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언약을 비교해 보면 비록 새 언약이 더 좋은 언약으로 일컬어지긴 하지만, 언약을 구성하는 기본적인 요건에서는 옛 언약이나 새 언약이 별다른 차이가 없다. 두 언약의 변하지 않는 같은 속성이 연속성을 나타낸다. 그런 관점에서 첫 언약이 중단된다거나 해지된다는 어떤 암시도 없다.

칼 바르트는 첫 언약은 오히려 결코 폐할 수 없다고 하여 단절을 부인한다( 31:36).

아담 언약은 구속을 강조하고, 노아의 언약은 보존, 아브라함의 언약은 약속을 강조하듯이 첫 언약은 율법과 성소 제도를 강조한다. 그와 같은 모든 강조점은 결국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합쳐지고 통일되어 그분에 의해 성취 완성된다. 새 언약은 어떤 의미에서 새로워진 언약이라 할 수 있다. 새 언약이 첫 언약을 폐하는 게 아니라 동일한 언약인데 적용 방법을 갱신하여 새롭게 한다는 의미로 새로워진 언약이라 일컬을 수 있다. 새 언약은 첫 번째 언약의 완성이요 성취이다. 예컨대 출 19:5, 6에서 첫 언약의 목표를 내 소유가 되겠고,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고 약속하신 것이 새 언약에서 성취되어 베드로후서 2:9에서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라고 하셨다.

새 언약은 배타적이 아니고 보편성을 띤 영원한 언약이다. 어떤 후속 언약으로 대체될 수 없는 언약이다. 창세로부터 종말까지 불연속을 거절하고 연속성을 나타낸다. 둘째 언약은 첫 언약을 폐지하거나 근본적으로 무효(nullification) 또는 대체(replace)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보충(supplement)하여 결국 완성시킨다.

신학자 게인(Roy Gane, Andrews University)새 언약이 옛 언약을 무효화하는 것이 아니라 단계가 누적되어 연속적으로 이전 단계에서 구축한다라고 하였다. 옳은 말이다.

따라서 예레미야가 새 언약은 첫 언약과같지 않다”( 31:32)라고 한 것은 두 언약이 대척 관계에 있다는 뜻이 아니고 차원이나 방법이 다르다는 뜻이다. 그러나 두 언약은 본질이 같다. 

사도 바울은새 언약이라 말씀하셨으매 첫 것은 낡아지게 하신 것이니 낡아지고 쇠하는 것은 없어져 가는 것이니라”( 8:13)고 하였다. 이것은 첫 언약의 지상 성소 제도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로 낡아지고 폐기되었다( 9:27)는 뜻이다. 새 언약을 비준한 그리스도의 보혈은 첫 언약의 희생 제물들을 낡은 것 또는 무익한 것이 되게 하였다. 두 언약의 공통점 혹은 동일점은 다음과 같다. 

새 언약과 첫 언약의 주도자는 동일한 하나님이시다. 따라서 두 언약 다 하나님의 언약이지 인간의 언약이 아니다. 사람은 수혜자일 뿐이다. 

새 언약이든 첫 언약이든 모두 다 하나님의 은혜요, 선물이다. 그분의 뜻에 따라 언약 대상자를 선택하시고 언약을 은혜와 선물로 제공하신다. 은혜의 택하심에 반응하여 동의하는 자들은 누구나 다 은혜 언약의 수혜자가 된다. 

두 언약은 공유하는 게 많다. 두 언약의 기초는 동일한 율법이다. 출애굽을 통해 둘 사이의 관계를 표현한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고 그들은 내 백성이 될 것이라는 언약의 목표와 공식은 두 언약이 다 공유한다( 6:7 31:33; 32:38 11:20). 두 언약 다 언약의 대상자는 하나님의 백성이다.

두 언약의 조건이 다 순종인데, 하나님의 은혜와 마음의 변화로 순종을 할 수 있다.

옛 언약 아래서 제공된 구원의 방법과 새 언약 아래서 주어진 구원의 방법은 서로 다르지 않다. 옛 언약에서나 새 언약에서나 구원은 행함이 아니라 믿음으로 말미암아 주어진다. 옛 언약에서 제공된 구원과 새 언약에서 제공된 구원은 같은 것이다. 첫 언약의 진리를 가르쳐 주는 성소 봉사에서는 상징과 표상을 통해 용서와 구원이 제공되었고 새 언약의 성소에서는 그리스도의 죽음과 대제사장 봉사를 통해 실제로 구원이 성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