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의 주창자 예수 그리스도는 신화적인 인물이 아니고 역사적인 인물이며 단순히 성인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며 메시아였다.

이 사실이 확인되었기에 세계에서 가장 많은 신도를 가진 종교가 되었다. 기독교인은 그 예수를 신앙하며 뚜렷한 삶의 방향과 목적을 가지고 살아간다.

사람들은 궁금해한다. 세상 역사는 어디로 가고 있는가? 역사에는 목적과 방향이 있는가? 역사의 주체는 누구인가? 역사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이 무엇인가? 역사란 무엇인가? 이에 대해 기독교는 확실한 답을 준다.

 

두 가지 역사관

역사에 대한 위의 질문에 많은 역사가는 다르게 정의했다. 그리스의 역사가였던 투키디데스는우연을 제외하고는 인간의 의지만이 역사를 만들어간다라고 했다. 유명한 역사가 카(E. H. Carr)역사란 역사가와 그가 접하는 여러 사실 사이의 지속적인 상호작용의 과정이며 현재와 과거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라고 했다. 그는 역사적 사건 혹은 사실로서의 역사가 있고 역사가에 의해서 해석된 역사가 있다고 했다. 이를 위해 역사가는 사료(史料)를 바탕으로 역사가 자신의 합리적인 추론과 분석을 통해 역사를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프란세스카 모파키스(Francsesca Morphakis) 박사는역사는 사람의 행동, 결정, 상호작용 그리고 행위에 관한 연구이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정의에 따르면 역사에 하나님은 없다. 모든 것은 인간들의 야심과 투쟁의 결과이며 정치가들과 권력자들이 그 주인공이다. 인간의 의지와, 행동, 상호 작용이 역사를 결정한다. 역사는 뚜렷한 방향과 목적이 없고 역사가 어디로 가고 있고 어디에 이를지 아무도 모른다. 방향과 과정과 목적지를 모르니 당연히 미래 역사는 안개 속에 있다. 역사는 의미 없이 다만 무한히 반복된다.

그러나 성경의 역사는 세속역사와 뚜렷이 구별된다. 역사는 시작과 과정과 끝이 정해져 있으며 그 모든 과정이 분명한 목적을 가지고 클라이막스를 향하여 나가고 있다. 역사의 주인공은 세상의 권력자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이다. 성경 역사가 지적하는 것처럼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점으로 주전(BC)과 주후(AD)로 나누어졌다. BC는 영어의 Before Christ, 그리스도 이전이란 뜻에서 나왔다. AD는 라틴어의 Anno Domini, 주님의 해라는 의미에서 나왔다. 역사(History)는 한마디로 그의 (His) 이야기 (Story)이다. 실제로 역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흘러 왔다. 예수의 이야기는 크게 둘로 나누어진다. 초림과 재림이 그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

고대 세계 역사의 초점은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이었다. 세상 역사가 우연히 흘러가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한 하나님의 구속의 계획을 따라 진행되었다. 하나님께서는 죄로 인해 멸망 받게 된 인류를 구원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다. 그리스도의 초림의 시기에 대해 성경은 강조적으로 표현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사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4:4, 5).

때가 차매란 구절은 세상 역사를 위한 하나님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말해 준다. 구약의 모든 사건은 예수 그리스도의 오심을 위해 준비되었다. 많은 선지자를 통하여 지속해서 오실 구속주 메시아에 대해 적어도 100개 이상의 예언이 주어졌다. 오실 장소. , 조상, 부모, 성장, 침례 받는 때, 십자가 등의 세밀한 사항이 모두 예언되었다.

초림에 대한 예언을 더 자세히 보려면 이 기사의 제4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언을 참조하라.

예수 그리스도의 초림을 위한 때는 세상 창조 전에 이미 정해졌다. 그 사실에 대한 한 가지 예는 로마 황제 가이사 아구스도의 호적령이다. 초림 당시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로마의 지배권은 지중해 지역과 소아시아 지역 전역에 걸쳐 있었다. 이스라엘은 로마의 속국으로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다.

이런 로마의 지배권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셔서 이룰 사명을 전파하기에 좋은 토양이 되었다. 여러 국가가 한 정부 로마의 통치하에 연합되어 있었고 한 언어가 널리 사용되어 민족들 간에 소통이 원만이 이루어졌다. 유대인들이 각처에서 연례 절기에 참석하기 위해 모여들었다가 돌아가서 구세주에 대한 소식을 전파할 수 있었다.

예수님의 탄생의 때의 기록이 누가복음 2장에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육신적인 부모였던 요셉과 마리아는 호적을 위해 갈릴리 나사렛에서 베들레헴으로 긴 여행을 했다. 그 거리는 144km가 되는 먼 길이었다. 그들이 나사렛에서 호적을 등록하지 않고 베들레헴까지 여행한 배경에는 하나님의 섭리와 통제가 있었다.

구약 미가 5:2에는 메시아가 베들레헴에서 출생할 것이 예언돼있다. 이 예언이 성취되기 위해 적어도 두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다.

첫째는 가이사 아구스도가 로마의 권력 투쟁의 최종적 승자가 된 것이다. 로마의 권력 투쟁은 복잡하고도 치열했다. 로마는 원로원이 통치하는 공화정 중심의 통치 체제를 가지고 있었다. 카이사르는 원로원에 대항하여 삼두정치로 과도기적인 체재로 옮겨갔다. 카이사르, 폼페이우스, 크라수스가 권력을 분점했고 후에 카이사르가 실권을 잡게 되었다. 그러나 카이사르가 살해당하며 권력은 다시 제2차 삼두정치로 분점 되었다.

옥타비아누스와 안토니우스, 레피두스 세 사람의 권력 투쟁에서 최종적으로 옥타비아누스가 권력을 차지했다. 옥타비아누스는 이후 황제가 되어 절대 권력을 행사했다. 그의 경쟁자였던 안토니우스는 이집트의 여왕 클레오파트라와 사랑에 빠져 오랫동안 로마 본국에서 떨어져 있었던 관계로 로마에서의 영향력을 잃어버렸고 악티움 전쟁에서 최후를 맞이했다.

황제가 된 옥타비우스는 행정의 귀재였다. 그는 로마 치하의 모든 식민지를 효과적으로 통치하기 위해 모든 식민지에 호적령을 내렸다. 호적 조사를 통해서 모든 제국의 인구조사가 이루어졌다. 이것은 로마의 통치와 지배 그리고 세금 징수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게 했다. 많은 세금이 로마의 창고를 채웠고 이를 통해 로마 시민들의 복지가 크게 향상되었다. 바로 이 황제가 누가복음 2 1절에그 때에 가이사 아우구스도가 천하로 다 호적하라 하였으니라고 언급된 그 황제이다. 그 호적령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지가 예언된 대로 베들레헴이 되었다.

이스라엘에서 수천리 떨어진 황제의 권력 싸움의 결과가 결국 성경의 예언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인간들의 권력 투쟁과 남녀 간의 사랑이 복합적으로 작용해서 결국 하나님의 뜻을 이루게 된 것이다.

두 번째 조건은 민족적 자존심의 개입이었다. 로마의 호적령은 각 사람이 자신의 거주지에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로마의 지배를 받는 것에 민족적 자존심이 상해 있었다. 그래서 그들은 로마의 방식이 아닌 자신들의 방식, 곧 본적지에서 호적을 신고하도록 했다.

누가복음 2:4~5에는 요셉이 베들레헴으로 올라간 이유가 나온다. “요셉도 다윗의 집 족속이므로 갈릴리 나사렛 동네에서 유대를 향하여 베들레헴이라 하는 다윗의 동네로 그 약혼한 마리아와 함께 호적하러 올라가니 마리아가 이미 잉태하였더라.” 그들은 본적지에 호적을 하기 위해 만삭이 된 몸으로 144km나 되는 거리를 여행한 것이다.

이러한 예수님의 출생의 배경과 과정을 보면 한 가지 사실이 명백해진다. 세상 역사는 세상 권력자들과 여러 인간적인 요소들이 작용해서 이루어지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 하나님께서 모든 역사의 과정을 지배하신다는 것이다. 성경은 말한다. “이는 순찰자들의 명령대로요 거룩한 자들의 말대로이니 지극히 높으신 이가 사람의 나라를 다스리시며 자기의 뜻대로 그것을 누구에게든지 주시며 또 지극히 천한 자를 그 위에 세우는 줄을 사람들이 알게 하려 함이라”( 4:17).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

예수의 초림 이후의 세계 역사는 그 방향과 목적이 예수 재림을 향하여 나아간다. 모든 역사의 종점과 클라이막스가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에 귀착된다. 재림이 일어나는 때의 상황과 조건은 초림의 조건과 평행되는 개념이 많이 있다. 초림의 때는팍스로마나의 시대, 즉 세계의 절대 세력 로마에 의한 평화가 유지되던 시대였고 한 언어로 소통이 가능했다. 재림의 때에는팍스아메리카나의 시대, 즉 미국이 세계 절대 세력으로 미국에 의한 평화가 유지되는 시대이다. 모든 정보는 미국을 통해서 공유되고 세계는 영어라는 언어로 소통이 이루어지고 있다.

요한계시록 13장에는 새끼 양 같은 두 뿔을 가진 세력으로 표상되는 미국이 전 세계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13:11~18).

미국과 이라크 사이에 전쟁이 터졌을 때 필자는 병원의 원목실에서 근무했었다. 당시에 직원이 600명가량 되었는데 채플 시간에 힘주어 강조했다.

이 전쟁은 결국 미국의 승리로 끝날 것입니다. 앞으로 다른 어떤 세계정세의 변화가 일어나도 모든 일은 미국이 그 세력을 더 확장하는 쪽으로 진행이 될 것입니다. 미국의 세력이 강해져서 사람들의 신앙 양심을 강제하고 억압하는 적그리스도의 활동을 강행할 때 그리스도 재림의 때가 가까운 것입니다.”

필자가 말한 것처럼 전쟁은 미국의 승리로 끝났고 전쟁의 도발자인 사담 후세인은 포로로 잡혀 교수형에 처해졌다. 그렇게 확신 있게 전쟁의 결과를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내가 국제 정세가 밝아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이 그렇게 예언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초림이 성경의 예언을 따라 정확히 이루어진 것처럼 예수님의 재림도 하나님의 정한 시간에 따라 정확히 이루어질 것이다. 때로 성경의 분명한 가르침을 무시하고 조급하게 예수님의 재림의 날짜를 정하고 큰 사회적 문제를 일으키는 종교 집단들이 있지만, 재림은 분명히 있을 것이다. 성경은 재림의 때와 시기는 아버지의 권한에 속한 것으로 우리가 알바 아니라고 말한다( 1:7).

하나님은 우주의 통치자이시며 그 권능으로 우주의 운행과 만물의 질서를 유지하시는 분이시다.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뿐만 아니라 이 세상 역사의 주관자이며 통치자이시다. 예수님의 초림은 그 사실을 분명히 드러냈고 예수님의 재림은 그 사실을 우주 앞에 확증할 것이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는 기독교 믿음의 핵심이며 그분은 모든 믿는 자의 구원자가 되신다.

필자는 대학 시절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회심의 경험을 했다. 그전에도 창조주 하나님의 존재를 부정할 수 없었으나 예수를 체험하지 못한 신앙은 복음의 감격과 기쁨이 없는 건조한 것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을 똑바로 바라보고 죄 용서의 은총을 경험했다. 그리고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되는 복음( 1:17)을 선포한 사도 바울의 복음을 이해하게 되었다. 복음을 깨우치자 하루아침에 세상이 달라졌다. 꽃과 나무와 풀잎과 새와 강물과 하늘 그리고 땅에 보이는 모든 것들이 밝은 모습으로 나에게 미소를 보냈다. 온 우주의 모든 사물을 통해 나의 영혼에 하나님의 사랑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들어왔다.

그 후 필자의 삶은 오로지 예수 그리스도에게 집중되었다. 구원은 교리가 아닌 예수 그리스도에게 있다. 더 정확히 표현하면 모든 교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이루어져 있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완성된다. 예수 그리스도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요 구원의 주님으로 알고 고백하는 것보다 더 큰 영광과 축복은 없다.

아멘 찬송과 영광과 지혜와 감사와 존귀와 권능과 힘이 우리 하나님께 세세토록 있을 지어다”(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