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독교인들 중에서 어떤 사람들은, 십계명은 구약 이스라엘 백성의 법이기 때문에 예수께서 십자가에 돌아가시면서 폐지하시고 새 계명을 주셨는데 그것이 곧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그렇게 말하는 분들은 예수님께서 친히 천명하신 이 말씀의 의미가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케 하려 함이로다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마 5:17,18).
하나님의 율법, 혹은 계명이 결코 폐할 수 없는 것이라면, 성경이 말하는 ‘새 계명’의 뜻은 무엇인가요? 예수께서 새 계명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많은 기독교인들이 이 ‘새 계명’이라는 말 때문에 ‘십계명’이 폐지되었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사랑에 대하여 가장 깊은 이해를 가지고 있었던 사도 요한은 그 ‘새 계명’에 대하여 “사랑하는 자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요일 2:7) 이라고 하였습니다. 요한은 ‘새 계명’은 곧 ‘옛 계명’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다시 강조하여 말하기를 “서로 사랑하자 이는 새 계명 같이 네게 쓰는 것이 아니요 오직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요이 1:5). ‘새 계명’은 새로운 내용이 아니라 ‘처음부터 우리가 가진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미 가지고 있었던 구약에도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는 말씀이 있고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레 19:18)는 말씀도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 유대인들은 진정한 사랑의 동기 없이 계명의 문자에 치중하여 율법을 지키려고 하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을 찾아와 영생의 도리에 대하여 질문한 부자 법관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생명에 들어가려면 계명들을 지키라”(마 19:17). 그 때 그 청년은 그것이 어느 계명이냐고 물었습니다. 예수께서 십계명의 몇 항목들을 말씀하셨을 때 그 청년은 주저하지 않고 자신 있게 대답합니다. “이 모든 것을 내가 지키었사오니 아직도 무엇이 부족하니이까”(마 19:20).
그 청년은 마음속에 이웃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동기 없이 문자적으로 계명을 지켰던 것입니다. 살인하지 않았고 간음하지 않았고 도적질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대체적으로 이 청년과 같은 정신으로 계명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에, 예수께서 ‘새 계명’을 준다고 말씀하셨던 것이고, 그 말씀의 의미는 내용이 새로운 것이 아니고 ‘새로운 정신’을 강조하신 것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웃 사랑에 대하여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하였지만 예수께서는 더 높은 차원의 사랑을 말씀하셨습니다. 구약 성경에서 ‘사랑하라’고 말씀하셨던 예수께서는 그 사랑이 어떤 것인지를 친히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요 13:34).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에서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사랑하라’로 바뀌었습니다. 그것을 새 계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새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십계명’의 각 항목들을 순종하며 실천할 때에, 예수께서 우리에게 보여 주셨던 그 사랑의 정신으로 계명을 지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품성, 즉 사랑의 정신을 담고 있는 십계명이 무엇인지, 어떤 것인지를 다음의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십계명은 영원불변한 하나님의 법이다
어떤 기독교인들이 말하는 것처럼, 십계명은 폐지될 수 있는 법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영원하신 분인 것과 마찬가지로 십계명도 영원한 법입니다. 이스라엘이 출애굽 하여 광야를 지나는 동안에 지어진 성소의 구조 속에서 우리는 그 사실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임재하셨던 성막 안의 지성소의 구조를 보면 하나님의 존재와 계명의 관계를 알 수 있습니다. 그림에서 보이는 것처럼 지성소 안에 있는 법궤 위에는 하나님의 임재와 존재를 나타내는 ‘세키나’라고 하는 영광의 광채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래 기초에 십계명 돌비가 있습니다.
시편 기자는 이 모습을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둘렸고 의와 공평이 그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 이 말씀 중에 ‘의’(히, 체데크)라는 말과 ‘공평’(히, 미스파트)이라는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보좌’라는 말은 하나님의 존재를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 존재의 기초가 ‘의’와 ‘공평’이라는 것인데, ‘의’라는 말의 히브리어 원뜻은 ‘법’이나 ‘기준’을 말하는 것이고 ‘공평’이라는 말의 의미는 법과 기준에 의해서 공정하게 다스리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을 두 단어로 표현한 것이 ‘사랑’과 ‘공의’입니다. ‘의’와 ‘공평’이라는 말은 바로 하나님의 공의의 속성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세상을 공의롭게 통치하시는 그 기준 ‘의’라는 것은무엇일까요? 시편 96:7에 그 설명이 나와 있습니다. “하늘이 그 의를 선포하니 모든 백성이 그 영광을 보았도다”. 이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님께서 시내산에 십계명을 선포하실 때에 모든 백성이 그 광경을 보았다는 말입니다. 다시 말해서 ‘의’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들의 삶의 기준이라고 할 수 있는 ‘십계명’을 가리키는 것이고, 그 십계명은 하나님의 존재와 직결되어 있기 때문에 결코 폐지되거나 변경될 수 없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한 영감적인 기록에는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보좌가 없어지지 않는 한, 그 율법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구원하기 위하여 당신의 율법 중 단 한 가지 계명도 변경하시거나 고칠 수 없으시다. 그 이유는 율법이 당신의 정부의 기초가 되기 때문이다. 도덕적인 율법은 변할 수 없는 것이며 고칠 수도 없고 무한하고 영원한 것이다.”(1SM, 239). 그러므로 십계명이 폐했다고 하는 말이나 십계명을 변경하는 행위는 하나님의 존재를 훼손하는 것이고, 하나님의 나라의 법과 질서를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죄’라고 하는 것은 ‘법’이 있어야 성립됩니다. 법이 없으면 범법도 없고 죄도 없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이 없다면 그 나라는 무법천지가 될 뿐 아니라 그런 나라는 존재할 수도 없고 존속할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은 하나님의 법을 자신의 형편에 맞추어 재해석하거나 적당히 합리화 시켜서는 안 되며,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법에 맞추어 나아가야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백성됨의 증거입니다.
2) 십계명은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이다
모든 기독교인들은 십계명이 언제 어떤 배경에서 누가 선포하였는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십계명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죄악 세상을 상징하는 애굽에서 구출된 이후에 하나님에게서 받은 것입니다. 침례를 상징하는 홍해(고전 10:1,2)를 건너서, 다시 말하면 이미 구원을 받은 이후에 광야의 시내산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십계명을 선포하셨습니다. 만약 애굽에서 십계명을 다 지켜야 구원을 받을 자격을 얻을 수 있었다면 아무도 구원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구주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표상하는 모세를 통해서, 애굽이라는 죄악 세상에 처해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은혜로 구원하여 그들을 광야로 이끌어 내신 후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하나씩 하나씩 가르쳐 주셨습니다. 십계명은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이 실천하며 살기를 원하시는 가장 기본적이고 근본적인 항목임과 동시에, 그의 백성들과 함께 영원히 살고 싶어 하시는 하나님의 간절한 소원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자녀가 되려면 그렇게 살아야 된다는 말씀이 아니고, 이제 너희는 내 백성, 내 가족이 되었으니 이렇게 살아달라고 하시는 사랑의 호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선포하시고 이미 구원을 받은 그 백성들에게 순종하도록 요구하셨고 그 백성들은 그렇게 살겠다고 약속하였습니다. 이렇게 해서 하나님과 그 백성 사이의 언약이 체결되었고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고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계명의 내용 중에 가장 중요한 안식일 계명에 대하여 재차 강조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는 나의 안식일을 지키라 이는 나와 너희 사이에 너희 대대의 표징이니 나는 너희를 거룩하게 하는 여호와인 줄 너희로 알게 함이라”(출 31:13). 중요한 것은, 안식일만 잘 지킨다고 하나님의 백성이 아니라 안식일을 포함한 십계명의 내용을 잘 살펴서 성실하게 실천하며 순종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인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순종이 얼마나 순수하고 진정한 것인지는 계명을 지키는 백성들의 마음의 동기, 즉 사랑을 통해서 입증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인이 살면서 하나님에 대하여, 이웃에 대하여 어떤 마음의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느냐 하는 것은 생명처럼 중요한 것입니다.
3) 십계명은 하나님 백성의 삶의 현장(懸章)이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선포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예수님으로 이 땅에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십계명의 정신이 무엇인지, 그 계명을 지키는 것이 실생활에서 구체적으로 어떻게 표현되는 것인지를 자세하게 가르쳐 주셨는데, 그것이 바로 마태복음 5~7장에 나오는 산상수훈의 교훈입니다. 오늘날 법 용어로 설명하자면, 십계명은 ‘헌법’이라고 할 수 있고, 산상수훈은 헌법의 정신에 입각해서 세부적인 항목으로 만들어진 ‘6법’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산상수훈은 시내산에서 선포된 십계명을 확대해석하여 ‘은혜의 왕국’의 법으로 다시 한번 선포하신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 이런 마음을 가지고 이렇게 사는 사람들이 하나님의 백성 곧, 천국의 시민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산상수훈의 말씀 가운데, 천국 시민의 특성을 다음과 같이 요약해서 말씀해 주셨는데, 우리가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이 내용은 매우 중요한 말씀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리워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기우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취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3~16).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친히 그렇게 사시는 모습을 보여 주시면서 하신 말씀이 바로 “내가 너희를 사랑하는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마태복음 5장~7장의 말씀을 자주 읽고 묵상하면서, 그 말씀을 거울로 삼아서 자신의 모습을 점검하여 하나님의 백성답게 천국의 시민답게 살아가는 연습과 훈련을 해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매우 중요한 문제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이 인간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연약하고 죄 된 인간들에게 힘을 주시고 하나님의뜻대로 사는 일을 도와주시기 위하여 예수께서 성령님을 보내주셨습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무엇을 구하든지 내가 시행하리니 이는 아버지로 하여금 아들을 인하여 영광을 얻으시게 하려 함이라 내 이름으로 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시행하리라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내가 아버지께 구하겠으니 그가 또 다른 보혜사를 너희에게 주사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있게 하시리니 저는 진리의 영이라”(요 14:13~17).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그가 너희를 모든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시리니 그가 자의로 말하지 않고 오직 듣는 것을 말하시며 장래 일을 너희에게 알리시리라”(요 16:13).
“보혜사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 그가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말한 모든 것을 생각나게 하시리라”(요 14:26).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천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그리스도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면서 천국의 시민답게 살 수 있는 유일한 길은 끊임없이 성령의 역사를 구하면서 성령의 도우심으로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훈련을 하는 것입니다. 매일 매일 충분한 기도와 헌신의 정신으로 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천국에 합당한 사람으로 만들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가 스스로 노력해서 천국 시민이 되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도우심을 받아서 천국 시민이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이 계속될 때 나타나는 결과가 바로 성령의 열매입니다.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 5:22,23).