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기독교계에서 가장 많이 통용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는 아마도 ‘이단’이라는 용어일 것이다. 이 단어는 매우 신중하게, 조심스럽게 사용되어야 하는 말임에도 불구하고 한국 교회는 너무도 가볍게 경솔하게 ‘이단’이라는 말을 사용한다. 한국 교회처럼 이단을 쉽게 만들어 내는 나라는 세계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한 통계에 의하면 박영관 씨가 이단이라고 정한 개인이 118명, 예단통합 총회 사이비이단 문제상담소가 만들어 낸 이단이 73명, 한기총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가 결정한 이단이 42명이다. 이외에도 소위 이단 감별사들과 이단 연구 단체에서 생산해 낸 이단도 부지기수로 많을 것이다. 물론 성경에서 벗어난 이단들을 가려내는 일은 필요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한국의 경우는 도(道)를 넘어도 한참 넘었고, 마치 상거래 하듯이 쉽게 이단을 만들기도 하고 풀기도 하여 하나님의 거룩한 교회를 혼란스럽게 만들고 있어서 교회의 장래가 심히 우려된다. 이에 한국 교회의 이단 문제에 대하여 몇 가지 문제점과 대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1)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이 무엇인가?
이것은 이단 문제와 관련된 근본적인 질문이다. 지금까지의 경우를 보면 이단 감별사와 이단 연구소마다 이단을 규정하는 기준이 서로 다르고 통일성과 객관성이 없다. ‘이단’이란 오직 성경에 근거해서만 규정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설교 중에 말실수한 것 몇 마디 가지고도 그것을 기초로 하여 이단을 만들어 내는 것이 오늘 한국 교회의 형편이다. 즉 눈금이 일정하지 않은 잣대를 가지고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평가하여 이단을 만들고 있다는 말이다. 어떤 장로교 단체가 주최한 이단 사이비 세미나의 한 초청 강사는 ‘이단의 확인법’을 강의하면서 사도신경 신앙 고백을 하지 않거나 유아세례를 부인하면 이단이라고 하였다. 이것은 지극히 장로교 중심의 기준이다. 침례교회나 그리스도교회 등 세계 개신교(新敎)의 절반 정도는 사도신경이나 유아세례를 인정하지 않는다. 이 초청 강사의 기준에 의하면 개신교의 절반 정도는 이단이다. 엄밀하게 말하면 성경의 가르침과 다른 신조나 교리를 가르치는 교회나 개인이 이단이다. 그러므로 이단을 규정할 때에 가장 신중하게 고려해야 할 객관적 기준은 성경이 무엇을 어떻게 말하고 있는가 하는 것이다. 결국 성경의 중심 교리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지 못한 사람이 이단 사이비 문제에 간여하게 되면 매우 심각하고 치명적인 실수를 할 수 있기 때문에 아무나 이 일을 해서는 안 되는 것이다.
(2) 이단 규정은 전문성을 가진 신학자들이 해야 한다
한국 교회에서는 대개 각 교단의 이단사이비문제상담소 아니면 소위 이단 감별사들이 이단을 정하여 발표한다. 그런데 그러한 일에 종사하는 사람들의 면면(面面)을 보면 대체로 신학적으로 전문성을 가진 인물들이 아니다. 다른 사람이나 단체를 이단으로 정죄하는 일은 상당한 비난과 저항과 위협을 감수해야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그러한 것들을 감수할 만한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이단을 가리는 일에 참여하게 된다. 어떤 경우에는 이단에서 나와 정통 교회로 들어온 사람들이 이단을 비판하는 어처구니없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이단을 제대로 연구하여 규정하려면 그리고 그 결과들이 객관적으로 인정을 받으려면 소위 정통 교회라고 하는 각 교단 신학대학의 전문가들로 구성된 협의체를 구성하여 이단 문제에 공동으로 대처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3) 이단을 규정하는 과정과 절차에도 객관성이 필요하다
한국 교회에서 이단을 규정하는 절차를 면밀히 분석해 보면 너무나 형식적이고 졸속으로 처리되고 있다. 예를 들어서 한 교단이 모 교회나 개인을 이단으로 정죄할 경우, 그 대상에 대하여 이단사이비대책위원회에서 연구하여 총회에 상정을 하면 총회 대표자들은 그 내용을 제대로 이해도 못하고 파악도 안 된 상태에서 진지한 토의도 없이 결의해 버린다. 그 순간에 또 하나의 이단이 탄생하여 말할 수 없는 피해를 보게 된다. 이 과정에서의 치명적인 문제는 당사자와는 한 마디 대화도 없이 일방적으로 이단으로 정죄를 한다는 것이다. 종교 암흑 시대에도 종교 재판을 받을 만한 혐의가 발생하면 당사자를 불러다가 고문을 하면서라도 본인의 의사를 묻고 혐의를 인정하게 하였다. 그런데 한국 교회는 이단은 모두 거짓말을 한다고 하여 당사자의 의견은 들어 보지도 않고 일방적이고 부실한 연구 결과물을 가지고 이단으로 규정한다. 아직 이단으로 정해지지도 않은 상태에서 이단이라고 확정하여 이단의 변명은 듣지 않겠다는 것이다. 이것은 완전한 모순이다. 법정에서도 범죄 사실이 확정되기 전까지는 죄인이 아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이단으로 의심받는 순간부터 이단으로 단정해 버린다. 이것은 상식과 도리를 벗어난 무지의 소치이기도 하다.
(4) 상대적 이단과 절대적 이단 그리고 힘의 논리
성경은 하나인데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기독교 종파는 수천 개에 달한다. “누가 정통이고 누가 이단인가?” 각 교파에 속한 사람들에게 이러한 질문을 한다면 대부분 자신이 속한 교회를 정통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기독교 안에는 수많은 교파가 이단으로 분류되고 있다. 누가 무엇을 기준으로 상대방을 이단으로 정한 것인가? 뚜렷한 기준 없이 서로가 서로를 이단이라고 정하는 양상이 지배적이다. 이와 같이 어떤 한 교파가 자(自) 교파의 신조를 기준으로 하여 신조를 달리하는 타(他) 교파를 이단으로 정했을 경우에 그것을 상대적 이단이라고 할 수 있다. 이 지구상에는 수많은 상대적 이단이 존재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는 모두가 이단이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보면 힘없는 소수가 이단이 되고 힘 있는 다수가 정통 행세를 하게 된다. 그러니까 이단을 규정하는 문제에 있어서도 힘의 논리가 작용한다는 것이다. 마르틴 루터가 ‘오직 성경’, ‘오직 믿음’이라는 신조를 가지고 가톨릭에 대항하여 종교 개혁을 시작할 무렵, 이미 거대한 교권을 행사하고 있던 가톨릭교회는 종교 개혁의 세력을 이단으로 낙인찍고 권력을 이용하여 격렬한 핍박을 가하였다. 성경을 기준으로 하여 절대적 이단을 가려낸다면 가톨릭이 분명한 이단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적반하장(賊反荷杖) 격이 된 것이다. 이러한 양상은 초기 교회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새로 나타난 나사렛 예수당은 그 당시 유대 사회나 로마 제국의 입장에서 보면 이상스러운 교리를 전하는 이단이었다. 그래서 사도 바울도 “나사렛 이단의 괴수라”(행 24:5)는 누명을 썼다. 그러니까 오랜 세월 동안 ‘이단’이라는 말에는 힘의 논리가 작용해 온 것이다. 객관적이고 절대적인 이단은 반드시 성경을 기준으로 가려져야 한다.
(5) 이단 판별 기준 예시(例示)
그러나 성경을 해석하는 원칙과 기준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성경에 의한 절대적 이단을 분별하여 시비를 가리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이단 문제에 있어서 세계적인 권위자 중의 한 사람인 행크 박사는 이단을 규정할 때는 성경의 본질적인 문제와 비본질적인 문제를 구별하여 본질적인 면에서 문제가 없으면 이단으로 규정해서는 안 된다는 설명을 하면서 다음의 8가지 본질적인 대목을 제시한 바 있다. ①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는가. ② 인간이 태어날 때부터 죄인임을 인정하는가. ③ 성경의 정경성을 인정하는가. ④ 삼위일체를 믿는가. ⑤ 죽은 자의 부활을 믿는가. ⑥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인정하는가. ⑦ 지구가 재창조 될 것을 믿는가. ⑧ 예수 재림으로 인류의 역사가 끝나는 종말론을 믿는가. 상당히 설득력 있고 합리적인 기준이라고 생각된다.
불가피하게 이단을 가려낼 수밖에 없는 현실 세계에서 이단을 규정하는 책임 있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은 늘 다음의 성경절들을 염두에 두고 심사숙고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남을 판단하는 사람아 무론 누구든지 네가 핑계치 못할 것은 남을 판단하는 것으로 네가 너를 정죄함이니 판단하는 네가 같은 일을 행함이니라”(롬 2:1). “입법자와 재판자는 오직 하나이시니 능히 구원하기도 하시며 멸하기도 하시느니라 너는 누구관대 이웃을 판단하느냐”(약 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