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나의 주인은 누구인가

평양에 가면주체탑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김일성의 주체사상을 기리고 기념하는 석재로 만들어진 거대한 조형물입니다. 그 주체탑의 맨 아랫부분, 즉 기초석에누리에 빛나라 주체사상이여라는 제목으로 쓰여진 비문이 있는데, 그 내용 중에 다음과 같은 문장이 있습니다. “사람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주체사상의 기초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믿고 살아가는 기독교인들은 사회주의의 주체사상과는 정반대의 사상을 갖게 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결정한다는 것이 기독교 사상의 기초입니다. 

인간의 모든 주권이 하나님께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천지 만물을 창조하시고 인간을 만드셨다는 창조론에 기초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와 그분을 찬양하고 예배하는 것은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에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나의 주권자임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하나님을 경배하고 찬양하고 그분께 기도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하나님이심을 고백하고 인정하는 것입니다. 

  • 하나님은 생명의 주인이시다

인간의 소유한 것 중에서 가장 소중하고 가치 있는 것이 있다면, 그것은 생명입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대저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광명 중에 우리가 광명을 보리이다”( 36:9). 

이 세상의 어떠한 종교도 인간의 생명과 죽음의 문제를 명쾌하게 해결하지 못하고 있지만, 오직 성경만이 그 두 가지 문제에 대한 해답을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그 생명이 하나님께 연결되어 있음을 잊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살 때에 심령의 평안과 만족을 얻을 수 있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사람으로 생명에 이르게 하는 것이라 경외하는 자는 족하게 지내고 재앙을 만나지 아니하느니라”( 19:23). 

인간의 생명은 곧 시간과 같은 것입니다. 생명을 가진 자에게만 사용할 수 있는 시간이 허용됩니다. 생명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고백하는 모든 사람은 당연히, 자신이 사용할 수 있는 시간 전체가 하나님의 것임을 인정합니다. 나의 시간, 나의 전 존재가 하나님의 소유임을 자각하고 그것을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용할 때에 인간은 진정한 만족과 행복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러면, 나의 생명(시간)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는 객관적인 증거가 무엇일까요? 성경은 그 해답을 이렇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또 나의 안식일을 거룩하게 할지어다 이것이 나와 너희 사이에 표징이 되어 너희로 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인 줄 알게 하리라 하였었노라”( 20:20). 영어 성경(NIV)에서는내가 여호와 너희 하나님라는 말을 “I am the LORD your God”이라고 표현하였습니다. “Lord”(로드)라는 말는 주권을 가진주인이라는 말입니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키는 것내가 네 하나님이고네가 내 소유된 백성인 증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이것은 안식일만 하나님의 시간이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주인이시므로, 인간이 사용하는 일주일(7)이라는 시간 전체가 모두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엿새 동안은 힘써 일하라’( 20:8~11)고 말씀하셨기 때문에 일을 하는 것이고, 제칠일은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안식安息하라고 하셨기 때문에 쉬면서 하나님을 경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엿새 동안 열심히 일하다가 제칠일(일곱째날, 토요일)이 되면 인간의 모든 일과를 중단하고 쉬면서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은 하나님이 나의 생명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는 객관적이고 살아 있는 증표가 됩니다. 

  • 하나님은 물질의 주인이시다

목수가 목재를 사용하여 책상을 만들어서 30만원의 수입을 얻었다고 가정해 봅시다. 목수는 나무를 어디에서 구입한 것입니까? 목재상에서 구입했겠지요. 목재상은 그 나무를 어디에서 가져온 것입니까? 제재소製材所에서 사들여 왔을 것입니다. 제재소는 어디에서 그 원목을 가져다가 켜서 판자나 각목으로 만들어 목재상에 넘기는 것입니까? 원목상原木商에서 구했을 것입니다. 원목상은 그 원목을 어디에서 가져온 것입니까? 산에서 베어 왔을 것입니다. 

그 산에 있는 나무의 원주인은 누구신가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사람은 나무를 만들 수 없습니다. 인간이 사용하는 모든 물질의 원주인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결국 인간이 소유하고 있는 물질(재물),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생명건강재능하나님이 창조하신 재료를 이용하여 벌어들인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오늘날 인간들이 소유한 재물을 가지고 마치 자기의 것처럼 세도를 부리고 자랑하는 것은, 아버지가 준 돈으로 산 과자 한 봉지를 등 뒤에 감추고 아무도 나누어 주지 않고 혼자 먹으려고 욕심 부리는 어린 아이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성경은하늘과 모든 하늘의 하늘과 땅과 그 위의 만물은 본래 네 하나님 여호와께 속한 것이”( 10:14)라고 천명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은도 내 것이요 금도 내 것이”( 2:8)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창조주로 인정하고 예수의 믿음을 가지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기독교인들은 이 엄연한 진리를 인정해야 합니다. 말로만 인정할 것이 아니라 실제적인 삶을 통해서 그것이 나타나야 합니다. 

내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재물의 주인이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인정한다는 표시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바로십일조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친히 명하신 제도입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0). 

그리스도인이 매 주일 한 번씩 제칠일 안식일을 구별하여 지킴으로 나의 생명과 시간 전체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잊지 않고 고백하듯이, 모든 수입의 십분지 일을 정직하게 구별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나의 재물의 10%만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가 아니라 100% 모두 다 하나님의 소유임을 인정한다는 외적인 표시요 신앙의 고백입니다. 역사적으로 록펠러는 비롯하여 미국의 부호들 중 상당수는 십일조를 신실하게 드리며 살아간 사람들입니다. 

  • 청지기의 행복

이와 같이 내가 소유한생명재물이 나의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 주인이심을 인정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을청지기’( 12:42;16:1 참조)라고 합니다. 청지기는 주인이 맡겨 둔 것을 관리하는 종입니다. 혹시 집안이 기울어져 망해도 청지기가 망하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망하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에 근심하고 두려워합니다. ‘암 말기선고를 받으면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습니다. 큰 재산을 잃어버리거나 상거래에서 막대한 손해를 보면 억울해 하고 괴로워하고 때로는 잠을 이루지 못합니다. 극심한 경우에는 실신을 하든지 자살까지도 합니다. 자기의 것을 잃었다는 상실감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의 정신과 참된 믿음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관리하며 살아간다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은, 우선 하나님이 모든 것의 주인이시라는 생각 때문에 생명이나 재산 관리를 철저하게 잘 할 것이고, 혹시 생명이나 재산을 잃는다 해도 구약 성경의 욥처럼, “내가 모태에서 적신이 나왔사온즉 또한 적신이 그리로 돌아가올지라 주신 자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자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1:21)라고 고백할 수 있습니다. 이 얼마나 멋지고 행복한 인생입니까? 예수님께서도 인간의 의식주 문제를 말씀하시면서 이렇게 교훈하셨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6:33,34). 이 도道를 터득한 사람이 지혜롭고 행복한 사람입니다. 

 

11. 인간의 의미와 그리스도인

사람자를 곰곰이 들여다 본 적이 있습니까? 우리가 흔히 사용하고 있는인간人間이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사람자는 막대가 두 개가 서로 기대로 있는 모양입니다. 막대기 두 개로 만들 수 있는 모양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 , =, +, ll 등과 같은 기호들은 모두 막대기 두 개로 만들 수 있는 것들입니다. 그런데, 왜 하필이면 사람자를, 막대기 두 개가 서 있는 모양이 아니라서로 의지하여 기대고있는 모양으로 만들어 놓았을까요? 그 정확한 유래와 근원을 알 길은 없지만, 아마도 사람은 각자가 독립적으로 살 수 있는 존재가 아니라 서로 의지하고 기대어 도와가면서 살아야 된다는 의미가 아닐까요? 서로 기대고 있는 막대기는 둘 중에 어느 하나라도 넘어지면 두 개가 함께 쓰러지듯이, 사람은 다른 사람과 협력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살려고 하는 순간에 실패하는 인생이 된다는 의미도 될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말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람과 사람 사이間를 인간이라고 합니다. 다시 말해서 사람이 홀로 존재할 때에는 인간으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의미입니다. 서로가 양보하기도 하고 종종 자신을 희생하기도 하면서 상대방을 배려하고 존중하고 섬기며 살아갈 때에 인간다운 삶이 가능하다는 뜻이 아닐까요? 어쩌면 이러한 유형의 삶은 사람을 가장 행복하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삶의 형태일 것입니다. 

  • 인간의 두 가지 공통점

성경은 모든 사람이 다 죄인이라고 말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3:23; 5:12). ‘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죄에 대하여 여러 가지 의미로 해석을 할 수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죄는 곧불법’(요일 3:4)이라고 말합니다. 법대로 살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죄에 대하여라 함은 저희가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16:9). 예수를 믿지 않는 것이 죄라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두 가지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는 예수께서 아무런 죄 없이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의 죄값(죽음)을 대신 지불하셨다는 뜻이고, 둘째로, 예수를 믿으면 죄를 용서받고 죄가 해결된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라고 하는 것은 우리의 생활 속에서 어떤 형태로 나타나는 것일까요? 우리가 모두 죄인이라는 증거가 무엇입니까? 다음과 같은 말이 있습니다. “만일 교만과 이기심만 버린다면 대부분의 문제들은 5분 내에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EW, 119).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내재하고 있는는 자기 자신을 높이는교만심과 자기 중심적으로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며 살아가는이기심이라는 형태로 나타납니다. 다시 말해서 죄인으로서 모든 인간에게는교만심이기심이라는 고질적인 공통의 질병이 있습니다. 

  • 행복과 불행의 갈림길

사람들이 그렇게도 추구하며 갈망하는행복이라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면 사실, 죄의 두 가지 본질적인 요소, 즉 교만심과 이기심을 버릴 때에 얻어지는 것입니다. 사람이 비행기를 타고 높은 곳에 있으면 왠지 불안감을 느낍니다. 그러나 비행기가 착륙하고 우리의 발이 땅바닥에 닿으면 평안해 집니다. 왜 그럴까요? 높은 곳에 있으면 추락할 위험이 있지만 땅바닥에 내려오면 더 이상 떨어질 위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자면, 행복의 비결은 더 떨어질 수 없을 만큼 자신을 낮추고 남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의 것을 좀 더 많이 소유하려고 하면 불안해지고 초조해지고, 그 목적이 성취되지 못했을 때 불행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리고 많은 것들을 소유하게 되었을 때에 인간은 그것들을 지키기 위하여 다시 불안해집니다. 인간의 창조자이시고 인간이라는 메카니즘을 가장 잘 이해하고 계시는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자는 낮아지고 누구든지 자기를 낮추는 자는 높아지리라”( 23:12). 

행복해지기를 원하는 사람들은 신약 성경 사도행전 20 35절의 말씀을 음미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범사에 너희에게 모본을 보였노니 곧 이같이 수고하여 약한 사람들을 돕고 또 주 예수의 친히 말씀하신 바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복이 있다 하심을 기억하여야 할지니라”. 연약한 사람들을 도와주고 남에게 사랑과 자비를 베풀며 나누어주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의 비결이라는 것입니다. 

미국의 록펠러라는 부자를 우리가 다 압니다. 그에 대한 이러한 이야기가 전해져 내려옵니다. 록펠러는 33세에 백만장자가 되었고 43세에 미국의 최대 부자가 되었고 53세에 세계 최대 갑부가 되었지만 행복하지 않았습니다. 55세에 그는 불치병으로 1년 이상 살지 못한다는 사형 선고를 받았습니다. 그리고 최후 검진을 위해 휠체어를 타고 병원 입구에 들어서는데 로비에 실린 액자의 글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주는 자가 받는 자보다 복이 있다.” 그 글을 보는 순간 마음속에 전율이 생기고 눈물이 났습니다. 선한 기운이 온몸을 감싸는 가운데 그는 눈을 지그시 감고 생각에 잠겼습니다.

잠시 후 시끄러운 소리에 정신을 차리게 되었는데 입원비 문제로 다투는 소리였습니다. 병원 측은 병원비가 없어 입원이 안 된다고 하고 환자 어머니는 입원시켜 달라고 울면서 사정을 하고 있었습니다. 록펠러는 곧 비서를 시켜 병원비를 지불하고 누가 지불 했는지 모르게 했습니다. 얼마 후 록펠러가 은밀히 도와준 그 소녀가 기적적으로 회복이 되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록펠러는 매우 큰 기쁨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록펠러는 나중에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표현 했습니다. “저는 살면서 이렇게 행복한 삶이 있는지 몰랐습니다.” 그때부터 그는 나눔의 삶을 시작합니다. 그와 동시에 신기하게 그의 병도 사라졌습니다. 그 뒤 그는 98세까지 살며 선한 일에 힘썼습니다. 나중에 그는 회고합니다. “인생 전반기 55년은 쫓기며 살았지만 후반기 43년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 그리스도인이 된다는 것

오늘날 교회가 사회로부터 많은 지탄을 받고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사람이 더 나쁘다” “교회가 너무 이기적이고 자기 교회 밖에 모른다” “교회가 이 사회를 위해서 하는 일이 무엇이냐?” “총회에서 선거할 때 보면 세상 사람들과 다른 것이 하나도 없다.” 온유하시고 겸손하시고 죄인들을 구원하기 위하여 마침내 자신의 생명까지도 버리시며 철저하게 자신을 희생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며 그분의 발자취를 따라간다고 하는 사람들이 왜 그런 말을 듣고 살아가야 합니까? 

그리스도인이 되어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 분의 정신과 삶을 본받아 살아가는 것입니다. 그 분은 어떻게 사셨습니까? 그 분의 삶을 두 단어로 표현한다면겸손희생입니다. 그러한 삶을 요약한 성경 말씀이 빌립보서 2 5~8절에 나와 있습니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이 땅에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이러한 그리스도의 정신을 본받아 살아갈 때 그리스도인 자신과 함께 온 세상은 행복해질 것입니다. 사람자와인간人間이라는 말의 의미를 깊이 되새겨 봅시다. 

 

12. 목숨인가 생명인가

목숨생명은 같은 말인가요 다른 말인가요? 우선 생각하면, 같은 말인데목숨은 순수한 한국어이고생명生命은 한자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사전에서도 두 단어의 의미에 큰 차이를 두지 않고 있습니다. 표준국어대사전에는목숨사람이나 동물이 숨을 쉬며 살아 있는 힘이라고 설명하고 있으며생명에 대해서는사람이 살아서 숨 쉬고 활동할 수 있게 하는 힘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생명을 설명할 때에는사람측에 비중을 둔 것 같습니다. 영어로 Breath(브레쓰)는 단순한 호흡, 혹은 숨을 말하고 Life(라이프)는 목숨을 포함하여, 인간의 살아가는 삶 자체를 의미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식물의 생명에 대하여 말할 때에는목숨이라고 하지 않고 넓은 의미에서생명이라고 합니다. 

종합해 보면 이 두 단어의 의미에는 현저하게 구별되는 차이가 없습니다. 그러나, 무엇인가 느낌을 통해서 얻어질 수 있는 차이는 있는 것 같습니다. ‘목숨이란 단순히동물들이 숨쉬며 살아 있게 하는 힘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 것 같고, ‘생명이란 보다 근원적인 의미에서생명체를 가진 만물들의 삶의 어떤 원천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 성경이 말하는 ‘목숨’과 ‘생명’의 차이

성경에서도 목숨과 생명에 현저한 차이를 두고 설명하지 않습니다. ‘목숨으로 번역된 원어나생명으로 번역된 원어가 같은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번역되어 쓰여지는목숨생명에는 약간의 차이가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우선 양쪽 경우의 성경절들을 몇 구절 살펴 보겠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몸을 위하여 무엇을 입을까 염려하지 말라 목숨이 음식보다 중하지 아니하며 몸이 의복보다 중하지 아니하냐”( 6:25).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8:35)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5:26).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니라”( 7:14). 

위의 성경절을 가지고목숨이라는 말에생명을 대입하면 크게 무리한 감이 들지 않지만, ‘생명에다목숨이라는 말을 대입하면 왠지 어색하고 이상하게 느껴집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목숨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목숨을 주어…”라고 한다면, 혹은 “‘목숨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라고 한다면 무엇인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산상보훈」이라는 책 61쪽에 보면목숨이라는 말과생명이라는 말의 차이를 이렇게 사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생명의 근원이시기 때문에 그분과 교통함으로써만 생명을 소유할 수 있다. 하나님을 떠나면, 목숨은 잠시 부지할지 모르나 생명은 소유할 수 없다.” 성경의 개념으로 생각한다면 매우 적절한 표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겸손하고 가난한 심령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며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자만하고 교만한 마음으로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을 무시하고 자신의 의지와 세속적 욕망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에 대하여는, 살아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생명이 없는 죽은 자라고 말합니다. “일락逸樂을 좋아하는 이는 살았으나 죽었느니라”(디모데전서 5 6). 

  • 생명을 가진 자들의 삶의 원리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대한 믿음을 갖고 그분과 연결된 사람들은 그 삶의 방식이 이전과는 현저한 차이를 갖게 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 10:31).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과 연결되어 산 사람들은 이전처럼 자기의 쾌락이나 욕망이나 명예를 추구하지 않고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추구한다는 것은 결국 이웃을 자기 몸처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요일 4:20). 기독교 신앙의 최고의 가치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는 자기 몸을 하나님의 성전으로 생각하고 관리를 하게 됩니다. 목숨만 가진 자들은 자기가 자기 몸의 주인이지만, 생명을 가진 자들은 하나님이 자기 몸의 주인이 됨을 인정합니다.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그러므로, 생명을 가진 자들이 몸의 건강을 최상의 상태가 되도록 관리하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일입니다. 

우리의 몸이 하나님의 성전이라면, 성전 안으로 들어가는 음식과 성전에 나오는 말들이 하나님의 영광에 합당한 것이라야 합니다.  몸에 해로운 음식을 삼가고 이로운 음식들을 선별하여 균형지게 섭취하는 것도 매우 중요한 신앙의 한 부분입니다. 좋은 말을 가려서 올바르게 사용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신앙입니다. 

자기의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는 자제력이 필요합니다.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그들은 썩을 승리자의 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것을 얻고자 하노라”(고전 9:25). ‘절제라고 하는 것은, 자기가 하고 싶어도 하나님의 뜻이 아니면 삼가고, 자기가 하기 싫어도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면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몸을 건강하고 건전하게 관리하기 위하여 좋은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지만, 그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마음을 잘 관리하는 것입니다. 인간의 마음 상태는 몸의 건강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것이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이 자기의 마음을 하나님의 뜻대로 관리하는 것은 건강한 신앙을 위하여 필수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떤 마음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십니까? 그 대답이 데살로니가전서 5 16~18절에 나와 있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마음의 즐거움은 양약이라도 심령의 근심은 뼈를 마르게 하느니라”( 17:22). 

기뻐하는 마음, 감사하는 마음이 사람의 신체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는 이미 여러 방면에서 과학적으로 증명된 사실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좋은 것인지는 누구나 다 알지만 제대로 실천이 되지 않는 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요? 답은 데살로니가전서 5 17절에 이미 나와 있습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이 우리를 돕지 아니하시면 항상 기쁨으로 사는 것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신앙생활이 필요하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필요하고 기도가 필요합니다. 

  • 목숨만 가진 자에서 생명을 가진 자로

<변화> 42호의 주제는목숨만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이 어떻게생명을 소유하게 되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목숨만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들의 종말이 어떤 것이고, 생명을 가지고 살아가던 사람의 결말이 어떤 것인지를 살펴본 것입니다. 목숨만 가지고 살던 사람과 생명을 소유하고 살던 사람의 현저한 격차는 지금은 잘 보이지 않지만 예수의 재림시에 나타나게 됩니다.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양편으로 나누고 말씀하십니다. “저희는 영벌에 의인들은 영생에 들어가리라”( 25:46). 영원한 사망과 영원한 생명이 바로 그 양편의 결말입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하여 힘겹게 혹은 쾌락을 추구하면서 살아가는 인생보다는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살아가는 인생이, 현세에서도 건강하고 축복된 삶을 누릴 뿐만 아니라 미래에는 더욱 큰 보상을 받게 됩니다.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더 들려드리고 싶은 하나님의 말씀은 요한복음 5 24절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