인 측면에서 4가지 속성이 연결되어 있는하나의 개념입니다. 먼저 의는 ① 전능하신 하나님의 구원의 행위로서 의( 51:7, 8)와 ② 하나님이 선포하신 의롭다 하심으로서 의( 54:10~17)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의 희생을 통해서 죄인을 구원하시고 의롭다 선포하셨습니다. 를 입게 된 사람이 어떻게 살겠습니까? ③ 그는 그분의 의에 반응합니다. ‘순종과 행위로 반응하는 의가 있습니다( 6:8 ). 그리고 ④ 하나님과의올바른 관계와 상태가 유지되는 의가 있습니다( 32:17~20 ).Bailey, Jesus Through Middle Eastern Eyes (2008), 77-81. 하나님의 의는 그 은혜의 수혜자에게 행동을 촉발시키고( 5:22), 그 반응과 유지되는 거룩한 상태가라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즐거이 순종하는 것으로 그의 마음에 하나님의 법이 새겨져 있음이 드러납니다. 즉 율법에 순종하는 의로운 생애가 영생을 선물로 받기에 합당한 믿음을 가졌다는 증거로 거룩하신 입법자 앞에 제출될 것입니다( 12:50; 11:19; 2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