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드워즈(Jonathan Edwards, 1703~1758) 목사님은 미국 기독교회에서 회개의 말씀을 전하기로 유명한 분이었다. 그는 죄를 죄라고 하며 회개를 강력하게 전하였다. 교회는 부흥하였고 성도들은 영적으로 축복을 받았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서 성도들은 목사님의 설교가 귀에 달콤하지 않았다. 결국 어떻게 되었을까? 교회는 목사를 230대 23으로 의결하여 내쫓아버렸다. 좀 더 귀에 달콤한 설교, 자기들의 마음에 드는 설교를 하는 목사를 원하게 되었다. 설교 단상은 타협하는 설교가 선포되었고 성도들은 기분이 좋았지만 그들의 신앙은 위험에 처하게 되었다.
에드워즈 목사는 인디언에게 선교하였고 후에는 프린스턴 대학교의 전신인 뉴저지 대학 총장이 되었다. 오늘날의 한국교회의 실상은 어떤가? 마치 2,000여 년 전 예수님의 설교를 듣기 싫어하던 종교지도자들처럼 옳은 말씀, 깨우는 말씀, 회개를 촉구하는 설교, 살리는 말씀은 인기가 없다. 타협하는 설교, 귀에 달콤한 단상이 인기가 있는 시대, 그리스도인의 신앙은 위기에 처해 있는 것이다.
타협은 항상 위기를 불러 왔다
구약의 책 사사기는 ‘실패의 책’이라고 부른다. 약 350년간의 이스라엘 백성의 실패를 기록하고 있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은 백성을 버린 참담한 실패의 역사이다. 사사기는 모든 영적인 실패는 타협으로 시작됨을 보여준다. 사사기의 거의 모든 기록은 타협이라는 거래로 짜여 있음을 볼 수 있다. 악을 완전히 정복하지 않고 버려두면 오히려 그 악에 의하여 정복당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이스라엘은 가나안과 동맹을 맺고(사사기 2:2), 통혼하고(3:6), 점점 동화되다가 우상 앞에 엎드려 절하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배도한다. 마침내 악의 노예가 되어 부르짖는다.
느슨한 타협의 결과는 노예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이다. 사사기는 악순환의 고리가 일곱 번이나 반복되는 것을 보여준다(3장~16장). 타협 – 죄 – 고통 – 부르짖음 – 구원 – 평화 – 타협 – 죄 – 고통 – 부르짖음 – 구원 – 평화 – 타협…. 악순환이 거듭될수록 죄의 역사의 수레바퀴는 더 힘차게 돌아간다(2:18, 19). 타협이라는 거래는 끊기가 쉽지 않다. 그것은 죄의 고리이다. 이런 진절머리 나는 악순환의 결과는 어떠할까? 부패와 죽음이다(17~21장).
이스라엘은 외적 재앙과 내적 재앙으로 고통 속에 울부짖는다. 나라는 외세의 침략으로 고통 받고, 사회는 내적 타락으로 극심한 혼란 상태가 된다. 도덕적 무질서, 양심의 마비, 선악의 혼재, 불법의 성함, 무정부 상태, 우상숭배, 성적 타락이 바로 곁에 있다. 결국 자기 파멸이다.
타협의 고리를 끊어내지 않으면 그것은 깊은 곳으로부터 부패하게 만든다. 타협은 항상 위기를 불러오고 파멸로 끝난다. 그러니 타협하는 설교를 하는 목회자는 불의한 목회자요, 타협하는 설교를 달콤하게 듣는 성도는 멸망의 수레바퀴에 운명을 맡기고 있는 셈이다. ‘역사는 반복된다’고 하지 않는가! 역사에서 배우지 못하는 사람은 어리석다고 하지만 오늘날의 기독교회와 그리스도인이 타협의 달콤한 거래를 시도하고 역사를 반복하고 있지는 않은지 생각해야 한다.
사사기는 다음과 같은 말로 끝난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사사기 21:25). 이스라엘의 진짜 왕이 누구신가? 하나님이시다. 그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말씀을 버리고 보기 좋고, 듣기 좋고, 하기 좋은 일을 하다가 기어코 멸망하고 말았다.
타협의 시대, 여로보암에게 배우라
타락한 이스라엘 왕과 백성을 지칭할 때 반복적으로 언급되는 구절이 있다. “여로보암의 모든 길로 행하며,” “여로보암의 길로 행하며,” “여로보암의 죄를 따라 행하며”(열왕기상 16장). 여로보암의 어떤 죄가 그토록 치명적이었기에 그는 역사의 죄인으로 성경에 기록되어 있을까? 그의 죄의 핵심은 타협하는 신앙이다.
솔로몬 왕 사후에 이스라엘은 북방 이스라엘과 남방 유다로 분리되었다. 하나님은 여로보암에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그의 왕조가 축복을 받으리라고 약속했지만 그는 믿지 않았다. 그의 불신은 다음의 길로 그를 이끌었다. “여로보암이 … 그 마음에 스스로 이르기를 … 만일 백성이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전에 …올라가면 이 백성의 마음이 유다 왕 된 르호보암에게로 돌아가서 나를 죽이고… 르호보암에게로 날아가리로다.”(열왕기상 12:25-26).
그는 마음에 스스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행하기 시작한다. “이에 계획하고 두 금송아지를 만들고…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의 신이라”(열왕기상 12:28). 가짜 신을 만든 것이다. “저가 … 레위 자손 아닌 보통 백성으로 제사장을 삼고 … ”(열왕기상 12:31). 가짜 제사장, 즉 거짓 목사를 세운다. “팔월 곧 그 달 십오일로 절기를 정하여 유다의 절기와 비슷하게 하고 … 저가 자기 마음대로 정한 달 곧 팔월 십오일로 … 절기로 정하고 벧엘에 쌓은 단에 올라가 분향하였더라”(열왕기상 12:32). 그는 그리스도의 구원의 기별의 의미를 담고 있는 절기에 손을 댄다. 가짜 복음이다.
여로보암의 신앙은 가짜 신, 가짜 목사, 가짜 복음으로 얽어 놓은 타협의 결정체다. 타협의 진면목을 보여준다. 타협은 결과적으로 배도임을 보여준다. 결과가 어떠했는가?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을 몰아 여호와를 떠나고 큰 죄를 범하게 하매”(열왕기상 17:21). 여로보암의 불신의 정신은 타협적 신앙의 모습으로 발전하였고 자신과 이스라엘이 큰 죄를 범하게 하였다. “죄의 삯은 사망”(로마서 6:23)이므로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의 운명은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타협의 위험한 거래, 하나님은 어떻게 하셨는가?
열왕기상 13장에 보면 하나님은 타락하여 멸망으로 질주하는 여로보암과 이스라엘을 회개시켜 구원하시기 위하여 두 가지를 보내신다. “하나님의 사람”과 “여호와의 말씀”(열왕기상 13:1)이다. “하나님의 사람”이 선포한 “여호와의 말씀”은 회개와 심판의 기별이다. 열왕기상 13장은 34절로 되어 있는 짧은 장이지만 “하나님의 사람”이 16번, “여호와의 말씀”이 14번이나 반복되어 나타난다. 무슨 뜻인가?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선포되는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절절한 호소의 음성이 마음을 두드리고 있지 않은가? 사탄은 큰 위기를 느꼈다. 그가 타협의 신앙으로 세워놓은 배교의 거짓 신앙이 무너질 위기에 처한 것이다.
이스라엘에 선지자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러나 그는 선지자의 이름을 가진 사탄의 종, 타협하는 거짓 선지자이다. 그런 모습이 가장 가증스럽고 무서운 신앙인의 모습이다. 사탄은 그 거짓 선지자에게 거짓 말씀을 주어 유다에서 올라온 하나님의 사람에게 보낸다. 어떤 신앙인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 세상에서 가장 강한 악의 보루는 버림받은 죄인이나 타락한 부랑자의 부정한 생애가 아니라 겉으로는 덕망 있고 존경할 만하고 고상해 보이나 실제로는 죄를 품고 악이 깊숙이 침투해 있는 생애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에게 벧엘에서는 “물도 마시지 말고 음식도 먹지 말라”(열왕기상 13:9)고 하셨다. 무슨 뜻인가? 금식하라는 뜻이다. 타협이 넘치는 벧엘 같은 곳에서는 영적으로 깨어있으라는 것이다. 정신을 바짝 차리지 않으면 사탄의 공격에 넘어질 것을 경고하신 것이다. 벧엘에서는 금식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 그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냈다는 거짓 선지자의 말을 듣고 그의 집에 들어가 먹고 마시게 된다. 하나님의 말씀보다 사람의 말을 더 귀담아 들은 그 선지자는 죽임을 당하게 된다. 타협하는 신앙인을 통하여 사탄은 많은 사람을 미혹하고 멸망으로 이끄는 것이다.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타협의 시대, 어떻게 해야 할까?
시카고에서 성경대회가 열렸다. 주제는 “성경이 오류가 없다는 것에 대한 변증을 어떻게 할 것인가?”였다. 많은 나라에서 온 대표들이 사흘간 열띤 토론을 벌였다. 러시아에서 온 나이 지긋한 대표는 그 기간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오랜 세월 무신론 국가에서 신앙을 고수했던 그에게 마지막 날 말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단상에서 대표들을 바라보며 안타깝게 말했다. “저는 여러분들이 왜 사흘 동안이나 토론을 하는지 이해가 안 됩니다. 말씀대로 살다 보면 하나님의 말씀이 오류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될 텐데 왜 이런 회의가 필요한가요?”
그렇다.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통해서 보내신 “여호와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삶, 그런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그것으로만 타협의 위험한 거래를 끊고 구원과 생명과 축복으로 나아갈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명백함에도 타협의 신앙에 눈길을 보내는 그리스도인은 여로보암의 결국을 살펴보는 것이 도움이 될 것이다. “여로보암이 이 일 후에도 그 악한 길에서 떠나 돌이키지 아니하고 다시 보통 백성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되 누구든지 자원하면 그 사람으로 산당의 제사장을 삼았으므로 이 일이 여로보암 집에 죄가 되어 그 집이 지면에서 끊어져 멸망케 되니라”(열왕기상 13:33-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